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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초점] 코로나19 저유가에도 한숨 쉬는 한전 

전기요금 인상 노력, 반짝 흑자에 물거품 위기 

구조조정, 급여 삭감 등 자구노력 없이 경영리스크 국민에 전가 비판
탈원전 정책 밀어붙이는 정부, 불가피한 요금 인상 현실에는 모르쇠


▎2013년 11월 이후 7년 만에 전기요금이 인상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전력이 전기 요금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2013년 이후 7년 만이다.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당초 내걸었던 명분인 누적 적자로 인한 수익성 개선이 국제 유가 하락으로 무색해진 탓이다. 게다가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 동안 인상은 없을 것이라 선을 긋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경제가 침체돼 있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은 물가 상승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어 정부는 더욱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그러나 한전은 이미 지난해 신호탄을 쐈다. ‘전기요금 체계 개편’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요금체계를 올 6월까지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해당 개편안은 오는 6월 말로 예정된 한전 이사회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들어갈 비용 충당을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현행 전기요금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는 상황논리가 작용한다. 문제는 요금을 내야 할 소비자인 국민은 그 논의에서 빠져있다는 점이다. 결국 국민에게 부담으로 돌아가는 전기요금 인상 논의는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한전은 올 1분기 연결기준 4306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2019년 3분기(영업이익 1조2392억원) 이후 2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1분기에 흑자를 낸 것은 2017년(1조4632억원) 이후 3년 만이다.

2018년 2080억원, 2019년 1조2770억원 등 지난 2년 간 영업적자를 기록했던 한전이 흑자로 돌아서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연료비·전력구입비 감소였다. 1분기 연료비는 지난해보다 8813억원 감소했고 전력구입비도 7192억원 줄었다.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사들이는 전력도매가격(SMP)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단가에 따라 결정되는데 통상적으로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LNG 가격이 동반 하락한다. LNG 가격이 내려가면 발전 자회사의 LNG 원료비와 SMP의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구입전력비가 감소해 실적이 개선됐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SMP 가격은 ㎾h당 83.35원으로 지난해 대비 26%가량 줄었다.

영업이익은 흑자로 전환됐지만 수익성이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겨울철 난방수요 감소, 코로나19 여파로 전력판매량은 1.8% 하락했고 전기판매수익은 1000억원 감소했다. 반면 상각·수선비, 온실가스 배출비용 등 전력공급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운영비용은 전년 동기 대비 4000억원이 늘었다.

저유가 덕에 적자의 늪 한 번에 탈출


한전의 판매단가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0~60%에 달한다. 때문에 한전의 실적은 대체로 국제유가 가격에 반비례해서 움직인다. 2008년의 경우 연평균 배럴당 94달러(두바이유 기준)에 달하는 높은 국제유가로 인해 2조789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기도 했고 배럴당 41달러 수준으로 하락한 2016년에는 사상 최대 영업흑자(12조원)를 올리기도 했다. 통상 국제유가가 배럴당 1달러 하락할 때 한전의 연간 영업이익은 약 1000억원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들어 저유가 기조가 계속 이어지리라는 전망은 한전에게는 호재다. 한국은행은 올 6월 5일, ‘저유가 지속가능성 및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 점검’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국제유가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글로벌 경기회복 지연 가능성 ▷산유국 간 이해 상충에 따른 감산 이행 및 합의 연장에 대한 불확실성 ▷재고 누적 등의 이유를 들며 “대부분의 주요기관은 2020년과 2021년 중반까지 국제유가가 배럴당 30~40달러 대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하는 등 당분간 저유가 기조가 지속될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도 최근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 무디스는 “코로나19 충격으로 전 세계 석유 수요 감소 현상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며 “국제 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가 올해 평균 배럴당 35달러, 내년엔 45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내다봤다.

