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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판데믹 | 심층분석] 혼란 부추긴 네 가지 결정적 장면들 

중국인 입국 금지, 마스크 배급, 병상 확보… 정부는 제대로 준비된 게 없었다 

여권, 국민 생명·안전보다 외교·정치 우선시한다는 불신 자초
당국도 마스크, 병실 등 방역에 필요한 기초 설비 수급 파악도 못해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8일 국회 사랑재에서 코로나19 사태 해결을 위해 여야 4당 대표와 회담한 뒤 문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인간의 공포심을 서서히 자극하던 2월 중순. 한국 안방극장은 또 다른 바이러스가 점령한 듯했다. 2월 14일 종영한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그 주인공이다. 만년 리그 하위권을 맴돌던 한국 프로야구팀을 새로 맡은 단장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드라마에서 신임 단장(남궁민 분)은 자신이 부임하기 전 스카우트팀에서 벌어진 석연치 않은 사건의 진상을 파고든다. 이 구단의 스카우트 팀장이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서 당초 뽑기로 한 선수 대신 엉뚱한 인물을 지명하려고 했고, 결국 다른 직원의 만류로 이 시도는 불발에 그쳤다.

이 사건을 수상히 여긴 신임 단장은 당시의 내부 합의를 무시하고 독단으로 행동한 배경을 추궁했다. 이에 스카우트 팀장은 자신이 뽑으려 했던 그 선수가 결국 다른 팀에서 신인왕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들어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반발했다.

이때 단장이 반문한다. “과정을 묻는데 왜 결과 얘기를 합니까?”

사실 스카우트 팀장은 신인 드래프트 전 이 신인왕으로부터 뇌물을 받았고, 그 대가로 영입을 약속했다. 결국 비리가 드러나면서 해고되는 이 팀장은 “왜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느냐”는 단장의 추궁에 신인왕 운운하며 딴청을 피우다 결국 옷을 벗는다.

이 에피소드에 담긴 ‘설령 결과가 좋다는 이유로 과정까지 면책되진 않는다’는 경고 메시지에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이 드라마는 올해 프로야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끝났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장기전에 돌입하고 있다. 1월 20일 첫 확진 환자가 나오고 2월 20일까지 30명에 그쳤던 환자 수는 신천지 대구교회 교인이 확진자로 판명되면서 전기를 맞았다. 2월 29일 하루에만 813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후 신규 확진자 수는 점차 줄어들어 3월 15일 다시 두 자릿수(76명)로 진입했다. 다만 서울 구로 콜센터 등 수도권에서 나오는 지역감염 사례에 방역당국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과정 되짚는 일은 후일 도모하는 지혜 쌓이게 해


▎중국 우한시의 훠선산 병원 관계자들이 코로나19 환자를 격리 병동으로 이송하고 있다. / 사진:신화통신/연합뉴스
확진자 확산 추세가 주춤하면서 국내 언론을 통해 다양한 외신 반응들이 소개되고 있다. 한국 방역당국의 대응을 칭찬하는 내용도 적지 않다. “한국인이 코로나19 위협에 대처하는 것은 이제 새로운 표준이 됐다”(영국 BBC) “한국의 공격적이고 지속적인 검사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강력한 도구”(로이터통신)라는 식이다.

이런 외신의 목소리를 끌어와 국내 언론의 보도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3월 13일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 라이브]에서 “지금 코로나와 관련해 정부를 비난하는 건 한국 언론밖에 없다고 한다”며 날을 세웠다.

그러나 [스토브리그]의 메시지처럼, 설령 결과가 좋다고 해서 과정의 잘못까지 면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정부는 코로나19 전파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책적 실기를 되풀이했다. 3월 중순까지도 숙제로 남은 마스크 수급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또 음압병상(바이러스가 병실 밖으로 퍼지지 않도록 격리한 병실)이 부족해 자택에서 대기하던 중증 환자가 숨을 거두는 경우도 있었다.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데 실패한 결과다.

