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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 전문기자의 ‘마인드풀, 내 마음이 궁금해’(12)] 신종코로나와 명상 

자발적 격리의 시간, 마음 키워 면역력 높여라 

호흡 가다듬으며 제자리걸음 하듯 한 발 한 발
감염 공포로 외출 못할 때 집안에서 걷기 명상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 대형 전시장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설치된 임시 병상들. / 사진:연합뉴스
남산 둘레길은 산책하기 좋은 코스다. 휴일이면 종종 걷곤 한다. 어느 쪽에서 시작해도 상관없다. 장충동 국립극장 쪽에서 올라가도 좋고, 퇴계로와 남대문 시장 부근에서 출발해도 괜찮다. 특별한 목적지를 정해놓고 걷는 것도 아니다. 그냥 걷는다. 속도를 낼 것도 없고 단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에 주의를 가져갈 뿐이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매 순간을 느껴보는 훈련이다. 마음챙김 걷기 명상이다.

지난 주말엔 무척 썰렁했다. 남산만 그런 것은 아니다. 명동도 그렇고 남대문 시장도 그렇고 도시 전체가 그런 것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알려지면서부터 나타난 변화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기피 대상이다. 감염을 피하려는 본능적 현상일 것이다.

걸을 때는 단지 걷기만 하라! 저명한 명상가들이 다 하는 말인데,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평상시에도 이런 생각, 저런 감정이 수시로 떠오르면서 주의를 앗아가기 마련이다. 전염병으로 흉흉한 특수 상황에선 더욱더 많은 생각이 오간다. 두려움 때문이다. 감염 공포로 인해 가는 곳마다 주변을 살핀다. 지나치는 사람에게조차 경계의 눈빛을 보내게 된다.

외출하지 않고 걷기 명상을 할 순 없을까? 할 수 있다. 걷기 명상을 위해 꼭 집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나 할 수 있다. 긴 거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m 이내의 공간에서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가고자 하는 거리가 아니라 내가 지금 걸음을 떼려고 하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일 그 자체다.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아주 천천히 제자리걸음 하듯 한 발 한 발 움직여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바이러스 감염을 피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자발적 격리’를 하고 있을 때 해볼 만하다.

미세먼지 때문에 지난해 준비해두었던 마스크를 이번에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2월 11일)과 이 글이 인쇄돼 나올 일주일 후의 바이러스 상황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 더 악화할 것인가 아니면 좀 약화할 것인가. 일주일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바이러스의 진행 경과가 불투명하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게 한다. 2월 11일 오전 10시 기준으로 중국 측 공식 집계를 보면, 누적 확진자가 4만2708명이고, 사망자는 1017명을 기록 중이다. 비공식 루머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자 수치가 떠돌고 있다. 2월 8일 기준으로 중국의 4개 성 80여 개 도시가 봉쇄되었다고 한다. 홍콩에서 가까운 심천(선전) 지역은 홍콩으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바이러스 못지않게 ‘감염 공포’도 두렵다. 죽음의 순서를 기다리는 공포라고나 할까.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알려질 때의 혼돈은 그런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때 비해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의 한국 상황은 공포와 불안이 좀 덜해진 것 같다. 상황에 익숙해져서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이번 바이러스의 치사율이 걱정했던 것보다 그리 높지 않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 그런 듯하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이 글을 쓰는 마음에도 좀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국립중앙의료원 “치료제 없어… 자연적으로 치료”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 대형 전시장에 설치되는 임시 병상들. / 사진:연합뉴스
그렇다고 무조건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감염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다고 하지 않은가. 이전의 사스나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위험하지 않다고 장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이번 바이러스의 발생 원인도 아직 정확히 규명해내지 못한 상태다.

그런 가운데 2월 8일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의 발표가 눈길을 끌었다. 국가지정격리병원(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했던 2번 환자가 격리 치료를 받은 지 13일 만인 5일 퇴원을 했다고 한다. 바이러스 검사에서 2회 이상 ‘음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우려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6일엔 국내 1번 환자인 중국인 여성도 인천시의료원에서 격리 치료를 받다가 완치돼 퇴원했다고 한다. 그 역시 발열 등 증상이 호전됐고 2회 이상 시행한 바이러스 검사에서 ‘음성’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번 신종 바이러스의 원인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치료제도 아직 없는 상황이다. 치료 약이 없는데 어떻게 완치가 될 수 있을까?


