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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복거일 소설 ‘이승만’ | 물로 씌여진 이름(제1부 광복) 

제18장 레이티(Leyte) (2) 

1944년 9월 필리핀 펠렐리우 섬을 점령한 미군은 일본 본토로 향하는 해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10월 레이티 섬 총공세에 나선다. 일본군은 해군 전력을 총동원해 미군을 저지하기 위한 총력방어전에 나섰다. 1944년 레이티 앞바다는 2차 세계대전 기간 바다를 호령한 미·일 해군의 주력 전함들이 맞부딪힌 결전의 장이었다.
모로타이와 울리티에 전진 기지를 마련하자, 미군은 드디어 ‘필리핀 전역(Philippines Campaign)’에 들어갔다. 필리핀은 태평양 전쟁에서 전략적 요충지였다. 일본 본토와 일본이 점령한 동남아시아를 -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 말레이 및 버마를 - 연결하는 항로의 길목에 자리 잡은 필리핀을 미군이 점령하면, 동남아시아의 일본군은 고립되고 일본 본토는 동남아시아의 군수 자원들을, 특히 석유와 고무를, 공급받지 못할 터였다. 아울러, 필리핀은 일본 본토 침공 작전에서 긴요한 기지가 될 터였다.



동남쪽 뉴기니에서 진격해온 터라, 미군은 필리핀의 가장 남쪽에 있는 거대한 섬인 민다나오를 자연스럽게 첫 공격 목표로 삼았다. 민다나오를 평정하면, 바로 필리핀의 중심인 루존 섬을 공격할 셈이었다. 그러나 모로타이와 펠렐리우 점령 작전을 위해 필리핀 지역의 일본군 비행장들을 함재기들로 공격한 미군 3함대 사령관 윌리엄 홀지(William F. Halsey) 대장은 곧바로 레이티 섬을 점령하는 작전을 추천했다. 일본군 항공기들을 600대 넘게 파괴해서 미군이 제공권을 확보했으니, 민다나오를 고립시키고 루존 바로 아래에 있는 레이티를 침공하는 것이 미군의 작전 개념에 부합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예정보다 2개월 앞당긴 1944년 10월 하순에 레이티 침공 작전이 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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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호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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