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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붕의 ‘2020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개막’(6)] 기업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혁신 노하우 

무늬만 ‘언택트’? 신문명 세대는 안 속는다! 

비대면 사회 진입에 매머드 규모 방송·영상 콘텐트 산업 급속히 몰락
과거 기준 갇혀 있으면 효율과 편리 극대화된 모바일 사회 적응 못해


▎8월 5일 삼성전자가 사상 처음 온라인으로 개최한 갤럭시 언팩 2020 장면. 이전 언팩 행사의 190배가 넘는 5700만 명이 접속했다. / 사진:삼성전자
위기의 뒷면에는 ‘다시없는 기회’라고 쓰여 있다. 미국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성적표를 내고 있는데도 나스닥 기술주는 연일 신기록을 갱신 중이다. 미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은 -32.9%로 1947년 공식적인 분석이 시작된 이후 최악의 수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의 위협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감염자 수는 500만 명을 돌파했고 하루 사망자 수도 2000명을 넘어서면서 지역별로 다시 록다운(Lock Down)을 시행하는 곳이 늘고 있다. 그런데도 나스닥의 성장은 눈부시다. 애프터 코로나 시대에 그들에게 기회가 있다고 세계의 자본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돈줄도 마를 줄을 모른다. 미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계속해서 달러를 찍어내고 있다. 코로나 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인위적인 경기 부양이다. 사람들에게 뿌려진 돈은 다시 나스닥 기업들에 쏟아져 들어가는 중이다.

지난 호에서 포노 사피엔스 문명을 창조하고 리드하는 7대 플랫폼(애플·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페이스북·알리바바·텐센트)의 시가총액 합계가 8600조원을 넘었다고 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9793조원(2020년 8월 9일 기준)을 돌파했다. 나스닥의 5대 천왕 애플·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페이스북의 시총 합계는 8198조원에 이른다. 스마트폰 문명을 창조한 애플은 시총 2270조원을 돌파해 세계 최고의 석유 기업 아람코(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명실공히 세계 최고 기업에 등극했다. 애플은 이제 우리나라 코스피, 코스닥 모든 기업의 시가 총액 합계를 넘어섰다. 나스닥에는 이런 플랫폼 기업 외에도 코로나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는 바이오 기업이 줄줄이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수많은 기업이 파산의 위기로 몰리는 사이 이들에게는 아주 강력한 도약의 기회가 열린 것이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비교적 신흥기업에 해당하는 나스닥 기업에 자본이 몰린다는 것은 부의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지난 30년 이상 전통적인 시장의 강자들에게 축적되어 있던 부가 새로운 기술 중심의 플랫폼 기업들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명의 교체기에 늘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파산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동시에 이를 기회로 폭발적 도약에 성공하는 기업도 크게 늘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기회가 위기라는 모습으로 찾아왔다. 과연 나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전통 기업에서 신흥 플랫폼 기업으로 부의 이동


위기를 기회로 잡으려면 마음의 표준을 바꿔야 한다. 9793조원이 투자된 신문명의 편에 서야 한다. 표준이 달라지면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우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애프터 코로나 시대의 언택트 문화에 부정적이다. 언택트라는 상황에 대해 ‘사람이 만나지 않고 어떻게 교감이 생길 수 있고, 그것을 어떻게 진정한 인간다운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맞는 말이다. 만나지 않고 진정한 교감을 나눌 수 없다. 그런데 ‘만나지 않는다’는 전제가 틀렸다. 언택트는 비대면일 뿐 실제로는 온라인에서 만남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온라인 콘택트, 즉 온택트 상황이다.

온라인에서의 만남은 오프라인보다 교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형태가 다를 뿐이다. 이런 만남은 포노 사피엔스에겐 오히려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온택트 커뮤니케이션은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풍부하다. 어차피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게 어려운 상황이라면 온택트의 장점을 살리는 일이 중요하다. 오프라인 만남이 어렵다는 상황에 푸념만 늘어놓는다면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변화된 상황에서 장점을 찾아 배워야 한다.

