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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특집 | 화제 당선인] 20년 만에 돌아온 ‘원조 86’ 김민석 

“빨리 가는 정치 대신 바로 가는 정치 하겠다” 

서울 영등포을에서 통합당 박용찬 누르고 3선 고지
“지난 세월 복기(復碁) 마쳤고 나름대로 준비도 충분”


▎김민석 민주당 후보(왼쪽 둘째)가 4월 16일 당선이 확정되자 지지자들과 함께 두 팔을 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년. 만 32세에 국회에 입성했던 청년이 중년이 돼 여의도로 돌아오기까지 강산이 두 번 변했다.

‘풍운아’ 김민석(56) 전 새천년민주당 의원이 마침내 돌아왔다. 월간중앙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 당선인은 “돌아와서 좋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김 당선인은 1996년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해 최영한(최불암) 신한국당 의원을 누르고 금배지를 달았다. 서울대 82학번 동기생들 가운데 가장 먼저 국회 입성에 성공한 것이다.

김 당선인은 4년 뒤 16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며 재선 고지에 올랐다. 원조 ‘86(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이자 가장 잘나가는 청년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김 당선인은 여세를 몰아 2002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서울시장에 도전했다. 하지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하며 기세가 한풀 꺾였다. 이어 같은 해 12월 제16대 대선을 앞두고는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전격 탈당했다. 그는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 단일화를 요구했다.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던 정몽준 후보가 대선 바로 전날 노무현 후보 지지 선언을 철회하자 김 당선인은 민주당에 복당했다.

하지만 모든 게 예전과는 달랐다. 이후 근 20년 동안 김 당선인은 내내 가시밭길을 걸었다. 개인적으로는 가정에 큰 아픔이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좀처럼 재기의 길이 열리지 않았다.

제 21대 4·15 총선 영등포을 출마를 선언한 그는 당내 경선에서 신경민 현역 재선 의원을 누른 데 이어 본선에서는 박용찬 미래통합당 후보를 꺾고 20년 만의 여의도 입성을 확정했다.

20년 만에 복귀다. ‘올드보이’의 귀환인가?

“좋다(웃음). 돌아보면 언제 20년이 지나갔나 싶다. 20년이라는 게 지날 때는 힘들었는데 ‘풍찬노숙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솔직히 중간에 ‘이런 고난이 어서 끝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만일 중간에 끝났다면 제대로 보지 못한 게 꽤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32세에 처음 국회의원이 됐다. 그리고 이젠 50대 중반인데 세월의 간극이 크고 깊겠다.

“30대 초반에는 국회의원이라는 게 뭔지 잘 몰랐던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초선·재선 의원 때는 일이라는 측면에서(정치를) 봤다. 그런데 지금은 책임감이라는 무게가 더 크게 다가온다. (우리나라) 정치 전체에 대한 책임감 같은 거 말이다.”

왜 그렇게 국회의원이 되려 했나?

“정치를 할 때나 안 할 때나 나는 항상 나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꾸준히 국가 비전을 공부해왔다. ‘과연 다시 정치를 하는 게 맞는지, 꼭 내가 필요한 건지’ 판단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면 돌아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는 지난 세월에 대한 복기(復碁)도 마쳤고, 돌아와서 다시 정치를 할 만큼 나름대로 준비가 된 것 같다는 생각에 도전하게 됐다.”

“미래형 복지체계 설계할 터”

선거 슬로건이 ‘돌아온 정치 신인’이었다.

“경선 과정에서는 ‘젊은 3선’을 강조했다. 그건 상대가 현역 의원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인 젊음 그리고 나도 경험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국민 앞에 나서는 선거는 다르다. ‘돌아온’이라는 건 개인의 스토리이고, ‘정치 신인’은 초심을 강조한 것이다. 국민에게 정치적 경험이나 경륜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국민은 새로운 걸 바란다. 거기에 맞추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이제 연배나 선수(選數)로 봤을 때 중진이다.

“당선 직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고민했다. 다음 주(4월 20일 이후)부터 집중학습 계획을 세웠다. 나름대로 생각해왔던 정책이나 철학도 있고, 선거에 맞춘 공약도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을 차근차근히 실행해나가야겠지만,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코로나19 이후 상황이다. 변해버린 모든 걸 진단해서 방향을 잘 잡는 게 정치다. 나 자신이 그걸 잘 이해하고 있는지 깊이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핵심을) 잡아내는 게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그런 공부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주변에 관심 있는 당선자들이 함께하자고 하더라. 지금은 전쟁과도 같은 비상시국이자 문명 변화의 시기다. 이럴 때 정치가 먼저 방향을 잡아서 국민이 방향을 잘 잡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런 게 결국 책임감 아닐까.”

21대 국회 개원 이후로도 이런 활동은 계속되나?

“당연히 다양한 방법으로 지속할 것이다. 여야·정파를 떠나서 어디서부터 시작할 건지 곰곰이 고민하고 있다. 혁명적 상황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이런 활동이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지역구 의원으로서 해결해야 할 현안은?

“우리 지역구의 색깔은 굉장히 다층이다. 대림동에는 경제적 활력 제고를 위한 벤처 창업 기지를, 신길동에는 교육혁신센터를 만들 것이다. 여의도의 경우 공공 스포츠센터를 유치하고 재건축 문제의 실마리를 찾는 데 집중하겠다.”

국민의 대표로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장기적인 포용국가의 비전과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정치의 가장 큰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 일환으로 전 국민 평생교육에 대한 준(準)무상교육 수준의 지원체계를 만드는, 장기적인 미래형 복지체계를 설계하려 한다. 우선 영등포 40~50대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시도할 생각이다. 또 하나는 코로나 체제가 제기하는 문제, 즉 재난관리, 공공의료 체계, 원격교육 체제 등의 대안도 만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국제적 경험이 좀 있다고 생각한다. 소속 상임위원회와 무관하게 국제적인 활동도 더 활발하게 할 생각이다.”

여야 정치 대립이 너무 심하다.

“(나는) 과거에도 비교적 정파에 덜 치우쳤고, 다른 당 의원들과도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의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서부터 이 문제를 풀어나가려 한다. 예전과 비교하면 정치가 너무 자잘해졌다. 지켜야 할 금도가 무너졌고 또 각박해졌다. 정치의 품이 넓어지도록 나부터 포용적인 마음을 갖도록 하겠다.”

어떤 정치를 하려 하는가?

“젊어서는 빨리 가는 정치를 했다면, 이제는 바로 가는 정치를 하려 한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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