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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18) 골프맘 된 ‘수퍼 땅콩’ 김미현 

“단점 고치려 애쓰지 말고 장점을 더 키워나가세요” 

사진 김경빈 선임기자 kgboy@joongang.co.kr
불리한 체격조건 딛고 LPGA 신인왕, 통산 8승 거둔 ‘작은 거인’
골퍼 지망생 아들 키우는 재미 푹 빠져 “계속 아줌마로 살래요”


▎김미현 프로가 인천 김미현골프월드의 퍼팅 연습장에서 편안하게 포즈를 취했다. 그는 “평범한 아줌마로 사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수퍼 땅콩’ ‘작은 거인’이라 불리며 여자 골프에 큰 획을 그었던 김미현(43) 프로를 만났다. 그의 키는 들쭉날쭉이다. 152㎝라고 쓴 곳도 있고, 155㎝, 심지어 157㎝라고 소개한 곳도 있다. 어쨌든 그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작고 왜소했다. 저 체격으로 어떻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신인왕을 하고 통산 8승을 했나 싶었다.

그를 만난 곳은 인천 논현동에 있는 김미현골프월드였다. 10년 전에 지은 대규모 골프연습장이다. 타석이 190개, 거리는 220m나 된다. 퍼팅 연습장, 벙커샷 연습장도 따로 있다. 레슨 프로들이 꿈나무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주로 아마추어 골퍼들이 연습을 하고 레슨도 받는다.

내가 찾아갔을 때 김 프로는 아들 예성(11) 군과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유도 스타 이원희와 이혼한 뒤 그는 외아들을 키우는 데 삶의 모든 것을 건 것처럼 보인다. 김 프로는 골퍼 지망생인 예성이와 하루 종일 함께 연습하고, 밥 먹고, 시간을 보낸다. 인터뷰 중간에 예성이가 쑥 들어와 “엄마, 숏 게임장 갔다 와도 돼?” 하고 물었다. 김 프로는 “그래, 장난치지 말고”라며 만면에 ‘엄마 미소’를 지었다.

못 쳤다고 짜증 내면 눈물 쏙 빠질 만큼 혼내


▎1. 2007년 5월 LPGA 셈그룹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를 든 김미현. / 2. 1995년 7월 퍼시스배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앳된 모습의 김미현.
예성이가 골프에 꽤 소질이 있다고 하던데요.

“조그만 채를 갖고 재미로 한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골프를 한 건 지난겨울 미국 데려가서 시작한 겁니다. 미국서 돌아오자마자 코로나19 때문에 한 달 반을 쉬었죠. 사촌 형들이 하니까 자기도 선수를 하겠다고 그러는데 저는 ‘선수는 즐겁기만 한 건 아니다. 엄청나게 힘들고, 힘들어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저 자신도 집에 못 들어가고 계속 짐 싸고 왔다갔다 했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싶은데, 쟤가 하면 내가 또 그 생활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웬만하면 하지 말자, 심지어 남의 들러리 하러 다닐 거면 굳이 그 고생할 이유가 없다고 하지요. 그래도 하고 싶다고 하니 지켜만 보고 있어요.”

예성이가 운동신경이 남다르지요?

“유전자는 거짓말 못 해요. 어떤 운동을 시켜도 빨리빨리 익히는데, 정적인 운동보다는 동적인 걸 더 잘합니다. 일곱 살 때부터 겨울엔 스노보드 시켰고 여름엔 웨이크보드 타게 했는데 자연스럽게 잘하더라고요. 예성이는 필드 가는 건 좋아하는데 타석에서 꾸준히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건 지겨워해요. 골프 배운 경력에 비하면 장타를 칩니다. 드라이버는 190m에 떨어지고 잘 맞으면 200m도 나갑니다. 스윙을 제가 가르쳤으니까 뭔가 팁을 주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면을 더 강조합니다. 필드 나갔을 때 잘 안 되면 짜증 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많이 혼냅니다. 스윙 못 하는 건 그럴 수 있어도 짜증 내는 모습을 보이거나, 그로 인해 그다음 샷이 나빠지면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야단을 치죠. 마음 다스리지 못하면 골프는 끝이거든요.”

