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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청해부대, 중동의 해양 화약고로 진입하다 

‘독자 파병’ 카드 불안감 가득한 고육지책 

美 주도 ‘호르무즈 호위연합(IMSC)’ 구성에 佛 중심의 유럽 함대 등장
개별 작전 활동하되 IMSC와 협력 추진… 이란은 반발, 美는 떨떠름


▎지난해 12월, 부산해군작전사령부에서 호르무즈 해협 인근으로 출항한 청해부대 왕건함 모습. / 사진:해군작전사령부
세계 최고(最古)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조항이 들어 있다. 기원전 1750년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왕이 만든 이 법전은 282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제196조와 제200조에 각각 ‘다른 사람의 눈(이)을 상하게 했을 때는 그 사람의 눈(이)도 상해져야 한다’고 쓰여 있다. 이 법전은 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같은 정도의 손해를 가해자에게 가한다는 원칙을 기초로 한다. 바빌로니아 왕국을 멸망시킨 페르시아는 이 법전에 따라 가해자를 처벌해왔다. 페르시아의 후신인 이란에서도 이슬람법에 따라 동형동태(同型同態)로 처벌하는 규정이 있다. 동형동태의 처벌은 살인자에게 사형, 상해를 입힌 자에겐 똑같은 상해를 가하는 것을 말한다.

미군이 1월 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란 혁명수비대의 특수부대를 이끌어온 쿠드스군의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무인공격기(드론)로 공습해 제거하자, 이란 혁명수비대는 1월 8일 미군이 주둔한 이라크의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와 아르빌 육군기지 등 두 곳에 지대지 탄도미사일을 발사,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당시 혁명수비대는 보복 공격의 작전 이름을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이름을 따 ‘순교자 솔레이마니’로 명명했다. 그런데 이란의 보복 공격에서 미군 사망자는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사망자가 없자 이란의 보복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반격작전을 벌이는 대신 경제제재를 더욱 강화하는 조치를 내렸다. 양국의 ‘절제된 행동’은 전면전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란이 앞으로 미국에 대해 직접 추가 보복할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등 중동 각국의 친이란 무장 단체들이 미국에 테러 공격 등을 감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또 호르무즈 해협 등에서 서방 유조선 등을 공격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하메네이는 “우리는 미국의 뺨을 한 대 때렸을 뿐”이라며 “보복이라고도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밝혀 앞으로 미국에 대한 군사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는 점을 천명했다.

트럼프 시나리오에는 이란 핵 시설 공습도


▎지난해 4월,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국가 핵 기술의 날 행사에 참석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핵기술 장비를 둘러보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무엇보다 핵 문제로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이란 정부는 1월 5일 핵 합의에서 정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동결·제한 규정을 더 이상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서방 핵 전문가들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미국 정보기관이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진전돼 있으며 만약 이란이 마음만 먹으면 이른 시일 내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란의 주요 핵시설 및 우라늄 광산은 나탄즈·포르도·아라크 등 17개 지역에 분포돼 있으며 2015년 핵 합의 당시에는 원심분리기 9000개를 가동했으나 현재 가동 가능한 숫자는 3000~40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의 우라늄 재고분은 900t에 달한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이란은 7~12개월 내로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란 정부는 우라늄을 농축하는 데 쓰는 신형 원심분리기(IR-9형)를 대량 생산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란이 핵무기를 제조하려면 우라늄을 농도 90% 이상으로 고농축하면 된다. 게다가 이란은 사거리 2000㎞짜리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어 핵탄두를 장착할 경우 이스라엘은 물론 유럽까지 타격할 수 있다. 이란 원자력청(AEOI)은 2월 2일 미국의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핵 프로그램을 진전시킬 것이라면서 오는 4월 독자적으로 생산한 신형 원심분리기를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이란의 핵 보유를 절대로 묵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8일 대국민 연설에서 “내 임기 중에는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이란이 번영하고 막대한 잠재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이란은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연설 내용은 2018년 6·12 싱가포르 제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보상으로 ‘경제적 번영’을 제시한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란이 미국의 설득이나 압박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을 추진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특단의 조치를 선택할 수도 있다. 미국 정부로선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할 경우 자국은 물론 이스라엘과 사우디 등 중동 우방국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단의 조치라는 것은 이란 핵 시설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말한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핵시설 파괴를 위해 군사적 행동이나 사이버 전쟁을 벌여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은 이란의 핵 개발에 대비한 각종 시나리오를 준비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은 이란의 52곳을 이미 공격 목표 지점으로 정해놓았다”고 경고한 것은 이런 시나리오를 고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52곳의 목표물은 1979년 이란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의 외교관과 직원 52명을 444일간 억류했던 사건을 고려한 것이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이란 남부를 제한적으로 공습하는 것이다. 이란은 수도 테헤란이 있는 북부지역과 페르시아만을 접하는 남부 해안지역이 산악으로 분리돼 있다. 최고 4000~5000m의 높은 산으로 이뤄진 자그로스산맥과 이란고원이 두 지역을 가르고 있다. 이런 지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이 대규모 지상 병력을 이란 북부 지역에 투입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신 페르시아만을 접하고 있는 이란 남부 해안을 집중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 페르시아만의 해안 지역에는 이란의 대공·대함 미사일 기지를 비롯해 해군기지들이 있다. 물론 이란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이란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에 포진한 미 해군 함대를 비롯해 이 지역을 오가는 각국의 유조선과 각종 상선을 공격할 수도 있다. 이란은 그동안 미국과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 들고 위협해왔다.

