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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CEO in KOREA(13)] ‘한국의 골드만삭스’ 꿈꾸는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참치왕(아버지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DNA, 금융의 바다 개척하다 

평사원부터 금융에 투신,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한국 금융의 대표 오너 CEO로
인수·합병 성공 통해 금융지주 일궈내, 글로벌 진출과 인터넷은행으로 영역 확장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아버지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을 전수 받았지만, 그의 영역은 금융이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자리한 여의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돈이 움직이는 곳이다. 여의도공원을 경계로 동(東)여의도와 서(西)여의도로 나눠진다. 서여의도에 국회가 있고, 동여의도에 증권사 등 금융·투자기관이 밀집해 있다. 서여의도가 한국 정치를 움직인다면, 동여의도는 한국 금융의 심장과 같은 비중을 갖는다. 여의도의 금융회사는 거의 다 은행 혹은 제조업 기반 재벌그룹 계열사다. 오너 체제로 운영되는 금융 대기업은 딱 두 곳뿐이다. 한국투자금융지주와 미래에셋대우가 그것이다. 이 회사의 수장인 김남구(57)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과 박현주(62) 미래에셋 회장은 한국 금융·투자업계의 대표 CEO로 손꼽힌다.

금융 지존을 놓고 끊임없이 겨루는 두 거물은 한때 같은 배를 탄 적이 있었다. 그 뿌리는 김남구 부회장의 아버지인 김재철(85) 동원그룹 명예회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치왕(王)’ 김재철 명예회장은 1969년 어선 한 척, 직원 3명으로 동원산업을 창업했다. 당시 자본금 1000만원이 전부였다. 원양어선을 타고, 바다를 누빈 선장 출신인 김 명예회장은 동원그룹을 국내 최대 수산업체로 이끌었다. 그리고 김 명예회장은 1982년 한신증권을 인수해 금융업에 도전했다. 1996년에 동원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한국투자증권이 한신증권·동원증권으로 불렸던 무렵에 김남구 부회장과 박현주 회장은 등장했다. 김재철 명예회장이 토양을 가꾼 뒤, 뿌린 씨앗들이 거목(巨木)으로 성장한 셈이다.

김 부회장은 196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출생지가 같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91년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학업을 마치고 가업 승계를 위해 아버지 회사로 들어갈 때, 김 부회장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당시 이미 세계적 원양어업 회사로 성장한 동원산업에 입사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길은 이제 막 자리 잡기 시작한 금융계열사로 향하는 것이었다. 김 부회장은 험한 길을 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 동원증권의 입지가 오히려 그만큼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었다.”

동원증권에서 출발한 김남구와 박현주

그렇다고 김 명예회장은 아들에게 딱히 특혜를 주지 않았다. 1991년 동원증권 여의도 본사에 발령 내지 않고 명동지점 대리로 보냈다. 실무 경험부터 쌓게 한 뒤에야 1994년 뉴욕 사무소 차장으로 파견시켰다. 이후 1997년 임원(이사)이 됐다. 1999년 전무, 2000년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이어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로 올라섰다. 김 부회장은 박현주 회장보다 5살 어리다. 흙수저 출신 박 회장은 1988년 동원증권에 입사했다. 1997년 미래에셋캐피탈을 설립해 독립하기 전까지 동원증권에서 중앙지점장, 강남본부장 등, 요직을 역임했다. 김 부회장이 입사한 1991년부터 박 회장이 홀로서기에 나선 1997년 6월 전까지 두 사람은 동원증권맨이었다. 박 회장이 동원증권을 떠날 때, 김재철 회장이 아쉬움을 표시했을 정도였다. 일찌감치 그 능력을 간파했던 것이다.

박 회장의 미래에셋이 금융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이, 김 부회장도 소리 없이 강한 경영 수완을 보여줬다. 그 압권은 2005년 한국투자신탁(현 한국투자증권) 인수였다. 2004년 당시 동원금융지주 산하에는 사실상 동원증권이 유일했다. 출자회사로 동원투자신탁운용, 동원캐피탈, 런던과 뉴욕 현지법인을 거느린 규모였다. 당시 매물로 나온 한국투자신탁은 동원증권보다 큰 회사였다. 인수·합병에 성공한 뒤 김 부회장은 동원증권의 사명을 한국투자증권으로 바꿨다. ‘동원’이라는 이름을 떼어내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한국투자증권을 축으로 덩치를 키워나갔다. 2005년 이래로 김남구 부회장 체제는 지속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지분 중 20.23%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그러나 회장에 취임하지 않고, 부회장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아버지인 김재철 명예회장을 넘지 않겠다는 예우가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Why not?’을 전파하다


