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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특집 | 총력분석] 성적표에 따른 여야 잠룡들의 미래 

이낙연에겐 서운(瑞雲), 황교안에겐 암운(暗雲)이 

김두관·홍준표·김태호 생환… 김영춘·오세훈·나경원은 쓴잔
이광재 다크호스 부상, 안철수·유승민·심상정 입지 좁아질 듯
박지원·정동영·천정배·나경원·심재철 등 야권 거물들 추풍낙엽


▎이낙연 민주당 후보가 4월 15일 선거사무소 상황실에서 당선 축하 꽃다발을 들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낙선 인사하는 황교안 통합당 후보. / 사진:연합뉴스
제21대 총선 지상파 3사 출구조사가 발표된 지 5시간여 후인 4월 15일 오후 11시40분쯤, 국회도서관 대강당에 마련된 미래통합당 상황실에서는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의 주인공 황교안 통합당 대표는 미리 준비한 원고를 품에서 꺼내 한 줄 한 줄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늘 그렇듯 그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나라가 잘못 가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모두 대표인 제 불찰입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정부에는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건강한 야당이 꼭 필요합니다. 부디 인내를 가지고 통합당에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해 2월 27일, 정계 입문 43일 만에 제1야당(당시 자유한국당) 선장이 됐던 황교안 대표. 그가 4·15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무대 아래로 내려온 것이다.

황 대표의 퇴장은 예견된 일이었다. 황 대표는 오래전부터 “(당이) 총선에서 패하면 대표로서 책임질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그러나 황 대표는 기자회견 후 “정계에서 은퇴하는 거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일절 답하지 않은 채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총선에 관여했던 한 통합당 현역 의원의 설명이다. “패배의 책임을 오롯이 황 전 대표에게 전가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몸을 뒤로 뺐다가 지난해 1월 전당대회에 맞춰 돌아왔듯이 ‘때’가 되면 컴백할 것으로 본다. 황 전 대표는 정치 초년생으로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여야 잠룡(潛龍)들에게 총선은 비룡(飛龍)으로 승천하기 위한 큰 관문이다. 이곳을 무사히 통과해야 비로소 용좌(龍座)를 바라볼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19대 총선 승리의 탄력을 받아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도 108만 표 차이로 이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20대 총선 승리를 밑거름 삼아 대세론을 굳히더니 이듬해 5월 대선에서도 웃었다.

제21대 4·15 총선 2년 뒤인 2022년 3월에는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다. 잠룡들에게 이번 총선은 대선 전초전 격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압승과 미래통합당의 참패로 요약되는 총선 결과에 따라 잠룡들의 대선 가도에 서운(瑞雲)과 암운(暗雲)이 엇갈리고 있다.

황교안 전 대표와 ‘종로 대전’을 치렀던 이낙연 전 총리는 그야말로 순풍에 돛을 달았다. 개인적으로는 지역구 선거에서 58.3%를 얻어 39.9%에 그친 황 전 대표에게 대승을 거뒀다. 또 당 차원에서 보면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지휘하며 압승을 견인했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이낙연 대망론을 대세론으로 키워나갈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호남 의원들을 비롯해 ‘이낙연계’가 형성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 전 총리는 ‘종로 대전’ 승리로 5선 고지에 올랐지만, 여의도 입성은 2012년 이후 8년 만이다. 그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전남지사에 당선됐고,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국무총리로 발탁됐다. 언론인·국회의원·행정가 등 풍부한 경험에 비해 당내 기반은 취약한 편이다.

