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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특집 | 격전지를 가다] 서울 종로, 전직 총리들의 ‘빅뱅’ 

5%p 안팎 차이 초박빙 승부? 

민주당 이낙연, 통합당 황교안 후보 정치생명 건 정면대결
승자는 유력 대선주자로, 패자는 은퇴 수순 밟아야 할지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3월 11일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서 한 양로원 외곽을 소독하고 있다(왼쪽 사진). 황교안 미래통합당 후보가 3월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방역 활동을 하고 있다. / 사진:(좌)연합뉴스, (우)황교안 캠프
" '내가 ○○ 출신 아무개인데…’라며 거들먹거리면 어림없다. 종로에서 어지간한 체급으로 거물인 체하다간 바보 되기가 십상이다. 종로는 대한민국 정치 1번지이면서도 토속 정서가 강한 곳이다. 시골 이장 선거처럼 제대로 다리품 팔지 않겠다면 당선은 언감생심이다.”

10여 년 동안 더불어민주당 핵심 당료(黨僚)로 활동한 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년가량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의 말이다. 이 인사는 그동안 총선·지방선거 등 민주당 전략 수립 작업에 관여하기도 했던 전략가다.

이 인사는 20대 총선의 기억을 돌이켰다. “20대 총선 당시 여론조사상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자 오세훈(당시 새누리당 후보)은 종로를 비우고 전국 지원유세에 나섰다. 반면 정세균(당시 민주당 후보)은 종로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오죽하면 ‘종로 주민 셋만 모여도 정세균이 나타난다’는 말이 나왔을까. 그런데 결과가 어땠나?”

2016년 20대 총선을 20여 일 남겨둔 상황에서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후보는 정세균 후보에 17%p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정세균 후보가 52.6%로 39.7%의 득표율에 그친 오세훈 후보에 압승을 거뒀다.

조선시대 주궁(主宮)이었던 경복궁과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저인 청와대가 자리한, 외교부·통일부 등 정부청사가 자리한 종로. 종로는 대한민국 정치·행정·외교의 중심이다. 이런 종로를 사람들은 “정치 1번지”라고 부른다.

단순히 규모만 보면 종로는 단일 선거구 인구 하한선(13만6565명)을 조금 웃도는 약 15만 명에 불과하다. 면적은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둘째로 작다.

그렇지만 주요 선거 때마다 각 당이 어느 지역보다 종로에 전력투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동안 종로 지역의 대통령·정당 지지율이 서울 전체, 나아가 전국 평균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로는 민심의 바로미터(barometer) 역할을 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종로는 역대 대통령을 세 명이나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윤보선·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이 종로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냈다.

21대 4·15 총선에서도 종로에서는 최고의 빅매치가 벌어진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낙연(68) 민주당 후보와 박근혜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였던 황교안(63) 미래통합당 후보가 진검승부를 벌인다.

두 후보는 각종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선두를 다투고 있다. 총선에서 승리하는 쪽은 날개를 달게 되겠지만, 패하는 쪽은 치명상을 입는다. 패자는 경우에 따라 정계 은퇴 수순을 밟을 수도 있을 거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서북은 보수, 동남은 진보가 강세?


▎2월 6일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신년인사회에서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김민준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은 “후보 개인 관련 대형 악재가 터지지 않는 한, 승부는 5%p 안팎에서 결정될 것으로 본다”며 “현재 발표되고 있는 각종 여론조사는 하나의 참고자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의 말처럼 2월 말 이후 네 차례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가 황 후보를 20%p 가까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의 큰 흐름으로 볼 때 이 후보가 유리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이에 대해 김 소장은 “수치상으로 이 후보가 앞서는 건 선점효과 덕분으로 볼 수 있다”며 “후발주자인 황 후보가 꾸준히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다면 결국은 박빙 승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같은 종로지만 위치에 따라 표심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역대 선거 결과를 보면 서쪽·북쪽에 위치한 평창동·삼청동·사직동 등은 보수세, 동쪽·남쪽에 위치한 혜화동·창신동·숭인동 등은 진보세가 다소 우위를 보였다.

종로는 지역별로 소득 격차가 큰 편이다. 평창동·가회동이 전통적인 부촌이라면 창신동·숭인동 일대에는 저소득층이 많이 산다. 20대 총선의 경우 평창동에서는 오세훈 후보가 47.2%로 46.7%를 기록한 정세균 후보를 근소하게 따돌렸다. 오 후보가 종로에서 가장 표를 많이 얻은 지역 역시 평창동이었다. 정 후보는 혜화동에서 56.0%의 득표율을 기록해 35.1%에 그친 오 후보와 격차를 벌렸다. 정 후보는 관내 16개 선거구 중 14개에서 오 후보를 앞섰다.