전략 요충지에 집중된 이란 해군력


▎미국 해군의 강습상륙함인 복서함이 지난해 7월 호르무즈 해협에서 훈련하고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 요충지 중 한 곳이다. 북쪽은 이란, 남쪽은 아라비아반도의 오만과 아랍에미리트(UAE) 사이에 있는 호르무즈 해협의 평균 너비는 50㎞이고 최대 수심은 190m이다. 이 해협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이란·쿠웨이트·카타르·UAE·바레인·오만의 중요한 운송로이며 세계 원유 공급량의 30%가 수송된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대형 유조선이 항해할 수 있는 곳은 해협 중간의 너비 3.6㎞밖에 되지 않는다. 매일 이곳을 지나는 50여 척의 대형 유조선 가운데 두세 척을 침몰시키면 호르무즈 해협 통행을 차단시킬 수 있다.

이란은 대형 유조선들을 격침할 수 있는 충분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란의 해군 병력은 4만5600명이며, 소형 잠수함을 비롯해 고속정과 프리깃함 등 각종 함정 등이 있다. 북한으로부터 수입한 소형 가디르급 잠수함들은 어뢰 공격과 함께 기뢰 부설능력을 갖추고 있다. 가디르급 잠수함은 2010년 천안함을 어뢰로 격침한 북한 연어급 잠수함의 수출형 모델이다. 크기가 작아 작전 범위는 좁지만, 소음이 작아 탐지하기 어렵고 수심이 낮은 해협에서도 작전이 가능하다. 호르무즈 해협 중간에 위치한 3개 섬에도 지대함 미사일과 대포를 배치해놓고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12일 오만해에서 발생한 유조선 피격 사건이 대표적이다. 피격 지점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남동쪽으로 약 140㎞ 떨어진 UAE 북부 푸자이라 항과 가까운 오만해 지역이다. 공격당한 상선은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 2척과 UAE와 노르웨이 선적 유조선 각각 1척 등 모두 4척이다. 당시 미군 전문조사팀은 이란이나 이란의 지원을 받는 친이란 무장세력(미국은 이를 이란 대리군으로 호칭)이 폭발물을 사용해 선박에 구멍을 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미군 공격 시나리오를 보도하기도 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가 직접 또는 친이란 무장 세력을 동원해 예멘 인근 바브엘만데브 해협과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 등에서 무인 공격기(드론)나 고속정 등으로 각국의 상선이나 미 해군 함정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이란은 2011년 격추한 미국의 RQ-170 드론을 역설계해 기술을 습득했다.

무력충돌 휩쓸리지 않으려 유럽 독자 호위 함대 출범


이란은 예멘의 후티 반군에 드론을 제공하기도 했다. 후티 반군은 지난해 5월 14일 사우디의 석유 펌프장 두 곳을 드론으로 공격했었다. 이란은 지난해 9월 14일 사우디의 아브카이크 석유 탈황시설과 쿠라이스 유전 등을 드론과 미사일로 공격했다. 당시 공격으로 사우디 전체 산유량의 절반인 하루 평균 570만 배럴의 원유 생산이 중단되기도 했다. 예멘 후티 반군은 사건 직후 공격 배후를 자처했지만, 미국과 사우디는 공격에 사용된 미사일과 드론이 이란산이라 주장하며 이란의 소행으로 규정했다. 이처럼 사우디 유전시설은 물론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 해역은 이란과 이란 대리군의 미사일과 드론의 공격 범위에 포함된다.