사상 초유의 저유가 환경으로 대규모 연료비 절감이 예상되는 가운데 한전의 올해 실적도 3년 만의 흑자전환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앞서 연초 60달러 선을 웃돌던 국제유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3월부터 급락했다. 올 4월 20일에는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5월 인도분이 배럴당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하며, 사상 첫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제 유가는 3~4개월 시차를 두고 전력 발전단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흑자 폭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나금융투자는 한전의 올해 매출을 58조1905억원, 영업이익 3조2947억원을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2년 연속 적자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기회가 찾아왔지만 한전의 속내는 복잡하다. 한전은 그간 대규모 적자를 내세워 경영실적 개선 차원의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2018년 7월, 자신의 SNS에 ‘두부공장의 걱정거리’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두부값이 콩값보다 싸다”고 말한 바 있다. 콩은 두부의 원료로 액화천연가스(LNG)와 석탄 등 수입한 연료를 빗댄 표현이다. 이렇게 만든 전기가 두부다. 김 사장은 “수입 콩값이 올라갈 때도 그만큼 두부값을 올리지 않았다. 그랬더니 이제는 두부값이 콩값보다 더 싸지게 됐다”며 원료비는 올라가는데, 요금은 올리지 못하는 현행 구조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전기요금을 제때 안 내면 이자까지 더해 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원가 이하 전기요금으로 한국전력의 부채가 쌓이면 훗날 국민 부담으로 돌아간다”고 요금 인상에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부턴 인상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2019년 7월 공시를 통해 전기요금체계 개편안을 2019년 11월 말까지 마련하고 올 상반기에 정부 인가를 얻겠다고 밝힌 것. 전기요금 개편안은 한전 이사회 의결을 거쳐 산업부에 제출된다. 산업부는 이를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한 뒤 산업부 아래 전기심의 위원회의 심의를 받아 인가를 내준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이사회에서 개편안은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고 논의만 이뤄졌다. 속도 조절에 나선 셈이다.

그 배경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 올 4월 21대 총선을 앞둔 전기요금 개편 논의 자체가 한전이나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에너지위원회, 녹색위원회, 공공기관 경영평가단,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조성경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현실적으로 전기요금은 정부가 규제하고 있으며, 정부의 규제는 정치적 결정에 예속된 경향이 강하다”며 “2000년부터 2020년 6월 현재까지 총 17차례의 전기요금 조정이 한결같이 선거가 없거나 선거 이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한전의 정치적 종속성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때다 싶어 올리려다 실적 반등에 머쓱


▎지난해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김종갑 한전 사장이 생각에 잠겨 있다. / 사진:뉴시스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요금 인상을 위해 한전이 총선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21대 총선이 끝나면 2022년 3월 대선까지 전국 단위 선거가 없다.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을 덜 수 있는 시기다. 한전도 이미 지난해 개편안 마련 계획을 발표하고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인상을 요구할 명분을 축적해 왔다.

그러나 올 1분기 실적이 흑자로 반등하면서 스텝이 꼬여버렸다. 더구나 기상청은 올여름 폭염과 열대야 횟수가 크게 늘어나는 ‘역대급 무더위’를 예고하고 있다. 전력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기 요금 인상안’을 꺼내 들 경우 여론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정부 특히 청와대는 전기요금에 각별히 신경 써왔다. 2년 전 여름,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한시적 주택용 누진세 완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해 시행된 바 있다. 올 3월에도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4대 사회보험과 전기료 면제 또는 유예 방안 등 특단의 조치를 주문했다. 결국 한전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대구 및 경북 3개 지역(경산·봉화·청도) 소상공인의 6개월분 전기요금 감면과 전국 소상공인, 취약계층 가구를 대상으로 올해 4~6월 3개월 분의 전기요금 납부기한 유예를 결정하기도 했다.

당초 업계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 2017년 10월, 백운규 문재인 정부 초대 산업부 장관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2022년까지는 수요, 공급 고려했을 때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그해 출범한 새 정부의 스탠스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성윤모 현 산업부 장관도 비슷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성 장관은 지난해 국감에서 “한전의 적자를 직접적인 이유로 전력요금 인상을 고려하진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한전이 마지막으로 전기요금을 올린 건 2013년 11월이다. 당시 고유가가 지속되자 주택용은 2.7%, 산업용은 6.4%를 인상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다소 기류가 바뀌는 듯한 분위기다. 올 초, 성 장관은 “제8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효과는 거의 적고, 특히 2022년, 문재인 정부 5개년도 내에서는 인상 요인이 거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제 임기 내에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말씀드린 적은 없다”고 말한 것. 올 5월에는 “필요하다면 전력요금 체계 합리화를 검토할 수 있다”고 한 발 더 나아간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전 내부의 사정이 요금 인상이 절박한 쪽으로 흐른다는 인상을 짙게 풍긴다.

