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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골프 라운지] 프로 골퍼 ‘보미짱’의 ‘스마일 어게인' 

새 신부 이보미의 ‘화려한 외출’ 

김태희의 동생이자 배우인 이완과 프로골퍼의 결혼은 세간의 화제로
158㎝ 단신이지만 최고의 골퍼로… “키가 작아서 더 정교하게 칠 수 있었다”

한 남자의 여인이 된 ‘보미짱’ 이보미가 돌아왔다. 생글생글 잘 웃고, 늘 긍정적인 ‘스마일 캔디’가 화사한 옷을 입고 더 활짝 웃었다. “결혼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이보미는 “다른 친구들도 빨리 결혼하면 좋겠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이보미 골퍼는 가족들의 헌신적인 지원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새 색시. 새 신부. 요즘 이보미가 가장 자주 듣는 단어다. 지난해 12월 28일 서울의 한 성당에서 배우 이완(본명 김형수)과 결혼한 뒤로 ‘스마일 캔디’는 웃는 날이 더 많아졌다. 한때 바쁜 선수 생활 탓에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던 이보미는 운명처럼 이완을 만났고, 2년여 열애 끝에 평생을 함께할 부부가 됐다. 톱스타 김태희의 동생으로 더 잘 알려진 이완과 톱클래스 여자 골퍼 이보미의 결혼은 그 자체만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결혼 후 더 환해진 이보미를 [JTBC골프매거진]이 만났다. 골프 웨어가 아닌 화사한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에 어색해하는 듯하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환하게 웃었고 포즈에선 자신감이 묻어 났다. 예정보다 길어진 화보 촬영에도 그는 힘든 기색 한 번 보이지 않았다. 이보미는 “골프 웨어를 안 입어서 색달랐다. 골프 선수다 보니 골프 웨어를 입는 시간이 더 많은데, 30대 되고 나선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어서 일상생활에선 무채색으로 좀 더 스타일 좋게 입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촬영 내내 화려한 컬러의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쿠바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그는 평소 네일 아트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큰 언니나 막냇동생이 네일 아트를 해줘요. 자주 하는 편이죠. 손톱에 없는 것보다 뭔가 꾸며놓은 게 예쁘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새로 했는데, 봄에 맞게 파스텔컬러로 해봤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이보미는 주무대인 일본 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 나설 수 없게 됐다. 대신 최근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챔피언십에 나섰던 그는 늘 그래왔듯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래도 결혼한 지 6개월도 안 된 새댁답게 신혼의 꿈에 젖어 있다. 최근엔 고추장 삼겹살, 닭볶음탕을 인터넷 영상 레시피를 보면서 직접 만들어 남편과 함께 먹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맛있었어요. 오빠가 그걸 맛있게 먹어줘요. 다 비우죠. 제가 ‘맛없는 것 같으면 안 먹어도 돼’라고 해도 끝까지 다 먹어요.”

일상이 행복해진 이보미에게 결혼은 인생의 터닝포인트나 다름없어 보였다.

“오빠하고 결혼한 거요? 정말 좋아요. 모든 게 다 좋아졌어요. 100점 만점에 100점인데, 아, 100점 그 이상 줄 순 없나요? 하하.”

이보미는 최근 2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2015·16년에 2년 연속 JLPGA 투어 상금왕에 오르는 등 최고의 성과를 냈지만 2018년 초 뜻하지 않게 손가락 부상을 당한 뒤로 슬럼프를 겪었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심적인 고통도 컸다. 그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 너무 안 되다 보니까 날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 이완과 교제를 시작하면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는 “시합장에서 ‘어떻게 경기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내내 할 때였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봐도 잘 안 됐던 게 처음이었다. 신인 때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우승보다 예선 통과, 시드 유지가 힘들어진 상황이 되니까 더 힘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항상 불평, 불만에 더 이상 못하겠단 생각도 했다. 그럴 때마다 오빠가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욕심부리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하면서 위로해줬다. 매 순간 힘들 때마다 해준 오빠의 많은 이야기들 덕에 지금까지 왔다”고 덧붙였다.

