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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연구] 김응용·신치용 넘어선 유재학 ‘장기집권’의 비밀 

“실패 통해 배웠고 어려움 거치며 강해졌다” 

구단과 3년 재계약… 19년간 현대모비스 지휘봉
원칙 강조하되 상황 따라 변화 추구하는 유연함도


▎유재학 감독이 2023년까지 프로농구 현대모비스 지휘봉을 잡게 됐다. 경기 도중 작전을 지시하고 있는 유재학 감독. / 사진:KBL
스포츠계에서 ‘감독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는 말이 있다. 성적 부진으로 몇 년, 아니 몇 개월 만에 감독이 옷을 벗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한 팀을 무려 19년간 이끄는 지도자가 있다. 남자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의 유재학(57) 감독이다.

유 감독은 4월 21일 팀과 3년 재계약했다. 2004년 3월 현대모비스를 처음 맡아 어느덧 16년 2개월째 지휘봉을 잡고 있다. 2023년까지 계약 기간을 채우면 19년 2개월간 한 팀만 이끌게 된다.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를 17년 11개월(1982년 11월~2000년 10월) 동안 지휘한 김응용(79)의 재임 기간보다 길다. 신치용(65, 현 진천선수촌장)은 프로배구만 따지면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0년 5개월간 삼성화재를 이끌었다. 유 감독은 국내 4대 프로스포츠(야구·축구·농구·배구)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한 팀을 이끄는 감독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유 감독은 16시즌 동안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을 각각 6회씩 제패했다. 국내 프로농구 최초로 3시즌 연속 챔프전 우승을 이뤄냈고, 감독 최초 600승도 달성했다. 강산도 두 번 변하는 시간 동안 한 팀을 이끄는 ‘유재학 리더십’의 비밀은 뭘까.

5월 1일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현대모비스 훈련장. 프로농구가 종료된 지 한 달이 넘었다. 코트와 사무실이 모두 깜깜한 가운데, 감독실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유 감독은 돋보기안경을 쓴 채 외국인 선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책상에 미국·스페인·호주 등 각국 리그 선수들 자료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구단 관계자는 “감독님은 매일 출근해 오전 10시~12시, 오후 3시~5시까지 동영상을 본다”며 “‘역시 유재학이구나’란 말이 절로 나온다”고 귀띔했다.

김응용은 해태 감독 시절 ‘국보 투수’ 선동열을 일본 주니치로 떠나보낸 뒤 “우~ 동열이도 없고~”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유 감독도 “나는 ‘동근이도 없고~’라고 해야 하나”라며 웃었다. 지난 17년 동안 6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합작한 가드 양동근(39)이 지난 3월 31일 은퇴했기 때문이다.

양동근은 유 감독의 ‘페르소나(Persona)’다. 봉준호-송강호 관계처럼 감독의 속뜻을 가장 잘 파악하는 단짝 배우 같은 존재다. 유 감독이 양동근 은퇴 기자회견에 참석해 “제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라고 말할 정도다.

휴가 중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감독실


▎해외리그 영상을 통해 선수들의 기량을 분석하고 있는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 / 사진:김성룡 기자
미국 프로농구(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그레그 포포비치(71) 감독과 센터 팀 던컨(44) 관계와 비슷하다. 포포비치 감독과 던컨은 1997년부터 19시즌간 NBA 파이널 5회 우승을 합작했다. 현대모비스는 샌안토니오처럼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 농구’를 추구한다. 양동근은 던컨처럼 솔선수범하며 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샌안토니오는 덩컨과 마노 지노빌리가 은퇴한 뒤 왕조가 흔들리고 있다. 올 시즌이 코로나19 여파로 중단된 가운데 샌안토니오는 서부 콘퍼런스 12위에 그치고 있다. 22년간 이어진 플레이오프 진출이 중단될 위기다.

양동근을 떠나보낸 현대모비스가 내리막길을 걸을 수도 있다. ‘페르소나’와 이별한 유 감독의 소회다.

“2004년 모비스에 처음 부임했을 때 기분이다. 당시 꼴찌팀이었다. 17년이 흘러 팀에 많은 변화가 있다. 동근이가 많은 역할을 해줬는데, 이제 다른 누군가가 해줘야 한다. 아무것도 없이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다.”

유 감독이 매일 동영상을 보는 이유도 ‘양동근의 후계자’를 찾기 위해서다. 유 감독은 “프로 입단 때 동근이는 특급 선수가 아니었다. 2005년 크리스 윌리엄스를 만나 농구에 눈을 떴다”며 “내가 좋은 외국인 선수를 뽑으면, 가드 김국찬(24)·서명진(21)이 양동근처럼 성장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최근 현대모비스는 2016~17시즌 NBA 필라델피아에서 활약한 숀 롱과 계약했다. 유 감독은 “숀 롱은 농구의 길을 아는 선수”라고 표현했다.