이에 따라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 해역을 공동으로 방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각국이 동참하는 ‘국제해양안보구상(IMSC, 호르무즈 호위연합)’을 적극 추진해왔다. 미국의 IMSC는 말 그대로 호르무즈 연합 함대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은 연합 함대를 구성하기 위해 ‘항행의 자유’라는 국제법의 원칙을 강조했다. 실제로 미 해군은 “IMSC의 구축은 이란의 악의적 행태를 억지하고 해양 안보와 안정을 도모하면서 페르시아만 해역, 호르무즈 해협, 바브엘만데브 해협, 오만만의 공해에서 항행과 교역의 자유를 보장하는 게 목적”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IMSC 구성은 미국이 핵 개발과 테러 지원 등 이란의 불법 행위를 국제사회가 규탄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각국에 IMSC 참여를 요청했고, 영국이 가장 먼저 IMSC 동참에 나섰다. 호주·사우디·바레인·UAE·알바니아 등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8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의 해군 제5함대 사령부에 본부를 둔 연합 함대를 공식 출범시켰다.

하지만 프랑스는 IMSC 불참을 선언하고 유럽 국가 중심의 독자적인 호르무즈 해협 호위 함대인 ‘유럽 호르무즈 해협 호위작전(EMASOH)’을 추진했다. 이란의 핵 개발에는 반대하지만 자칫하면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벌어질 경우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한 관리는 “이란이 IMSC를 자국에 적대적인 계획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 긴장 완화에 역효과를 낼 것”이라며 미국과 별개 행동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유럽 호위 함대에 독일·벨기에·덴마크·그리스·이탈리아·네덜란드·포르투갈 등 유럽 7개국이 참여했다. EMASOH의 사령부를 UAE의 아부다비에 설치한 프랑스 등 유럽 호위 함대는 참여국들의 상선 보호 임무만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연합 함대 참여 요청을 받아온 일본과 한국은 독자 파병을 선택했다. 일본 방위성은 올 1월 10일 해상자위대에 P-3C 초계기 2대와 미사일 구축함 다카나미호 및 병력 260명의 파견 명령을 내렸다. 활동 해역은 오만해, 아라비아해 북부, 예멘 앞바다의 바브엘만데브 해협 동쪽 공해로 한정했다.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은 제외했다. 활동 기간은 올해 12월 26일까지 1년이며 연장할 수 있다. 일본 정부의 파병 결정은 방위성 설치법 제4조에 규정된 조사·연구 활동에 근거했다. 이 법에는 해상 자위대는 일본과 관련된 선박의 안전 확보에 필요한 정보 수집 활동을 벌일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日은 제외한 호르무즈 해협·페르시아만도 활동 반경에


▎지난해 12월 일본을 방문한 하산 로하니(왼쪽) 이란 대통령이 도쿄 총리공관에서 아베 신조 총리를 만나 회담하고 있다. / 사진:AP/뉴시스
일본 정부는 또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파견부대의 임무 범위를 ‘조사·연구’에서 자위대법의 ‘해상경비행동’으로 전환해 제한된 범위에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자위대법의 해상경비행동에는 자국 선적 선박이 공격받을 경우 발포 등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하지만 자위대가 무력 충돌에 개입하는 실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분쟁 해결 수단으로 무력행사를 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평화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일본 야당들과 시민단체들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의 결정은 무엇보다 일본 내 반대 여론을 피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교도통신이 1월 11~12일 실시한 파병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58.4%가 반대, 34.4%가 찬성한다고 밝혔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아베 총리로선 해상자위대 함정을 호르무즈 연합 함대에 포함시킬 경우 자칫하면 이란과의 전투로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독자 파병을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미국 정부에는 파병했다고 생색낼 수 있고, 이란 정부에도 우호 관계를 깨뜨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에 독자 파병을 결정한 것이다.

일본 재무성 무역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중동 원유 의존도는 88%에 달한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일본선주협회회원사 선박은 연간 총 1700척, 그중 500척이 유조선이다. 일본 정부로선 에너지 안보의 사활이 걸린 호르무즈 해협에서 자국 선박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그동안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미국과 함께 항행의 자유 전략을 추진해왔다. 그럼에도 독자 파병을 결정한 것은 과거 왕조국가였다는 공통점을 배경으로 이란과 전통적 우호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6월 핵 문제를 놓고 대립하는 미국과 이란 사이의 중재자로 나서겠다며 이란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 일본 총리로서는 41년 만이자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처음이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이란 대통령으로서는 2000년 이후 19년 만에 일본을 방문했었다.