온택트 커뮤니케이션의 장점을 살펴보자. 일단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다.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한 위기의식이 팽배하던 올해 초 KBS 창원 방송국에서 코로나 특집 대담방송을 준비한다고 출연 요청이 왔다. 방송 형식은 온라인으로 토론자 두 명과 아나운서가 줌이라는 소프트웨어로 화상으로 만나고 그것을 스튜디오에서 녹화해 내보내는 새로운 시도였다. 대담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노트북을 열고 스튜디오로 입장했다. 5G 통신 덕분에 출연자 3명 사이에 거의 끊김 없는 대담이 이어졌다. 충분히 시청자들이 즐길 수 있을 만큼의 프로그램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저녁 뉴스 시간대에 편성된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 7%를 넘겨 동시간대 최고를 기록했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관심도가 높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프로그램이 예전처럼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것이었다면 일정상 참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내 사무실에서 녹화할 수 있었기에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 만약 줌에 기반을 둔 온택트콘퍼런스 환경이 없었다면 창원 방송국은 대담자들이 있는 두 지역에 중계차를 보내 실시간 방송이 가능하도록 세팅을 해야 했을 것이고 그에 따른 엄청난 비용을 지불했어야 했을 것이다. 실제로는 방송국에서 아무도 오지 않았다. 온라인이 가능한지 잠깐 리허설을 해본 게 전부였다.

장비는 5G 통신이 되는 필자의 휴대폰과 노트북 한 대가 전부. 출연료도 교통비 없이 저렴하게 지급할 수 있었고, 그렇게 저비용으로 완성된 콘텐트가 심지어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방송국에서도 매우 새로운 시도이자 경험이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방송국은 새로운 콘텐트 제작 방식의 표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콘텐트를 저비용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사실 이 방식은 이미 유튜브에서 오래전부터 표준으로 사용하던 포노 사피엔스의 방송 방식이다. 고비용 고화질 방송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저비용 저화질이라도 높은 품질의 콘텐트를 기대하는 새로운 미디어 표준이 이미 대한민국 시청자들 사이에 자리 잡은 것이다. 데이터는 명백하게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을 KBS가 배우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스튜디오 없는 새로운 콘텐트 제작 방식


▎CNN이 화상회의 시스템 업체인 줌(ZOOM)의 위안정 CEO와 가진 화상 인터뷰를 유튜브로 보도했다. 코로나19 이후 시대에는 인터뷰를 위한 스튜디오도, 대규모 촬영 인력과 장비도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 사진:CNN 유튜브 캡처
2019년 KBS는 1300억원의 적자를 봤다. 이에 따라 올해 1000명의 감원을 예고한 바 있다. 그걸로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시청료를 올려 달라고 국회의원들에게 읍소하고 있다. 생각의 표준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 고난은 누구에게나 예정된 미래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에서 배워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명백하다.

생각의 표준을 바꾸면 현재도 달라지지만, 미래는 더욱 크게 달라진다. 앞으로 지방 방송국들은 이런 방식의 취재·대담·다큐멘터리 등을 적은 비용으로 기획할 수 있다. 과거에는 예산 탓에 꿈도 못 꿀 일이다. 지역별 문화재나 음식점, 기업들을 얼마든지 취재하고 콘텐트를 제작할 수 있다. 잘 훈련된 직원 한 명이 성능 좋은 5G 스마트폰 하나 들고 지역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킬러 콘텐트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취재해서 독특한 콘텐트 크리에이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맛집 탐방도 전처럼 고비용으로 제작할 필요가 없다. 일반시민을 초청하고 카메라맨이 가서 찍고 오면 된다. 과장하지 않고 진정성 있게 만들면 된다. 제작비용이 낮아지면 해볼 만한 시도다. 지역사회의 인기 있는 유튜버와 협업할 수도 있다. 표준이 달라지면 이렇게 다양한 가능성이 저절로 커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트가 많아지면 방송국도 그만큼 생존 가능성이 커진다.

방송 제작 노하우에 새로운 문명의 표준을 얹기만 해도 이렇게 현재와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방송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고 고민도 많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답은 아직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방송은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은 정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할 때다. 움직이지 않는데 기회가 올 리는 만무하다.

