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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서양사 현장르포 - 승자의 조건, 패자의 교훈(17)] 터키 미다스 시티에서 찾는 성(聖)과 욕(欲)의 사잇길 

유일신도 물신(物神)도 아닌 ‘나 다움’ 발견하는 여로 

딸마저 황금으로 만든 미다스 왕 이야기, 글로벌 버블 경제와 꼭 닮아
의미 없는 소비 거부하는 일본의 바나레(離れ) 유행이 변화의 실마리


▎터키 서부의 내륙도시 야시호유크(Yassihoyuk)에 위치한 고대 유적지 ‘미다스 시티’ 전경. 왼쪽은 ‘미다스 아니티’(미다스에게 바치는 기념물), 오른쪽은 자연동굴을 개조한 기독교도들의 수도원이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바나레(離れ). 최근 일본 2030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멀어지는, 무관심한’이란 뜻이다. 일본의 신문·방송에 언급되는 케이스를 보자. 자동차 바나레, 집 바나레, 청바지 바나레, 종신직장 바나레, 섹스 바나레, 알콜 바나레, 손목시계 바나레, 유학 바나레, 결혼 바나레, 명품 바나레, 외국여행 바나레, SNS 바나레, 화장 바나레, 영화 바나레, 일본 바나레, 미소시루(된장국) 바나레….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각자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젊은이들의 무관심이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진 듯하다. 청바지를 입는 것 자체가 ‘꼰대스러운’ 데다, 한물간 패션이란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생각이다.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소유하려 애썼던 기성세대와 달리,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살아가려는 풍조라고나 할까?

바나레를 무기력·무관심·게으름으로 해석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반대에 가깝다. 바나레의 대상이 많다는 건 그만큼 그 이외 영역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강하다는 뜻이다. 사람의 욕구는 대상을 옮겨갈 뿐,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욕구 불변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일본 2030세대에게 바나레의 기준은 무엇일까? 결론은, 결국 ‘내 자신’이다. 세련되게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 자신에게 충실’이란 의미다. 필자와 같은 50대 장년만 해도 ‘자신에 충실=출세·돈·명예’로 풀이하는 것이 상식이다. 21세기 2030세대는 다르다. ‘자신의 충실=나만의 시간과, 나에게 맞춰진 나만의 환경’으로 해석된다. 나와 너를 전제로 한 사회적 의미 속의 내가 아니다. 국가·사회·조직 심지어 가족과 남녀 사이에서 통하는 모든 가치가 ‘귀찮고 무겁고 쓸데없는’ 것이다.

2030에게 돈은 ‘나 다움 지켜주는 보험’


▎사진:구글 지도
‘일본 젊은이=초식동물’에 따른, 일본만의 현상이자 특징이라 말할지 모르겠다. 전혀 다르다. 정도의 차이일 뿐,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유럽 선진국에서도 볼 수 있는 글로벌 현상이란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한국에도 일반화가 안 되고 있을 뿐,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뉴욕 브루클린은 21세기 미국 2030세대의 몽마르트르 언덕과 다름없다. 문화·예술의 중심인 것은 물론, 서방 트렌드의 출발점이라 보면 된다.

이곳에 들를 때마다 느끼지만, 브루클린 청년들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식(食)’ 문제다. 냉동식품·인스턴트·패스트푸드는 논외다. 보통 50% 정도 더 비싼 유기농 제품이 대세다. 레스토랑 메뉴를 봐도, 자연 친화적인 음식이 우선이다. 핸드 메이드 쿠키는 재료·제조법·보존법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가게 홈페이지에 자세히 기록한다. 가격이 거의 배 이상인 것은 물론이다.

브루클린에서 내린 결론은 2030세대가 꼰대 이상으로 몸 관리에 열중한다는 점이다. 미식 차원도 있지만, 먹는 것 하나에도 영혼을 불어넣으며 살아간다. 맛이나 건강 차원의 물질적·형이하학적 해석이 전부는 아니다. 기후변화나 플라스틱 사용 금지, 아동노동 착취 반대와 같은 21세기형 이념이 배인 건강식이다. 집·자동차·옷에 대한 바나레를 대신해, 몸과 건강에 ‘올인’한다고 할까? 따라서 요가 스튜디오처럼, 건강을 고려한 육체·정신 단련소가 많은 것도 브루클린의 특징 중 하나다.