가장 힘든 시간을 함께해 준 고마운 남편


▎지난 5월 경기도 사우스스프링스CC에서 열린 제8회 E1 채리티 오픈 1라운드 10번홀에서 이보미가 아이언샷을 하고 있다. / 사진:KLPGA
성당 신부님의 소개로 만났고 골프 덕에 금세 가까워진 둘은 티격태격 한 번 싸우지 않았다고 한다. 이보미는 “오빠의 가장 큰 장점은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대화로 유도하면서 기분을 풀어주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린 연애 때부터 티격태격한 적이 없었다. 오빠가 TV에서 봤을 땐 시크하고 그저 잘생긴 남자 배우란 생각이었는데 만나면서 정말 착하고 예의 바른 모습에 배울 점도 많았다. 내 성격에서 부족한 점을 오빠의 장점으로 채울 수 있었다.”

이보미와 교제할 때부터 이완은 로드 매니저를 자처하면서 이동할 때 운전하고, 연습할 때나 경기할 때 응원하는 역할을 했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특성을 살려 이보미에게 실질적인 조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보미는 “힘들면 음식을 따로 안 챙겨 먹으려고 하는데, 그런 것을 보면 오빠가 안 좋다고 얘기해준다. 운동 때문에 먹어야 한단 스트레스가 있을 때, 오빠는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면서 달랜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물론 이보미는 이완의 ‘최고의 골프 코치’이기도 하다. “처음 만났을 땐 80대 초중반이었는데 결혼하고 나서 골프에 더 집중하니까 최근엔 2오버파 베스트 스코어를 내더라고요. 오빠가 워낙 신중해서 퍼트를 잘해요. 제가 레슨을 잘해야 하는데 늘 받는 입장만 되다 보니 도움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제 한 마디 한 마디를 오빠가 잘 흡수해서 실력이 확 늘어난 것 같아요. 더 잘해서 고수의 기운을 뿜어냈으면 좋겠어요. 선수로 있을 때 이렇게 하니까 재미있기도 하고요.”

미시령 고개를 뛰어오르다

이보미는 일본 무대에서 뛴 한국 여자 골퍼 가운데 가장 성공한 골퍼로 꼽을 만하다. 2010년 KLPGA 투어 상금왕(5억5737만6856원)을 달성하고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9년간 JLPGA 투어에서만 통산 21승, 누적 상금 8억4262만2290엔(약 95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2015시즌엔 7승을 거둬 JLPGA 투어 최초로 한 시즌 상금 2억 엔(23억5000만원)을 돌파했다. 전성기 땐 후원사만 무려 17개나 됐을 만큼 일본에 ‘골프 한류’ 붐을 일으켰다.

이보미의 표정은 늘 밝다. 밝은 미소는 밝은 생각에서 나온다. 작은 키(158㎝)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껴본 적이 없냐는 질문에도 그는 “키가 작아서 더 정교하게 칠 수 있었다. 콤플렉스라고 안 느껴봤다”고 말했다. 그런 이보미를 많은 사람이 사랑하고, 응원하는 비결이 뭔지 물어봤다.

“잘 웃어서 그런 것 같아요. 크게 화내지 않으니까, 뭐든지 배려하려고 하고, 같이 있으면 상대가 즐거웠으면 좋겠단 생각이니까요. 아빠가 친구처럼 장난도 많으셨고, 잘 웃겨주셨던 게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영향’을 이야기할 만큼 이보미에게 6년 전 작고한 아버지 그리고 가족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강원도 인제 출신인 이보미는 딸 넷인 딸 부잣집 둘째로 부모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자란 시골 소녀였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골프 클럽을 잡았다. 골프를 시작한 사연이 재미있다. 친구 따라 몰래 태권도장을 한 달 정도 다니다가 부모님에게 들통 난 뒤로 골프를 권유받았다. 그 뒤로 인생이 바뀌었다.

“엄마가 태권도 하면 코피 날까봐 걱정이 된다면서 정말 운동을 하고 싶으면 다른 친구처럼 골프를 배워보면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때마침 그때 박세리 프로님이 US여자오픈 우승해서 TV에 골프 얘기가 많이 나올 때였거든요. 그러면서 골프가 운명처럼 찾아왔죠.”