애프터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기업이 해야 할 일은 이처럼 법인의 표준을 포노 사피엔스 시대로 바꾸고 과거와는 다른 현실에서 장점을 찾아 배우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업을 지탱해주던 견고한 생태계가 부서지는 것이 혁명의 본질이라면 생존 전략도 기업이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생태계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한다. 새로운 문명의 성장을 비판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7대 플랫폼에 9793조원의 자본이 집중된 이유를 분석하고 우리 기업이 그 새로운 환경에 발맞춰 변화하려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이미 그렇게 새로운 길을 찾아 성장한 기업들이 무수히 많다.

최근 기존 거대 기업의 변화 방향 중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고객을 직접 만나는 독자적 플랫폼을 구축하는 현상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디즈니랜드와 나이키다. 디즈니랜드는 2019년 11월 겨울왕국 개봉을 앞두고 새로운 콘텐트 플랫폼인 디즈니 플러스를 출시하면서 넷플릭스와 결별했다. 유료 가입자는 서비스 개시 첫날 1000만 명을 돌파했고 지금은 6000만 명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물론 마블 시리즈, 아이언맨 시리즈 등 고객이 열광할 만한 콘텐트가 가득하다는 것이 선택을 받은 힘의 원천이다.

사실 디즈니는 코로나 이후 충격에 빠진 기업이다. 모든 디즈니랜드가 셧다운 돼버렸고 영화관까지 록다운 조치에 따라 문을 닫게 되자 매출의 80%가 날아가는 공황 상태에 진입했다. 그나마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디즈니 플러스 앱이다. 이제는 아예 디즈니 플러스를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모양새다. 디즈니가 야심 차게 준비한 블록버스터 영화 [뮬란]은 올해 3월 극장 개봉 예정이었으나 팬데믹 쇼크로 계속해서 극장 상영이 미뤄져왔다.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던 애니메이션 [뮬란]의 실사판 영화로 작년 [겨울왕국]에 이어 올해 디즈니의 주 수입원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작품이다.

그런데 더는 개봉을 미루지 않고 올 9월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개봉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2억 달러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를 앱만으로 개봉하기는 사상 처음이다. 이 결정은 세계 영화 산업 생태계의 판도를 바꾸는 엄청난 변화의 신호탄이다. 유럽의 많은 극장은 [뮬란]의 광고판을 부수는 등 강한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올해 가장 기다렸던 영화, 많은 수입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했던 작품이 거품처럼 사라져버렸으니 그 심정도 이해가 간다. 그 실망감에는 극장 산업이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다. 세계 최고의 영화제작사가 배급의 표준을 바꾸면 영화산업 생태계의 파괴적 변화는 필연적이다.

극장 대신 ‘앱 개봉’ 선택한 디즈니의 실험


▎대표적인 영화 제작·배급사인 디즈니는 극장가와 디즈니랜드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디즈니 플러스를 출시했다. 현재까지 6000만 명가량의 유료 가입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흔들렸던 극장가의 위상은 코로나라는 사상 초유의 충격으로 거의 폐허가 되어버렸다. 영화 제작사도 더는 기다릴 수가 없게 되었다. 기획했던 모든 영화의 제작을 마냥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새로운 표준으로 전환한다. [뮬란]을 보려면 디즈니 플러스의 월 사용료 6.99달러를 내야 하고 별도로 29.99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개봉영화를 집콕하며 즐기는 새로운 방식이다. 디즈니의 새로운 도전이 얼마나 성공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결과가 향후 블록버스터 영화의 배급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디즈니 입장에서는 이 새로운 방식이 더 많은 수입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영화산업의 생태계는 파괴적 혁신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가 예측했듯 음악 소비의 표준은 거의 모든 소비방식으로 번지고 있다. 이제 블록버스터 영화가 보고 싶으면 인공장기나 다름없는 스마트폰을 열어 디지털 플랫폼에 접속한 후 스트리밍으로 소비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러한 소비방식을 최근 D2C(Direct to Customers) 방식이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면 택시를 탈 때도, 호텔을 예약할 때도, 치킨을 시켜 먹을 때도 우리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D2C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기존 생태계에서 중간 수수료를 챙기던 기업의 퇴출을 강제하고 있다. 이제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이지, 폰으로 보는 영화가 무슨 감동이 있냐’는 푸념으로는 생존을 보장할 수 없게 됐다. 디즈니처럼 새로운 길을 향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기존의 성공한 플랫폼 기업들이 만들어놓은 교훈을 최선을 다해 배우고 내 마음의 표준, 우리 회사의 표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코로나가 사라지는 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