공 2000개 친 뒤 200m 밖 전봇대 10번 맞혀야 끝내


▎김미현은 ‘우드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우드샷에 능했다. 2007년 LPGA 삼성챔피언십 당시 모습.
요즘은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인데요.

“저희 때는 하루 종일 공만 쳤어요. ‘스윙 머신’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죠. 요즘은 특기생들도 수업 빼주는 경우가 거의 없긴 하지만 대부분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거 같아요. 솔직히 학교에서 배운 거 중에서 사회 나와서 써먹을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잖아요.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이죠. 그래서 저는 운동하는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자기계발서든 에세이든 저자의 경험이 담긴 책을 읽으면 자신이 겪지 못한 것을 공감할 수 있잖아요. 유명 선수가 되면 인터뷰도 잘해야 하고, 사회 나가면 말 하나로 오해받을 수도 있고 사랑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예성이는 책 읽는 것보다 나가서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데 다행히 설민석 선생님의 한국사 책을 좋아하더라고요.”

김미현 프로는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다. 사업을 하는 부친 김정길씨와 함께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부모가 다 운동을 좋아했고, 김미현도 밖에서 뛰어놀고 철봉 매달리기 좋아하는 명랑 소녀였다. 특히 성격이 아빠랑 잘 맞았다고 한다. 골프를 시작하면서부터 두각을 나타냈지만 원래부터 키가 작았고 청소년기에도 잘 크지 않았다고 한다.


▎김미현은 LPGA에서 벙커 세이브율 시즌 1위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벙커샷도 잘했다.
키 때문에 핸디캡을 느낀 적이 있나요?

“사람들이 하도 많이 얘기하니까 ‘작으니까 손해 보는 게 많나보다’ 싶었죠. 국내 있을 땐 웬만큼 거리 나가고 스코어도 좋았으니까요. 크게 느낀 건 역시 미국 가서 키 크고 덩치 좋은 선수들 상대하면서부터죠. 거리 차이가 훅훅 나니까요. 제가 작았으니까 사람들 기대치가 높지 않았어요. ‘쟤는 체격조건도 안 좋고 힘들 거야’ 생각하는데 성공하니까 가치가 더 올라갔고, 저는 이득을 봤다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는 핸디캡은 당연히 받아들이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우드나 숏게임에 집중한 게 먹힌 거죠. 자꾸 저를 박세리 선수와 붙여서 라이벌이라고 하시는데 세리가 이룬 업적은 저보다 훨씬 높거든요. 세리가 손해죠. 얼마나 억울하겠어요(웃음). 그런데도 저를 동급에 놓아주는 건 세리는 할 수 있는 체격조건인데 저는 작은데도 해냈으니까, 그 핸디캡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해주신 거라고 봐요.”

남다른 노력이 있었겠네요.

“연습을 진짜 많이 했어요. 한번 타석에 들어가면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 빼고는 나오지 않았어요. 당시는 공을 바구니에 담아서 가져왔는데 그것도 엄마가 해주셨죠. 오전 수업받고 연습장 가서 1000개든 2000개든 그날 목표로 한 숫자를 채웠고, 마지막으로 연습이 마음먹은 대로 잘됐는지를 시험했어요. 제가 다닌 연습장에는 타석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전봇대가 하나 있었는데, 드라이버로 공을 쳐서 지름 30㎝ 정도 되는 그 전봇대를 10번 맞혀야 장갑을 벗었어요.”

그 긴 시간을 초집중했나요?


