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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 코로나19가 세운 동아시아 ‘외교 장벽’ 

일본 정부는 시진핑의 방일을 원치 않았다 

시진핑 방일 의사 확고했지만 아베는 국내 반대 여론 의식
한국인 격리 조치는 일본의 중국인 입국 제한을 위한 ‘끼워팔기’


▎3월 6일,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일본이 한국인 입국 규제 조치를 강화한 것에 대한 정부의 상응 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이 최근 소강상태를 보이던 한·일 관계에도 악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3월 5일 밤, 아베 신조 총리는 코로나19 대책 본부를 개최해 감염이 확대되는 한국에서의 입국을 3월 말까지 대폭 축소할 것이라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에서 오는 입국자를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숙박 시설과 의료 시설 등에서 2주간 격리한다. 또 단기 체류자를 중심으로 비자 효력을 정지키로 했다. 항공편은 나리타공항과 간사이공항에 국한해 운행하며, 선박에 대해서도 한국발 여객선의 운송 정지를 제기했다.

이상의 조치들을 3월 9일부터 시행하기 시작했다. 테러리스트 등을 상정한 출입국관리법 5조 1항 14호를 법적 근거로 하며, 3월 5일에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긴급상황 장관 회의에서도 이를 승낙했다.

이에 대해 다음 날인 6일 한국이 발끈했다. 조세영 외교부 차관이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인에게 허락해온 비자 면제 조치와 발급이 완료된 비자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3월 9일부터 적용했다. 3월 6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부당한 조치다. 비우호적일 뿐 아니라 비과학적이다”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예상치 못한 쌍방 격돌로 인해 한·일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알다시피 한·일 관계는 지난해 여름 이후 급격히 악화했지만, 11월 한국 측이 GSOMIA(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발효 중단을 유예하면서 점차 회복되는 추세였다. 그러던 중 코로나19 문제로 인해 다시 지난해 여름으로 돌아가버렸다. 3월 6일에는 WHO(세계보건기구)의 긴급 프로그램 책임자인 마이크 라이언까지 나서서 “(한·일) 두 나라가 정치적 다툼을 벌일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인명 구조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이후 취재차 만난 아베 정권 관계자는 한국 정부의 강력 반발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다고 실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베 정권이 줄곧 고심해왔던 것은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에 대한 입국 금지였다.

아베 총리가 한국인의 입국 제한을 발표한 3월 5일, 정확히 말하면 발표 3시간 전, 일본 정부는 또 하나 중대 발표를 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음 달로 예정되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본 방문에 대해 일·중 양국이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일정을 재조정하기로 하면서 방일은 연기됐다. 시 주석의 국빈 방일이 충분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양측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시 주석의 일본 국빈 방문은 당초 4월 6일로 예정돼 있었다.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숙지지 않자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발표한 것이다. 비슷한 시간에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외교부 정례 기자회견에서도 이와 같은 발표가 나왔다.

포기하지 않던 中, 끝내 막아버린 日


▎지난해 12월, 중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그동안 후베이성과 저장성에 국한됐던 중국인의 일본 입국 제한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전역으로의 입국 제한 확대를 지금까지 보류해온 이유는 베이징에 있는 시 주석도 그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국빈 방문인데 시 주석 일행이 하네다공항에 내리자마자 2주 동안 격리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한 이유로 중국 전역의 입국 제한은 그동안 할 수 없었다. 그러나 3월 5일 시 주석의 일본 방문 연기가 확정되자 스스럼없이 중국 전역의 모든 중국인에게 입국 제한을 가한 것이다. 이이 대해 아베 정권 관계자에게 확인을 요구하자 부인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는 일본 정부의 조치에 차분한 대응을 보였다. 이는 한국 정부의 반응과는 대조적이었다. 일본은 중국에는 세심한 사전 공작을 했지만, 한국에는 하지 않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일본 정부로서는 중국에만 입국 제한을 가하는 것도 볼썽사납기 때문에 최근 코로나19 발생이 두드러진 한국도 내친김에 포함시켜버린 셈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입장에서는 황당한 봉변을 당했다고 할 수 있겠다.

시 주석의 방일 문제는 양국의 핫 이슈였다.

2월 28일, 양제츠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외교 정상)이 일본을 방문해 약 45분간 아베 신조 총리를 예방했다. 당시의 상황을 중국의 국영 매체 신화통신은 다음과 같이 전했다.

“양제츠는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최근의 중·일 관계는 양호하고 발전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시 주석과 아베 총리는 지난해 두 차례 회담을 성사시키며 새 시대의 요구에 걸맞은 중·일 관계 구축을 추진해나가고 있다. 중국 측은 일본과 이인삼각으로 양국 지도자의 중요한 공통 인식을 실행해나갈 것이다. 그것은 상호 존중과 구동존이(求同存異, 같은 것을 추구하면서도 차이가 존재함)의 정신으로 손을 잡고 협력하면서 윈윈의 양국 관계의 신(新)국면 구축을 추진해나간다는 것이다.