▎1969년 동원그룹의 최초 어선 출어식에 참석한 김재철 명예회장의 젊은 시절. / 사진:동원그룹
2019년 9월 말 기준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자기자본은 4조9543억원, 자산규모는 57조8682억원이다. 자회사는 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저축은행, 한국투자캐피탈 등 8개사를 거느리고 있다. 또 손자회사로 한국투자신탁운용, 한투밸류자산운용 등 40개사가 있다. 미래에셋과 더불어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오너의 리더십에 기반한 증권회사 중심 금융그룹이 됐다. 김 부회장은 “자금 수요자와 공급자 간 단순 매칭 역할을 뛰어넘는 종합 금융 조력자(Financial Enabler)가 되겠다”며 “은행, 증권, 자산운용, 벤처캐피탈로 이어지는 금융 풀라인업(full line-up)을 구축할 것”이라고 목표를 밝힌 바 있다.

김남구 부회장의 별명은 곰이다. 일단 체구(키 182㎝)가 크다. 한번 결정하면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습성도 곰의 이미지와 겹친다. 타고난 성향에다 아버지 김재철 명예회장의 혹독한 교육법이 영향을 끼쳤다. 김 부회장은 대학교 4학년 때, 신분을 밝히지 않고 4개월 동안 북태평양행 명태잡이 원양어선을 탔다. 배 위에서 하루 18시간 넘게 일했다. 뱃사람의 강인함과 도전정신을 체험한 것이다.

김재철 명예회장의 집무실에는 세계지도가 있었다. 그 지도는 우리가 흔히 보던 것과 다르다. 남과 북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위에 놓여 있고, 러시아가 아래에 있는 식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미래는 바다로 나가는 것뿐이라는 현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북한에 가로막혀 있지 않은 새로운 영역을 실감할 수 있다. 김 명예회장은 바다를 향한 동경으로 동원산업을 일궜다. 그 꿈은 둘째 아들인 김남정(47) 동원그룹 부회장으로 계승됐다. 그리고 실제의 바다가 아닌 금융의 바다를 개척하는 ‘소명’이 김 부회장에게 남겨졌다. 김 부회장이 자주 강조하는 말이 ‘why not(왜 안 되죠?)’이다. “실천만이 진리를 검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설파했던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의 경구 혹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해봤어?”와 비슷한 맥락이다.

한국투자금융지주에서 김 부회장 필생의 목표는 ‘한국의 골드만삭스(세계적 투자은행)’를 만드는 것이다. 회사의 비전도 “VISION 2020 아시아의 선도금융기관”이다. 한국투자증권은 2017년 11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됐다. 2018년에는 단기 금융업(만기가 1년 이내인 어음의 발행, 할인, 매매, 중개, 인수 및 보증 업무) 인가를 받았다. 글로벌 투자회사로 확장할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한국투자금융지주 측은 “금융투자, 자산운용, 인터넷전문은행, 저축은행, 벤처투자, 여신전문업, 헤지펀드 운용 등 금융업 전반의 영역에서 고객 니즈에 부합하는 독창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또한 2019년 8월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자회사로 편입된 한국투자부동산신탁은 10월부터 부동산신탁업 본인가를 받아 영업을 개시했다. 투자자와 자금수요자 모두의 진정한 만족을 추구하는 글로벌 리딩종합 금융 조력자를 지향하며 자회사간 시너지 창출을 극대화하고,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투자금융지주 라인업 중 주력사인 한국투자증권은 위탁 중개 수익에 의존해 오던 기존 금융·투자회사의 수익구조에서 벗어나 자산관리, IB(Investment Banking), 자기자본 투자 등 다변화된 수익모델을 구축하는 데 주력해왔다. 2019년 3분기 한국투자증권은 영업이익 6664억원, 당기순이익 5333억(IFRS 연결기준)으로 분기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1974년 국내 최초 투자신탁회사로 설립됐다. 2005년 동원투자신탁운용과 합병됐고, 지금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최초의 베트남 투자 펀드와 기업 섹터 펀드인 ‘삼성그룹펀드’ 등의 상품을 출시했다. 2012년에는 연기금 투자풀의 주간운용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5년에는 민간의 투자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민간연기금의 최초 운용사로도 선정됐다. 해외 운용사들과의 협업으로 해외 네트워크 확장에도 주력하고 있다. 2019년 9월 말 기준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운용자산 규모는 50조2000억원에 달한다. 2018년(45조4000억원) 대비 4조9000억원이 증가한 것이다.