▎2006년 7월 LPGA 제이미파 오언스 코닝 챔피언십 연장전에서 챔피언 버디 퍼팅을 하는 김미현.
“스윙이나 자세를 연구하기보다는 내가 정한 목표지점에 공을 떨어뜨리는데 초점을 맞췄어요. 골프연습장에 가면 원 안에 거리를 표시하는 ‘120’ 같은 숫자가 있잖아요. 저는 120이 적힌 원이 아니라 ‘2’ 또는 ‘1’ 자를 맞히려고 했어요. 항상 타깃을 정해놓고 연습하는데 거리가 짧아질수록 목표를 점점 더 작게 하는 거죠. 50m라면 근처에 있는 볼 하나를 맞혀야 다음 단계로 가고, 30m면 볼을 끼워서 미는 기구 세 번째 구멍에 넣는다, 이런 식이죠. 가끔 멍때릴 때도 있지만 금방 정신 차립니다. 제가 체격은 작지만 체력은 좋았거든요. 체력이 달리면 정신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어요.”

미국은 어떻게 가게 됐나요?

“고2 때 아빠 사업이 안 좋아져 부산서 인천으로 올라왔고, 친척·지인들 도움으로 골프를 계속할 수 있었어요. 대학 1학년 마치고 프로로 턴을 했는데 당시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져서 국내 프로 대회가 싹 없어졌어요. 일본을 가려고 준비하던 중에 세리가 미국에서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죠. 주니어 때부터 국내서 경쟁하던 친구가 미국서 성공했다고 하니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체격조건·언어·인종차별 등은 상상도 못 하고 한국서 열심히 한 것처럼 하면 되겠지 하고 건너간 거죠. 아빠가 운전하는 밴 타고 미 대륙을 누볐습니다. 방송에는 좀 안쓰럽게 나왔지만 우린 사실 다닐 만했어요. 아빠도 운전하면서 경치 구경하는 거 좋아하셨고요. 한 주 벌어 한 주 지내는 형편이라 좀 쪼들리긴 했지만 그래도 한 주 쓸 만큼 벌었고, 전혀 모르는 교민들도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래도 미국 투어 시절 힘들거나 고통스럽거나 황당한 일이 많았을 텐데요.

“힘들고 고통스럽고 황당한 거, 전~혀 없었어요(웃음). 미국 진출 초반에 한인들 만나서 반가운 마음에 밥 몇 번 같이 먹었을 뿐인데 ‘미현이? 내가 키웠어’라는 분들이 있었어요. 황당하기보다는 에피소드 같은 거죠. 몇 년 만에 만난 분이 ‘김미현씨, 나 기억 못 해?’ 하면서 되게 섭섭해하셨어요. ‘죄송해요. 제가 사람 얼굴을 잘 기억 못 해요’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한인식당 맞은편에서 밥 먹다가 인사한 사이였더라고요. 그런 일 겪으니까 겁나고 무서운 느낌도 들고, 밥 한번 사면서 ‘내가 다 후원해줄게’ 해놓고 해준 것도 없으면서 내가 키웠다고 하는 몇 사람 때문에 좋은 분들 만날 기회를 스스로 차단한 건 지금 생각해도 안타깝죠.”

인종차별을 겪진 않았나요?

“힘드니까 자격지심일 수도 있어요. 어딜 가나 까칠한 사람 있잖아요. 제가 영어가 유창한 것도 아니고 우리말과 영어 표현이 달라서 내 마음을 다 표현 못 해 답답한 적도 있었어요. 초반에는 나이 차이 많이 나면서도 까칠한 선수 만났을 때 무섭긴 하더라고요. 그 선수가 칠 차례라서 기다리고 있는데 ‘너 왜 안 치냐’ 할 땐 괜히 인종차별 하나 그런 느낌 드는 거죠. 그런데 한국 선수들이 LPGA에 많이 진출하고 성적이 좋으니까 오히려 캐디들이나 다른 나라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과 친해지려 하고 한국말로 인사하고 한국말 배우고 싶어 하는 선수도 많았어요.”