‘바나레의 정반대’에는 무엇이 있을까? 관심과 집착의 대상이 되는 영역 말이다. 건강은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한 출발점일 뿐이다. 목적지는 결국 ‘돈’이다. 바나레 현상이 심해질수록 돈을 향한 집착이 한층 더 강해진다. 집·자동차·결혼반지·명품 바나레를 청빈사상으로 해석할지 모르겠다. 내막을 보면 전혀 반대다. 물질적인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무위(無為)사상과 무관하다. 물건이나 사회적 가치, 인간관계에 대한 무소유·무관심도 아니다. 소유·관심에 따른 책임이나 시간적 소모로부터의 자유로워지려는 목적에서 바나레로 나아갈 뿐이다. 그러니 잠시 잊고 생략할 뿐, 원할 때는 다시 복귀할 수도 있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보유할 경우 세금과 주차시설 관리가 필요하다. 외국 여행은 어떨까? 외국에 여행하는 동안 겪어야 할 언어 장벽과 불편함이 마음에 걸린다. 책임·시간·노동을 필요로 하는 영역은 전부 싫다. 당장은 모든 관심을 자신의 취미나 건강에 집중한다. 굳이 원할 경우 나중에 생각이 바뀐 뒤 자유롭게 선택하자는 것이 2030세대의 가치 기준이다.

결론은 ‘만능해결사’ 돈이다. 돈만 있으면 집도 자동차도, 원할 때 빌리거나 사면 된다. 결혼도 돈만 있으면 꼰대 나이에도 할 수 있다. 자식도 원한다면 최첨단 의료기술을 통해 가질 수 있다. 시간과 건강조차도 돈만 있으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 21세기 2030세대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갖춘, 풍요의 세대다. 고급 시계, 자동차에 대한 소유욕도 없고, 목숨을 걸만한 정치적 이슈도 없다.

대신 등장한 것은 모바일이다. 인터넷과 모바일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다. 세계 곳곳의 비경(秘境))조차도 현장보다 더 리얼한 인터넷 사진으로 즐기면 그만이다.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 청년들의 외국 여행이나 체험이 수직으로 하락하는 이유다. 현실과 무관한, 상상 속의 세계로 가는 과정에서의 선택이 바나레라고 볼 수도 있다.

전염병으로 막 내리는 글로벌 시대


▎2019년 7월 서울 코엑스에서 ‘비건 페스타’가 열리고 있다. 비건(Vegan)은 고기는 물론 유제품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라는 뜻이다. / 사진:뉴시스
필자는 코로나19 덕분에 ‘역병 망명’을 떠난 지 7주째다. 도쿄에서 이탈리아로 들어가던 중 중간 기착지인 터키에 발이 묶인 상태다. 유럽행 비행기도 전면 중단됐다. 비싼 항공권을 구해 뉴욕 집으로 돌아가려 해도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프다. 확진자로 들끓는 미국에 가는 것 보다, 아예 터키 체류가 더 나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CLT’는 중세 유럽 당시의 전염병 대응 수칙 중 하나다. 라틴어 ‘Cito, Longe, Tarde’의 약자로, ‘빨리, 멀리 피하고, 늦게 돌아오라’는 의미다. 전염병 창궐지역을 피해 먼 곳에 갔다가 늦게 돌아온다는 점에서, 터키로의 ‘역병 망명’은 21세기 판 CLT일지 모르겠다.

감옥은 정치가가 자신의 생각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중 하나라고 한다. 자신을 감옥에 보낸 사람을 증오하느라 바쁜 사람도 있겠지만, 공부하고 반성하고 마음을 넓고 깊게 가지는 정치가도 간혹 있다. 별 할 일도 없기에 책을 읽는 과정에서 새로운 비전을 창조해낼 수도 있다.