설익은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은 2월 13일 “방역 당국이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익명의 역학 전문가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말한다. 이 전문가에 따르면 방역당국은 역으로 코로나19의 장기화 채비를 서두를 즈음이라고 했다. 그는 “당시 질병관리본부(질본)는 지역사회 전파를 전제로 완화 전략을 준비했다”면서 “여기서 완화 전략은 장기전에 대비해 의료체계에 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자원을 배분하는 작업을 말한다”고 했다. 예컨대 질본이 전담하던 검역작업을 지역 선별진료소와 분담하는 등 달리기로 말하면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레이스 준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확산 없이 코로나19 사태를 끝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2002년 사스에서 올해 코로나19까지, 21세기 들어 신종 바이러스 전염병은 3~4년을 주기로 창궐하며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의 경험은 미래에 있을 신종 감염병에 대응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당장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었던 건 2015년 메르스를 계기로 이듬해 마련했던 긴급사용승인제도 덕이었다. 감염병 유행이 우려될 시 허가되지 않은 제품을 한시적으로 민간에 공급하도록 허용한 제도다. 그만큼 과정을 되짚는 일은 후일을 도모하는 지혜를 쌓게 한다.

코로나19가 엄청난 속도로 한국사회를 덮치는 상황에서 정부는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고, 정치권은 행여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까 봐 책임전가에 연연해 하는 장면들이 적지 않았다.

장면 1 | 청와대의 ‘중국 봉쇄 5불가론’


▎2월 25일 중국 난징공항 입국장에서 한국 승객들이 줄을 서 방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전파가 본격화된 후 여야 정치권은 중국발(發) 입국 제한, 금지를 두고 가장 첨예하게 맞섰다. 중국에서 오는 외국인들을 어디까지 통제할 것인가를 두고 여론을 둘로 쪼개진 듯했다.

의료계 내부도 양쪽 입장으로 갈렸다. 1월 26일 대한의사협회는 “신속하고 전격적인 입국금지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는 2월 10일 공동으로 “입국금지 조치는 불필요한 과잉대응”이라는 입장을 냈다.

중국발 입국자 제한 논쟁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불이 붙었다. 1월 23일 올라온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이란 청원 글에서 작성자는 “(중국의) 춘절 기간이라도 한시적 입국 금지를 요청한다”며 “이미 한국에 상륙한 뒤에는 늦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이날 중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830명(누적 사망자 수는 25명)이었다. 국내에선 1월 20일 확진 판정을 받은 중국인 여행객(중국 우한시 거주)이 유일했다.

해당 청원에 동의한 인원은 76만1833명(2월 22일 기준)에 달했다. 이 사안에 쏠리는 국민적 관심을 반영하는 듯했다. 청원이 올라온 지 일주일째인 1월 29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중국 국적자 입국을 금지하는 방안에 대해 “국제법상으로 어려운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보건규약은 감염자나 의심자에 대한 입국 거부만을 권고하고 있다. 획일적 입국 금지는 국제법 정신에 어긋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그런데 박 장관은 2월 4일부터 중국 후베이성을 14일 이내 방문하거나 체류한 적이 있는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때늦은 ‘후베이성 차단’ 결정


▎정세균 국무총리가 3월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코로나19 중앙재난 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 총리,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 사진:연합뉴스
명분은 예전 감염병(사스·메르스)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 쉽게 말하면 상황 논리에 가까웠다. 박 장관은 “WHO에서는 사람과 물품의 이동에 제한을 두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권고한 바 있다”며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코로나19의 확산이 계속되고 있고 초기부터 감염이 가능한 특성을 고려할 때 감염자 유입 자체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또 “신종 감염병의 국내 확산을 막기 위해서 의학적·과학적 기준을 다소 넘어서더라도 한층 더 과감한 방역대책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바꾼 대책도 실효성이 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중국 전역에서 환자가 발생했는데, 후베이성만 입국 금지 대상으로 삼는다고 해서 효과적인 감염원 차단이 가능한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당시 중국 내 확진 환자 가운데 40%가량은 후베이성 밖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대표는 같은 날 열린 당 ‘우한폐렴대책 TF’ 회의에서 “이미 중국 전역으로 확산한 상황에서 부족하고 뒤늦은 대책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야권과 대한의협에서는 후베이성만인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오는 입국자를 차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하는 게 정부의 기본 책무라며 여권을 압박했다.