장고 끝에 종로 출마를 결심한 황 후보는 혜화동에 전셋집을 구했다. 황 후보는 혜화동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종로구의) 중앙이고 우리가 그동안 (우리) 당의 득표가 많지 않았던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혜화동은 황 대표의 모교인 성균관대가 인접한 곳으로 종로 내 다른 지역보다 그에게 익숙한 지역이다. 또 상대적으로 젊은 유권자가 많다 보니 황 대표 말처럼 통합당보다는 민주당 지지층이 강한 곳으로 추정된다. 취약지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게 황 대표의 심산이다.

이 후보는 교남동에 전셋집을 구했다. 교남동은 종로구 내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지역으로 분류된다. 이 후보의 교남동 터 잡기 역시 취약지 정면돌파 의지로 풀이된다.

반면 이 같은 분석을 근거로 하는 승패 전망이 별 의미가 없을 거란 주장도 있다. 서대문구와 인접한 교남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박모씨는 “최근 이 동네에 뉴타운이 조성되면서 인구가 6000명가량 늘었다고 한다”며 “재개발과 함께 다수가 유입됐는데 정치적인 유불리 전망이 얼마나 의미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래 비전 vs 文 정권 심판


▎지난해 3월 15일 창원에서 열린 3·15 의거 59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왼쪽)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 사진:연합뉴스
이낙연 후보는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미래 비전을, 황교안 후보는 정권 심판을 선거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새누리당(2012년)과 민주당(2016년)을 오가며 총선을 지휘했던 김종인 전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황교안 대표가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낙연 후보를 상대로 하는 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을 심판하겠다고 나온 건 코스를 잘 잡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낙연·황교안 후보 모두 당의 간판이자 대권주자들이기 때문에 인지도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당 선거조직은 이 지역 현역 의원인 정세균 총리의 조직과 사무실을 그대로 인수한 이낙연 후보보다 황 후보가 다소 불리해 보인다. 통합당의 경우 전 당협위원장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1년 전 광진을에 새 둥지를 튼 이후 사실상 종로 조직이 방치되다시피 했다. 통합당이 당 차원에서 종로에 화력을 쏟는 이유다.

역대 선거에서 종로 민심은 다소 보수세를 보이면서도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1988년 13대 총선 이래 2008년 18대 총선까지는 보수당 후보가 모두 승리했다. 반면 민주당 계열 후보는 1998년 재·보궐선거 때 노무현 후보와 2012년 19대 총선과 2016년 20대 총선 때 정세균 후보 등 세 차례 승리를 거뒀다.

월간중앙이 만난 종로 주민들은 이·황 두 후보의 자질에 대해서는 대체로 후한 점수를 줬다. 그런가 하면 일부는 호감도 면에서 이 후보의 손을 들어줬고, 일부는 정권 심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방송에서 전국 253개 지역구 개표 결과를 발표할 때 가장 먼저 선거함을 여는 곳이 종로”라며 “말 그대로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이번 선거는 초박빙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고 점쳤다.

이낙연 후보는 미래 가치와 비전을 강조하는 전략을 세웠다. 선거 당일까지 한 표씩 차곡차곡 쌓아 올리겠다는 계산이다. 반면 황교안 후보 측은 종로를 ‘정치 심판 1번지’로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다. 황교안 대 이낙연이 아닌 황교안 대 문재인 프레임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거다.

종로 대전(大戰)의 승자는 명실상부한 차기 주자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경우 오는 8월 새 당대표 선출 전당대회가 있다. 이 후보가 총선 승리와 함께 5선 고지에 오른다면 차기 당권에도 성큼 다가설 수 있다.

황 후보가 종로에서 승리한다면 원외(院外)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당 헤게모니를 제대로 움켜쥘 수 있다. 또 친황·비황을 떠나 황 대표 중심으로 당이 단일대오를 형성할 수 있다.

반면 패할 경우 치명상이 불가피하다. 고진동 평론가는 “두 후보 모두 당내 기반이 취약해서 총선에서 패한다면 입지가 굉장히 좁아질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개인의 승패와 무관하게 당이 승리한다면 얘기는 또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전망에는 당 승리(1당 지위 확보)를 전제로 개인적으로는 5%p 안팎의 석패(惜敗)라면 재기의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을 거란 설명이 곁들여진다.

김민준 소장은 “정세균 현 총리(19~20대 종로구 국회의원)가 일군 탄탄한 기반에 선점효과 등을 더해 이낙연 후보가 초반에 앞서가는 것 같다”면서도 “황교안 대 문재인 구도가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어간다면 판세가 뒤집힐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2004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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