곧 치러질 전당대회도 이 전 총리에겐 기회일 수 있다. 2018년 8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이해찬 대표의 임기는 올해 8월까지다. 이 전 총리가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권을 거머쥔다면 당내 예비 주자 중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오세훈, 승리까지 한 뼘 부족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걸까. 이 전 총리는 선거 하루 전 날인 4월 14일 종로 유세에서 “민주당이 때로는 오만하다”며 “그 버릇 제가 잡아놓겠다”고 공언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단은 이낙연 전 총리가 당내 대선 경쟁에서 앞서가게 됐다”면서도 “당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친문(親文)과의 관계설정, 같은 호남 출신이면서 유력 주자 중 한 사람인 정세균 현 총리와의 경쟁 구도 등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에 이낙연 전 총리가 깃발을 꽂은 종로에 4년 전 출마했다가 고배를 들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또 한 번 쓴맛을 삼켜야 했다. 오 전 시장은 지난해 초 일찌감치 광진을에 터를 잡고 총선을 준비했다. 상대는 이 지역에서만 5선을 쌓은 추미애 민주당 의원.

그런데 추 의원이 올해 1월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이상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지역에서는 “추미애에 대한 피로감도 있던 터라 오세훈에게 승산이 있었는데, 새 얼굴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추 장관이 떠난 자리에 ‘문재인의 입’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이 낙점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여권 실세들이 총출동해 고 전 대변인 지원사격에 나섰다. ‘고민정은 반드시 당선시켜야 할 후보’라는 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강력히 어필한 것이다.

결과는 50.3%를 얻은 고 전 대변인의 승리. 오 전 시장은 47.8% 득표율로 선전했으나 승리까지는 한 뼘이 모자랐다. 오 전 시장은 2016년 총선에 이어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승리할 경우 보수 진영 유력 대선주자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됐던 오 전 시장은 석패로 인해 입지가 더 좁아졌다. 언제 다시 돌아오리라는 기약도 어렵다.

희비 엇갈린 TK 대선주자들


▎당선이 확정되자 지지자들을 보며 웃고 있는 홍준표 무소속 후보. / 사진:연합뉴스
반면 패배에도 불구하고 오 전 시장의 상품성이 완전히 소멸한 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총선 결과가 말해주듯이 통합당에 서울 등 수도권 공략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서울시장 출신으로 중도층에도 어필할 수 있는 오 전 시장이기에 향후 정치 지형 변화에 따라 재기의 기회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이낙연 의원이 당내 기반 강화에 성공한다면 대세론이 확산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오세훈 전 시장은 아직 50대(59세)인 데다 험지에서 아깝게 졌기 때문에 추후 기회를 잡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실 총선 몇 달 전부터 ‘홍준표 낙천(落薦)설’이 여의도 주변에 나돌았다. 전직 통합당 3선 의원은 연초 사석에서 “당 지도부는 홍준표 전 대표가 돌아오는 걸 달가워하지 않은 것 같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홍 전 대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경남 밀양·창녕·함안·의령 지역구 출마를 준비했다. 그러다 당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수도권 험지’ 출마를 권유받았다. 홍 전 대표는 경남 양산을 출마를 역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공천에서 탈락한 홍 전 대표는 “살아서 돌아오겠다”며 대구 수성을 무소속 출마를 결심했다.

이처럼 황교안 전 대표와 대척점에 있던 홍준표 전 대표가 천신만고 끝에 생환했다. 38.5%를 얻은 홍 전 대표는 35.7% 득표에 그친 이인선 통합당 후보를 간발의 차로 누르고 5선 고지에 올랐다. 홍 전 대표는 4월 16일 자신의 지역구사무소에서 “당이 참패한 것에 대해서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조속히 당으로 돌아가서 당을 정상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홍 전 대표가 당에 복귀할 경우 파장이 예상된다. 당선 직후 “정권을 되찾아오겠다”고 외쳤듯이 홍 전 대표가 당 헤게모니를 거머쥔 뒤 대권 재수를 노릴 수도 있다. 황 전 대표가 한발 뒤로 물러난 터라 홍 전 대표에게 자연스레 공간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낙선이 확실시되자 지지자를 다독이는 김부겸 민주당 후보. / 사진:연합뉴스
홍 전 대표의 바로 옆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전했던 김부겸 민주당 4선 의원은 이번에는 분루를 삼켰다. 김 의원은 4년 전 총선에서 당시 여권 잠룡이었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누르고 민주당 계열 후보로는 31년 만에 대구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는 주호영 통합당 후보(의원)에게 밀렸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는 엎치락뒤치락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제 결과는 59.8%를 얻은 주 후보가 39.2%에 머문 김 의원에게 완승했다.

