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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박사방’ 조주빈 심리 해부 

이웃의 가면을 쓴 ‘디지털 소시오패스’가 온다 

봉사활동 즐기던 평범한 청년과 성 착취방에 군림한 악마의 이중생활
현실과 딴판인 온라인 자아 만들어 약자 상대로 지배욕 충족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협박해 촬영한 성 착취물을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3월 25일 포토라인에 선 그는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 사진:강정현
여성들을 농락하고 성 착취 음란물을 만들어 공유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프로필이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가 주도한 범행에서 연상되던 이미지는 악마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공개되자 대중은 또다시 경악했다. 당초에 그렸던 악마적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3월 25일 검찰에 송치되면서 포토라인에 선 조주빈은 순박한 표정을 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표정은 담담했다. 그의 얼굴에선 일말의 죄의식이나 반성의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26명을 노리개로 삼은 악마의 모습을 철저하게 가린 것일까.

경악은 이내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박사장’ 또는 ‘박사’라고 불리며 텔레그램방을 운영한 인물이 정말 맞느냐는 의아함이 현실과 이미지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평범한 악마’의 모습을 현실로 마주하는 것은 분노를 넘어선 공포로 다가왔다. 내 주변의 평범한 이웃 중 누군가가 조주빈의 공모자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3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텔레그램 성 착취 공동대책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조주빈이 운영한 박사방과 유사한 이른바 ‘n번방’ 60여 개의 참여자 수 추정치는 26만 명(단순 합계)에 이른다.

몇 달간 박사방을 잠입 취재한 대학생 추적단 ‘불꽃’과 국민일보 취재팀은 “여러 n번방 중 박사방이 가장 악랄했다”고 했다. 성 착취물의 잔인함과 박사방 운영의 치밀함이 이전의 n번방 운영자들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박사방은 우두머리인 조주빈을 정점으로 피해자를 물색하는 유인책과 성 착취물 제작을 위한 행동책, 수익금 인출책, 유포책으로 역할을 나눴다. 역할을 분담한 박사방 운영의 공범은 50여 명이나 된다.

박사방의 악마들이 그린 지옥도(地獄圖)

조주빈과 그를 추종한 무리가 지배한 박사방은 참혹했다.

박사방은 지난해 9월경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등급에 따라 방을 여러 개 개설했다. 유료방인데도 많은 곳은 이용자가 1만 명에 달했다. 무료방은 최대 접속 인원이 2만3500명에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용자들은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150만원까지 입장료를 지불했다. 입장료는 비트코인이나 추적이 불가능한 암호화폐를 이용했다. 경찰이 찾아낸 조주빈의 불법 수입은 1억원대에 불과하다. 아직 찾아내지 못한 범죄 수익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박사방에서 변태적 성욕 분출의 대상인 피해 여성들은 ‘노예’로 불렸다. 몸에 ‘노예’, ‘박사’와 같은 문구를 칼이나 샤프로 새겨 ‘인증’하길 강요했다. 속옷을 뒤집어쓰거나 해괴한 자세를 요구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성적 비하가 경쟁적으로 벌어졌다. 피해자들의 사진과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환호했다. 그들은 이것을 ‘그루밍(grooming, 길들이기)’이라고 불렀다.

박사 조주빈은 끊임없이 노예를 만들어 자신의 우월적 존재감을 과시했다. 피해자에게 특정한 손짓을 하게 해 자기가 만든 노예라는 것을 강조했다. 노예를 만드는 방법은 치밀했다. 모델이나 온라인 데이트 등의 고액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내밀었다. SNS를 통해 조건만남 등 불법 성매매를 원하는 이들은 손쉬운 타깃이 됐다. 일대일 SNS 대화로 접근해 돈이 든 통장 내역을 보여준 뒤 인증이 필요하다며 사진과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점차 수위를 높였다. 피해자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대화 내용이 삭제되도록 설정된 것만 믿고 요구에 따랐다고 한다.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데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한 최모(26·구속), 강모(24·구속)가 가담했다. 이들은 행정전산망을 이용해 조주빈이 지목한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신상정보를 캐내 협박에 이용했다.

이렇게 수집한 개인정보는 올가미가 돼 피해자를 결박했다. 개인정보와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이 이어졌다. 이때부터 노골적인 성 착취가 시작됐다. 이용가치가 떨어질 때까지 엽기적인 강요가 계속됐다.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더라도 영상은 두 번째, 세 번째 방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퍼졌다. 경찰이 현재까지 확인한 박사방 피해자는 74명이다. 그중 16명은 미성년자다.