문재인 정부도 일본 정부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방부는 1월 21일 아덴만 해역에서 활동 중인 청해부대의 작전 지역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청해부대의 작전 지역은 아덴만 일대(1130㎞)에서 오만만과 호르무즈 해협 및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 해역까지(3960㎞)로 3.5배 확대됐다. 파견 지역을 확대한 이유로는 우리나라의 선박과 중동 지역의 교민 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해부대는 IMSC에는 동참하지 않는다. 다만 필요에 따라 IMSC와 협력할 예정이며, 정보 공유 등 제반 협조를 위해 청해부대 소속 장교 2명을 ‘연락장교’로 IMSC 본부에 파견할 계획이라고 국방부는 밝혔다. 청해부대는 4000t급 구축함인 왕건함, 고속 단정 3척, 링스헬기 1대, 병력 320명 등으로 구성됐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독자 파병 결정 과정과 그 내용에는 상당한 문제점도 안고 있다. 첫째, 작전 범위에 호르무즈 해협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미국과 이란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에 진입할 경우 자칫하면 양국의 전투 상황에 휘말릴 수도 있다. 국제법상 영해는 연안국 안전에 해가 되지 않으면 외국 선박도 주권국의 허가 없이 통행이 가능하지만 군함이 호위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양다리 전략’ 구사하다 두 마리 토끼 모두 잃을라


▎지난해 6월 이란과 페르시아만 연안 산유국 사이의 해역에서 의문의 공격을 받아 불타고 있는 대형 유조선.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군사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우리나라 선박이 주로 이용하는 수로가 이란 영해에 속해 있어 자국 영해를 침범했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청해부대가 우리나라 선박의 긴급 호출이 있기 전까지 호르무즈 해협 입구에 대기하는 등 이란과의 마찰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하지만 전투 상황이 벌어지고 우리나라 선박이 공격을 받았을 경우 청해부대가 우리나라 선박을 구조하기 위해 출동한다면 불가피하게 전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청해부대가 이런 상황에 대비한 시나리오와 매뉴얼을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도 중요하다. 그런데 군 내부에서조차 왕건함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질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하고 출항했느냐에 대해선 회의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아덴만에선 소총으로 무장한 해적을 상대했다면 호르무즈 해협에선 미사일과 잠수함, 고속정 등을 운용하는 이란 혁명수비대와의 충돌에 대비해야 한다. 청해부대는 미사일과 드론 공격에 취약하다.

둘째, 이번 파병 결정에 대한 이란의 불만을 제대로 무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란 외무부는 “한국 국방부는 페르시아만의 역사적인 명칭조차 알지 못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파병 결정을 비판했다. 국방부가 발표할 때 사용한 아라비아만은 국제적으로 ‘페르시아만’이라는 명칭으로 통용된다. 다만 이란에 적대적인 사우디와 UAE, 미국 정부 등은 아라비아만으로 칭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당수 국가는 양쪽의 명칭을 병기하고 있다. 외교부는 이란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독자 파병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밝혔지만 이란 외무부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셋째, 파병 종료 시점도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청해부대 작전범위 확대를 ‘한시적’이라고 강조하며 “중동 상황이 좋아지면 철회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파병 기간에 사실상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파병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출구전략’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병 결정에 한·미 관계가 고려된 만큼 문재인 정부가 종료 시점을 판단하는 데 있어 독자적 운신의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번에 파병을 결정한 것은 방위비 협상에서 미국 정부의 강경한 요구를 달래려는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독자적인 개별 관광 등 남북협력 관계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대북 제재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미국 정부의 협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호르무즈 파병을 결정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일단 문재인 정부의 파병 결정을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연합 함대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작전 활동하는 것에 내심 불만을 보이고 있다. 미국 일각에선 동맹국인 한국이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호르무즈 해협 연합 함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란과 북한은 그동안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적극 협력해왔다. 게다가 이란은 지난해 12월 오만에서 중국 및 러시아 해군과 사상 처음 해상 훈련을 실시하는 등 미국의 연합 함대에 맞서기 위한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아무튼 문재인 정부의 청해부대 독자 파병은 미국과 이란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자칫하면 ‘양다리 전략’은 양쪽에서 뺨을 맞을 수도 있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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