제 오버스윙 절대 따라 하지 말라고 해


▎한국 여자골프의 LPGA 1세대 트로이카 박세리·김미현·박지은 프로(왼쪽부터).
동료나 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항상 똑같았어요. ‘나도 김 프로처럼 작아서 골프 못 칠 거라 생각했는데 김 프로 보면서 힘이 난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반응이었죠. 제가 하는 오버스윙을 따라 했다고 하는 분들에게는 ‘절대 따라 하지 마세요’라고 질겁을 했어요(웃음). 어릴 때 주니어용 채가 없어서 어른 채를 쓰고 동네 레슨프로한테 골프를 배우다 보니 오버스윙인 줄도 모르고 했거든요. 채가 무거워서 뒤로 넘어간 것 같아요. 주니어 때 성적이 나고 해서 신문에 제 스윙 모습 사진이 실렸는데 피니시 장면인 줄 알았는데 백스윙이더라고요. 하하. 저도 놀랐는데 이미 그렇게 고정되고 성적도 나는데 굳이 고칠 필요를 못 느꼈죠.”

오버스윙을 콤팩트 하게 바꾸려고 한 적도 있었다면서요?

“미국 투어에서는 대회 전에 프로들 상대로 장비와 스윙을 점검해주는 분들이 있어요. 스윙 장면을 카메라로 찍고 이리저리 분석하는 게 멋있어 보여서 저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게 타이거 우즈와 제 스윙 모습을 비교해서 선을 긋고 설명을 하더라고요. 사람마다 키나 팔길이, 스윙 각도, 유연성과 근력 등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걸 단순 비교하는 게 맞아?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한번 받고 안 했죠. 그 뒤로 3년 9개월간 우승이 없었던 적이 있어요. 2등도 네 번인가 했는데 사람들은 우승이 없으니 ‘김미현이 슬럼프다’고 하더라고요. 누가 툭 건드려줘서 살짝만 바꾸면 좋겠다 싶어서 선생님한테 며칠 배우고 나갔는데 덜컥 우승을 한 거죠. 사실은 배운 대로 한 게 아니라 제 맘대로 쳤는데 그 선생님만 뜬 거죠. 그 후로 시간도 안 맞고 레슨비도 비싸서 그만뒀죠. 스윙이 콤팩트 해질 뻔하다가 다시 온 거죠. 하하.”

김 프로는 “솔직히 제 스윙이 예쁘거나 스탠더드 한 게 아니라서 제 스윙 보는 걸 안 좋아했어요. 스윙 분석하는 분들한테도 카메라로 많이 찍지 말고 딱 하나만 체크해 달라고 했어요”라고 했다. 그 순간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예성이가 또 들어섰다.

“엄마, 벙커장에 약 뿌렸대.”

“그래, 열심히 해.”

내가 김미현 프로를 만난다고 하니까 어떤 분이 “우드샷으로 어떻게 그린에 볼을 세울 수 있는지 비결을 물어봐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 얘기를 하자 김 프로가 웃으며 답했다. “누가 ‘어떻게 그렇게 우드를 잘 치세요?’ 하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요. 열심히 한 것밖에 없어요. (드라이버) 거리가 짧으니까 세컨드 샷 우드를 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다른 선수보다 우드 치는 걸 많이 보여준 거죠. 저는 우드보다 숏 게임을 잘한다고 생각해요. 숏 게임에 자신이 있으니까 웬만하면 우드 클럽을 잡을 수 있는 거죠. 우드샷이 그린에 못 미치거나 그린을 맞고 뒤로 넘어가도 숏 게임으로 파세이브 할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어느 해는 벙커 세이브 1등을 한 적도 있어요. 그리고 저는 퍼트 라인을 정말 잘 봐요. 타고난 거니까 감사하죠.”

우드를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여성 골퍼를 위해 팁 하나만 주시죠.

