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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 특별기고] 전염병이 바꾼 인류의 역사 

문명의 변곡점에 바이러스가 있었네 

중세 유럽의 페스트, 대항해 시대의 천연두, 전쟁과 대공황 촉발한 스페인독감…
‘사회적 거리 두기’가 IT 인프라 확대와 보호무역 심화 가져올 수도


▎인류 문명의 역사는 곧 전염병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한 변종인 메르스 바이러스를 확대한 모습.
3월13일 새벽, 필자는 공포와 불안 속에 원고를 쓰고 있다. 주가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공포가 몰려온다. 마치 죽여도 끝없이 몰려오는 좀비들처럼 코로나 팬데믹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유럽으로, 미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제 위기는 이제 금융자본주의의 근간마저 흔들고 있다.

좀비 영화는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시작이다. 최초의 좀비는 덜 위협적이었고, 걸음걸이는 느리고 어기적댔다. 그러나 요즘 좀비는 빠르고, 더 집단적이다. [28일 후]에서는 무서운 속도감으로 다가오고, [월드워 Z]에서는 벽을 타고 올라간다. 높은 장벽을 두른 집단거주지도 더는 좀비들의 위협을 막아주지 못한다. 영화에서 좀비보다 무서운 건 인간 자신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좀비 무리에 동료를 밀어 넣는다. 그렇게 혼자 도망쳐도 결국 좀비화를 막진 못한다. 코로나19가 퍼진 이후 생긴 인종 혐오와 특정 지역에 대한 집단 따돌림은 좀비 영화 속 인간의 이기심을 떠오르게 한다.

좀비라는 상상력은 어디에서 시작했을까? 많은 사람이 아이티의 부두교를 언급하지만, 필자는 감염의 역사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14세기 유럽은 페스트(흑사병)로 인구의 3분의 1이 줄었다. 죽지도 않은 환자들을 생매장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간혹 흙을 파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로 보았다면 이 얼마나 무서운 장면인가. 이것이 바로 좀비의 모티브가 되었다.

사람들의 두려움은 책과 스크린에 투영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좀비는 점점 더 강력하고 영리하게 진화했다. 좀비 영화의 끝이 감염 치료제의 등장이라는 것과,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 창궐 상황의 궁극적인 종식이 치료제 개발이라는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좀비는 물려야 감염되지만, 바이러스는 접촉뿐 아니라 공기를 통해서도 전파된다. 새로운 숙주를 찾고, 무서운 속도로 사람들에게 전염된다. 인간이 대처할 수 없는 속도로 빠르고 넓게 퍼진다. 감염의 공포는 인류와 함께해왔고, 이후 역사의 대전환을 촉발한 촉매제이기도 하다.

페스트에 관한 유럽인들의 기억은 독일의 전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엿볼 수 있다. 집시의 전설에서도 이 사나이를 만날 수 있는데, 마을에 창궐한 페스트를 퇴치하기 위해 쥐를 없앤 사나이가 마을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자 영주가 그 사나이를 죽였다는 내용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 다양한 형태의 전설로 전해진다. 페스트는 잊을 만하면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유럽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알베르 카뮈는 1947년 소설 [페스트]를 통해 감염의 공포와 이를 극복하는 실존적 인간을 다뤘다. 이렇듯 페스트는 유럽인들의 삶과 문화 깊숙이 영향을 끼쳐왔다.

중세 유럽 덮친 흑사병이 경제 구조 뒤바꿔


▎2011년 영국 런던에서 발굴된 14세기 흑사병 희생자들의 유골. 흑사병은 봉건제 몰락과 시민계급의 성장을 가져왔다.
상부구조(문화)보다 더 큰 영향을 준 곳은 하부구조(경제)다. 페스트는 봉건제를 무너뜨린 불씨가 됐다. 페스트로 인한 인구 급감이 노쇠한 봉건제를 빠르게 붕괴시켰다. 노동력 감소가 임금 인상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2~3배의 임금 인상으로도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임금을 10배 이상 올렸다는 기록도 발견된다. 소작농을 구하지 못한 영세 영주들이 파산하기 시작하자, 중세는 급격히 재편된다. 영주와 농민 간의 무력 충돌을 거치면서, 경제구조는 변화한다. 시장과 화폐 경제, 교역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화폐 경제는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냈고, 농민들은 봉건제의 굴레를 벗고 자유민 지위와 보유지에 대한 자유 처분권까지 얻게 된다.