2020년 전염병 시대를 살아가는 개개인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전염병 감염 유무에 관계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뭔가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시간이다. 모바일을 통한 SNS나 영화에 빠진 사람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 제기나 그에 따른 답을 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2020년 지구는 인공지능(AI)에다 수명 130세, 심지어 무인 자동차 비행기까지 등장하는 세상이다. 중세 전설에나 존재할 전염병이 왜 갑자기 끼어들어 세상을 어수선하게 만들까? 왜 이런 상황이 끝나지 않고 벌써 4개월째 이어질까? 올여름을 넘어 앞으로 몇 년간 계속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왜 갑자기 이런 ‘황당하고도 엄청난’ 시련이 한꺼번에 밀어닥칠까? 전염병 공포가 길어질수록 과거 철학자들이나 생각했던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나 배경에 주목하게 된다.

책을 통해 답을 찾는 사람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신이 답일 듯하다. 인간은 죽음이 무서워 종교를, 삶이 무서워 철학을 만들었다고 한다. 바이러스는 삶과 죽음 모두에 걸쳐지는 무서운 현실이다.

‘역병 망명’ 덕분이지만, 3월 이후의 대부분이 혼자만의 시간이다. 반성과 더불어,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한 세대 가까이 이어진 글로벌 시대가 전염병 창궐의 가장 큰 원인이라 것이, 나름대로의 결론이다. ‘모두·함께·평등·공존·공영’이란 슬로건 하에 벌어진 글로벌 버블 파티가 배경에 있다. ‘모두·공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너무 한순간 찾아왔고, 그런 탓에 정도를 지나쳤다는 점에 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변신하면서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가격에 세계 곳곳에 뿌려진다. 한국에도 넘치는 1000원 숍은 글로벌 시대의 풍요를 증명한다. “어떻게 이런 제품이 불과 1000원에?”란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환경파괴, 노동력 착취, 자원낭비와 같은 불편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내 눈앞에서 벌어지지 않는 한 상관없다는 것이, 필자를 포함한 보통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싸고 편하고 간단한 물건들이 쏟아지면서, ‘버리는 것이 진짜 지혜로운 인생’이란 책도 등장해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는다. 사는 데 정신을 쏟는 사람들도 많지만, 반대로 버리느라 바쁜 사람들도 넘친다. 결론은, 들쭉날쭉 기후변화를 통한 지구 차원의 재앙이다. 당연하지만, 신체가 고장 나면 정신도 위험하다. 자연 환경이 엉망이 될 경우 지구 위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다.

1000원 숍과 코로나19


▎지하의 신이자 부자의 신, 플루토(Pluto) 조각상. 지하자원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부자의 신으로 통하지만, 죽어야 만날 수 있는 신이기도 하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중국발 전염병은 위선과 모순으로 점철된 글로벌 버블 파티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터져 나온다. 박쥐를 잡아먹었다는 중국식 음식문화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미 지구 차원에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된 상태에서의 결과가 바이러스 대재앙일지 모른다. 마치 ‘인류의 급소’를 자로 잰 듯 정확히 공격한다. 무차별, 대규모로 인류 전체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다. 백신에 기대를 거는 사람도 있겠지만, 바이러스도 더더욱 치명적으로 진화해나갈 것이다.

필자의 망명지 터키의 전염병 확진자 수도 매일 수직 상승하고 있다. 지난 3월 11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3주 만에 1만5679명(4월 2일 기준)을 기록했다. 전염병은 에게해 주변 관광지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그런 탓에 필자는 줄곧 전염병 청정 지역인 내륙 지방으로 이동하고 있다. 관광객이 드문 곳이 안전지대다. 터키 서부 야시호유크(Yassihoyuk)는 그 같은 망명 생활 중 만난 곳이다. 야시호유크는 2800년 전 미다스 왕의 흔적이 서린 곳이다. 일명 ‘미다스 시티’로 불리는 고대 유적지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다스는 황금 손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손으로 만지는 족족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한다. 그 같은 재능은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로마명 바쿠스)의 축복에 따른 것이다. 미다스가 행방불명된 디오니소스의 양부(養父)를 찾아주자, 보상으로 황금 손을 안겨준다. 미다스는 곧바로 세상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꾼다. 그러나 곧바로 황금손이 축복이 아닌 저주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음식, 심지어 무심결에 안은 딸까지 황금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옷도 못 입고 물도 못 마시고 밥도 못 먹는다. 황금 때문에 패가망신한, 신화 속의 반면교사가 미다스다.