경찰은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면서 조주빈 일당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치밀하게 역할을 분담한 조직적 범행이 드러나자 검찰(서울중앙지검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태스크포스)은 이들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더하는 방안에 관한 법리검토를 시작했다. 형법상 범죄단체조직죄는 ‘사형이나 무기징역, 4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조직한 경우’ 성립한다. 이 죄가 적용되면 조직원은 모두 같은 형량으로 처벌할 수 있다. 앞서 2017년 10월 대법원이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 유죄를 인정한 판례가 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조주빈 일당이 오프라인에서 서로 교류가 없었더라도 동일한 목적을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게 인정되면 이 죄목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우선 이 죄목을 적용하지 않고 기소한 뒤 추가 수사를 통해 적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조주빈의 얼굴과 신상이 공개되면서 사회적 파장을 부른 성 착취방은 전부터 1번방, 2번방 등으로 불리며 SNS를 타고 암세포처럼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를 뭉뚱그려 ‘n번방’이라고 칭할 뿐이다. 텔레그램 성 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자체 추적한 결과 텔레그램 n번방과 유사한 성 착취방은 60여 개에 이른다.

박사방의 시초가 된 ‘n번방’


n번방은 2019년 초부터 갑자기 늘었다. 외국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의 특성상 이용자 정보를 추적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노려 텔레그램이 n번방의 둥지가 됐다. 성적 취향에 따라 ‘여교사방’, ‘여군방’, ‘여중생방’, ‘여아방’ 등 다양하게 생겼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n번방의 원조는 ‘갓갓’이란 닉네임을 쓴 텔레그램 이용자였다. 2019년 2월에 1~8번 대화방을 만들어 운영했다. 피해자 30여 명에게 받아낸 영상 수백 개가 유포됐다. 방마다 이용자 300~700명이 입장료 만원을 내고 성 착취물을 공유했다. 당시 텔레그램 신규 이용자가 급증한 것도 n번방과 무관치 않다고 경찰은 분석했다.

갓갓은 트위터 익명 계정에서 성적인 콘텐트를 올리는 이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이른바 ‘일탈계(일탈 계정)’ 유저들이다. 개인정보를 빼낸 수법은 단순했다. 피해자에게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있다며 트위터 로그인 정보를 빼낼 URL이 첨부된 메시지를 보내 피해자가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도록 유도했다. 이렇게 얻은 계정 정보로 수사기관을 사칭해 음란물 유포 혐의로 조사하겠다고 겁박한 뒤 점차 수위를 높여 성 착취물을 찍도록 강요했다. 피해자의 약점을 이용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지게 한다는 점에서 보이스피싱 수법과 유사하다. 이는 2014년에 할리우드 유명 인사 100여 명의 누드사진이 유포된 사건의 수법과 동일하다. 당시에도 범인은 구글이나 애플로 가장한 이메일을 보내 클라우드 암호를 수집한 것으로 밝혀졌다. 순간의 방심으로도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n번방이 인기를 끌자 유사한 파생방들이 생겨났다. ‘와치맨’이란 닉네임을 쓴 전모(38·구속)씨가 운영한 ‘고담방’은 이용자 수가 7000명을 넘었다. 음란물 3000여 개가 올라왔다. 대부분 청소년 피해자의 가학적 영상들이었다. 조주빈 이전의 n번방 운영자들은 대부분 붙잡혔다. 다만 최초 인물인 갓갓의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2019년 8월에 활동을 중단하면서 입시에 전념한다고 한 점으로 미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이들의 검거가 끝은 아니다. n번방에서 유포된 것으로 짐작되는 영상들을 모아 다시 유포하는 새로운 음란물 방들은 지금도 계속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하고 있다. 음란물을 올렸다가 수분 뒤 삭제하는 식으로 경찰의 추적을 따돌린다. 짧은 시간에 촬영물을 내려받은 제2, 제3의 이용자에 의해 새로운 방이 만들어지고 유포된다.

대중의 관심과 분노를 역이용한 또 다른 피해자도 양산되고 있다. 이른바 ‘자경단’이란 이름으로 확인되지 않은 가해자 명단이 무작위로 유포되는 것이다. 텔레그램 대화방 ‘주홍글씨’에는 이용자들이 가해자의 신상정보라며 사진과 이름·직업·거주지 등을 게시하고 있다. 정보의 신뢰성이나 출처는 불분명하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고, 만약 n번방 이용자가 맞다고 해도 수사와 재판을 거치지 않고 확인되지 않은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것도 엄연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악의 소굴에서 군림한 조주빈의 두 얼굴