“일단 연습을 많이 해야죠. 나이가 들면 근육이 굳고 스트레칭도 제대로 안 하다 보면 팔이 구부러지고 백스윙이 잘 안 넘어가요. 저도 백스윙이 작아지더라고요. 아이언과 달리 우드는 백스윙을 길게 빼고 다운스윙 때는 채를 빨리 끌고 내려와야 하므로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헬스클럽에서 역기를 들 순 없으니 연습볼을 많이 치세요. 그러면 힘이 생깁니다. 내 단점을 보완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하기보다는 장점을 확실하게 내 걸로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난 퍼팅은 자신 있어. 연습 안 해도 돼’ 하면서 안 되는 드라이버만 계속 치면서 체력 낭비하고 스트레스받고 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대로 노력은 하지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오히려 장점을 내 걸로 완벽하게 만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공부도 마찬가지죠. ‘우리 애는 국어ㆍ과학은 잘하는데 수학이 안 돼. 그래서 수학학원 보내’ 하는 엄마한테 저는 ‘왜 수학을 못 하는데 수학을 시켜? 잘하는 국어를 더 시켜야지’라고 해요.”

여성 골퍼는 스윙도 패션도 예쁜 게 좋아


▎김미현골프월드 연습장에 선 김미현 프로. 그는 “여성 골퍼는 패션도 멋지고 폼도 예쁜 게 좋다”고 했다.
골프를 잘하려면 전략이 중요하겠죠?

“물론이죠. 코스 매니지먼트가 바로 전략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손자병법을 좋아했어요. 대부분 골퍼들이 ‘앞에 해저드 있으니 잘라 가세요’ 하는 캐디 말을 들으면 ‘이거 잘 맞으면 빠질 텐데’ 하면서 굳이 그 채를 들고 어드레스하고 백스윙할 때까지 고민하고 치세요. ‘이걸로 가볍게 치면 되지’ 하는데 그럴 거면 한 클럽 작은 걸로 자신 있게 치면 되잖아요.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해요. 저도 다른 선수들이 넘길 수 있는 해저드를 보면 망설일 때가 많아요. 10m만 더 치면 넘어갈 수 있는데 그것 때문에 잘라 가거나 둘러가야 하거든요. ‘조금만 잘 맞으면, 뒷바람만 좀 불어주면 나도 넘어갈 텐데’ 하는 동요가 오면 미스샷이 납니다. 그런 마음을 내려놓을 때 성적이 좋았어요. 골프의 멘탈은 화를 다스리는 겁니다. 체중을 밑으로 축 내리고 위를 가볍게 하고, 심적으로도 마음을 쭉 내릴 줄 알아야 해요.”

골프 코스가 점점 길어지는 추세인데요.

“제가 은퇴한 것도 그것 때문이에요(웃음). 전장이 길어지면 저같이 거리가 짧은 사람이 불리한 건 물론이고, 빨리 가서 세컨드 샷을 쳐야 하는데 남들 세 걸음 걸을 때 저는 다섯 걸음 걸어야 하잖아요. 얼마나 힘든데요. 그리고 골프장이 길어지면서 코스가 밋밋하고 재미가 없어졌어요. 화면에서 봐도 별로 안 예뻐요. 큰 나무가 우거지고 개울도 흐르고, 코스가 아기자기해야 선수들이 전략을 짜고 샷을 하잖아요. 그냥 멀리 치고 또 멀리 쳐서 그린에 붙으면 버디 하고, 이러면 재미가 없잖아요. 코스가 아기자기해야 김미현 같은 선수도 한번 승부를 걸 수 있죠.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마지막 날 극적인 역전승도 잘 안 나와요.”