황금 손 미다스는 전설 속 인물에 그치지 않는다. 고대 역사가들은 미다스를 실존인물로 본다. 기원전 8세기 세워진, 고르디움(Gordium)을 기반으로 한 미다스 왕국이 증거다. 당시 맹위를 떨친 앗시리아 제국의 변방을 공격한 탓에 역사서에도 등장한다. ‘무시키(Mushki) 왕국의 미타(Mita) 왕이 공격의 주범’이라는 부분이다. 미타는 미다스로 풀이된다. 미다스는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투스의 책에도 언급된다. ‘고르디움의 아들 미다스’란 이름으로 아폴로 델피의 신탁에 봉헌(奉獻)했기 때문이다.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니콜라 푸생의 작품 ‘파크톨루스 강에서 손을 씻는 미다스’(1626~1628년경). 딸을 잃은 뒤, 황금 손을 다시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강에서 손을 씻고 있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황금 손 신화 덕분이겠지만, 중세 이래 미다스 왕국의 위치에 대한 논의가 분분했다. 최종 결론은 19세기 말 스코틀랜드 고고학 팀이 내렸다. 터키 내륙 야시호유크의 미다스 시티는 2800여 년 전 역사 속 실제 무대로 통한다. 미다스 시티는 붉은색 대리석으로 유명한 도시, 아피온카라히사르(Afyonkarahisal)에서 북쪽으로 80㎞ 떨어진 곳에 있다. 한자로 아편(阿片)은 아피온카라히사르에서 따온 말이다. 세계적 아편 산지가 아피온카라히사르에 있다.

4월초인데도 때마침 내린 눈으로 길 전체가 미끄럽다. 간선도로에 들어서 20분 정도 달리던 중, 길게 일렬로 늘어선 바위 언덕을 만났다. 미다스 시티다. 전체적으로 축구장 10개 정도 크기의 넓은 공간이다. 소·양·염소를 키우는 농가들이 황금 손 도시를 에워싸고 있다.

2700여 년 전 세워진 미다스 왕 기념물


▎미다스 아니티는 바위를 평면으로 만들어 깎아 만든 조형물이다. 2700여 년 전 작품으로, 오늘날엔 욕(欲)의 반면교사 역할을 한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고대 도시로 들어서자마자 미다스 시티의 최대명소가 눈에 띈다. 16m 높이의, 이른바 ‘미다스 아니티(Aniti)’다. 아니티란 기념물이란 의미다. 큰 바위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든 조형물이다. 기원전 8세기에서 6세기 어디쯤에 만들어진, 입체 피라미드를 평면으로 집약한 모습이다. 간단한 문양이 입체적으로 새겨져 있고, 고대 문자가 바깥쪽에 각인돼 있다.

놀랍게도, 문양 중에 십자가가 보인다. 예수가 나타나기 700여 년 전 조각물이란 점을 감안하면 기독교와는 무관할 것이다. 그러나 바위 조각을 보면, 원래부터 숭배되던 특별한 사람을 위한 문양이 십자가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다스 아니티는 미다스가 실존인물이란 점을 증명해준 증거이다. 오른쪽 상단에 새겨진 고대 문자가 증거다. ‘아르키아스(Arkias)의 아들 아테스(Ates)가 미다스에게 바치는 기념물’이란 것이 벽에 새겨진 글의 내용이다.

미다스 시티는 황금 손 미다스만이 아닌, 기독교도들의 유물로 채워진 곳이기도 하다. 미다스 아니티 바로 오른쪽에 들어선 동굴 바위, 즉 비잔틴 시대의 수도원이 주인공이다. 수천 년간 거주용 자연동굴로 쓰였지만, 4세기 이후 비잔틴 수도원으로 개조돼 1000년 이상 활용된다. 작은 동굴 안에 들어가 보면 기독교도들의 엄격한 수행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보통사람이라면 단 하루도 견디기 어려운 척박한 공간이다.