시 주석의 일본 국빈 방문의 의미는 막중하다. 중국 측은 일본과 함께 밀접한 의사소통을 유지하며 방문을 위한 각 방면의 준비를 순조롭게 진행해나갈 것이다. 중국 측은 일본이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을 굳게 지지해나갈 것이다.”

신화통신의 보도만 놓고 봤을 때는 시 주석의 일본 방문을 예정대로 진행해나갈 것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앞서 나온 아베 정권의 관계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이대로 계속되는 가운데 시 주석의 4월 방일을 강행한다면, 아베 정권은 콘크리트 지지층의 지지를 잃게 된다. 그것은 곧 아베 정권의 붕괴를 의미한다. 그동안 일본은 중국 측에서 ‘연기’를 발표하기만을 기다렸다. 중국의 태도에 아무런 변화가 없자 일본 측에서 양제츠 위원에게 최후 통고를 했다. 중국 측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3월 4일 일본 측에서 연기를 요청했다’고 먼저 발표해버리는 것이다.”

2009년 순탄치 않았던 시진핑의 첫 ‘방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가운데에 두고 앉아 있다. / 사진:REUTERS/연합
돌이켜 보면 시 주석의 방일 문제가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일대 소동이 벌어졌었다. 이른바 천황 회견 문제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2009년 12월 15일, 시진핑 당시 부주석이 고집스럽게 밀어붙여 헤이세이(平成) 천황과의 회견을 성사시킨 일이다.

2009년 10월, 중국 측은 12월 일본을 찾는 시진핑 당시 부주석의 일정에 천황과의 회견을 넣어 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는 시 부주석 본인의 강력한 희망이었다. 1998년, 일본에 온 전임 후진타오(胡錦濤) 부주석도 천황을 만났다. 일본 외무성은 면회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겠지만, 방일 한 달 전까지 정식 신청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중국 측으로부터 정식 신청은 오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 매년 12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앙경제공작회의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는 설, 시진핑 부주석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세우기 싫어하는 후진타오 주석의 방해 공작이 있었다는 설 등이 분분했다. 일본에서는 9월의 정권 교체로 발족한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정권이 외교 의례에 서툴고 일 처리가 미숙하기 때문이라는 얘기까지 있었다.

일본 측에 책임이 있었다는 가설은 가장 설득력이 떨어지고, 필자는 중난하이(베이징시의 최고 고위직들 주 거주지)의 권력 투쟁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당시 필자는 베이징에 살고 있었는데, 베이징 정가는 시진핑에게 미래 권력을 넘기지 않겠다는 후진타오 일파의 ‘시진핑 포위망’이 깔려 있었다.

어쨌든 중국 측이 정식으로 시 부주석의 방일 일정을 일본 외무성에 신청한 것은 11월 23일. 즉 이미 1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11월 26일, 외무성이 궁내청(황실담당부서)에 신청을 냈지만, 다음 날 궁내청은 ‘1개월 룰’을 방패로 면담을 거부했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시 부주석의 천황 면담 여부를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것이다. 일본 측에서는 천황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회견을 연기하는 방안까지 도마 위에 올랐을 정도였다.

결국 12월 11일, 하토야마 내각은 공식적으로 천황과 시 부주석의 회견을 발표했지만, 이날 하케다 신고 궁내청 장관이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천황의) 정치적 이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현행 헌법에 의한 천황의 업무나 역할과 같은 기본적인 사항들과 관계된 문제다. 국가 간 현안에 있어 천황을 타개책으로 내세우게 되면, 천황 본연의 역할과 크게 어긋나게 된다. 정치적 중요성 등과 관계없이 평등하게 외국 인사들과 마주하는 것이 천황의 역할이다. 나로서는 가슴 아픈 마음으로 천황께 부탁드렸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게 나의 간절한 소망이다.”

실제로 시진핑 부주석의 밀어붙이기가 먹혀 12월 15일 황궁 안에서 20분간 회견이 성사됐다. 그러나 씁쓸한 뒷맛을 남긴 방일이 된 것은 사실이다.

물오른 중·일 관계에 찬물 끼얹은 ‘코로나’


▎지난해 5월, 일본 왕궁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나루히토 일왕과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AP/연합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또다시 ‘시진핑 방일 소동’이 일어났다. 필자는 2월에 누구를 만나든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일본인이 그토록 원하지 않는데 왜 시 주석은 기어코 오려고 할까?

필자는 그동안 아베 정권 관계자 3명에게 시진핑 방일 문제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3명이 모두 다른 대답을 했다.