한전은 오는 6월 26일 이사회를 개최한다. 한전 관계자는 “6월 말 정기 이사회에서 전기요금체계 개편안이 안건으로 상정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산업부와 현재 계속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경영연구원은 한전을 측면 지원사격하는 모습이다. 올 6월 4일, 한전경영연구원은 ‘효과적인 에너지효율개선을 위한 가격시그널 정상화 필요성 연구’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해당 보고서는 전기 요금을 인상할 경우 전력 소비 억제를 유도해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그 효과가 에너지 고효율 냉방기기(에어컨) 보급 확대보다 더 크다는 설명도 붙였다. 그러면서 “현 요금 수준에서는 자발적인 효율 개선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고, 요금 정상화와 보조금 지원 등 효율 향상을 위한 최적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적정 원가를 반영한 합리적 요금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기요금 ‘정상화’가 실현되지 않으면 에너지효율 개선이라는 정책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기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전, 자구 노력 없이 인상에만 기대


한전은 개편안이 요금 인상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한전 관계자는 “요금 인상이라기보다는 김종갑 사장이 얘기해 온 예측 가능한 합리적인 전기요금 체계를 마련 중”이라고 강조한다. 김 사장은 줄곧 “소비자 부담을 늘리지 않는 범위, 한전의 수익 중립적인 선에서 전기요금 체계 왜곡을 시정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밝혀왔다.

준비 중인 개편안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유가 하락이 한전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측면은 분명 존재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요금 체계의 불합리한 부분을 고쳐나가는 것이”이라며 “체계 개편을 통해 재원을 확보해 다른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 더 낫지 않으냐고 판단한다”고 말한다.

한전이 내부적인 비용 절감이나 조직 혁신 없이 손쉬운 전기요금 인상에 기댄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조성경 교수는 “한전 스스로가 정부 의존적 나아가 정치 종속적인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핍돼 있다”고 꼬집는다. “한전은 적자가 발생해도 구조조정에 들어가거나 월급이 줄어드는 일은 발생한 적이 없다. 재무구조가 나빠지면 신용등급이 내려가고, 대출금에 대해 높은 이자를 지불해야 할 뿐이다. 그 부담은 언젠가는 전기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정부의 입장 변화가 감지되고는 있지만, 전기요금 인상은 정부에게 부담스러운 결정이다. 단적인 장면이 올 5월 열린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자문위원회인 총괄분과위원회 논의결과다. 위원회는 제8차 계획에서 석탄발전 10기를 폐지하기로 확정한 데 더해 이번에 2030년까지 석탄 14기를 추가로 줄이기로 했다. 이 중 24기는 LNG 발전기로 전환한다는 잠정적인 계획도 밝혔다. 원전 역시 2024년 26기로 정점을 찍은 후 점차 줄어 2034년에는 17기로 감소한다. 반면 신재생에너지는 2034년까지 62.3GW의 신규 설비를 확충한다.

정치적 부담·탈원전 논란에 일언반구 없는 세금 얘기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올 5월 “전기 요금 체계 합리화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전력생산의 70%를 차지해 온 원자력과 석탄을 줄이면서 신재생과 LNG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라며 “오로지 에너지 전원만 바꾸는 것만 계획에 포함시키고 전기요금에 대해선 정치적 부담 때문에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고 꼬집는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전기요금 인상 논란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한다. 제8차 전력수급계획 당시 산업부는 태양광 발전비용은 감소할 것이고 가스 가격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2030년까지 전기요금 인상 폭을 최대 10% 수준으로 전망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전망을 놓고 여러 곳으로부터 뭇매를 받았다. 태양광과 가스 발전 비용이 급등할 수도 있다는 점을 배제한 채 인상폭을 너무 낙관적으로 잡았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정동욱 교수도 “지난 달 제9차 전력수급계획의 경우 중요한 (비용 인상) 가능성에 기초한 설명이 아예 누락돼 있다”며 “어떠한 가정에 기초하든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면서 국민이 지는 부담을 정확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은 책임회피”라고 지적한다.