근대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장원제가 약화하는 가운데 자유로운 독립 자영농이 성장하고 일부 농민은 보조적인 소득원으로 공업 생산 활동에 참여했다. 농촌은 도시보다 임금이 낮은 노동력을 활용하는 장점이 있다. 도시가 아닌 농촌 지역에서 공업이 확산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도시의 소(小) 장인들은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이주했다. 이는 몇몇 대도시를 중심으로 성장하던 경제·사회·문화가 농촌으로 확산하면서 전 국민의 전반적인 성장과 국가 성장의 계기가 된다.

경제학의 틀로 바라보자. 페스트로 인해 인구가 감소하자 노동력의 희소성이 높아졌다. 이 결과 노동임금이 상승하면서 노동자들의 지위도 향상한다. 전쟁은 자본 스톡을 파괴함으로써 자본의 한계생산성을 향상한다. 원래 있던 시설들이 파괴되면서 시설을 짓는 데 투입되는 자본의 효율성이 증가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파괴 이전과 이후 동일한 자본이 투입된다면 당연히 이후가 높은 성장률을 보인다.

노동력도 마찬가지다. 인구가 줄어든다면 인구 투입으로 인한 효율성은 과거보다 증가하고, 따라서 인구에 지불하는 비용도 상승한다. 조금 잔인한 얘기지만 페스트로 인한 노약자의 사망이 부양가족이라는 개념에서 시장의 효율성을 높였다는 분석도 있다. 예를 들어 페스트로 인한 노동력 감소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오던 출판 공정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그 정점은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금속활자다. 금속활자는 전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기술이 혁신하고, 정보 접근은 더 쉬워진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역사의 증인이다.

페스트 못지않게 천연두 역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경제사적으로는 금융 질서의 변화를 촉발한 사례다. 찬란했던 잉카제국이 스페인의 침략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에선 유럽 선진 문명의 힘으로 평가하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총과 말을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고작 168명인 군대에 8만 명 병력이 일거에 패배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상당히 신빙성 있는 또 다른 학설에 따르면, 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것은 천연두였다. 1526년 천연두는 유럽에서 여러 차례 유행해, 스페인 군대는 내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잉카인은 그렇지 않았다. 유럽의 침략자들이 가져온 천연두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내성이 없는 잉카인을 쓰러뜨렸다. 심지어 잉카 제국의 황제 우아이나 카팍과 후계자 니난 쿠유치가 모두 천연두로 사망하면서 제국의 혼란은 극에 달한다. 보이지 않는 죽음을 몰고 온 벽안(碧眼)의 사자(使者)들은 잉카인에게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잉카 무너뜨린 천연두, 유럽의 금융 질서 바꿔


▎16세기 [피렌체 코덱스]에 수록된 천연두에 걸린 아즈텍 원주민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스페인 정복자들이 옮긴 천연두 바이러스가 남미 원주민 문명을 무너뜨리면서 대항해시대를 불렀다.
천연두는 급기야 유럽의 금융 질서를 바꾸기에 이른다. 1500~1800년 남아메리카의 은 생산량은 13만~15만t으로 추정된다. 이는 세계 은 생산량의 85%를 차지하는 규모였다. 금 역시 세계 생산량의 71%가 남아메리카에서 생산됐다. 유럽의 화폐는 금과 은이었다. 금과 은의 증가는 곧 화폐의 증가를 의미한다. 화폐의 증가는 인플레이션을 가져온다. 돈이 늘자 구매력이 늘어났고, 그 결과 공산품 가격이 식비나 인건비보다 빠르게 상승하면서 상공업이 폭발적으로 발전한다.

좀 더 종합해보면, 페스트로 인해 봉건제가 약화하고 자영농이 힘을 가지게 되었다. 소상공인의 농촌 이전은 전체적인 국가를 팽창시키고 대항해 시대의 실마리가 된다. 이후 천연두가 잉카 등 남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의 종말을 촉발했다. 남미에서 유럽으로 금과 은이 쏟아져 들어오자 상공업 종사자의 지위가 강화되고 자본주의가 싹튼다. 경제적 풍요는 정신의 고양을 가져와, 계몽사상이 움트고 시민정신의 토대가 된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비롯한 시민혁명이 유럽 각지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면서 역사는 중세와 결별해 근대의 문에 들어선다.