“시진핑이 오든 안 오든 아베 총리와 스가 관방장관은 지금 그런 것을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다. 일본 내 코로나19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매일 머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이 바쁜 시기에 환영은 안 하지만, 그쪽이 꼭 오고 싶다면 알아서 하라는 느낌이다.”

다른 한 명은 좀 더 구체적이었다.

“1월 13일~16일에 아키바(외무성 사무) 차관이 방중했고, 2월 18일~19일에는 타키자키(외무성 아시아 대양주) 국장이 방중했다. 또 2월 15일에는 뮌헨에서 모테기 외상과 왕이 외상이 회담했다. 이때 중국 측은 시진핑 주석의 방일은 예정대로 진행할 테니 잘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국빈으로 초청한 이상, 일본 측에서 먼저 지금은 오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것은 외교 의례상 결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코로나19 문제가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일본은 두 가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일본 경제가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올여름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개최될 수 있을지 하는 문제다.

이에 중국은 시 주석의 방일을 통해 양국 경제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올림픽에 대해서도 중국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 개최를 압박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은 마스크 하나도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고, 올림픽은 미·중 2강의 TV 방영권 수입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중국의 발언권은 막강하다. 일본의 본심은 이러한 시기에 시 주석이 방일하는 것을 바라지 않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문제들로 인해 망설임이 있는 것이다.”

사실은 작년에도 중·일 간에 시 주석의 방일을 둘러싸고 우여곡절이 있었다. 아베 총리와 시 주석은 2014년 11월 10일 베이징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때 처음으로 중·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양 정상은 악수를 나눴지만, 시 주석은 미소조차 보이지 않았고 회담 장소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일본 국기도 없었다. 필자는 당시 ‘25분짜리 무표정 회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두 정상의 관계가 복원된 것은 2017년 11월 11일 열린 6차 정상회담이었다. 시 주석은 같은 해 10월, 19차 공산당 당 대회를 개최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만전을 기했고, 11월 초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2535억 달러 상당의 ‘메이드 인 USA’ 쇼핑으로 트럼프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를 다졌다. 내정과 외교를 평정한 시 주석이 마침내 일본에도 손을 내밀어 온 것이다.

일본도 아베노믹스의 효과가 희미해져 어떻게든 차이나 머니를 이용해 일본 경제의 부활을 도모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중·일 우호는 일본 경제계의 강력한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18년 10월 아베 총리가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정식으로 국빈 방일을 요청했다. 아베 총리는 시 주석의 귀가 솔깃해질 말을 입에 올렸다고 한다. “내년 5월에는 새로운 천황이 즉위한다. 부디 시진핑 주석이 첫 번째 국빈으로 새로운 천황을 만났으면 좋겠다.”

앞서 언급했듯 천황과의 갈등이 있었던 시 주석은 꼭 그렇게 부탁한다고 답했다.

방일을 고집하는 이유? 추락한 中 국가 이미지 회복


▎3월 10일,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한을 처음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봉쇄 생활을 하는 우한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사진:중국 신화망 캡처
하지만 방해꾼이 끼어들었다. 일본의 동맹국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다. 아베 총리가 귀국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베 총리가 시 주석의 국빈 방문 얘기를 꺼내자 트럼프 대통령은 격앙했다.

“왜 시진핑이 새 천황을 제일 먼저 만나는가! 일본의 동맹국은 미국이 아닌가!! 어째서 내가 제일 먼저가 아니냔 말이야!!!”

아베 총리로서는 특별히 트럼프 대통령을 경시했던 게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과는 2019년 4월 아베 총리가 방미해 정상회담(골프외교)을 가졌다. 또 같은 해 6월 말에는 오사카 G20 정상회의가 열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일본을 방문했다. 아베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대통령’을 3개월 연속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앞서 소개한 아베 정권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해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말하자면 벼락 출세의 전형과 같은 남자이기 때문에 영국 왕실과 일본 황실 등에 대해 강렬한 콤플렉스와 동경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새 천황을 제일 먼저 만나서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새치기를 하는 바람에 일본 정부는 중국 측에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빈 방문은 1년에 2명까지’가 일본 정부의 관행이었고, 2019년 가을에는 교황의 방일이 이전부터 결정되어 있었다.

결국 “2020년 벚꽃이 필 무렵에 와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중국에 요청한 것이다. 2019년 6월 27일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 맞춰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정식으로 시진핑 주석에게 이러한 의사를 타진했고, 시 주석은 “그것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답했다.