“금융상품도 수출할 것”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여의도 본사. / 사진:한국투자금융지주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은 2006년 우리나 최초의 장기 가치 투자 전문자산운용사로 출범했다. 기업의 본질적 내재가치에 투자하겠다는 목표를 어필했다. 시장의 변동성에 좌우되지 않는 장기투자를 운용 철학으로 내세웠다. 한국투자밸류 자산운용은 2019년 3개의 사모 헤지펀드를 출시했다. 사모펀드 시장이 커지면서 이 펀드들에 1067억원의 돈이 몰렸다. 2019년 9월 시점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운용자산 규모는 4조2000억원에 달한다. 최근에는 연금전문운용사로의 방향도 모색 중이다.

한국투자저축은행은 2001년 이후 19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2019년 9월 기준으로 고정 이하 여신 비율 2.8%, 연체율 2.2%로 업계 최고의 자산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수익 다각화를 위해 퇴직연금, 육류담보대출 시장에 진출해 변화를 꾀하고 있다. 또한 은행 및 핀테크 업체와 협업으로 중금리 신용대출 시장을 확대하며 2019년 10월 자산 규모 3조원 대 진입에 성공했다. 한국투자저축은행은 시장 지위와 재무 건전성을 인정받아 2019년 4월 비은행계열 저축은행 중 유일하게 신용등급 A0을 받았다.

여신전문금융회사인 한국투자캐피탈은 지주회사 한국금융지주의 대외신인도를 바탕으로 인정적 자금조달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캐피탈 업체의 특성상 그룹 내 계열사인 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저축은행 등과의 시너지 창출이 가능하다. 심사 및 리스크 관리 기능 강화를 통해 시장 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2018년 3월에는 한국신용평가로부터 첫 독자 신용등급인 A0을 받았다. A0은 독자적 자금조달을 위한 발판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2019년 5월에는 NICE신용평가로부터도 A0 등급을 받았다. 이로써 자체 신용만으로 회사채 발행에 성공할 수 있게 됐다. 2019년 9월 말 기준 한국투자금융 지주의 지급보증 차입 비중은 69%로 줄어들었다.

업계 최대 벤처캐피탈회사인 한국투자파트너스는 1986년 11월 중소기업 창업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중소기업 창업자에 대한 투자 및 융자와 창업투자 조합자금의 관리, 경영지도 등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글로벌 벤처캐피탈로의 진화를 위해 중국에 이어 미국,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 해외 진출도 활발하다. 2019년 9월 말 시점에 총 운용 규모는 2조2919억원이다. 30개의 벤처조합과 5개의 펀드, 5개의 사모투자 전문회사(PEF), 1개의 해외신탁펀드를 운용 중이다.

김남구 부회장의 목표는 회사를 아시아 최고의 투자·금융회사로 만드는 데 있다. 그 전초기지는 홍콩이다. 한국투자증권은 2018년 10월 홍콩법인의 사업 확장을 위해 4억 달러 규모의 주주 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그 전까지 홍콩 법인의 자기자본 규모는 1000만 달러였다. 단번에 40배 이상 덩치를 키운 것이다. 이로써 홍콩법인은 한국투자증권 현지법인 중 최대 규모가 됐다.