‘대구 2연승’에는 실패했지만, 민주당 TK(대구·경북) 대선주자로서 김부겸 의원의 위상은 크게 낮아지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총선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민주당에 TK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김 의원이 총선 패배로 움츠러든 건 사실이지만 ‘TK 정복 선봉장’ 역할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채진원 교수는 “김 의원이 개인 역량 부족 탓에 패한 게 아니기 때문에 대선주자로서 가치가 떨어졌다고 보긴 어렵다”면서 “오히려 불리한 줄 알면서도 원칙을 지키며 험지 출마를 고집했다는 점에서 ‘제2의 노무현’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나란히 깃발 꽂은 전직 경남지사들


▎4월 16일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권양숙 여사를 예방한 김두관 민주당 의원. / 사진:연합뉴스
2016년 총선에서 김포(김포갑)로 날아와 깃발을 꽂았던 김두관 민주당 의원. 그는 1월까지만 해도 “김포 시민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며 당 지도부의 양산을 등판 요구에 손사래를 쳤다. 2010년 무소속으로 경남지사에 당선됐던 그는 2012년 대선 출마를 위해 임기 도중 사퇴했다. 지역에서는 “도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요지부동일 것 같던 김 의원은 이내 마음을 바꿔먹었다. 그는 2월 3일 경남 양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산을 출마를 선언했다. 카운터파트로는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유력했다. 그러나 홍 전 대표가 공천 탈락하고 그 자리가 나동연 전 양산시장으로 채워졌다.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김 의원과 나 전 시장의 박빙승부가 점쳐졌다. 그 같은 흐름은 실제 선거로도 이어졌다. 김 의원은 48.9%를 얻어 47.2%를 획득한 나 전 시장을 간신히 따돌렸다.

당선 직후 김 의원은 선거 과정을 회고하며 “10년 전 도정(道政)을 맡았고, 8년 전 중도에 그만두게 돼 양산시민, 경남도민께 늘 빚을 진 마음이었다”며 “그런데 다시 돌아온 저를 정말 많이 응원해 주셔서 그 점이 너무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번 승리로 김 의원은 재선 고지에 올라섰다. 하지만 당 내부적으로는 김 의원을 그동안 ‘3선 중진급’으로 대접해왔다. 비록 초선 의원이지만 장관과 지사를 역임한 만큼 사실상 3선급이라는 논리였다. 이제 ‘4선급’으로 도약한 김 의원은 민주당을 대표하는 PK(부산·울산·경남) 대선주자다. 민주당에서는 PK 출신 대선주자를 내세웠을 때 선거 구도상 가장 유리한 것으로 본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도 PK 출신이다.


▎선거사무소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김태호 무소속 후보. / 사진:연합뉴스
홍준표 전 대표, 김두관 의원과 함께 경남지사를 지낸 김태호 전 지사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일찌감치 고향인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했지만 홍 전 대표와 함께 공천 탈락의 쓴잔을 들었다.

무소속 출마를 결심한 김 전 지사는 통합당 강석진 후보, 민주당 서필상 후보와 삼파전을 벌였다. 결과는 42.5%를 얻은 김 전 지사의 승리. 강 후보는 36.4%, 서 후보는 17.9%에 만족해야 했다. 김 전 지사는 당선 확정 직후 당 복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김 전 지사는 “이른 시일 내 당으로 돌아가 새로운 혁신을 요구하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따르고 정권 창출의 중심에 서겠다”고 강조했다.

김두관 의원과 함께 ‘낙동강 벨트’ 사수의 중책을 맡았던 김영춘 민주당 의원은 4선 고지 등정에 실패했다. 부산 부산진갑에 출마한 그는 부산시장 출신인 서병수 통합당 후보와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그러나 45.0%에 머무는 바람에 48.5%를 얻은 서 후보에게 승리를 내줘야 했다.

