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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암벽 등반의 고수, 산양 

 

염소의 조상으로 포식자 피해 험준한 산악 동굴에 서식
무리에는 어미와 새끼들뿐… 수컷은 번식기에만 합류해


▎천연기념물 217호인 산양은 멸종위기종으로 국내에 약 250마리 정도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 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미리 말하지만 한마디로 염소(goat)가 산양(山羊, mountain goat)이고, 산양이 염소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산양을 가축화(家畜化)한 것이 염소인 탓이다. 멧돼지를 길들인 것이 집돼지고, 이리를 순치(馴致)한 것이 개이듯이 염소의 조상이 산양이란 말이다.

산양이 그렇듯이 염소도 아무거나 잘 먹고, 소화력이 유난히 뛰어나 똥이 환약(丸藥)처럼 새까맣고 똥글똥글하다. 그리고 좀체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을 일러 “염소 물똥 누는 것 보았나?”라는 속담이 생겼을 정도다.

산양(Naemorhedus caudatus)은 소과의 발굽 동물(유제류, 有蹄類)이요, 되새김동물(반추동물, 反芻動物)이다. 소·염소·노루·돼지처럼 뾰족한 발굽(hoof)이 둘인(짝수) 굽을 가진 우제류(偶蹄類)이다. 말(馬)처럼 굽이 하나이거나 코뿔소같이 셋인 홀수 발굽을 가진 동물은 기제류(奇蹄類)라 한다. 발굽 동물은 발굽을 발돋움질해 걷고 뛰는데, 6살 내 손녀도 발뒤꿈치를 들고 발끝만 디디고 서는 까치발(tiptoe)로 종종걸음 하기를 좋아한다.

산양은 다리가 굵고, 발굽은 몸집에 비해 작다. 그리고 발굽 한복판에 틈이 지고, 고무같이 쩍쩍 달라붙어 미끄러지지 않고 절벽을 탄다. 그들은 위험천만한 가파른 기암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오뚝 서 있거나 바위 타기를 하니 그것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모골이 송연하고 오금이 저릴 정도이다.

몸길이는 115~130㎝에 어깨높이는 65㎝, 꼬리 길이 11~15㎝로 체구가 작은 편이다. 암수 모두 뿔(角, horn)이 있는데, 수컷 뿔이 더 크고, 뿔 끝이 뒤로 젖혀졌다. 그리고 풀이나 나무줄기만을 먹는 순수 초식동물로 되새김동물(반추동물)이다. 짬만 나면 풀을 마구 뜯어 삼키고, 저마다 포식자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위(胃)안에 넣어둔 것을 토해낸 후 되새김질한다. 다시 말해서 산양은 발굽 동물이면서 반추동물인데 녀석들은 삶터를 옮기지 않고 고집스럽게 한 곳에 붙박이로 사는 습성이 있다.

산양(long-tailed goral)은 고산 침엽수림에서 햇빛이 잘 드는 바위나 절벽 끝자락에서 지내고, 포식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깎아지른 험준한 바위나 암반동굴에 무리를 지운다. 좁다란 바위틈에다 보금자리를 만들고, 10~11월경에 흘레질(교미)하며, 이끼나 잡초, 진달래나 철쭉 잎을 자리에 깔고 새끼 1마리를 낳는다. 이르면 7~8개월 후에 젖을 떼고, 3년이면 완전히 성숙하며, 야생상태에서 평균수명은 10~15년이다.

그리고 산양은 동북아시아(한국·중국·러시아)가 원산지로 지금도 러시아에 600여 마리, 중국과 북한에 각각 200마리씩 산다 한다. 한국에는 주로 설악산과 군사분계선 등지에 겨우 250마리가 채 안 되는 수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래저래 국내외 곳곳에서 속절없이 개체 수가 나날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강한 뿔을 가진 대신 이빨은 없어

산양은 5~12마리 남짓이 가족을 이루는데, 무리에는 어미와 새끼들뿐이고 숫제 아비는 없다. 수컷 아비는 짝짓기할 때만 무리에 잠깐 들어왔다가 번식기가 끝나자마자 매몰차게 쫓겨난다. 그래서 따로 살 거나 수컷들끼리 모여 지내는데, 사실 원숭이나 코끼리, 사자 같은 동물들도 노쇠한 수놈들은 사정없이 무리에서 쫓겨나고 만다.

인간사회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통 할아버지는 집안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물 위의 기름’처럼 겉돌지만, 할머니는 결단코 그렇지 않다. 할머니들이 자손 육아를 함으로써 후손의 생존성(生存性, survivability)을 높여 주니 이를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이라 한다.

아무튼 산양은 멸종 위기 야생동물이라 천연기념물 217호로 정해져 보호받고 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국립공원 공단은 2008년부터 산양 복원지로 월악산국립공원을 선정하여 노력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복원사업이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한다.

산양은 눈동자가 가로로 짜개진 수평 눈동자이다. 수컷은 암컷보다 좀 더 큰 뿔이 돋았고, 공격·방어용 무기로 쓴다. 발정기의 수놈들은 순위(順位) 결정을 하느라 놈들끼리 꼬리를 바짝 세우고, 뿔이 빠질 듯이 가열하게 박치기(head butting)를 해댄다. 다시 말하지만, 산양을 가축화한 것이 염소이고,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염소를 그냥 산양이라 부른다.

여기에 산양을 가축화한 염소 이야기를 덧붙인다. 염소는 소과동물로 어깨높이는 60~90㎝로, 몸빛은 갈색·흰색·검은색이며, 속이 빈 뿔은 뒤로 굽었다. 수컷은 턱밑에 몇 가닥 안 되는 수염이 있다. 그래서 숱이 적고 별로 길지 않은 사람 턱수염을 ‘염소수염(goatee)’이라 한다.

염소(domestic goat)는 호기심이 많고, 아주 영리한 발굽 동물이다. 사람 중에도 시종 발톱을 디디고 서서 몸을 놀리는 이가 있으니 ‘백조의 호수’를 춤추는 무용수들로 사슴이나 노루, 고라니를 닮았다 하겠다. 염소는 소와 마찬가지로 반추동물(되새김동물)이며, 암컷은 젖꼭지가 두 개다(암소는 넷이다). 털은 전체적으로 검거나 흰색이고 세계적으로 300여 품종(혈통)이 있다. 크게 보아 젖을 짜는 유용종(乳用種), 고기를 먹는 육용종(肉用種), 털을 쓰는 모용종(毛用種)으로 나뉜다.

유각무치(有角無齒)라는 말이 있다. 강한 뿔을 가진 짐승은 이빨이 없다는 말이다. 이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두루 갖추는 복을 받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비슷한 예로 매우 흡사하게 생긴 노루는 뿔이 있는 반면에 고라니는 엄니(큰 이빨)를 갖는다.

그런데 강원도 오색탐방로 입구에서 대청봉 부근 봉우리까지, 약 3.5㎞의 ‘오색 케이블카’ 설치를 환경부의 반대로 참 오랫동안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 그 또한 그 구간에 산양 서식지가 있기 때문이란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2004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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