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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 특집 | 정치풍향]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역습 

정치지형 바꾸려다 제1당 바뀔 판? 

보수 진영,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 만들어 개정 선거법 우회
‘캡’ 씌운 비례 30석, 민주당에게 그림의 떡… 벙어리 냉가슴만


▎1월 30일 광주시선거관리위원회가 비례대표 투표용지(39.7㎝) 손 개표 상황에 대비해 모의훈련을 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비례대표투표용지는 역대 가장 길 것으로 예상된다. / 사진:뉴시스
자충수(自充手). 바둑에서 자기의 수를 줄이는, 오히려 손해의 돌을 말한다. 지난해 4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될 때만 해도 더불어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의석수 감소를 가져올 요인으로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21대 총선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민주당의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해 12월 26일 민주당을 주축으로 한 소위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강행 처리 시도에 대해 “꼼수에는 묘수를 써야 한다는 옛말이 있다”며 “선거법이 이대로 통과된다면 비례대표 한국당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호언했다.

황 대표의 공언은 현실이 됐다. 2월 13일 한국당의 비례대표 의석 획득만을 목표로 하는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선관위의 승인을 받아 정당 등록을 마쳤다. 이와는 별도로 자유한국당은 새로운보수당과 통합 신당인 ‘미래통합당’ 창당에 합의했다. 지역구 투표에서는 ‘미래통합당’을, 정당 투표에서는 ‘미래한국당’을 지지해 달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프레임을 완성한 것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다른 건 몰라도 황 대표가 비례대표 전용의 위성정당 창당을 빠르게 선언한 점은 참 잘한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전문가도 비슷한 의견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교수는 “만약 정공법으로 선거를 치르려다 급작스럽게 비례대표 의석을 목표로 하는 정당 창당을 시도했다면 상당한 역풍이 불 수도 있었다”면서 “선거법 개정 즈음부터 일관되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위성정당을 준비해왔기 때문에 지지층에서 용인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미래한국당은 벌써 실리를 챙기기 시작했다. 2월 1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0개 정당에 배분한 1분기 경상보조금 110억1000여만원 가운데 5억7000여만원을 받은 것이다. 같은 날, 정운천 새로운보수당 의원이 미래한국당으로 입당하면서 얻은 극적인 쌈짓돈이다. 전날까지 미래한국당은 한국당 출신의 한선교·김성찬·조훈현·이종명 의원 등 총 4명의 의원을 보유해 약 4000만원을 보조금으로 받을 예정이었다.

‘캡’을 씌웠더니 0석의 ‘굴레’도 같이 씌워져


▎2월 5일 열린 미래한국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한선교 의원(앞줄 왼쪽 셋째)이 신임 대표로 선출된 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축하를 받고 있다.
미래한국당은 선관위의 승인을 받은 대한민국 정당이다. 정당 투표 용지의 몇 번째 칸에 ‘미래한국당’을 이름을 올리느냐는 문제만 남아 있다. 미래한국당은 한국당 현역의원 20~30명을 영입해 ‘기호 2번’을 확보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현 의석 분포로 볼 때 정당 투표 용지에 더불어민주당이 1번을 차지하고,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의 후신)이 비례대표 후보 명부를 선관위에 제출하지 않는다면 제3당이 정당 투표 용지에서 기호 2번을 가져갈 수 있다. 그다음 순번을 놓고 군소정당이 몸집불리기 경쟁을 하게 된다.

미래통합당이 굳이 자신들의 이름을 놔두고 미래한국당이라는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을 만든 이유는 미래한국당으로 하여금 최대한의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케 한 뒤 총선 후 합당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든 자유한국당이든 지역구 투표와 정당 투표에서 아무리 선전을 한들 바뀐 선거법에 따르면 최대 의석 확보에 제약이 따른다. 어느 정당이든 지역구 의석은 무제한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비례대표 의석은 정당 투표 지지율과 지역구 의석 비율을 봐가며 배분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 확보하는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서 손해를 볼 공산이 크다. 정의당 등 지역구 당선자 수가 적은 군소정당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에 목은 매단 이유이기도 하다. 자유한국당은 이런 굴레를 벗어나고자 비례대표 전용의 위성정당을 만든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으로 정당 투표를 유도할 것이고,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을 미래한국당은 대략 27석에서 28석까지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김재원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의 셈법이다. 전체 비례의석 47석 가운데 절반 이상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총선 후에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 후신)과 미래한국당이 합당하면 모든 그림이 완성된다.