하지만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중국에 대한 전면적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신 정부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입국자 가운데 후베이성을 방문하지 않은 인원에 대해선 ‘특별입국절차’를 밟도록 했다. 특별 입국 대상자는 입국장에서 ▷일대일 발열 검사를 받고 ▷국내에 머무르는 주소와 연락처를 제시해야 하며 ▷ 본인의 건강 상태를 모바일로 보고할 수 있는 자가진단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도록 했다. 만약 이틀 이상 ‘관련 증상이 있다’고 보고하면 관할 보건소가 의심 환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진단 검사를 안내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감염되고서도 증상을 보이지 않는 무증상 감염자는 걸러낼 방법이 없다. 또 앱을 통해서 보고하도록 해도 이를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3월 1일 강릉시에서 확진 판정을 받는 중국인 유학생 우모(21)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우씨는 하루 전인 2월 28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을 때는 아무런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우씨가 재학하는 대학에서 중국인 유학생에 대해 의무적으로 검사를 하면서 뒤늦게 감염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우씨가 단순한 중국인 여행객이었으면 어땠을까. 전국 각지를 마음껏 다녔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 정부 눈치 보냐” 논란 만든 무원칙

법무부가 주호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월 4일부터 27일까지 20여 일 동안 입국한 중국인 수는 7만8689명에 이른다. 우씨같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유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적어도 10만 명 이상 한국 사회 전역을 활보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렇게 스텝이 꼬이다 보니 정부가 제1 교역국인 중국과의 외교·통상 마찰을 우려해 눈치를 본다는 비판도 나왔다. 상반기 내로 조율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도 고려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1월 28일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넓은 시각으로 한·중의 미래도 내다봐야 한다”며 중국인 입국 제한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이런 입장에 대해 야당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단 중국과의 관계를 앞세운 끝에 바이러스 유입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1월 28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앞서 ‘중국인 입국을 금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자가 50만 명을 넘어선 것을 언급하며 “20만 명이 넘으면 답하겠다는 청와대였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말이 없다”며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기 때문 아니냐”고 말했다.

같은 날 새로운보수당(현 미래통합당)의 김익환 대변인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문제까지도 할 말 못하고 중국의 눈치를 본다면 국정을 운영할 기본적인 자격조차 없다”라며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2월 27일 청와대는 중국인 입국을 전면적으로 제한하지 않는 이유를 다섯 가지로 설명했다. ▷국내 특별입국절차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점 ▷2월 4일 이후 중국에서 들어와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는 점 ▷입국하는 중국인 수 자체가 많지 않다는 점 ▷중국 내 확진자 수 증가 폭이 줄어들고 있는 점 ▷WHO의 감염병 대응 가이드라인이 그 내용이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중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하지 않는 것이 ‘중국 눈치 보기’라는 일각의 주장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장면 2 | ‘점입가경’ 마스크 대란… 물물교환까지?


▎재개장 이틀째를 맞는 3월 3일, 대구 서문시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사진:뉴시스
국내 코로나19 확진 환자의 90%가량은 대구·경북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도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 현장이 있다. 보건용 마스크를 판매하는 약국이다. 약국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이제 일상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불경기에 일감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인력사무소 앞에 펼쳐지던 장사진을 연상케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확진환자가 마스크 구매 대열에 합류했다가 들통이 난 적도 있었다.

감염내과 전문의인 신상엽 한국의학연구소 학술위원장은 “비말(입에서 나온 체액)은 최대 2m까지 날아갈 수 있어 대규모 줄서기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3월 중순까지 마스크 대기 줄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그만큼 마스크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이어지면서 마스크를 상품화폐처럼 쓰는 사례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유명 온라인 중고 물품 사이트에선 판매 물건을 내놓고 돈 대신 마스크를 받는다는 게시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부산일보]는 3월 15일 자 지면에 “계란 1팩(4알)을 KF94 등급 마스크 1매와 교환하겠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이 밖에도 마스크의 교환 대상은 의류·문구류·음식물 등 현금으로 구매 가능한 모든 물품을 망라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3월 9일부터 마스크 5부제를 실시했다. 마스크를 출생연도에 따라 지정된 요일에만 1인당 2매씩(1주 기준) 살 수 있게 한 제도다. 출생연도 끝자리가 1·6이면 월요일, 2·7이면 화요일에 구입하는 식이다. 주말에는 주 중에 사지 못한 경우에 한해 구매할 수 있다. 약국의 의약품안전사용정보시스템(DUR)을 활용해 중복 구매도 막았다.