전국적으로 대승을 거둔 민주당이지만 김 의원의 패배는 뼈아프다. 민주당 입장에서 김 의원은 김두관 의원과 함께 PK의 대표 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재목이기 때문이다. 김민준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 소장은 “TK만큼은 아니더라도 PK 역시 민주당 입장에서는 큰 험지이기 때문에 선거 패배를 온전히 김 의원 개인기 부족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10년 만에 재기에 성공한 이광재 전 강원지사를 주목하는 시선도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 출마할 당시 전략과 기획을 맡으며 ‘우광재’로 불렸던 이 전 지사는 이번 총선 승리로 3선 고지에 올랐다. 2010년 강원지사 선거를 포함하면 개인적으로 4연승이다.

이 전 지사의 여의도 입성은 12년 만이다. 2004년 17대와 2008년 18대 총선에서 태백·영월·평창·정선에 출마해 잇달아 금배지를 달았던 이 전 지사는 이번에는 원주시갑에 출마했다. 선거전 초반부터 승기를 잡은 이 전 지사가 투표함을 열자 48.5%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돌아온 ‘盧의 남자’와 4선 고지 오른 ‘진보 아이콘’


▎당선 인사를 위해 선거사무소로 들어서고 있는 이광재 민주당 후보. / 사진:연합뉴스
이 전 지사는 만 45세이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 승리, 강원지사가 됐다. 그러나 2011년 1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이 확정되면서 지사직을 상실했다. 10년 동안 피선거권이 제한돼 힘든 시간을 보내던 그는 지난해 말 특별사면 대상자에 포함됐고 비로소 복귀의 길이 열렸다.

총선 승리로 이 전 지사가 강원도와 친문을 대표하는 대선주자이자 다크호스로 떠오를 거란 전망이 일각에서 나온다. 그런데도 이 전 지사는 몸을 낮추고 있다. 그는 당선 소감에서 “무엇보다 지긋지긋한 ‘싸움의 정치’를 끝내고 ‘먹고사는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며 “원주를 전국에서 교육과 경제로 성공한 모델이 되는 도시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고양시갑에서 4선 등정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나 홀로 승리’에 기뻐만 할 수는 없는 처지가 됐다. 정의당 지역구 출마 의원 가운데 심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는 죄다 패배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 없는 정의당의 지역구 승리는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3년 전 대선에 출마해 ‘진보 아이콘’으로 부상했던 심 대표이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내상을 입었다. 정의당은 정당득표율이 9.67%에 그치는 바람에 꿈에 그리던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4월 16일 정의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심 대표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정의당은 지난해 ‘조국 사태’ 때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다 비판을 받았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을 하는 과정에서는 여당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심 대표는 명실상부한 중진 반열에 올랐으나 정치적 영향력, 특히 진보 정당 대선주자로서의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 정의당 관계자는 “고 노회찬 의원이 살아 있었다면 당이 지금처럼 민주당 2중대 소리를 들을 정도로 휘둘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미 여러 언론에서 범여권으로 분류하는 마당에 정의당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4월 15일 밤 서울 마포구 당사 개표상황실을 찾아 후보들과 당직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때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로 한솥밥을 먹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통합당 의원도 입지가 좁아질 전망이다. 둘은 선수가 아닌 ‘코칭스태프’ 신분으로 총선에 출전했다. 안 대표는 당 선봉장을 맡았고, 유 의원은 공식 직책 없이 통합당 의원들 후방 지원에 나섰다.

안 대표는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으며 승부수를 걸었지만 당초 목표로 잡은 비례 득표율(20%)에 크게 모자란 6.8%에 그쳤다. 설상가상 비례대표로 출마한 권은희·이태규 의원을 제외한 안철수계 지역구 출마자들은 전원 낙선했다. 안 대표가 중도실용 정치를 지속해나갈 수 있을지 물음표가 붙는다.