유 감독은 지난해 11월 우승 주역이었던 이대성(30)·라건아(31)를 전주 KCC에 주고, 김국찬·김세창(23) 등 4명을 받는 트레이드를 했다. 이미 그때부터 현재보다 미래를 내다봤다. 트레이드 후 김국찬은 무빙 3점슛을 쏘고, 한 경기에서 20점 이상을 올리기도 했다. 김국찬은 ‘포스트 양동근’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유 감독 인터뷰 당일, 오프시즌인데도 김국찬은 홀로 나와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김국찬은 “유 감독님은 매일 훈련장에 나와 영상을 보신다. 벌써 새 시즌 준비를 하고 계신다”며 “좋은 선수를 뽑아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국찬은 또 “유 감독님이 농구를 디테일하게 알려주신다”며 “내가 한 번에 양동근 선배의 자리를 메울 수 없겠지만, 최대한의 노력으로 도전해보겠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타고난 선수’보다 ‘노력하는 선수’에게 점수를 더 준다. 조동현(43)은 모비스 시절 무릎 연골이 닳아 장기간 입원했지만, 퇴원 후 야간훈련을 가장 먼저 나왔다. 조동현은 현재 현대모비스 코치로 유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김응용 전 감독은 프로야구 9회 우승과 함께 ‘해태 왕조’을 이뤄냈다. 신치용 전 감독도 프로배구 V리그 8회 우승을 거두며 ‘삼성화재 왕조’를 세웠다. 두 명장처럼 유 감독도 ‘모비스 왕조’를 이뤄냈다.

유 감독은 김응용 전 감독에 대해 “내가 선수를 시작할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했다”며 “내가 야구는 잘 모르지만, 오랜 기간 좋은 성적을 거둔 대단한 분”이라고 했다. 김응용 전 감독은 스타라도 과감히 제외했다. 유 감독도 “처음 모비스를 맡았을 때 우지원이 간판스타이자 에이스였다”며 “(주전에서 제외해) 그해 식스맨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2014년 유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잠시 팀을 비웠을 때였다. 로드 벤슨이 뒷돈을 요구하며 코치에 대들고 농구공을 발로 찼다. 유 감독은 “그날 벤슨을 팀에서 쫓아냈다”며 “연세대 코치 시절 최희암 감독님으로부터 원칙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고 말했다.

신치용 전 감독 역시 ‘원칙’을 중시했다. 유 감독은 신 전 감독에 대해 “TV 화면으로는 인자해 보이지만 눈매가 매섭다. 마치 연기를 잘하는 탤런트 같다”며 “지도자의 모범으로 꼽히는 그분도 선수단을 타이트하게 운영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팀은 16년째 아침 식사를 함께한다”며 “최소한의 관리 차원이다. 대신 한 번도 2층 선수 방에 올라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유 감독은 훈련 시간만은 선수가 나태해지는 모습을 못 본다. 운동을 하루만 쉬면 체중이 2㎏ 늘어나는 함지훈은 “이 팀 아니었다면 난 벌써 은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감독은 전술적으로는 ‘디테일’을 중시한다. 구본근 현대모비스 사무국장은 “감독님은 상대팀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자세히 분석한다. ‘A선수가 오른쪽으로 자주 도는지’, ‘우리 선수는 어떻게 스텝을 밟아 막을지’ 등을 세세히 지도해주신다”고 전했다.

김응용의 뚝심신치용의 원칙


▎연세대 시절의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 포인트가드로서 경기 운영능력이 탁월했다.
서명진은 신인 시절 플레이 패턴이 많아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유 감독은 “코트 안에서 우리 팀만이 지켜야 할 철칙이 있다”며 “예를 들어 공격 시 포스트에 공이 들어가면, 모두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된다. 머리로 외우는 게 아니라 몸이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격상 어떤 일이든 대충하는 법은 없다. 어떻게 보면 좋은 성격은 아니다”며 “선수들은 내게 잔소리를 많이 들어서 정이 남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유재학 감독 밑에서 농구 제대로 배웠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냉정해 보이지만 은근히 정이 많다. 선수 얼굴에 고민이 묻어나오면 따로 불러 소주잔을 기울인다. 유 감독은 “가족들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선수들의 표정만 봐도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다”며 “동근이와 둘이 소주 한잔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모기업 현대모비스가 신제품을 개발하듯, 유 감독도 시대와 상황에 맞춰 변화를 추구해왔다. 2004년 현대모비스를 처음 맡았을 당시엔 강력한 수비를 강조했다. 재미없는 수비 농구를 막기 위해 규정이 바뀌었다. 그러자 유 감독은 7~8초 내에 빠르게 공격하는 ‘얼리 오펜스’로 변화를 주기도 했다. 유 감독은 “트렌드에 뒤처지면 안 된다. 난 지금도 공부 중”이라고 말했다.