그러나 시행 일주일을 맞는 3월 16일까지도 “허탕 치기 일쑤”란 불만의 목소리를 잠재우긴 역부족인 듯했다. 전국 약국 2만3000여 곳에 동일하게 250여 장씩 공급했지만, 여전히 물량이 부족한 탓이었다. 기자 역시 3월 9일 오전 약국을 들렀지만, “아동용 마스크만 남았다”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날 전국 약국에 공급된 마스크는 559만6000장. 국내 인구수의 5분의 1인 1035만 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개수다.

약국에 들르기 전 재고를 확인할 방법이 없진 않다. 마스크 5부제 시행과 함께 민간 개발업체에서 판매처의 위치와 재고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모바일 앱을 속속 내놨다. 정부가 관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를 공개해 서비스 개발을 도운 덕이다.

그러나 디지털 기기에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에겐 무용지물이다. 대리인이 구매하려 해도 1940년을 포함, 그 이전에 출생한 고령자여야 한다. 한국 나이로 81세부터 가능하단 이야기다. 마스크를 사러 갔다 허탕만 친 일부는 애꿎은 약사에게 분노를 토해내기도 했다. 5부제 첫날인 3월 9일 경기도 광주시의 한 약국에선 60대 남성이 “마스크를 내놓으라”며 흉기를 들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좀처럼 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두 차례 마스크 부족에 대해 사과했다. 3월 3일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마스크를 신속하고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국민께 매우 송구스럽다”며 고개 숙였다. 앞서 2월 29일 국회에서 열린 청와대 여야 대표 회동에서도 마스크 부족에 관해 “국민께 송구하다”며 “(앞으로도 부족할 경우) 특단의 대책을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절대적인 생산 물량이 부족한데 정부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느냐”는 항변도 나온다. 정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보건용 마스크는 일평균 1100만 매에 그치는 상황이다. 온 국민이 1일 1매씩 쓰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마스크 사용 지침과 관련, 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모두 재사용은 불가하다고 못 박았다. 이쯤되면 정부나 국민이나 요령부득의 상황이다.

“수요 감당하기에 충분하다”고 했는데…

마스크 공급 능력을 장담했던 건 바로 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연일 “수요를 감당하기 충분한 생산 능력”(2월 25일), “공급 물량은 충분히 확보됐다”(2월 26일), “정부를 믿어 달라”(2월 28일)며 대국민 설득에 전력했다. 그러다가 “매점매석 시 (물량이) 모래사장에 물 빠져나가듯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실효적 대책이 필요하다”며 매점매석을 마스크 대란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방역 당국은 과도하게 공포심을 자극해 수요를 부풀린 측면도 있다. 당국은 사태 초기부터 보건용 마스크 사용을 권고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1월 29일과 31일 “보건용 마스크 사용을 권고하며 재사용은 금한다”고 밝혔다. 이어 2월 4일에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천이나 면으로 된 (일반)마스크는 기침을 하면 젖기 때문에 침·이물질로부터 호흡기를 보호하는 데 제약이 있다. 수술·보건용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감염 초기에는 정부 권유에 의해 국민들이 하나같이 마스크 착용을 가장 중요한 예방의 수단으로 인식했다.

그러다 갑자기 정부의 입장이 바뀐다. 2월 26일 이의경 식약처장이 “새로 교체할 마스크가 없으면 재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어 “마스크 한 개로 3일씩 쓰는데 큰 지장 없다”(3월 2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거나 “저부터 면 마스크를 사용하겠다, 의료진 등이 우선 사용하도록 시민의식을 발휘해 달라”(3월 8일, 정세균 국무총리)며 일반 마스크 착용 혹은 재사용을 요청했다.

정작 WHO는 일상생활에서의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의심 환자를 돌보거나 기침 증세가 있는 경우에 한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정부는 중요한 보건에 관련된 기초적인 사실 확인도 부실했던 셈이다.