바이러스가 비단 중세에만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바이러스는 인류와 늘 함께해왔다. 다만 인간이 그 존재를 알지 못했을 뿐이다. 바이러스의 실체를 비로소 알게 된 사건은 19세기가 시작되면서부터다. 1918년에 시작해 1920년까지 창궐한 스페인독감은 현대사에 기록된 최악의 팬데믹이었다. 불과 2년 만에 세계적으로 약 5억 명이 감염되었고, 세계 인구의 3~5%가 사망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가 대략 2050만~2200만 명 정도인데, 스페인독감 사망자는 무려 5000만~1억 명에 달했다. 인구비례 기준으로는 14세기 중세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가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절대적인 사망자 수 기준으로는 스페인독감이 전무후무하다.

바이러스는 생명체의 속성을 지닌 기생체다. 세균은 소멸시킬 수 있지만, 바이러스는 완전한 박멸 자체가 불가능하다. 1933년 윌슨 스미스가 인간 유래 인플루엔자A 바이러스를 발견했고, 3년 뒤 토마스 프랜시스 주니어가 인플루엔자B를 발견했다. 이 바이러스의 발견으로 수정란을 통한 백신 개발이 가능하게 되어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에는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이 세계적인 인플루엔자 유행을 피할 수 있었다. 왜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발견할 수 있었을까. ‘질병의 원인은 세균’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감염이라는 공통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세균과 바이러스는 일단 덩치 차이가 너무 크다. 세균은 보통 몇 μm 크기지만, 바이러스는 훨씬 작은 20~300㎚에 불과하다. 덩치의 차이는 구성물의 차이다. 세균은 세포벽, 세포막, 유전자 정보가 들어 있는 핵, 단백질 등으로 구성된 하나의 세포다. 바이러스는 유전 정보가 들어 있는 핵이 단백질에 둘러싸여 있는 단순한 형태로, 세포가 아니다. 바이러스는 세포가 아니기에 세포를 숙주로 삼아 기생해 생존할 수밖에 없다. 세균은 보통 피부 상처나 호흡을 통해 체내로 들어가지만, 바이러스는 혈액, 타액, 피부 등을 통해 생체로 들어갈 수 있다.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소독약이나 열에 강하고, 전염 확산 속도도 세균보다 빠르다. 또 유전 물질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돌연변이 확률이 높아 치료제 개발이 어렵다. 매년 겨울 이전에 독감 예방주사를 맞고,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하면 다시 적응해가는 과정이 반복될 뿐이다.

질병의 원인에 관한 편견이 바이러스 발견 늦춰


▎1918년 스페인독감이 창궐할 당시 미국 마이너리그의 경기 장면. 선수와 심판, 관중까지 마스크를 쓰고 있다.
바이러스 연구를 촉발했던 스페인독감의 진원지는 스페인이 아니다. 스페인 신문에서 처음 보도되었기에 스페인독감으로 불릴 뿐이다. 지금 상황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중국은 코로나19의 출발점이 우한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팬데믹은 지역이 아닌 세계적인 감염 확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스페인독감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일제강점기 경무총감부 기관지인 [경무휘보]에 따르면 1918년 스페인독감으로 756만 명이 감염되고 약 1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인구 약 1600만 명의 절반이 스페인독감에 걸렸던 것이다. 가을에 추수할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기사가 남아 있다. 1919년 1월 조선총독부의 독감 방역이 실패하면서 일제의 무단정치에 쌓였던 분노가 표출되어 1919년 3·1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연구도 있다.

사실 스페인독감의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 캔자스주에서 시작했다는 설이 가장 많다. 1918년 4월 유럽에 배치된 미군을 통해 유럽에 번져나갔다는 가설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스페인독감에 대한 두려움을 미국으로 넘어오던 이민자들에게 떠넘기곤 했다. 이민자들을 독감 확산의 매개체로 지목했다고 한다. 전염병이나 대재난의 공포가 닥칠 때 사회적 분노가 특정 소수를 향한 일은 역사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수천 명이 학살당한 것도 같은 맥락의 비극이다. 현재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종교 집회를 중지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자는 움직임도 스페인독감 창궐 시기에 시작된 것이다.