전력거래소에서 발표한 2019년도 발전원별 평균 정산 단가에 따르면 원자력은 ㎾h당 58.3원, 석탄 86원, LNG 118.7원, 태양열 93.8원, 풍력 103.4원 등이다. 정 교수는 “LNG와 신재생에너지의 미래 가격을 (정부의 시각대로) 낙관적으로 바라봐도 전기요금 인상 압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본다.

업계에서는 요금 인상과 함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방안이 ‘연료비 연동제’다. 연료비용을 요금에 연동하는 제도로 석유나 가스가 연동제를 시행하고 있다. 현행 전기요금 체계는 연료비 등락과 관계없이 사용량에 따라 일정한 금액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유가가 올랐을 때는 시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저유가 기조가 예상되는 지금 연료비 연동제를 서둘러 도입해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력구입비 연동제도 또 다른 방안이다. 연료비나 전원 믹스 변화, 발전기술의 진보 등으로 전력구입비가 변동하면 전기요금도 그에 맞춰 올리거나 내리는 요금체계를 의미한다.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오르면 전기요금을 올리고, 재생에너지 기술 향상으로 발전단가가 하락하면 전기요금을 내리는 것이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다른 에너지 시장과 달리 전력만 고정요금을 고집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연료비가 오를 때는 이를 반영하려는 의지가 크고 내리면 그만큼 반영하지 않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감독과 감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정동욱 교수는 “전력구입비 연동제를 도입하면 한전으로서는 경영 리스크가 사라지는 것인데, 사실 그 리스크를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라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한전이 2015년, 2016년 각각 11조, 12조원 흑자를 기록할 때 전기요금 인하를 해줬는가. 누진제만 찔끔 완화해준 것밖에 없다. 차라리 유가안정기금처럼 흑자를 기록할 때 일부를 전기요금 안정기금을 조성해 적자가 생기면 보전하는 것이 낫다.”

“국민 공감대 없이는 갈등만 촉발돼”

손양훈 교수는 연동제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연료비 연동제를 허용할 경우 독점 회사의 실무진들은 값싼 연료를 찾는 노력 대신 불순물이 적고 사고 위험은 적지만 가격은 비싼 연료를 도입하는, ‘고비용 고안전’ 연료만 선호하게 만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력구입비 연동제에 대해서는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6개 발전 자회사 등으로부터 한전의 전력 구매 비중이 80%가 넘는 상황에서 자회사가 전력구입비를 올려도 막을 길이 없다”고 꼬집는다. 담합이나 내부 거래를 용인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한전이 전력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동제를 시행할 경우 국민은 시장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고 우려한다.

연동제 도입 주장에 대해 한전 측은 요금 체계 개편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연동제 도입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 “석유, 가스가 연동제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체계 개편 이후 국민적 고려와 정부와의 합의가 이뤄진다면 검토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보였다.

전기요금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은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해서는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윤순진 교수는 현 전력요금에는 전력 생산과 송배전이 야기하는 사회환경 비용이 충분히 반영돼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는 “한전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서라기보다 현재 전력 생산에 주요 비중을 차지하는 석탄 화력과 원자력 등이 야기하는 사회환경 비용을 세금 형태로 반영하는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걷힌 재원을 전력 생산과 송배전이 야기하는 사회환경문제 해결과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 개선에 쓰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최저 비용 발전원인 원자력을 줄이고 비싼 LNG와 신재생을 늘리면 한전의 이익구조는 당연히 나빠진다”면서 “올해 LNG 가격이 떨어진 것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장기적으로 그렇게 유지될 수 있다고 보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부 에너지 정책이 한전 주주들에게 부당한 손해를 끼치면 안 된다. 에너지 전환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려면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을 추진하고 국민에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현재의 사태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있다. 손양훈 교수는 전기라는 비즈니스에 환경 문제와 정치적 이념이 뒤엉키면서 전기요금을 정부가 정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 게 문제라는 입장이다. 손 교수는 “그래서 전기요금 인상이라고 표현을 못 하고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조성경 교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궁여지책으로 여론이 반발할 수 있는 주택용 요금은 놔두고 산업용 요금만 올린다 해도 결국 그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결국 어느 쪽을 올려도 결국 국민이 지불하는 부담은 증가한다. 이런 점을 정부가 국민에게 솔직하게 설명하라는 것이다. 조 교수는 “전기요금 체계 개편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라며 “국민과 공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없이 전기요금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 본질을 벗어난 갈등만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2007호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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