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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육즙까지 구현하는 가짜고기 비결은? 

 

‘뿌리혹헤모글로빈’을 식물 음식에 섞어 육류 흉내
실제 고기보다 포화지방·콜레스테롤·열량까지 낮아


▎대체 육류는 육즙과 질감까지 실제 육류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 사진:getty images bank
벌겋게 달궈진 석쇠(grill)에 붉은 고깃덩어리를 올리자 지글지글 익는 소리와 함께 바닥 면이 노릇노릇하게 변하고, 뒤집개로 슬쩍 누르니 고기 사이사이에서 육즙(肉汁)이 흘러나온다. 결코 소고기나 돼지고기가 아니고 식물로 만든 인공 고기(artificial meat)를 굽는 모습이다. 이렇게 대체 육류(代替 肉類)가 다른 짐승고기(육류)처럼 구수하면서 육즙(핏물)까지 흘러나오니 채식주의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대체 육류는 진짜 고기와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실제 육류와 거의 흡사한 맛이 난다. 게다가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은 물론이고, 열량까지도 낮아 햄버거·치킨·만두와 같은 식품에 이미 널리 쓰이고 있다.

흔히 말하는 ‘콩고기’는 대두(大豆)를 갈아서 점성이 있는 글루텐(gluten) 단백질로 고기처럼 굳힌 것이다. 지금까지 가장 잘 알려진 대체육인 콩고기는 노란색 대두의 지방과 단백질 성분에서 고기 맛을 내고, 콩을 오래오래 불려서 곱게 믹서로 갈아서 고기의 부드러운 질감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밀가루에서 추출한, 빵을 쫄깃하게 만들어주는 글루텐 단백질을 섞어 콩고기를 만든다.

대체 육류는 콩고기와 달리 육즙 핏물과 질감까지 쇠고기, 돼지고기에 가깝게 만든 것이다. 대체 육류는 호박·버섯·콩 따위에 들어 있는 식물성 단백질에 코코넛 기름을 섞고, 붉은 비트(beet) 색소를 첨가해 핏물이 밴 육류와 흡사한 식물성 고기가 된다.

곤충 식품이라는 것도 있다. 외국에선 오래전부터 비싼 사료가 많이 드는 쇠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들을 대신 할 수 있는 많은 곤충 식품이 개발됐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메뚜기, 누에와 누에 번데기, 갈색거저리 유충(밀웜, meal worm), 쌍별 귀뚜라미, 흰점박이꽃무지 유충을 식용곤충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곤충으로 수많은 음식을 만들며, 눈에는 좀 거슬리지만, 맛도 영양가도 만점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달콤한 초콜릿 시럽을 입힌 갈색거저리 유충튀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귀뚜라미 쿠키, 메뚜기를 넣은 튀김만두, 밀웜파스타들이 별미라 한다. 그런데 실제로 대체 고기는 육류의 불그레한 육즙(핏물)까지도 흡사할뿐더러 고기 맛도 제대로 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식물성 육즙을 어떻게, 무엇으로 만든단 말인가. 사람들은 콩 뿌리에서 추출한 ‘헴(heme)’ 성분에서 대안(對案)을 찾았다. 또한 채소로 만든 대체 육류에는 달걀·치즈·육포·소시지·콩 음료·우유 대용품·패티(patty)·너깃(nugget)·간편식 만두·김밥 등이 있다 한다.

콩과식물(leguminous plants)의 뿌리에는 동글동글한 뿌리혹(근류,根瘤, root nodule)들이 가득 나 있는데, 이 속에는 콩과식물과 공생하는 세균인 ‘뿌리혹세균(root nodule bacteria, Rhizobium)’이 한가득 밀생(密生)한다. 그런데 뿌리에 달라붙은 뿌리혹을 으깨거나 짜개면 빨간 피가 흐르니 콩(soy)의 ‘뿌리혹헤모글로빈(leg hemoglobin)’이다. 쉽게 말해서 이 뿌리혹헤모글로빈을 식물 음식에 섞어 육류 흉내를 내는 것이다.

뿌리혹헤모글로빈의 산소결합능력, 인간의 10배


▎사진:© gettyimagesbank
헤모글로빈은 적혈구에 들어있고, 글로빈 단백질에 4개의 헴(heme)이 모여 이루어진다. 그리고 1개의 헴에는 철(Fe)이 1개씩 붙고, 한 분자씩의 산소(O2)가 결합하므로, 헤모글로빈 한 분자에는 산소 4분자가 결합한다. 그리고 헴의 철은 산소와 결합해 붉어지니 피가 붉은 까닭이 거기에 있다. 결론적으로 뿌리혹헤모글로빈이 육류의 피 성분과 흡사하므로 고기의 맛과 향은 물론 육즙까지 구현해낸다.

그런데 왜, 어찌하여 식물에 동물의 호흡색소인 헤모글로빈(hemoglobin)과 같은 뿌리혹헤모글로빈이 생겨났을까? 식물이 동물의 호흡색소를 갖는다니 신기하지 않는가? 호흡색소란 산소를 운반하는 단백질 색소로 헤모글로빈, 헤모시아닌들이 있다.

헤모글로빈은 원래 척추동물이 갖는 호흡색소이다. 그런데 헤모시아닌을 갖는 연체동물인 피조개나 환형동물인 실지렁이에서도 헤모글로빈이 생겨나는 수가 있고, 콩과식물의 뿌리혹에도 생긴다. 피조개는 바다 깊은 곳에 살기에 산소결핍이 생기기 쉽고, 실지렁이는 매우 오염된 물에 살아 역시 산소가 부족한 상태이며, 콩과식물의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고정을 하기 위해 무척 많은 산소가 필요하기에 무척추동물과 콩과식물에도 헤모글로빈이 생겨난다.

아무튼 생물들이 산소가 부족하면 산소를 가장 잘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콩과식물이 갖는 뿌리혹헤모글로빈의 산소결합능력(affinity)이 놀랍게도 사람의 헤모글로빈보다 10배나 더 세다고 한다.

질소는 단백질이나 다른 생명 물질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성분으로 공기의 78%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뿌리혹세균은 호기성이라 산소가 필요하고, 뿌리혹박테리아가 공기 중의 유리 질소를 식물이 쓸 수 있는 질산염 물질로 만들 때 산소가 무척 많이 쓰인다. 이 과정에서 동물의 헤모글로빈과 비슷한 ‘뿌리혹헤모글로빈’이 생겨난다.

알다시피 콩과식물의 뿌리혹은 일종의 ‘질소비료 공장’이다. 뿌리혹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암모니아로 만들고, 다시 암모니아를 질산으로 바꾸며, 또다시 질산을 식물에 흡수되는 질소비료인 질산염으로 바꾼다. 이렇게 숙주식물(콩과식물)의 뿌리 비료공장에서 만든, 단백질의 주요 원소인 질소성분을 콩과식물에 직접 공급하고, 대신 숙주식물에서 탄수화물 등의 영양분을 받는다. 그래서 콩과식물과 뿌리혹세균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상리공생(相利共生, mutualism)을 한다. 그런데 근래 콩 뿌리에서 뿌리혹헤모글로빈을 만드는 유전자를 추출하여 맥주효모에 주입해 헴을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한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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