정부의 탁상공론식 대응을 놓고 여당 안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3월 5일 국회 코로나19 대책 특별위원회에서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며 “엄청난 수요를 창출하고 공급할 능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손 놓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역학자인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의료 체계에 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가용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일이 방역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마스크 수급 여건을 확인하고, 사람들이 지나친 공포심을 갖지 않도록 설득했어야 한단 이야기다. 그랬다면 엉뚱하게 마스크 수급에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장면 3 | 정치 무대가 된 대구·경북 집단감염 현장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이 3월 2일 경기도 가평군 신천지 연수원인 평화연수원에서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지난해 1월 넷플릭스가 공개한 드라마 [킹덤]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역병이 창궐하는 사건을 다룬다. 역병에 걸리면 살아 있는 사람의 살점을 탐하게 된다. 물리면 잠복기를 거칠새도 없이 순식간에 증상이 발현된다.

오늘날 부산에 해당하는 동래부에서 처음 발현한 역병은 순식간에 경상도 상주까지 북상한다. 이때 영의정 조학주(류승룡 분)가 선택한 ‘방역 대책’은 경상도 봉쇄. 문경새재를 필두로 경상도를 나가는 모든 성의 문을 봉쇄한다.

중전이 강경 조치를 택한 이유를 묻자 영의정은 “내가 지키려고 한 것은 이 나라의 근간, 종묘사직”이라며 “시신이 몇 구가 있건, 그 누구도 내게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권력”이라고 대꾸한다. 그에게 역병 구제는 보건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코로나19를 이 드라마에 등장했던 역병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극 중 영의정의 말은 현재 코로나19 사태를 대하는 정치권 일각의 태도와 일견 비슷해 보인다. 2월 18일 31번째 확진 환자가 나온 이후 대구·경북 지역에서 빚어진 집단감염 사태를 두고 보면 더욱 그렇다.

여당에서 나온 ‘대구·경북 봉쇄 발언’이 대표적이다. 이 지역에서 확진 환자가 쏟아지던 2월 25일 홍익표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TK 지역을 대상으로) 통상의 차단 조치를 넘어서는 최대한의 봉쇄 정책을 시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대한의 봉쇄’라는 말의 의미는 미묘했다. 중국이 우한시 주민들을 대상으로 강행한 이동제한 조치를 떠올릴 법했다.

이에 대구 수성구갑을 지역구로 하는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배려 없는 언행을 일절 삼가 달라”고 호소했다. 김 의원은 “당·정·청,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코로나19 확산 저지를 위해 싸우는 대구·경북민들의 심정을 헤아려 마음의 상처를 안겨줄 수 있는 어떠한 언행도 일절 삼가실 것을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홍 수석대변인은 이튿날 “대구·경북 지역민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발언을 해 송구하다”는 사과와 함께 대변인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이후로도 민감한 발언은 잦아들지 않았다. 민주당 청년위원회의 한 위원은 3월 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정치 코로나 사건 덕분에 문재인에 대한 신뢰가 강해졌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대구는 어차피 미래통합당 지역이니 손절매해도 된다”며 “민주당을 지지하는 다른 지역은 안전하게 잘 보호해줘서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3월 6일 방송인 김어준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우리 코로나 사태는 대구 사태이자 신천지 사태”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중국이 정말 문제였다면 왜 수도권에선 10만 명당 1명꼴로 확진자가 나오겠느냐”고 말하며 ‘정부가 중국인 입국 금지를 하지 않아 사태를 키웠다’는 일각의 주장에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대구·경북 집단감염의 진원지는 대구 남구에 소재한 신천지 대구교회였다. 3월 3일 기준으로 전국 코로나19 확진 환자 가운데 신천지와 관련된 인원은 2698명(56.1%)에 달했다. 그런데 31번째 환자가 대구교회에서 감염된 것이 밝혀진 뒤에도 신천지 교단에서 명단 공개를 미루면서 비난 여론에 불이 붙었다. 2월 23일 지역 방역을 총괄하는 대구 서구 보건소 직원이 확진 판정이 나고서야 신천지 신도로 확인되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틀 뒤인 2월 25일 신천지 과천본부를 긴급 강제조사해 신도 명단을 확보했다.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이 코로나19 검사를 위한 검체 채취를 거부하자 이 지사는 3월 2일 직접 가평군의 신천지 연수원으로 출동하기도 했다. 이런 행보에 힘입어 이 지사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까지 제치고 차기 대선후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지사의 이런 ‘행동주의’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 지사가 신천지에 과도한 대응을 일삼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 언론인[뉴욕타임스]는 이 지사가 신도 명단을 확보하겠다며 신천지 본부에 간 것을 ‘쇼’라고 표현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포퓰리즘도 적당히 하라. 정치 말고 방역을 하라”며 이 지사를 비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술 더 떠서 이만희 총회장을 살인죄로 고발하면서 신천지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박 시장은 신천지의 법인 허가도 취소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3월 2일 이재명 경기지사가 가평군 소재 신천지 연수원에 도착한 뒤 전화를 받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장면 4 | 자택 격리 중 사망자 속출… 대책은 1주일 뒤에