스페인독감의 기원이 미국이라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경제사적으로 보면, 1919년 스페인독감 팬데믹이 세계를 강타한 후 영국은 몰락하고, 미국이 신흥 경제 대국으로 떠오르는 세계 경제 재편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번영을 상징하는 ‘광란의 1920년대(Roaring Twenties)’가 바로 이때였다. 전쟁이 끝난 후 금주법이 실행되면서 영화 소재로 유명한 알 카포네가 밀주로 엄청난 돈을 번 시기이기도 하다. 스페인독감이 창궐했지만, 1919년 내내 미국의 다우 산업지수는 100선을 넘어서는 강세장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갚기 위해 독일이 긴급 발행한 1920년대 화폐.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주요 장면이 그려져 있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흑사병의 공포를 묘사했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세계의 패권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간다. 패권은 군사력에 앞서 경제력이 결정짓는다. 영국은 전쟁비용을 미국에서 조달했고,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 이전만 해도 채무국이었던 미국이 전쟁을 치른 뒤에는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변해 있었다. 패권을 잃어가던 영국과 프랑스는 당장 막대한 채무를 해결하려고, 패전국 독일에 과한 배상금을 요구했다. 1919년 6월 체결된 베르사유조약은 지나치게 독일에 가혹했고(1923년 10월 독일의 국내 물가는 1년 전보다 75억 배나 올랐다), 그 결과 히틀러의 파시즘을 불러왔다.

인류는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글로벌 질서는 완전히 재편된다. 베르사유 조약에서 교훈을 얻은 승전국들은 패전국에 배상금을 강요하기보다 재건에 힘을 쏟는다. 흥미롭게도 역사를 바꾼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될 수 있었던 배경에 스페인독감이 숨어 있다고 한다. 독일에 대한 과도한 배상금 요구 등을 반대하던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스페인독감에 걸리면서, 파리 종전 협상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大)독감(The Great Influenza)]의 저자 존 배리의 주장이다. 만일 윌슨 대통령이 스페인독감에 걸리지 않았다면, 과도한 배상금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을 테고, 나치의 등장과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경제사적으로 이 시기를 좀 더 들여다보자. 전간기(戰間期)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1918년 11월 11일)부터 제2차 세계대전 개전(1939년 9월 1일)까지를 의미하며, 글로벌 경제가 재편되는 시기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세계 경제는 각자도생의 길을 가게 돼 블록화 보호무역으로 나아갔고, 결국 대공황에 이르게 된다. 1919년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중지되었던 금본위제로 복귀하였지만, 전쟁과 스페인독감으로 출현한 인플레이션은 금본위제와 양립할 수 없는 조합이었다. 다우존스는 1919년 100을 넘어선 후 최대 5배나 뛰어올라 1929년 9월 386까지 올라선다. 보호무역으로 국제무역은 축소되었지만, 주가와 부동산값이 폭등했던 시기가 바로 이때다.

스페인독감을 주목하는 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신종플루나 스페인독감은 A형 바이러스에 속하는 H1N1 변종형이다. 매년 유행하는 유행성 독감은 H1N1 변종이 많다. 가을이면 하는 예방접종 백신에는 대개 H1N1 변종형의 백신 1종이 들어가 있다. 스페인독감은 소멸하지 않고, 우리와 매년 만나고 있다. 1919년과 다른 점은 우리를 구해줄 백신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1932년 미국의 세균학자 리처드 쇼프가 돼지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감기와 독감이 바이러스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백신이 개발되고, 매년 예방접종이 시행되고 있다.

바이러스는 소멸하지 않고, 적응한다. 천연두와 결핵은 과학의 힘을 빌려 몰아낼 수 있지만, 바이러스 자체는 변형되어 인간을 숙주로 삼고 살아간다. 신종 바이러스가 속속 등장하는 배경이다. 스페인독감은 선박과 철도라는 교통수단에 힘입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항구나 기차역이 그들의 도시였고, 인간은 집이었을 뿐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바이러스는 우리 곁에 더 가까이 다가올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이제는 익숙한 개념인 세계화라는 단어는 스페인독감 당시보다 전염병이 더욱 멀리, 그리고 빠르게 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대부분의 국가가 경제적으로 연결되면서 한 국가의 위기가 이제는 모든 국가의 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스페인독감의 연속선상일 뿐이다.