이미 일본(오사카)에 와 있는 시 주석을 향해 일본에 와 달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 얘기지만, 아무튼 그런 교환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 측에서 한 차례 방일 연기를 요청한 적도 있어 이번에는 재연기 요청이 어려웠던 사정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시 주석은 중국 내 코로나19 파동도 아직 수습되지 않았는데 왜 4월 방일을 고집했을까? 필자는 시 주석이 2012년 11월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한 이후 7년여에 걸친 그의 행적을 돌이켜 봤다. 거기서 알게 된 것은 시 주석은 자신이 원하는 것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포기하기는커녕 점점 더 기를 쓰고 실현하려는 스타일이라는 점이다. 중국적으로 표현하면 ‘황제 기질’인 것이다.

앞에서 서술한 2008년,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천황과의 회담은 그 전형적인 예다. 이번에도 일본 여론은 4월 시 주석의 일본 방문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측이 이 정도로 억지를 부리는 것은 시 주석 본인의 강한 의지가 작용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시 주석의 본심을 말하자면, 가장 가고 싶은 곳은 미국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긴급 정상회담을 갖고 미·중 양국이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함께 싸우겠다고 선언하면, 내정이나 외교상으로나 크게 내세울 만한 이벤트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지금의 트럼프 정권과는 그런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

결국 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상대는 세계 3위 경제 대국으로, 같은 코로나19 사태로 궁지에 몰린 일본이 된다. 앞서 나온 신화통신 기사(2월 28일 자)에도 양제츠 중앙정치국 위원이 아베 총리에게 발언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었다.

“중·일 양국은 이번 바이러스 종식에 관해서 서로 도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 중·일 우호를 한층 더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중국 측은 일본의 고귀한 지지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일본의 코로나19 대책에 대해 가능한 한 지지와 협력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양국 및 다국 간의 의료·위생 협력을 강화하고 양국 및 세계 각국 사람들의 건강을 공동으로 유지하고 보호해나가자.”

중국 측(시진핑 주석)으로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중·일”을 연출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 국내와 세계를 향해 자신의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에 편승한 사람이 ‘천부적인 바람잡이’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중심으로 한 중국 외교부의 재팬스쿨 외교관들이었다. 사실 이들에게는 국내가 위기일 때 일본을 이용해 위기를 탈출한다는 성공 체험이 과거에 있었다. 바로 1989년 톈안먼 사태 직후다.

1989년 6월 4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들을 인민해방군 전차 부대가 진입하면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태로 일본을 비롯한 서방 기업들은 일제히 철수했으며, 중국은 국내적으로 경제적 위기에 처했고 대외적으로는 고립됐다.

日 관계자 “아베 임기 내 방일은 어려울 것”

이때 활약한 것이 당시 중국 외교부 아시아국에서 일본처장을 맡고 있던 왕이를 중심으로 한 재팬스쿨의 면면이었다. 왕이 처장 등은 톈안먼 사태 이후 불과 3개월여 만인 9월 17일~19일에 이토 마사요시 전 부총리(중·일우호의원연맹 회장)를 단장으로 하는 일본의회 멤버들이 방중하도록 하는데 성공한다. 이는 톈안먼 사태 이후 서방 정치인들이 중국을 방문한 첫 사례가 됐다.

이때 최고 실력자인 덩샤오핑과 장쩌민 총서기가 이토 전 부총리 등과 개별적으로 만나 엔화 차관 재개를 거듭 간청했다. “중국 측은 엔 차관 전망이 서지 않는 한 1990년도 예산 편성을 할 수 없다며 차관 제공을 강력히 요구했다.”(1989년 9월 21일 자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9월 25일 베이징으로의 여행 자제 권고를 해제, 서방 국가들에 앞서 중국을 후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중국의 경제 발전과 국제사회 복귀의 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왕이 처장의 출셋길도 열렸다. 그래서 다시 한번, 왕이 외교부장을 중심으로 한 중국 외교부의 재팬스쿨이 시진핑 주석 방일을 이용해 중국을 부활 시키려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물론 중국이 이용하려는 곳은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다. 아시아에서 보자면, 2월 5일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를 베이징으로 불러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2월 27일에는 칼트마 바툴가 몽골 대통령을 베이징으로 초대해 역시 정상회담을 열었다. 하지만 시 주석은 코로나19 파동이 본격화된 1월 20일 이후 외국 방문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결국 4월 6일의 국빈 일본 방문은 ‘환상’으로 끝나버렸다. 그럼 언제 방문이 실현될 것인가? 재차 아베 정권 관계자에게 묻자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지만 이제 아베 정권 동안 시 주석의 일본 방문이 실현되긴 어려울 듯하다. 아베 총리의 임기는 사실상 내년 가을까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시 주석이라면 총리가 새로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방일할 것이다. 일·중 신시대를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친김에 말하자면 한·일 신시대가 오는 것도 내년 가을 이후일 것이다. 아베 총리든 문재인 대통령이든 최소한 어느 한쪽이 퇴임하지 않는 한 한·일 관계는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202004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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