▎3월 8일 충북 제천 국민연금 청풍리조트 생활치료센터에 도착한 대구 지역 코로나19 경증 환자들이 버스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 사진:뉴시스
대구·경북에서 코로나19 환자 수가 폭증하면서 입원을 기다리던 중증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하기도 했다. 중증과 경증을 구분하지 않고 음압병상에 수용하다가 병실 부족에 직면한 것이다. 대구에 갖춰진 기존 음압병상 수는 병실 33개, 병상 54개였다. 대구에서 첫 확진 환자가 나온 지 사흘 만인 2월 22일 이미 누적 환자 수는 154명을 기록해 지역의 수용능력을 넘어섰다. 앞서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경고했던 “의료체계의 과부하”가 현실화된 상황이었다.

2월 27일 첫 사망자가 나왔다. 이날 오전 6시 53분께 집에서 영남대병원으로 긴급 이송한 74세 남성이 호흡 곤란을 호소하다 두 시간여 만인 오전 9시쯤 숨졌다. 다음 날인 2월 28일 대구에서 자가격리 중이던 69세 여성이 호흡 곤란을 호소해 대구가톨릭대병원 응급실로 긴급 이송됐지만, 도착한 지 1시간 만에 숨졌다. 3월 1일에도 집에서 입원을 기다리던 86세 여성이 호흡 곤란 증세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권 시장은 2월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현재 자가에서 입원 대기 중인 환자가 1304명이나 된다”며 병실 부족 상황을 알렸다. 이에 앞선 2월 26일에는 이재명 지사에게 전화해 ‘확진 환자를 경기도 소재 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3월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피해 최소화를 목표로 하는(완화) 전략”으로 방역 전략을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중증 환자를 분류해 적극적인 치료에 나서겠다는 취지다.

브리핑 현장에선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나오기 전에) 서둘러야 했던 것 아니냐’는 질책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 본부장은 “신천지 대구교회라는 슈퍼전파 사건으로 많은 수의 감염환자가 나오면서 (완화 전략을 시행하는) 시점을 앞당긴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미 2월 22~23일경부터 자택에 대기 중인 환자가 보고된 것을 고려하면 결코 신속한 대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는 환자를 중증도별로 분류해 맞춤형 치료를 받게 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간은 모든 확진 환자가 입원 치료 대상이었다면, 새로운 전략하에선 중증 환자로 분류될 경우에만 상급병원(감염병전담병원·국가지정입원병상)에서 치료를 받게 한다.

반면 경증 환자를 격리할 시설로 ‘생활치료센터’를 설치하기로 했다. 국가 운영시설이나 숙박시설을 격리시설로 활용하도록 했다. 전담 의료진을 배치해 시설 내 확진자의 건강 상태를 수시로 모니터링한다.

중앙정부와 대구시는 3월 2일부터 공공·대기업·연수원에 군부대 시설까지 활용해 생활치료센터 확보에 나섰지만 경증 환자를 모두 수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보름이 지난 3월 17일을 기준으로 할 때 자택에서 대기 중인 환자는 299명에 달했다. 더구나 이 중 88명은 입원이 급한 중증 이상 환자인 것으로 집계된다.

당국이 의욕만 앞세운다고 경증 환자들을 수용할 공간이 뚝딱 마련되는 게 아니다. 생활치료센터는 기본 편의시설을 갖춰 생활에 불편함을 주지 않아야 한다. 또 경증이지만 확진자들을 수용하는 시설인 만큼 건물을 통째로 비워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생활치료센터 확보 속도가 확진자 발생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상당수 확진자들이 자가격리되는 상태가 오래간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의료자원을 배분하는 정부 차원의 전략이 없어 계획 발표만 하고 실행이 되지 않는 행정불신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2004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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