다급해진 쪽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박주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2월 1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여론 동향에 비춰보면 적으면 미래한국당이 10석에서 많으면 14~15석을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연동형 부분에서 가져갈 의석이 없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의석 47석 가운데 30석에 대해서만 ‘연동률 50%’ 준연동형 비례제를 적용하는 ‘연동형 캡(Cap)’에서 민주당은 1석도 건지지 못할 전망이 높다. 정당 투표 지지율에 비해 지역구 의석이 많으면 비례대표 배분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연동형 캡(Cap)’은 ‘3+1(바른미래당·정의당·평화당+대안신당)’이 합의해 민주당에게 요구한 사안이다. 결과적으로 ‘연동형 캡’이 적용되는 비례대표 30석은 민주당에게 ‘그림의 떡’이 된 상황이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하면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얻을 비례대표 의석수는 연동형 캡 적용을 받지 않는 17석 가운데 고작 6~7석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2월 13일 정책조정회의에서 “미래한국당은 종이정당, 창고정당, 위장정당인 데다 독자적 당헌이나 정강·정책, 독립 사무실도 없는 가짜정당”이라고 비판했다. 앞선 2월 4일에는 당 소속 불출마 의원들을 미래한국당으로 이적하도록 권유한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정당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형법상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있다며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여권분열 우려해 ‘비례민주당’ 엄두도 못 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월 13일 정책조정회의에서 “미래한국당은 종이정당, 창고정당, 위장정당인 데다 독자적 당헌이나 정강정책, 독립 사무실도 없는 가짜정당”이라고 성토했다.
한국당은 오히려 반기는 모습이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고마운 일”이라며 “민주당이 미래한국당을 거론하면 할수록 유권자들 뇌리에 강하게 남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의 미래한국당 창당과 관련, 황교안 대표를 정당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한 것에 대해 “미래한국당은 한국당의 자매정당으로, 미래한국당 설립 과정은 정당법과 헌법에 의한 완벽한 합법”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 지지자들이 자매정당을 인식하고 투표를 위해 홍보를 해야 하는데 (방법을 찾기가) 마땅치 않았다”며 “하지만 민주당과 정의당이 훼방을 놓으니까 자연스럽게 홍보가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명분을 택한 민주당은 실리를 놓고서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처럼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의석 확보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현 상황을 놓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는 민주당”이라고 평했다. 정치권에서는 선거제 개편의 최대 수혜자로 정의당을 꼽는다. 바뀐 선거법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이 최대 15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당 지지율 6~7%만 유지해도 비례대표 의석 9~11석을 확보할 수 있다. 정의당은 지지율을 12~15%까지 끌어올려 원내교섭단체 지위(20석)를 차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현재 지지율을 감안할 때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 어느 쪽도 과반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21대 국회가 다당제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결국 다른 당의 표를 가져와야만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더라도 원내 주도권을 확보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지난해 말 군소정당과의 협력을 통해 선거법, 공수처법을 통과시킨 경험도 있다. 그래서인지 여권에서는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과반의석 혹은 원내 제1당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범여권이 과반의석은 무난하게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내놓은 명분 때문에라도 위성정당을 만들지 못하는 처지다. 비례대표 배분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연말 당시 공조 파트너였던 ‘3+1’(바른미래당·정의당·평화당+대안신당) 등과 함께 원내 과반수를 차지한다면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이 온갖 지탄을 감수하면서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을 만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범여권 공조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연말 ‘비례한국당’이 수면 위로 오르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례정당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이와 관련한 주장이 간헐적으로 나왔다는 것이 민주당 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러나 당 차원에서 “고려해본 적 없다”고 선을 긋는다. 가칭 ‘비례민주당’을 창당할 경우 당장 선거제 개편을 주도했던 명분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선거법 개정안 통과에 함께했던 범여권 진영으로부터 엄청난 비난 속에 여권 분열을 초래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거 국면에서, 그리고 21대 국회에서 입지가 축소될 수 있다. 현 상황과 관련해 민주당 관계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정치개혁이라는 대의와 정도를 걷기 위한 결정이었다”며 “민주당 의석수 감소는 감수하겠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정당 투표에서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정의당과의 선거 공조 가능성도 민주당의 발목을 잡는다. 만약 민주당이 자유한국당처럼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을 만든다면 정의당 등 군소정당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주요 선거에서 민주당과 정의당은 기본적으로 후보단일화 등 공조 체제를 유지해왔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 위성정당 문제로 사이가 틀어지면 정의당은 거의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낼 것이고, 범여권의 표는 분산될 게 자명하다. 결국 보수 정당 후보가 어부지리를 볼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온다면 접전이 예상되는 수도권 민주당 출마자들이 당장 들고 일어날 공산이 크다. 여권의 한 소식통은 “선거에 다가설수록 지역구에서 혈전을 벌이는 후보들의 입김이 커진다”면서 “비례대표 의석을 더 얻고자 위성정당 창당을 운운하다가는 당장 지역구 후보자들의 격렬한 반발을 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민주당의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 창당은 당 안팎의 압력과 제약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이 소식통의 분석이다.

