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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호주 산불 최대 피해 동물, 느림보 코알라 

 

섬유질 소화 위해 어미 배설물 속 미생물 섭취
번식기 제외하곤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단독생활


▎올 1월 19일(현지시간) 호주 캥거루 아일랜드 파르다나에 있는 야생동물공원 비상대응센터에 부상당한 코알라가 앉아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해를 넘겨 붉은 불길에 휩싸인 호주는 대한민국 면적에 버금가는 숲과 농지가 불탔다고 한다. 사나운 화재에 피해 입은 집은 1800채, 사망자는 수십 명에 달하고 10만여 명이 대피하였다고 한다. 또 화마에 화상을 입거나 죽은 동물은 10억 마리가 넘는다. 기름기가 많아 화재에 취약한 코알라의 주식(主食)인 유칼립투스(eucalyptus) 나무가 산불 확산에 한몫한 것 같다. 아무튼 털이 검게 불탄 느림보 코알라의 구슬픈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참 안타깝고 애처롭다.

이런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따로 없다. 아비규환이란 불교에서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을 말한다. 아비지옥을 다른 말로 팔열지옥(八熱地獄)이라고도 하는데, 매우 뜨겁게 치솟는 불로 고통받는 여덟 지옥을 뜻한다. 규환지옥은 팔열지옥의 하나로 살생·절도·음행 따위의 죄를 지은 사람이 가는 지옥이다. 펄펄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거나 뜨거운 불 속에 던져져 고통을 견디지 못해 울부짖는다는 섬뜩한 지옥이다.

코알라(koala, Phascolarctoscinereus )는 포유동물, 유대류(有袋類)로 둥근 얼굴에 큰 귀가 특징이다. 몸길이 60~80㎝이고, 몸무게는 수컷이 약 10.5㎏, 암컷은 좀 작은 8.2㎏이고, 호주 원산이면서 호주 고유종(특산종)으로 남동부에 주로 분포한다. 그리고 암컷 아랫배에는 캥거루처럼 달이 차기 전에 낳은, 미숙(未熟)한 새끼를 넣어 키우는 주머니인 육아낭(育兒囊, marsupium)이 있어서 유대류라 부른다.

코알라는 영장류가 아니면서도 지문(指紋)이 있고, 육아낭 안에 두 개의 젖꼭지가 있다. 긴 다리와 날카로운 발톱을 써서 나뭇가지를 잡고 타는 데 적합하다. 털은 양털처럼 빽빽이 나 있는데 특히 귀의 털이 길다. 꼬리는 퇴화하여 없고, 아주 큰 코가 우뚝 드러나 있다. 또한 입속에 다람쥐나 원숭이 따위같이 볼 안에 먹이를 잠시 넣어두는 볼주머니(협낭, 頰囊, cheek pouch)가 있다. 코알라는 번식 시기를 제외하고는 단독생활을 한다. 수컷은 가슴에 세로로 줄무늬가 있는데 거기에 있는 페로몬 주머니(흉선, 胸腺)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나무기둥 등에 문질러 영역표시를 하고, 암컷의 관심을 끌기 위해 꽥꽥 소리를 지른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놈들의 싸움질은 물어보나 마나다.

임신 기간은 25~35일이고, 한배에 한 마리를 낳는다. 새끼의 몸길이는 약 2㎝, 몸무게 1g 이하로, 털도 나지 않은 미숙한 조산아 상태로 태어난다. 그래서 어미 육아낭 속에서 5~7개월 자란 뒤 어미가 6개월 정도 업어서 기른다. 그런데 여태 육아낭의 젖꼭지를 빨고 자라다가 젖을 뗄 무렵에는 어미의 항문에다 입을 대고 반쯤 소화된 배설물(물똥)을 빨아먹으니 그것을 팹(pap)이라 한다. 팹은 일반 배설물에 비해 내장 미생물의 수가 훨씬 많은데, 이렇게 섬유질을 소화하기 위한 여러 장내 미생물을 어미에게 얻는다.

잠꾸러기 이유? 독성 높은 유칼립투스 잎 해독 때문

유칼립투스 나무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태즈메이니아 남부 원산으로 호주에는 650종이 넘게 있지만,그중 코알라가 먹는 건 오직 30종 정도다. 그리고 신선한 유칼립투스 나뭇잎에서는 향기가 나기에 그것으로 허브차를 만들고, 휘발성인 유칼립투스 유(Eucalyptus oil)는 채취하여 약으로 쓰며, 목재는 건축재나 가구재로 쓰인다. 유칼립투스 나무줄기는 껍질이 벗겨지고 나면 미끈한 것이 매끄럽고, 청회색을 띤 흰색이며, 잎은 회녹색이다. 일반적으로 30~55m로 자라고, 가장 큰 나무는 132m나 된다고 한다. 암튼 이 나무는 피자식물(속씨식물) 중에서 제일 큰 나무이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 캘리포니아 자생 식물인 자이언트 세쿼이아(giant sequoia)는 나자식물(겉씨식물)로 키가 50~85m이고, 줄기는 직경이 무려 6~8m나 된다.

코알라가 하루에 먹는 잎의 양은 600~800g 정도이다. 수분은 대부분을 먹는 잎에서 채우지만 가끔 개울 같은 곳에서 물을 마시기도 한다. 그리고 코알라는 잠꾸러기라 유칼립투스 나무 위에서 하루에 20시간을 자고, 나머지 시간에는 먹기만 한다.

코알라의 주식인 유칼립투스 나뭇잎에는 소화되기 어려운 섬유소(cellulose)나 리그닌(lignin)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영양 측면에서 효율적인 먹잇감이라 볼 수 없다. 초식동물들이 다 그렇듯이 영양이 높지 않으므로 먹는 일에 시간을 다 쏟는다. 보금자리는 따로 만들지 않고, 낮에는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자고, 밤에는 나무 위를 걸으면서 유칼립투스 나무의 잎을 먹는다.

오랫동안 많은 과학자는 유칼립투스 잎 속에 알코올 따위의 화합물이 있어서 코알라를 몽롱한 상태로 만들어 그렇게도 노상 잠자는 것이라고 의심했다. 하지만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잎에 영양분이 적기 때문에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잔다고 밝혀졌다. 또한 어린 잎사귀에는 생명을 앗아 갈 정도로 독성물질이 많아 보통은 오래된 잎사귀를 뜯는데, 늙은 잎에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독성분이 있어서 코알라는 그것을 해독(解毒)하느라 잠이 많아졌다고도 한다. 그래서 다른 동물들은 유칼립투스 잎을 먹지 않는다.

코알라는 오직 유칼립투스 나무 한 가지만 먹는 단식성(單式性)이다.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한 나무의 잎을 다 따먹으면 딴 나무로 옮겨 가거나 염분 섭취를 하러 내려오는 수가 더러 있다. 필자도 그곳 동물에서 곰 인형 닮은 그 귀여운 놈들을 만났다.

현재 세계의 모든 동물원에 사는 것까지 다 합쳐 5만여 마리밖에 안 남아있다 한다. 게다가 야생에서 사는 것은 오로지 호주에만 있다. 그나마도 모피(毛皮)를 쓰려고 마구 잡아버려 멸종위기 동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 산불에 느림뱅이 코알라는 제일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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