▎n번방이 인기를 끌자 유사한 형태의 성 착취물을 제작·판매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이 잇따라 생기고 있다. 유사 n번방을 운영할 스탭을 모집하는 공지(왼쪽)와 n번방의 불법 콘텐츠를 재판매하는 또다른 텔레그램방. / 사진:중앙포토, 부산지방경찰청
가면이 벗겨진 조주빈은 지킬과 하이드의 현신(現身)이나 다름없었다. 디지털 세상에서 그는 조주빈이 아닌 ‘김윤기’라는 전혀 다른 가상 인물을 만들었다. 자신을 ‘박사장’, ‘박사’로 지칭하면서 지체장애를 가진 45세(1974년생) 기혼자로 행세했다. 캄보디아에 거주하는 흥신소 사장이라고 소개했다. 유력 인사들과 대화를 나눈 것을 보여주며 정보력과 인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의 언변과 행동은 단지 신분을 감추기 위한 위장술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정교했다. 조주빈과 텔레그램에서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는 A씨는 “흥신소를 운영하는 40대 남성이라면서 접근한 그의 말투나 내용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조금도 의심하지 못했다. 기사를 본 뒤에야 내가 속았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반면 현실의 조주빈은 온라인의 ‘김윤기’와 완벽하게 달랐다. 겉으로만 보면 정 많고 반듯한 청년이었다. 꽤 오랜 기간 봉사활동을 해왔다. 대학생 시절이던 2017년 10월 스스로 민간봉사단체를 찾아가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한 달에 한 차례씩 장애인 보육시설이나 미혼모 시설 등을 찾았다. 사회복지자원봉사인증관리 사이트에 등록된 그의 봉사 기록은 모두 57회나 된다. 그가 속했던 인천의 한 자원봉사센터 관계자는 조주빈을 “조용하고 튀는 성격이 아닌 차분한 성격이었다”고 했다. 꾸준하고 성실한 활동으로 장애인 지원팀장도 맡았다.

지난해 11월 조주빈이 봉사활동 후원행사에서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는 그의 이중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박사방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여성을 돈벌이 수단과 노리개로 삼았던 때다.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 나 역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다 군 전역 후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웃고 떠들며 부대끼다 보니 어느새 봉사자와 수혜자의 관계가 아닌 형과 동생, 오빠와 동생이 되어 편안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봉사를 삶의 일부로 여기고 지속적으로 봉사할 계획입니다.”

그가 검찰로 송치되면서 포토라인 앞에서 한 발언도 자신이 창조한 온라인의 자아를 타자화하는 이중인격을 드러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조주빈은 3월 25일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취재진을 향해 “악마의 삶을 멈추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서울경찰청 범죄분석관(프로파일러)을 지낸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내가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악마가 나를 시켜서 했다는 범죄 전가다. 자기는 죄의식에서 빠져나가겠다는 전략적인 말”이라고 했다. 배 교수는 조주빈이 매우 전략적인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현실과 온라인에서 조주빈의 행동은 뚜렷하게 대립된다. 국내 프로파일러 1호인 권일용 동국대 겸임교수(전 경찰청 범죄행동분석팀장)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나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 속에 자신의 공격성을 감추고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권 교수는 “조주빈의 불우했던 성장 과정(가정 해체, 아버지의 폭력, 가난 등)에서 자기 정체성이 손상됐을 것”이라며 “분노를 표출하고, 그 대가로 물질적 이득을 취하는 것은 감정적 범죄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말했다.

행위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조주빈의 범행에는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박사방 이용자들에게 입장료를 받은 점으로 미뤄 돈을 벌 목적이었을 가능성은 있다. 경찰이 범죄수익으로 보고 보전청구한 조주빈의 계좌는 1억3000만원 정도지만, 유료방 이용자 수를 고려할 때 실제 그가 숨겨둔 범죄수익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조주빈의 생활이 사치스러웠던 정황은 없다. 그가 봉사활동을 한 인천의 봉사단체 관계자는 그의 씀씀이나 행색이 달라진 것을 느끼지 못했다고 전했다. 운전면허도 없는 데다 그가 살았던 인천시 미추홀구의 주택도 본인 소유가 아니었다.

지배욕에 사로잡힌 반사회성 범죄자의 진화


▎조주빈은 충성도 높은 이용자들에게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검찰은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검토 중이다.
범죄 분석 전문가는 조주빈을 지배욕과 권력욕이 강한 인물로 분석했다. 근거는 미국 범죄학에서 주목하는 14~24세 청소년 범죄자의 특징에 있다. 배 교수에 따르면 범죄학에서 이들은 ‘초포식자(superdator)’라고 불린다. 감정이 없고, 무자비하며,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게 특징이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살인 등 강력 범죄의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조주빈에게 경제적 이득이나 성적 욕구 충족은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고 배 교수는 말한다. 대신 지배욕과 권력욕에 집착하는 경향을 띤다. 조주빈이 했던 봉사활동도 순수함에서 비롯된 선행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배 교수의 분석이다. 그의 분석은 이렇다. “자기보다 무력한 존재에 대해 큰 희열을 느끼는 성향을 ‘자비 살인(mercy murder)’이라고 한다. 장애인 봉사를 하면서 실은 그들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조주빈은 이런 조건들을 갖췄다.”