비례대표 의석 배분이 정치권의 민감한 의제로 떠오르자 선관위도 의견을 보탰다. 중앙선관위는 2월 6일 개정 선거법 관련 자체 기준을 공개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비례대표 전략공천 불가’다. 선관위는 “개정법 규정에 비춰볼 때 민주적 심사 절차와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 절차 없이 당 대표나 최고위원회의 등이 선거전략만으로 비례대표 후보자 및 그 순위를 결정하는 소위 ‘전략공천’은 선거법 규정과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재영입 1호도 비례대표 1번 보장 못한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 지난해 1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는 동안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야당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이에 여야 모두 곤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최근 정당명 등록 과정에서 선관위에 의해 번번히 제동이 걸린 야권은 선관위 발표의 배경을 궁금해한다.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 후신)에서 미래한국당으로 옮겨간 인사들이 비례대표 후보로 등록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나 않을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당규에 따르면 당 대표가 비례대표 후보자 중 당선 안정권의 20% 이내에서 선거 전략상 특별히 고려가 필요한 후보자를 선정해 그 순위까지 정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전체 비례대표 후보자의 최대 20%까지 전략공천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선관위 방침에 따르자면 기존 당규를 고쳐야 하는 상황이다. 애써 영입한 인재가 당내 조직 기반에 밀려 물을 먹는 경우도 배제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있다. 장애인 권익 확대를 목표로 ‘영입 1호’로 입당한 최혜영 강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조차 당 중앙위원회 순위투표 과정에서 조직표에 밀릴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처럼 개정 선거법에 따른 비례대표 배분을 놓고 정당 간, 또 정당 내부에서 주판알 튕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현 상황을 일러 “‘4+1’ 협의체를 통한 선거법 개정안 통과의 인과응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연동형 선거제 도입 취지는 표면적으로 다양한 정치세력의 국회 입성에 방점을 두지만 실상 다양성을 제약하는 요소를 품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여권은 민주당 의석수 감소를 감수하더라도 범여권의 의석을 키우려는 의도를 가진 듯하다”면서 “하지만 여권의 이런 꼼수를 보수 진영이 미래한국당이라는 꼼수로 뛰어넘으려고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정치사에 처음으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인해 누가 웃을까? 오는 4월 15일 총선일 저녁쯤에는 판가름 날 전망이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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