황교안 전 대표가 사퇴했지만 유승민 의원이 당장 대안으로 떠오르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 의원은 총선 불출마로 5월 말 여의도를 떠나야 하는 데다 최근 잦은 당적 변경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나마 총선에서 유승민계의 선방은 고무적이다. 유승민계의 경우 수도권에서는 유의동 의원(평택을)을 빼면 대부분 떨어진 반면 하태경·류성걸·강대식·김희국·조해진 후보 등 영남권 출마자들은 대거 생환했다. 이런 점으로 미뤄 향후 야권 재편 과정에서 유 의원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을 것으로도 관측된다.

이번 총선 결과가 안 대표나 유 의원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란 예상이 있다. 당대표가 원외(院外) 신분일 경우 당 장악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원외 대선주자로서 정쟁의 한복판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되레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김민준 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직전에는 원외 신분이었기 때문에 차분히 대선을 준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정치 9단’을 자처하던 박지원 4선 의원,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4선 의원, 천정배 6선 의원(이상 민생당), 원내대표 출신인 심재철 5선 의원, 나경원 4선 의원(이상 통합당) 등 야권 거물들도 커튼 뒤로 퇴장하게 됐다.

‘DJ 비서실장’ 타이틀을 내세워 5선 고지를 노렸던 박 의원은 서울시 정무 부시장 출신인 신예 김원이 민주당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1942년생, 한국 나이로 79세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정계 은퇴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고교(전주고)-대학(서울대 국사학과) 후배인 김성주 민주당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패한 정동영 의원은 “천천히 생각해보겠다”고 했지만, 진로 모색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15대부터 20대까지 6선을 했던 천정배 의원 역시 4년 만의 리턴매치에서 양향자 민주당 후보에게 완패했다. “이번이 마지막 총선”이라고 외쳤던 천 의원이기에 재기를 장담하긴 어렵다.

‘링 밖’ 남자들과 퇴장 수순 밟는 거물들


▎4월 1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국민 호소 합동유세 도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통합당 유승민 의원(왼쪽)과 황교안 대표. / 사진:연합뉴스
2018년 12월 보수 정당 최초의 여성 원내대표로 선출됐던 나경원 통합당 4선 의원은 서울 동작을에서 판사 후배인 이수진 민주당 후보에게 덜미를 잡혔다. 비록 패하긴 했으나 나이(57), 여성 중진이라는 희소성 등을 고려하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양 동안을에서만 내리 5선을 한 심재철 의원은 민주당 비례대표 초선 이재정 의원에게 막혀 6선의 꿈이 무산됐다. 심 의원은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아 당 수습에 매진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꾸준히 자기 목소리를 내온 박원순 서울 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도 범여권 잠룡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총선 결과를 두고 두 사람의 희비가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4·15 총선에서 자신과 가까운 인사들이 대거 여의도에 진입한 박 시장은 내심 흡족하다. 박 시장의 비서실장 출신인 천준호 후보는 서울 강북갑에서 통합당 정양석 후보를 누르고 당선했다.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지낸 윤준병 후보는 전북 정읍·고창에서 현역 의원인 유성엽 민생당 의원을 제쳤다. 박 시장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허영 후보는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 지역구에서 김진태 통합당 후보를 꺾었다. 재선에 성공한 기동민·김영호 의원, 3선 고지에 오른 남인순 의원 등도 박 시장과 가까운 사람들로 분류된다.

반면 이재명 지사와 가까운 사람들은 대부분 공천 과정에서 탈락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임근재 전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경제부문 이사, 임진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장, 김용 전 경기도 대변인 등은 예선전을 통과하지 못했다. “경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신인들을 컷오프(공천 배제)하고 기성 정치인들을 단수공천 한 건 아쉽다”는 볼멘소리가 이 지사 측에서 나왔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00만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맨 처음 제안했던 김경수 경남지사도 눈여겨볼 만하다. 친문이자 PK 대표 주자인 김 지사는 향후 ‘드루킹 재판’ 결과에 따라 여권의 유력 잠룡으로 재평가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코로나 총선’에서 수도권 광역단체장인 박원순 시장과 이재명 지사의 적극적인 행보도 민주당 총선 승리 요인 중 하나”라며 “유능한 행정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유능한 지도자라는 인상을 각인할 수 있다면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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