요즘 후배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롱런 하는 선수가 많지 않은 거 같아요. ‘니네 어리니까 모르지 그렇게 치면 나이 들어서 아파. 다쳐’라고 얘기해줘요. 특히 남자 선수들이 거리에 너무 집착해서 과도한 스윙을 하는 걸 보면 멋있기보다는 ‘저러면 몸에 무리가 가는데. 내가 그랬는데…’ 싶어요. 제가 운동할 땐 과학적 체계적 트레이닝을 한 것도 아니고 스트레칭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었잖아요. 남자애 돌보다 보면 힘쓸 일이 많은데 여기저기 아프니까 아이도 신경이 쓰이나 봐요. ‘아, 몸을 아껴야 했는데, 내 몸 갉아먹고 살았구나’ 생각이 드는 거죠.”

김미현에게 골프란 뭔가요?

“그게 제일 어려운 질문 같아요. 골프는 저를 만들어준 거고, 기쁨도 행복도 실망도 좌절도 준 친구죠. 제가 골프를 하면서 가장 원했던 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 드리는 거였어요. 우승해도 내가 기뻐하기보다 ‘엄마 아빠, 나 우승하니까 좋아?’ 하면서 계속 확인하곤 했죠. 지금은 동네 아줌마들이랑 노는 데 빠져서 골프는 눈에 안 들어와요. 그리고 김미현이 골프 하는 것 보면서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거 아니에요. ‘뭐야, 거리가 이것밖에 안 나? 어라, 뒤땅을 치네’ 이러면서요. 크크.”

골프장에 가보면 운동보다는 패션에 관심 두는 여성 골퍼들이 많다고 하네요.

“저는 이왕이면 예쁘게 꾸미고 나왔으면 좋겠어요. 여성 골퍼들한테 가끔 원 포인트 레슨을 해주면서 ‘이왕이면 폼도 예쁘게 치세요’라고 합니다. 치마 입고 다리를 남자처럼 벌리는 것도 썩 좋아 보이지 않고요. 메이크업도 예쁘게 하고, 화사하게 소풍 나온 기분으로 라운딩을 즐기면 스트레스도 풀릴 거라고 생각해요.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눈에 거슬리는 복장이 아니면 괜찮은 거 같아요.”

멋진 유럽 도시 가서도 누리지 못해 아쉬워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이렇게 계속 아줌마로 살 거예요(웃음). 저랑 예성이랑 딱 둘이잖아요. 어쨌든 예성이가 성인이 되고 자기 앞가림할 때까지 건강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예성이랑은 친구처럼 지내고 있어요. 제 차 트렁크에는 짐이 잔뜩 실려 있어요. 언제든 떠날 수 있게요. 갑자기 서울 가서 호텔방 잡고 남산타워 올라갔다 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여수 밤바다’ 노래에 꽂혀 오후에 출발했는데 새벽 두 시에 여수 도착해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요 녀석이 가끔 퉁명스럽게 대할 때가 있어요. 그럼 ‘난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지 니 친구는 아냐. 건방지게 까불지 말라고’ 한마디 하면 아직은 무서워합니다. 하하.”

피해 갈 수 없는 마지막 질문. 레전드로서 김미현을 닮고 싶은 후대에 들려주고 싶은 말은?

“제가 레전드라고 하시니 부끄럽고 숨고 싶기도 하네요. 그냥 제게 주어진 걸 갖고 노력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목표를 향해 집중할 땐 저보다 앞에 누가 가는 꼴을 못 봤어요. 더 악착같이 노력했죠. 근데 언제부터인지 경쟁자인 후배들 모습이 너무 예쁜 거예요. ‘어이구 잘하네. 어쩜 저렇게 잘하지?’ 감탄하고 기특한 눈으로 보는데, 남들이 나를 기특하게 여겼던 그 노력들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 겁니다. ‘아, 이젠 선수가 아니라 언니가 됐나 보다’ 싶어서 은퇴를 결심했죠. 지나고 보니 유럽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도시도 가보고, 거기서 대회도 했지만 그 아름다움과 멋을 누려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재능 뛰어나고 열심히 하는 우리 후배들이 옆도 좀 돌아보고 뒤도 돌아보고, 처진 사람들 기다려줄 줄도 아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게 진정한 성공 아닐까요?”

※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와 한양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2008호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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