70년대생을 지도했던 유 감독은 요즘 90년대생을 가르친다. “요즘 신입사원이 퇴사할 때 엄마가 와서 대신 사표를 내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 전 만난 여자 프로농구 우리은행 위성우(49) 감독이 ‘전 앞으로 변할 것’이라고 하더라. 젊은 선수들에게 옛날 방식을 강요하면 안 된다. 나도 변하려고 노력 중이다.”

팀이 8위, 9위에 그친 적도 있지만 현대모비스는 유 감독과 늘 재계약했다. 구단 고위 관계자가 감독을 갈아치우는 팀도 있지만, 현대모비스 구단주는 간섭하지 않는다. 유 감독도 구단에 비싼 외국인 선수를 뽑아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구단과 감독이 각자의 선을 넘지 않는다. 유 감독은 “농구에서 3년은 한 팀을 만들기에는 짧은 시간이며 농구는 데이터만으로 되지 않는다”며 “눈앞의 성적만 보고 감독을 바꾸는 팀은 오래 못 간다”고 말했다.

유 감독의 아버지는 교편을 잡았고, 형은 서울대를 나와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유재학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장충체육관에 단체응원을 갔다가 농구에 푹 빠졌다. 아버지와 “반에서 10등 안에 못 들면 그만둔다”는 약속을 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유 감독은 선수 시절 ‘독종’이었다. 농구선수치고는 작은 키(180㎝)를 극복하기 위해 더 노력했다. 경복고 시절 촛불만 켜고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슈팅 연습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실제로는 촛불을 켠 건 아니고, 밤늦게 어두운 데서 홀로 슛 연습을 하곤 했다.

코치 시절 고교감독 가방부터 들었다


유재학은 ‘컴퓨터 가드’ 이상민(48, 서울 삼성 감독)과 스타일이 비슷했다. 포인트 가드로 공격적인 어시스트, 승부처에서 결정구, 끈질긴 수비와 리바운드 참여로 유명했다.

1989년 기아자동차 시절 농구대잔치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하지만 28세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 “27세 때 무릎 통증이 심해 진통제와 주사를 맞고 뛰었다. 시즌이 끝난 뒤 동네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재수술을 받았는데도 계속 아팠다. 일본으로 건너가 3번째 수술을 했다. 통깁스를 한 채 1년간 허송세월했다. 다리에 근육이 다 빠져 거의 뼈만 남는 수준이었다. 재활에 애를 먹었는데 복귀할 때쯤, 연대에서 코치 제의가 왔다.”

그렇게 20대 후반에 지도자 길에 들어섰다. 유 감독은 “선수 시절 좋은 대우를 받았지만, 코치를 맡는 순간부터 싹 잊었다”며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전국을 돌며 고교 팀 감독의 가방을 들어주기도 했다. 식당에 가면 학부모의 신발을 정리했다”고 회상했다.

농구 명문 경복고·연세대 출신이지만 그는 학연·지연을 배제했다. 현대모비스 베스트 5에 연세대 출신은 전준범뿐이다. 경복고 출신은 함지훈·이종현 정도다. 그는 “학연에 얽매이면 농구판에서 오래 일하지 못한다”며 “신인 드래프트에서 미국에서 농구 유학한 이대성을 뽑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1998년 35세 나이에 대우증권에서 최연소 프로 감독의 영예를 안았다. 방민환 대우증권 단장이 파격적으로 발탁했다. 유 감독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고, 지금까지 찾아뵙는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지도자 초창기에는 시련을 겪었다. 1999~2000시즌 신세기 빅스(전자랜드 전신)에서 꼴찌로 주저앉았다. 지도자 생황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었다. 유 감독은 “노래방에서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라는 ‘사노라면’ 가사를 듣고 펑펑 울었다”며 “2003~2004시즌 전자랜드를 4강에 올려놓으면서 외국인 선수를 활용하는 한국 농구 특성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 시절을 거쳐 지금의 명장이 됐다. 유 감독은 “실패를 통해 배웠다. 어려운 시기를 거치며 농구에 대한 열정과 근성이 더 강해졌다”고 했다.

유 감독의 별명은 ‘만수(萬手)’다. 유 감독은 “2010년에 이상범 감독(현 DB 감독)이 붙여줬다”며 “만 가지 수(手)를 지녔다는 뜻도 있지만, 약간 빈틈이 느껴지는 친숙한 별명”이라며 웃었다. 유 감독은 “상대 감독이 새 수를 쓰면 멘붕이 올 수 있지만, 난 임기응변이 좋은 편이다. 비결은 준비”라고 했다. “비시즌 때 선수들에게 공수 패턴을 숙달시키고, 상황에 따라 몇 가지를 뽑아 쓴다.”

유재학의 한 고교 동창은 “똑똑한 재학이는 농구를 안 했다면 사업으로도 큰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래서 ‘만약 사업을 했다면 어땠을까’라고 유 감독에게 물었다. “글쎄요,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성공했든 실패했든 끝까지 매달리긴 매달렸을 거예요.” ‘만수’다운 답변이었다.

- 박린 중앙일보 농구팀장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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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호 (202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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