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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인삼·더덕 뿌리처럼 생겼지만 사약에도 넣던 독초, 자리공 

 

잎은 식용하고 뿌리는 붓기 빼는 이뇨제 약재로 요긴
풀 전체 독성 있어 잘못 복용하면 복통·설사에 심장마비도


▎다른 자리공과 다르게 독성이 적은 미국자리공은 열매는 젤리·파이로, 잎과 줄기는 끓여 나물로 먹었다.
먼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자생(自生)하는 재래종 자리공(Phytolaccaacinosa)부터 간단히 알아본다. 자리공은 자리공과(科)에 드는 여러해살이풀로 덩이뿌리가 매우 굵고, 줄기는 원기둥 모양이며, 아주 큰 놈은 키가 1m가량이다. 잎은 타원형으로 어긋나게 달린다. 꽃은 5~6월경에 빽빽하게 피고, 열매는 자줏빛으로 모여 나며, 풀 전체에 독이 있다. 우리나라 각지에 널리 분포하고, 주로 촌락 부근의 숲 가장자리, 길가, 밭 가에 많이 난다. 한자로는 상륙(商陸), 장류(章柳)로 불린다.

어린잎은 식용하고, 뿌리는 이뇨제 약재로 쓴다. 자리공 뿌리는 봄이나 가을에 캐서 깨끗이 씻은 다음 햇볕에 말린다. 잘게 썰어서 쓰는데 때로는 썬 것을 식초에 적셔 볶아 사용하기도 한다.

동아시아나 남아시아가 원산지일 것으로 생각하며 한국·중국·일본·미얀마·베트남 등지에 분포한다. 영어로는 ‘Indian poke’라 부르는데, 인도에서는 잎을 먹기 위해 재배하고, 중국에서는 흰 꽃을 따먹으려고 일부러 키운다고 한다. 여린 잎은 독성이 약해 먹을 수 있지만 자라면서 독성이 늘어나므로 삼가야 한다.

자리공 뿌리에는 독이 있어 잘못 복용하면 중독을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복용 후 30분에서 3시간 이내에 열이 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호흡 횟수가 증가하고, 오심(惡心, 음식물로 인해 위 속이 불편하고 토할 것 같은 느낌)·복통·설사를 일으킨다. 심하면 중추신경이 마비되고, 호흡운동에 장애를 일으키며, 혈압이 하강하고,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특히 임산부가 많은 양을 복용하면 유산될 우려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열매 독에 끄떡없는 야생조류들은 자리공 열매를 먹고 사방팔방 퍼뜨린다. 열매 속의 씨는 새의 소화관에서 소화되지 않고 고스란히 배설물로 나온다. 그리고 밭이나 들에서 소에게 풀을 뜯겨보면 냄새가 많이 나는 쑥이나 자리공 같은 독초는 좀체 먹지 않고, 어쩌다 입에 들어가면 서둘러 뱉어낸다. 초식동물들은 자리공이 썩 해롭다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서 절대로 먹지 않는다.

다음은 오늘 글의 주인공인 미국자리공(Phytolacca americana)이야기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드디어 저 아래 내 묵정밭은 미국자리공 천지가 되고 말았다. 작년만 해도 새싹이 나서 띄엄띄엄 자리를 잡나 했는데 겨울 지나고 지난여름에 보니 어느새 훌쩍 커서 내 키를 잴 만큼 자라서 자리공 숲을 이루고 말았다. 알고도 모를 일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땅덩어리도 크지만, 다람쥐도, 집쥐도 크고, 나무도 하늘을 찌르며, 물 건너온 미국자리공까지도 허우대가 크다. 생장뿐만 아니라 번식력도 알아줘야 한다.

미국자리공은 미국 원산인 외래종으로 키는 1~1.5m이고, 식물체 전체에 적자색 빛이 돈다. 미국자리공(poke-berry)은 1950년대 약초로 쓰기 위해 들여와 농가에서 재배하던 것이 야생 상태로 퍼져나가 전국 각지의 집 근처의 빈터나 길가의 언덕배기에 자라게 된 침입종(invasive species)이다. 다른 보통식물이 살지 못하는 오염된 산업단지나 산성화된 땅에서도 군락(群落)을 이룬다.

선명한 자주색 활용해 종이·옷감 염색원료로

줄기는 분홍색이거나 붉은색이고,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져 덥수룩하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 10∼30㎝의 긴 타원형이며, 양 끝이 좁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붉은빛이 도는 흰색 꽃은 6∼9월에 핀다. 긴 꽃대에 여러 개의 꽃이 어긋나게 붙어서 밑에서부터 피기 시작하여 끝까지 피는 총상화서(總狀花序)를 이룬다. 꽃받침조각은 5개이고, 수술과 암술대는 각각 10개씩이다.

열매는 과육이 많고 속에 씨가 들어 있는 과실인 장과(漿果)이고, 붉은빛이 센 자주색으로 익고, 검은색 종자가 1개씩 들어 있다. 종자는 지름이 3㎜이고, 광택이 있다. 초록색 열매가 9월이 되면 물기 많은 검붉은 열매로 익는데 탐스럽게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아래로 축축 처진다. 독버섯이 더 예쁘다더니만 자리공의 열매도 정말로 먹음직스럽다. 이 식물에는 전초(全草)에 독이 있고, 열매를 생으로 먹으면 혀가 마비되고, 설사·구토·현기증이 나타날 수 있다. 자리공 무리가 다 그렇듯이 뿌리가 엄청나게 크고, 꼭 인삼이나 더덕, 도라지 뿌리처럼 생겼다. 애당초 세상에 있는 14종의 자리공들은 죄다 살충제로 썼고, 사약에도 넣던 독초이다. 미국자리공도 유독식물이지만, 다른 자리공들과 다르게 독성이 좀 적은 편이라,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먹었던 식물이다. 열매로는 젤리나 파이를 만들어 먹었고, 어린잎과 줄기는 따다가 뭉근히 끓여 나물을 해 먹었다. 물론 삶은 뒤에 충분히 독을 우려내었다.

그리고 한방에서는 미국자리공 뿌리를 미상륙(美商陸)이라 하여 약재로 쓰는데, 신우염이나 늑막염 때문에 전신이 부었거나 복수가 찼을 때나 각기·인후염·종기 등에도 치료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적량의 독은 쓸모 있는 약이 될 수도 있다.

필자는 촌에서 나고 자란 탓에 시골 생활에 이력(履歷)이 났다. 자리공의 뿌리나 여뀌 풀을 콩콩 찧어 즙을 뿌려 물고기를 잡았다. 약의 농도가 짙어야 효과가 나기에 물이 적게 흐르게 물막이하여 약을 듬뿍 흘린다. 마취된 물고기들이 배를 뒤집고 돌 밑에서 둥둥 떠나오는 것이 마냥 신기했었다. 또 몽글몽글한 자리공의 열매를 무심코 씹었다가 입 안이 얼얼하고 먹먹하게 마비되었던 기억도 새삼 난다.

그리고 독성분과 염색액은 잎·줄기·뿌리·꽃·열매에 다 들었다. 자주색 열매를 짓이기면 자줏빛 즙이 나와 예전부터 종이와 옷감을 물들이는 염색원료로 사용됐다. 자리공의 자주색만큼 선명하고 예쁜 것도 드물고, 서양에서는 잉크 제조에도 쓰는 까닭에 ‘ink berry’라 부른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2002호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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