미다스 아니티와 수도원을 보면, 마치 극과 극의 전혀 다른 세상이 마주보고 있는 듯하다. 미다스는 욕(欲)의 정점으로서의 아이콘이라 볼 수 있다. 속(俗)의 인간세계에 통하는 현실로서의 황금만능이, 초대형 바위비석에 드리워져 있다. 비잔틴 수도원은 성(聖)의 상징이자, 현실적 안위와 무관한 공간이다. 수도원에서는 미다스의 황금 손이 필요하지도, 의미를 갖지도 못한다. 반대로 미다스의 세계에서는 수도원의 모든 것이 우습고도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서, 극한 생활조차 즐겁게 받아들이는 수도원의 가치와 원칙이 바보스럽게 느껴진다.


▎비잔틴제국 시기에 자연동굴을 개조해 만든 기독교 수도원. 물을 보관하는 작은 저수지만 마련돼 있는 구도자의 공간이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미다스 시티 방문객은 물불 관계의 전혀 다른 세계를 보면서, 중간에 난 길을 통해 안으로 이동해야만 한다. 보통 인간이라면, 욕과 성 어느 하나에만 매달리지 않고, 적당히 나눠진 중간 길을 걸어가게 된다는 의미로 비쳐진다.

위의 바나레와 관련해 주목할 부분은 돈에 대한 집착의 정도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정치와 돈이 등장한다. 인간 역사를 통틀어 돈에 대한 집착은 삼라만상 공통분모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21세기 젊은이에게는 ‘돈=전부’가 아니다. 이성의 진화라 할까, 돈을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걸지는 않는다. ‘자신에게 충실’한 수단으로서의 돈일 뿐이다. 사고 먹고 즐기고 자랑하기 위한 목적으로서의 돈이 아니다. 다이아몬드 반지에다 고급 스포츠카로 무장된 천민자본주의가 아닌, 자신의 관심사와 가치관을 지속시켜 줄 ‘보험’으로서의 돈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반대하겠지만, 인간적 성숙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환영할 만한 문화다. 달리 말해, 바나레의 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을 보는 눈이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이 된다는 생각된다.

명품 가방보다 마스크 한 장이 아쉬운 시대

예수나 부처의 삶에서 보듯, 악으로부터의 유혹이나 시험은 성인(聖人)이 통과해야 할 기본 과제다. 유혹과 시험의 대부분은 인간의 욕에 관한 것이다. 권력·돈·여자·영광 같은 것들이다. 크게 볼 때 바나레 현상은 유혹 시험의 대상인 욕으로부터의 ‘원천적 해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염병의 후유증이자 결실이 될 듯하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바나레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글로벌 차원으로 벌어진 ‘욕의 잔치’가 마침내 바이러스 한방에 정신을 차렸다고나 할까? 명품 가방보다 마스크 하나가 아쉬운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뭔가 달라지고 달라져야만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단 주변부터 꼼꼼히 살펴보자. 바나레 대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모든 것이 그러하듯, 지나칠 때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자랑하고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극단의 한계가 어디인지 잊고 지내기 십상이다. 신문·방송에 실린 기사의 대부분이 극단으로 치닫는 사람들의 얘기로 메워져 있다. 간단히 말해 그런 사람들과 거리를 갖거나, 정반대로 가면 된다. 적어도 극단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다스 얘기는 특별한 인간만을 대상으로 한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황금이 아니라, 크든 작든 그 어떤 영역에서도 모두 미다스가 될 수 있다. 멀리 미다스 시티에 가서 역사적 반면교사를 만나는 것도 좋다. 가깝게는 다양한 바나레를 통해 자신의 위치와 의지를 시험해볼 수도 있다. 바이러스 이후 들이닥칠 변화된 세상을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 자세로 맞이하길 바란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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