어렸을 때부터 작은 체구였지만 골프를 잘하기 위해 이보미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수천 개의 스윙을 했고, 때론 차 없이 미시령 고개를 뛰어오르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엔 아버지 이석주씨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딸이 중·고교에 본격적으로 골프를 할 때 아버지는 매일 집과 연습장을 오가는 로드 매니저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강원 양구 원통에서 살면서 미시령을 넘어 속초 연습장에서 훈련하는 험난한 길을 넘고 또 넘었다. 아버지는 딸의 체력 단련에 대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이보미는 “나에 대한 투자가 대단했다”며 다음과 같이 돌이켰다.

“큰 송이버섯, 인삼을 구해 오셔서 혼자 먹으라고 주셨던 적도 있었다. 고교 때 성적이 안 나와 그만둬야겠다 생각했을 땐 ‘훈련한 게 너무 아깝지 않냐’면서 헬스장에 보내 무거운 것을 들게 시키셨다. 골프를 잘하기 위해서 많은 연습을 했는데 그때 다졌던 기초가 지금까지 온 동력이 됐다.”

이보미는 아마추어부터 각종 대회를 휩쓸었고,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쳐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이어 2008·09년에 2년간 2부 투어를 거쳐 2010년부터 ‘프로골퍼 이보미’를 세상에 제대로 알렸다.

일본 무대에서 서서히 진가를 드러내던 2014년 9월 이보미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해 봄부터 담낭암으로 투병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당시 JLPGA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를 마치고 급거 귀국했던 이보미는 한동안 큰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꼭 상금왕을 차지하라’는 아버지의 유지를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었고, 이듬해 JLPGA 투어 7승 등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아빠, 엄마가 늘 겸손해야 한다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했어요. 힘들 때 좋게 생각하려고 하고, 나쁜 숲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게 아빠, 엄마 덕분이에요. 아빠의 헌신은 정말 대단했죠. 동생들한테는 미안해요. 부모님 손길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저에게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한창 떨어져서 지내다가 요즘엔 모두 가까이 붙어서 지내고 있는데, 예전 생각을 하면서 가족들을 조금 더 아끼는 마음을 가지려 하고 있어요.”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들은 경기 수원 광교에서 스크린골프, 미용실, 카페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보미는 쉴 때마다 틈틈이 가서 일손을 보탠다.

일본 여자 골퍼 인기투표 1위


▎이보미 골퍼는 신지애·최나연·박인비·김하늘·이정은과 같은 1988년생이다.
최근 두 시즌 동안 우승이 없었지만 이보미는 여전히 일본 내에서 인기를 한 몸에 받는 골퍼다. 한동안 일본 각종 골프 매체에서 진행한 여자 골퍼 인기투표에선 이보미가 1위를 도맡았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일본 매체에서 연이어 다뤄졌고, 2015년엔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 말려’에 이보미를 모티프로 한 캐릭터가 선보여져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말 이보미의 결혼 소식을 전한 일본 매체 기사에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을 만큼 이보미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보미는 “짱구는 못 말려에 내 캐릭터가 나왔던 게 솔직히 가장 신기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스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대회에 나갈 때마다 대회를 여는 후원사 회장님들이 ‘이번 대회 우승해 달라’는 말에 힘을 얻었다. 아무래도 외국 선수로 활동하니까 처음엔 눈치도 보이고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우승하면 좋겠다’는 말에 큰 힘을 얻은 적이 많았다.”

일본 투어가 이보미와 잘 맞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처음 갔을 때부터 연습 환경이 좋았다. 골프장 안에 일반 연습장, 잔디 연습장, 퍼팅장이 다 따로 있었다. 언어적인 문제만 넘는다면 골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워낙 좋았고 잘 맞겠다 생각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일본 무대에 진출할 당시 이보미는 미국 진출도 한 켠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일본 투어 상금왕을 하면서 LPGA 투어 메이저 대회에 출전권을 얻었어요. 그런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시차 적응을 못 해서 예민해지고, 어려운 코스만 경험하니까 겁부터 나더라고요. 미국에서 활약하는 선배 언니들이나 동생들도 다 힘들다고 했던 것 같아요. 좀 더 즐길 때 미국에 갔으면 좀 더 나았을지 모르는데 일본 무대에서 그새 적응했고, 계속 남게 됐네요.”