코로나19가 가져올 미래 사회의 변화 시나리오 셋


▎1980년대 어린이들이 전염병 예방 주사를 맞고 있는 모습.
감염 속도나 정보 전달이나, 그 어떤 것이든지 미래에는 과거보다 더 빨라질 것이다. 페스트와 천연두가 인류를 공포로 몰아세웠던 시대보다, 스페인독감이 전파됐던 시대보다 우리는 미래에 살고 있고, 코로나19의 감염 속도는 그만큼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과거와 달리 정보가 실시간 공개된다는 점이다.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인류의 3분의 1이 감소하는 지구적 종말은 현실에 와닿지 않는다. [바이오해저드]게임 시리즈에는 바이러스의 특징을 역으로 이용해 증상을 억제하는 치료제를 만든다는 스토리가 포함돼 있다. 실제 타미플루의 주성분인 ‘오셀타미비어’도 이런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감염과 경제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코로나19 역시 우리 일상의 풍경부터 바꿔놓았다. 그리고 과거의 바이러스들이 그랬듯이 경제와 정치 구조 자체에 영향을 줄 것이다.

당장 떠오르는 변화는 세 가지다.

첫째, 개인 간의 거리 두기가 가져올 변화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쇼핑은 이제 생존을 위한 선택이 되고 있다. 각국은 이를 위한 통신과 IT 인프라를 위한 재정 투자를 가속할 것이다. 재정은 도로와 철도가 아닌 IT에 쏠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투자 기회가 있다.

둘째, 국가 간의 거리 벌리기가 가져올 변화다. 애덤 스미스는 “모든 사람은 교환함으로써 삶을 영위한다”고 했다. 리카도는 국제무역은 비교우위를 통해 교역하는 모든 이에게 득이 됨을 논증했다. 아쉽게도 팬데믹의 공포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블록화와 보호무역주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합의로 나아가던 미·중 무역협상에 또 다른 변수가 생긴 것이다. 한국경제는 국가 간의 거리를 좁히고, 교역이 늘어날 때 좋아진다. 중간재를 생산하는 국가여서다. 제조업 중심의 한국경제가 빨리 재편되지 않는다면, 이미 차가워진 외국인 투자자의 시선을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리더십의 불안정이다. 필자가 내심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각국의 리더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될 수도 있고, 더 큰 문제로 코로나19로 인한 민심 동요가 국가의 지도력을 훼손시키는 시나리오다. 한마디로 미국과 중국, 바로 트럼프와 시진핑의 리더십이 위협받는 시나리오다. 아직 그러한 징후는 없지만, 백신 개발이 늦어지고 가을이면 다시 찾아올 바이러스의 변형이 미국 대선의 변수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리더십이 약화하면 경제정책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한마디로 코로나19가 트럼프 재선의 걸림돌이 되어 글로벌 금융시장이 더 큰 충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문명 발전의 기회일 수도


▎3월 13일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세계 주요 증시가 폭락하면서 코스피 지수도 한때 1700선이 무너졌다. /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바이러스는 숙주를 찾아 우리 옆에 다가올 것이다. 경제성장이 질병의 확산 속도를 키워왔으며, 앞으로 더 가까워지겠지만, 그 적응 과정을 거쳐야 경제는 진화하고, 과학은 발전한다. 당장엔 코로나19의 무차별한 확산을 막아야겠지만, 그렇다고 코로나19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에 감염되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투자가 켄 피셔의 표현을 빌리자면, ‘코앞의 좀비(Jombi around the corner)’일 뿐이다. 당장 저 골목에 들어서면 좀비가 뛰어와 물어뜯을 것 같지만, 사실 집 앞 골목이 아닌 TV 화면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공포에 의연히 맞서서 더 나은 세상, 더 안전하고 편리한 세상을 추구했기에 위기는 문명 발전의 기회가 되어온 것이다.

13일 새벽 세계 금융시장의 공포와 함께 시작했던 이 원고는 14일 새벽, 세계 금융시장의 강한 반등을 보면서 마무리한다. 13일의 금요일 증시는 공포였다. 단 하루 만에 코스피(KOSPI)가 1800대에서 시작해 1600대를 보고, 1700대에서 마무리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고, 결국 금융시장마저 붕괴할 거라는 공포가 고스란히 주가에 반영되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14일 새벽, 원고가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서 오히려 마음은 차분해진다. 인류는 역사에서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파국을 배웠고, 과학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료제는 개발되고, 각국은 파국을 피하기 위한 공조를 선택할 것이다. 윌리엄 맥닐의 명저, [전염병의 세계사]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린다. “인류가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전염병은 앞으로도 인류의 운명과 함께할 것이며,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인간의 역사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매개변수이자 결정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맞다. 바이러스는 인류가 인지하기 전부터 존재해왔고, 인류의 역사발전과 함께해왔다. 바로 이 순간, 역사의 변곡점이 다시금 우리 앞에 와 있다.

-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202004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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