한국투자증권은 홍콩 외에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에 법인을 만든 상태다. 김 부회장은 “그동안 대한민국이 돈이 없어서 못 했지만 이제 돈이 많으니 해외투자를 할 수 있다”며 “옛날에는 물건만 수출했지만 이제 한국금융도 금융상품을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 부회장을 보좌해 그룹의 글로벌 투자은행(IB)을 지향하는 컨트롤 타워는 유상호 부회장이다. 유 부회장은 2018년 7월 한국투자증권 베트남 법인인 KIS베트남을 통해 현지 파생상품시장에 진출했다. 베트남 하노이 증권거래소의 파생상품 거래 라이선스를 얻은 외국계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이 최초였다. 한국투자증권은 2018년 2월 380억원 규모로 KIS베트남의 유상증자를 하기도 했다. KIS베트남의 자본금이 900억원으로 확대했고 증권중개 영업을 강화했다. 또 베트남에서 한국기업 성장 추세에 발맞춰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 등에도 뛰어들었다. KIS베트남은 2018년 연결기준 매출 144억 원, 순이익 32억 원을 올리며 베트남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2019년까지 KIS베트남에는 호찌민 본사를 비롯한 2개 지점, 4개 영업소에 200명 넘는 현지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인도네시아 법인(KISI)도 출범시켜 동남아 금융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직원이 부회장보다 연봉 더 많은 회사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대학교 채용 설명회에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있다. / 사진:한국투자금융지주
김 부회장이 항상 이기는 길만 걸은 것은 아니었다. 대우증권과 현대증권 인수전에서 연달아 고배를 들이켰다. 특히 대우증권을 미래에셋증권에 빼앗긴 것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후 김 부회장은 새로운 기회를 은행에서 찾았다. 우리은행에 지분 참가를 했고, 인터넷 전문은행 사업에 빠르게 뛰어들었다. 그 성과가 한국카카오은행(카카오뱅크) 투자 참여였다. “전 국민의 90%가 이용한다는 카카오톡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혜안이 적중했다. 모바일 기반의 한국카카오은행은 혁신성과 편의성을 앞세워 2019년 9월 말 기준 고객 수 1069만 명, 총수신 19조9000억원, 총 여신 13조6000억원을 달성했다. 영업개신 2년 만인 2019년 7월 신규계좌 개설 고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수익 측면에서도 흑자 기조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카카오은행은 2017년 9월과 2018년 4월, 2019년 11월에 각각 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했다. 그 결과 납입 자본금은 1조8000억원으로 증가했다. 규모의 경제 달성을 통한 예대마진 기반의 이익창출뿐 아니라 빅데이터 기반 금융서비스 개발과 간편 결제 확대 등 신규 수익 확보를 위한 환경 구축으로도 시야를 돌리고 있다. 또 중도상환수수료와 ATM 수수료 면제 등, 고객 중심 금융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2018년 1월 은산분리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인터넷은행특례법이 시행됐다. 그리고 그해 7월, 금융위원회는 카카오의 한국카카오은행 한도 초과 보유 주주 지위를 승인했다. 이에 따라 2019년 11월 한국카카오은행의 최대주주는 카카오가 됐다. 한국투자금융 지주와 자회사 한국투자밸류 자산운용은 2대 주주로 변경됐다. 한국투자금융 지주 측은 “향후 카카오와의 기술 협력과 한국투자금융 지주의 투자를 통한 금융 서비스 플랫폼 확장으로 성장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김재철 명예회장은 공채제도를 도입한 1984년 이후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신입사원 채용을 해왔다. 국가부도 사태였던 IMF 외환위기 때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아들인 김 부회장도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휘몰아쳤을 때, 몸집 줄이기에 나선 대부분의 금융회사와 달리, 신규 채용을 늘렸다. 오너 경영인으로 드물게 대학교 채용 설명회 현장을 매년 거르지 않고 직접 찾고 있다. 2003년부터 2019년까지 17년 연속 이어지고 있다. 김 부회장은 2019년 9월 채용설명회에 강연자로 나서 “한국투자증권이 아시아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의 증권사가 되기 위해선 최고의 인재가 필요하다”며 “최고의 인재가 모여 최고의 성과를 내고, 최고의 보상을 해주는 선순환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투자증권에서는 직원이 김 부회장 등 최고경영자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사례가 있었다. 김연추 당시 한국투자증권 차장은 2018년 연봉 23억3400만원을 받았다. 이는 김남구 부회장(15억7700만원)이나 김성환 부사장(22억4400만원)보다도 높은 액수였다. 김 차장은 2019년 파격적 조건으로 미래에셋으로 이직했다.

인맥도 자산이다

한국투자증권 직원의 평균 근속 기간은 11.2년(2018년 4월 기준)으로 나타났다. 증권업계에서 한 직장에 10년을 다니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다. 업황이 나빠도 대규모 구조조정을 지양했기에 도달할 수 있는 수치다. 김 부회장은 “월급 많이 주고, 주 52시간제를 실시하는 회사는 맞지만 편하고 호화로운 곳은 절대 아니다”며 “우리는 현재 성취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꿈을 위해 도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1972년 결혼한 김 부회장은 1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남 동윤(28) 씨는 2019년 한국투자증권에 입사했다. 회사는 동윤 씨를 평사원으로 배치했다. 아직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회장은 “아버지로서 아들을 평가하기에 아직 이르고, 앞으로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김 부회장의 나이가 50대여서 후계 구도를 논하기에 시기상조다. 김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는) 아직 생각한 적이 없다. 아직 너무 먼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영국 워릭대학을 졸업한 동윤 씨는 2019년 한국투자증권 외국대학 공개채용 전형을 통해 채용됐다. 대학 재학 시절에는 동원그룹 계열사, 카카오, 글로벌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인턴을 했다.

세간에서는 김 부회장의 호남, 고려대 인맥을 사회적 자산으로 평가한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2017년 한국투자금융지주 고문으로 영입됐다. 김 고문은 고려대 경영학과 금융계 인맥의 핵심 인사로서 장하성 전 정책실장, 최흥식 전 금융감독원장 등과 좋은 관계로 알려져 있다. 김 부회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과 2세 경영자 모임을 통해 만남을 가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김 부회장의 일본 게이오대 4년 후배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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