심리 전문가들도 조주빈의 이중 자아에 공통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내재해 있다고 봤다. 현실에선 욕구 실현의 방법으로 봉사활동을 선택했지만, 현실의 자아가 특별한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욕구불만을 온라인의 자아로 해소했다는 거다. 능력을 과시하면서 박사방 이용자들 위에 군림하고, 약자인 여성들을 가학적으로 착취함으로써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지배욕을 실현했다는 분석이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의 분석은 이렇다. “남성 무리에서 약하다고 배제되는 남성일수록 여성을 착취하는 데 집착한다. 현실에서 무시당하지만, 온라인에서라도 남성성을 인정받으려고 여성을 대상으로 정복욕을 분출한다.” 텔레그램 성 착취 문제를 추적 감시해온 여성단체 ‘텔레그램 성 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ReSET)’도 “확인한 가해자 대다수는 현실에서 떳떳한 성취를 이뤄본 적이 없는 남성들”이라고 했다. 텔레그램 방을 도피처 삼아 내재한 불만과 정체성을 발산했다는 거다.

이는 전통적 기준의 반사회적 인격장애, 즉 소시오패스(sociopath)의 행태와도 일치한다. 소시오패스는 자신을 잘 위장하며 감정조절이 뛰어나다. 또 겉으로는 매력적이고 사교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매우 계산적이며 비정상적으로 잔인하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재미 삼아 한다. 기존의 소시오패스는 현실 세계에서 상황과 대상에 따라 양면성이 발현되지만, 조주빈의 경우 현실과 온라인을 철저히 분리한 게 특징이다. 온·오프라인의 자아가 다르게 발현되는 조주빈과 같은 인물은 ‘디지털 소시오패스’의 본격적인 출현을 예고한다.

지금도 SNS에는 온갖 가학성 성 착취물이 범람하고 있다. 10~20대 청소년이 많이 사용하는 SNS 플랫폼인 텀블러는 특정 여성의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 성적 모욕을 가하는 형태의 성 착취물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지인 능욕’이란 제목으로 개설된 방에는 여성의 얼굴과 이름·나이·거주지·학교명 등 개인정보가 모두 노출돼 있다. 이용자들은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성적 모욕을 일삼는다. 지난해 말 텀블러 운영사가 음란물 필터링을 강화했는데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가학의 경쟁이 심화할수록 폭력과 잔인함의 강도는 점점 높아진다. 죄의식은 희미하다.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라고 믿어버리기 때문이다. 스스로 현실과 다른 자아에 도취해 있는 것처럼 피해자 역시 가상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가상의 공간에서 타인의 고통을 교감하지 못하는 이중인격. 누구나 디지털 소시오패스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사생활을 SNS로 공유하는 디지털 사교 문화의 확장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더불어 새로운 가해자와 피해자가 언제든 나올 수 있다. SNS의 익명성은 가해자의 무기인 동시에 피해자를 옭아맬 덫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면 뒤에 숨어도 범죄자는 자신’이란 사실 각인시켜야


▎텔레그램 성 착취방 이용자 수는 최대 26만 명에 이를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가학 경쟁이 심해질수록 공모자들의 죄의식은 옅어진다. / 사진:뉴스1
전문가들은 우선 온라인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상의 자아 뒤에 숨어 있어도 범죄의 당사자는 자신이란 사실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성범죄의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것이 그 방법일 수 있다.

“온라인의 익명성을 과신하면 가해자의 행동은 대담해지고 죄의식은 옅어진다.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각심은 현실 세계에서 충동적 본능을 억제하는 가장 강력한 브레이크다. 온라인의 범죄도 현실 세계만큼 엄히 처벌받는다는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의제강간 대상 연령을 높이는 것을 제안했다. 의제강간은 피해자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13세 미만 아동과 성행위를 할 경우 무조건 처벌토록 한 조항이다. 이를 16세 이상으로 높여 미성년자 성 착취가 엄연한 범죄임을 사회적으로 각인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최근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이 무더기로 붙잡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채팅방 운영자 중에는 고등학생과 중학교 1학년생도 있었다. 이 중학생은 초등학생 때부터 성 착취방을 운영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어린 시절부터 왜곡된 성폭력에 노출되다 보니 놀이와 범죄의 경계를 판단하지 못하기도 한다”며 “절대 넘지 말아야 할 기준을 단호하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모든 범죄는 반드시 꼬리가 잡힌다는 점을 어려서부터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범인은 반드시 지문을 남긴다’는 격언은 온라인에서도 통용된다. IT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디지털 지문은 반드시 남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절대 못 잡는다”고 자신만만해하는 이들에게 경찰이 “반드시 잡힌다”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SNS 이용이 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시대에 발맞춰 온라인의 개인정보 유출을 막고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바람직한 SNS 활용 교육을 일찌감치 강화할 필요도 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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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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