프로 골퍼 생활을 하면서 오랫동안 함께한 친구들과 동생이 함께 하는 모임은 이보미에겐 소중한 자산이다. 신지애·최나연·박인비·김하늘·이정은 등 1988년생 6명에 1990년생 유소연이 계원인 ‘V157’이 그렇다. 157은 처음 모임을 만들었을 당시 7명의 우승 횟수가 157승이어서 붙은 숫자다. 이들은 이보미의 결혼을 앞둔 지난해 말 시즌을 마친 뒤 베트남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 ‘브라이덜 샤워’(여자 친구들이 결혼 직전의 여성을 위한 축하 파티)를 하기도 했다. 이보미는 “다들 박세리 프로님을 보고 골퍼로서의 꿈을 키운 공통점이 있다. 서로 자부심들이 뿜뿜하다”고 웃어 보였다. “베트남에 가서 몰래 브라이덜 샤워를 해주는데 정말 고마웠다. 필드에선 서로 경쟁만 하는 사이였고 깊은 대회를 못 나눴는데, 모임을 만든 뒤론 서로 골프에 대해서 많이 얘기하고 나아가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 서로 도움을 주고, 위로도 해주는 든든한 존재다.” 그는 “나와 인비 말고는 다른 아이들이 아직 결혼을 못 했다. 좋은 신붓감이 많다. 빨리 결혼하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일본 투어가 중단된 사이 국내에서 샷을 가다듬던 이보미는 지난달 초에 운전면허증을 땄다. 그동안 도움만 받던 그는 “오빠(남편)가 일이 시작되면 전적으로 오빠한테 맡길 수 없다 보니까 그런 시간에 잠깐이라도 운전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결혼 전엔 서울에서 수원까지 엄마가 주로 데려다주셨는데 이젠 혼자서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20대에 비해 30대에 좀 더 성숙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새댁’ 이보미는 “엄마의 아이에서 이젠 한 남자의 아내로서 어른답고 성숙해진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맞는 2020 시즌이 남다를 법 했다. 지난해 말 슬럼프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경기력을 보여줬던 이보미는 “올 시즌엔 꼭 한번, 어떤 대회든 1승을 꼭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고진영, 박현경 등의 스윙 코치로 지난해부터 이보미와 함께한 이시우 빅피쉬골프아카데미 원장의 도움도 큰 힘이 됐다. 이보미는 “고생하고 힘들 때 후배를 통해 이시우 프로를 만났다. 내 고충을 온몸으로 이해해주면서 가르쳐줬고, 스윙도 편해졌다. 안 됐을 때 만난 만큼 올해 프로님에게 우승으로 보답하면 최고의 시즌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기부도 많이 해서 남을 돕는 선수 되겠다”

결혼 후 좀 더 ‘즐기는 골퍼’가 되고 싶다는 이보미.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할지, 2세 계획은 어떨지도 궁금했다. “그동안 언제까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지금은 바뀌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굳이 제한을 두지 말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후회될 행동을 한 적은 없었지만 앞으로도 후회되는 상황을 남기고 싶지 않다. 끝날 때 ‘선수 생활 참 잘했다’는 생각으로 마침표를 찍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싶다. 기왕이면 오빠 닮은 아기를 낳고 싶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이보미는 자신의 별명인 ‘스마일 캔디’를 마음에 들어한다. 역경을 헤쳐 나가는 만화 캐릭터 캔디처럼 이보미는 신체적 콤플렉스와 험난한 환경을 이겨내고 최고의 골퍼로 거듭났다. 그동안 경쟁에만 매몰돼왔던 ‘스마일 캔디’는 별명을 들을 때마다 더 환하게 웃는다고 했다. ‘밝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그다. “지금도 제가 너무 포장이 잘 돼 있는 사람 같아요. 많은 사람이 사랑해주시고 좋아해 주셔서 감사해요. 긍정적인 에너지 안에서 강한 선수로도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기부도 많이 해서 많은 분을 돕는 사람도 되고 싶어요.” 결혼 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티잉 그라운드에 설 그의 ‘스마일 어게인’을 주목한다.

- 글 김지한·이윤희 JTBC골프매거진 기자 / 사진 신중혁 JTBC골프매거진 실장

※ 이 기사는 월간중앙과 JTBC골프 매거진에 모두 공급합니다.

202007호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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