▎중국 후베이성 우한 중앙병원 앞 임시 추모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처음 알린 의사 리원량의 명복을 비는 사진과 꽃다발이 놓여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한 국립중앙의료원 측의 설명이 흥미롭다. 언론 인터뷰에 응한 신영식 센터장은 “치료제가 없는데 어떻게 좋아졌느냐 하면, 자연적으로 치료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약이 없는 일반 감기 코스와 비슷하게 정상적인 건강한 성인이라면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작동해 짧게는 10일에서 길게는 3주 안에 항체가 생겨 병이 저절로 좋아지고, 균이 다 없어져 열도 떨어지고, 그래서 낫게 되는 것이다.”

필자에게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바로 ‘자연 치료’ ‘면역 체계’ ‘저절로 좋아짐’ 등의 표현이다. 한국의 의료계가 언제부터 이렇게 자연 치료와 면역 체계를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음챙김 명상의 관점에서는 이제부터라도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개인 면역력 모두 약하면 치명적


▎1. 명상가 에크하르트 톨레. / 2.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면역(免疫)이 무엇인가. 전염병이나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면역은 개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개인과 사회에 모두 필요하다. 이번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하고 전염되는 과정은 ‘사회적 면역력’의 한계를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특히 권위주의적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의 사회적 면역력은 매우 취약한 상황인 것 같다. 사회적 면역력은 사회가 갖추고 있는 방역과 의료 시스템의 수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보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언론의 자유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적 면역력도 약하고 개인적 면역력도 약하면 치명적이다. 사회적 면역력을 나 혼자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 면역력은 내가 높일 수 있다. 나의 습관을 고치는 것이 곧 면역력을 키우는 일이다. 손 씻기를 일상화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개인과 개인이 모두 면역력이 높아지면 사회적 면역력도 향상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면역력 키우기와 마음챙김 명상은 닮은 점이 있다.

명상을 중시하는 정신과 의사 이시형은 면역의 임무가 병균의 침입을 방어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했다. 면역의 역할은 그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피로나 병의 회복을 돕고 몸의 항상성을 유지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건강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면역이 한다. “면역이 곧 생명력”이라고 했다. 면역이 떨어진 상태가 곧 죽음이다. 면역이 건강을 지키는 핵심 요소라는 얘긴데, 바로 그 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마음이라고 했다.

면역력을 떨어트리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마음챙김 명상이 주목하는 것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로 인한 마음의 고통은 면역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가 면역을 약화시킨다. 그런 점에서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마음의 관리는 결국 면역 관리의 출발점이 된다. 건강한 면역력을 형성하려면 건강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밝고 긍정적인 마음이 튼튼한 면역력을 만드는 원동력이다.(이시형 지음, [면역이 암을 이긴다])

독일 출신의 저명한 명상가 에크하르트 톨레는 “누구나 마음속에 드넓고 고요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고요함의 지혜]) 그 마음속의 공간을 넓히는 일은 면역력을 높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를 건강하게 하고 이 세상을 구하는 변화의 힘을 우리 내면의 공간에서 찾는 것이 명상이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든 간에 잠시 그 일을 멈추고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면서 내 마음의 공간을 크게 한 번 확장해보자.

※ 이 기사는 중앙콘텐트랩에서 월간중앙과 중앙SUNDAY에 모두 공급합니다.

[박스기사] 위험의 세계화, 격리·고요·인내로 극복을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 표지. / 사진:연합뉴스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의 2월 첫째 주 특집이 눈길을 끈다.

방독면을 쓰고 스마트폰을 보는 인물 사진 위에 이런 제목을 달아 놓았다. ‘코로나바이러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세계화가 치명적인 위협이 될 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연결성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전 세계로 신속하게 퍼져가는 바이러스가 지구촌이라는 말을 또 다른 의미에서 실감 나게 하는 것이다.

누구나 바이러스에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 연결성의 확실한 증거 아닌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전염될 일도 없을 것이다.

자연 생태계와 경제 산업계의 분업 구조만 그물망처럼 연결된 것은 아니다. 감염 경로를 추적하는 그림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입증하고 있다. 하루에 한 사람이 만나고 접촉할 수 있는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모른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바이러스의 세계화’도 빠른 속도로 이뤄내고 있다. 세계화는 좋게 쓰일 수도 있고 나쁘게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마음챙김 명상은 ‘선한 영향력’의 세계화를 꿈꾼다.

[슈피겔] 기사가 결론처럼 제시한 마지막 문장은 마음챙김 명상을 닮은 것 같다. “역설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위험의 세계화를 구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자발적 격리, 고요함, 그리고 인내심이다”고 했다.

※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중앙콘텐트랩 - 학술기자 20년 외길을 걸어온 국내 굴지의 학술전문기자다.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역임했다.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불전국역연수원·민족문화추진회·도올서원 등을 거쳐 서강대 철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대한제국 120년, 다시 쓰는 근대사] [실학별곡, 신화의 종언]이 있다.

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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