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커버 스토리 | 인물분석] 진중권 그는 누구인가 

집단주의를 거부하는 무당(無黨)의 논객 

박정희, NL(민족해방 계열) 등 파시스트적 집단주의 배격에 진영 가리지 않아
이상향에 걸맞은 진보 정당의 꿈 포기 않는 신념가적 기질도 있어


▎진중권(왼쪽 사진)과 유시민이 올 1월 1일 JTBC 신년특집 토론회에서 ‘한국 언론, 어디에 서있나’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 사진:JTBC 방송 캡처
진중권의 성향은 ‘다양성’, ‘아웃사이더’쯤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아웃사이더’는 그가 1999년 9월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창간한 사회문화평론지의 제호이기도 하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 시인 김정란, 문화비평가 김규항이 참여했다.

서울대 미학과 82학번인 그는 대학 시절부터 진보 이념에 심취해 있었던 듯하다. 현장 활동가라기보다 이론에 밝은 전략가에 가깝다. 같은 대학 법학과 동기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1980년대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사구체 논쟁)’의 한 축을 이뤘던 사상 이론가 이진경(본명 박태호)과 함께 서울사회과학연구소를 결성해 PD(민중민주) 계열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 (조 전 장관이 청문회에서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밝힌 것을 두고 진중권은 “그렇게 살아놓고 어떻게 사회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느냐”며 “그것은 이념 모독”이라고 날을 세워 비판했다.)

진중권의 지적 포용성은 넓고 자유롭다. 다만 파시즘에 대해서만큼은 매우 엄격하고 비타협적이다. PD 계열과 함께 한국 민중운동사의 두 축을 이뤄온 NL(민족해방) 계열을 그는 진보라고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 1980년대 사회과학연구소 활동을 하면서 출간한 [주체사상비판]을 통해 NL 노선을 비판했다. 2000년대 들어 진보 정당 건설 운동에 참여할 때에도 소위 ‘자주파’로 불리는 NL 운동권이 진보 정당에 참여하는 것을 내심 경계했다. 그러다 2004년에 민주노동당을 자주파가 장악하자 그는 항의의 표시로 탈당한다. 2007년 12월 민노당의 내분이 극에 달하자 “종북파는 진보가 아니라 수구 중에서도 가장 반동적인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이듬해 민노당이 진보신당으로 갈라진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이후 노회찬, 심상정과 함께 진보신당 원년 멤버로 활약했다.

파시즘에 대한 그의 거부감은 거의 알레르기적이다. 독일 유학 후 돌아와 [아웃사이더]를 창간했을 때 그는 “참여하는 이들의 세계관은 각기 다르지만, 집단주의, 파시즘,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점은 같다”고 했다. 이보다 앞서 1998년 계간지 [인물과 사상]에서 ‘극우 멘털리티 연구’를 연재하면서 당시를 풍미했던 박정희 열풍의 극우적 행태를 비판했다. 이 글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돼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해박한 지식과 명쾌한 논리를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진보 진영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야박하다. ‘개성 강한 이단아’의 이미지가 강한 탓이다. 이는 이념과 진영을 막론하고 파시스트적 집단주의를 배격하는 진중권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란 견해가 많다. 자신이 창당 원년 멤버인 민주노동당·진보신당·정의당 등 진보 정당 내에서 평당원을 고집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특히 비판적 지지에 대한 그의 부정적 견해는 명확하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 이사장과 벌인 ‘사표(死票) 논쟁’이 대표적이다.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한 유 이사장은 “민노당 후보가 당선권에 들어 있지 않은 선거구에서는 열린우리당에 투표해 달라. 민노당에 던지는 표는 사표”라고 말했다. 그러자 진중권은 “유시민의 발언은 공포정치”라며 “위기에 처한 건 유시민 의원이고, 혼자 뻘짓 하게 냅둬도 된다”고 비판했다.

지난 정당 활동 이력과 최근 조국 사태를 계기로 정의당을 탈당한 그의 결단에서 진중권이 꿈꾸는 진보 정당의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관측할 수 있다. 거대 정치조직,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로운 정당이 바로 그 모델이다. 그가 태극기부대, 친문 진영 등 정치 팬덤 해체를 위한 전면전에 나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보 정당 건설의 꿈은 현재 진행형


▎1999년 사회문화평론지 [아웃사이더] 창간 맴버들. 왼쪽부터 김규항, 김정란, 진중권.
‘무당(無黨)의 논객’으로 돌아온 그는 과연 진보 정당 건설의 꿈을 아예 포기했을까. 그렇게 단정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 유시민, 고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진행했던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의 내용을 책으로 펴낸 [생각해봤어?]에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힌트가 들어 있다.

이 책에서 진중권과 유 이사장은 진보 정당에 관해 견해차를 드러냈다. 유 이사장은 “지금의 양당 체제는 1987년 체제의 완성형”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현재의 보수와 진보 양당 구도 속에서 보수를 압도하기 위한 세력 결집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위기에 처한 문재인 정권을 구하기 위해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를 통해 지지 세력 단속에 힘을 쏟는 유 이사장의 행보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다.

반면 진중권은 제3의 정치세력을 의미하는 진보 정당 건설의 꿈이 “완료형이 아니라 아직 진행형”이라고 반박한다. (그의 표현을 빌려) ‘종북파’가 장악했던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과 손잡고 조국 사태에 입을 닫아버린 정의당은 그가 꿈꾸던 궁극의 제3의 정치세력의 모습이 아니다. 이상에 들어맞는 진보 정당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기존의 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면 될 일로 보는 것이 진중권식 해법이다.

그가 직접 진보 정당 건설 실험에 나설 가능성은 있을까? 지금까지의 말과 행동을 종합했을 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의 행보에 비춰본다면, 진중권의 역할은 잘못 지어진 집을 철거하고 청소하는 것에서 그치곤 했다. 옛집을 부순 터 위에 새집을 짓는 건 새로운 이들의 역할이다.

이런 그의 지향과 관련해 최근 그의 행보는 의미심장하다. 지난 2월 10일 안철수 전 의원이 주도한 국민의당 창당 발기인 대회에 강연자로 참석한 것이다. 진중권은 이 강연에서 “우리 사회의 이성과 윤리를 다시 세워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판단이 어려울 때는 원칙을 지켜라. 최선의 정책은 정직이다”라고 강조했다. 강연 형태를 빌린, 안 전 의원을 향한 정치적 조언으로도 읽힌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청중은 그에게 2022년 3월 대선 때까지 지금처럼 정권의 저격수 역할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진중권의 대답은 간결했다. “제 계획은 이 사회에 던질 메시지를 던지고 나서 잠수를 타는 것이고, 제가 생각한 기간은 그것보다 훨씬 짧다. 젊은 세대를 위해 물러나고 기회를 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다시 어디론가 떠나더라도 시대가 필요로 할 때는 돌아온다는 말로 들린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003호 (2020.0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