포노 사피엔스에게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가 스마트폰 신제품을 발표하는 언팩 행사다. 여기에도 기존 방식이 파괴되는 변화가 시작됐다. 그동안 갤럭시는 신제품 발표 때마다 수천 명에 이르는 고객과 언론인을 한곳에 모아놓고 콘서트 방식으로 행사를 진행해왔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더는 이런 오프라인 행사를 할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언팩을 선택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온라인 언팩은 생각지 못한 여러 장점을 보여줬다. 오프라인 언팩 행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나 뉴욕 등에서 열리는데 보통 3000명가량의 미디어나 통신 관련 관계자가 참석하고 행사 내용은 언론보도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그 많은 사람을 초청하고 이벤트를 준비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삼성전자에서도 대규모 인원이 미국 대도시로 출장을 떠나야 했다. 대형 유통기업과 방송국, 그리고 광고가 권력인 생태계에서 엄청난 비용이 들어도 당연히 치러야 하는 대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불가피한 상황이긴 했지만, 온라인으로 행사를 대체했다. 행사의 메인은 세계적 팬덤을 만든 우리나라의 자랑 BTS가 맡았다. 그러자 전 세계에서 5700만 명이 스스로 온라인에 접속해 행사에 찾아왔다. 오프라인 참석 인원의 무려 190배가 몰렸다. 더구나 이들은 스스로 찾아온 고객이자 삼성이 공략하기에 애를 먹는 젊은 포노 사피엔스들이다. 여전히 언론은 언론대로 언팩 행사 뉴스를 부지런히 실어 날랐다. 그렇다면 삼성은 오히려 이 변화를 통해 큰 이득을 누린 게 아닐까?

대체로 획기적인 행사였지만 내용에 있어선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 온라인 언팩인데 형식은 기존 방식을 자꾸 따라가려는 점이 그렇다. 포노 사피엔스는 자기만의 독특한 소통 방식과 문화적 특징이 있다. 그걸 생각하지 않고 기존 행사 방식을 적용하다 보면 ‘지루하다’, ‘재미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오로지 고객이 왕이라면 그들에게 철저히 맞춰야 한다. 콘텐트도 행사 방식도 그들이 열광하도록 바꿔야 한다. 네이버 웹툰의 성공비결은 ‘만화를 웹툰이라 부르지 않는다’가 출발점이었다. 과거의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갤럭시도 젊은 팬덤을 만들려면 그렇게 가야 한다. 단순히 늘 하던 행사를 온라인으로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행사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 TV 광고와 유튜브의 제품 소개 방식이 아예 형식 자체가 다르듯 소비자가 원하는 내용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일이다. 삼성에는 뛰어난 실적을 만들어낸 훌륭한 임원만큼이나 재능 있는 젊은 인재도 많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포노 사피엔스 문명을 만들고 살아낸 인재다. 당연히 젊은 고객과 공감대를 넓힐 아이디어가 많다. 이들이 행사 콘텐트도 주도할 수 있게 조직 체계를 바꿔야 한다.

BTS 뜬 갤럭시 온라인 언팩에 5700만 명 접속


▎2004년에 창업한 캐나다 인터넷 쇼핑몰 플랫폼인 쇼피파이(shopify)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아마존에 이어 미국 상거래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했다. / 사진:쇼피파이 홈페이지 캡처
몇 년 전 삼성에서 젊은 직원을 대상으로 한 아이디어 공모전이 있었다. 순위 결정도 신선하게 직원 투표로 뽑았다. 1등을 차지한 아이디어는 TV를 스마트폰과 연계해 새로운 콘텐트 플랫폼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이미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즐기던 세대가 이 아이디어에 몰표를 던졌다. 그런데 임원들이 투표 결과를 뒤집어버렸다. 임원진이 선택한 아이디어에 1등을 준 것이다. 이유는 명확했다. 우리는 TV 사업부인데 스마트폰 사업부에 종속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충분히 이해되는 결정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당장 블라인드(뒷담화 전용 앱)에 이럴 거면 아이디어는 뭐 하러 공모하고 투표는 왜 했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앞으로는 이런 아이디어 내는 데 아까운 시간 낭비하지 말자는 의견도 많았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 고객 중심 경영이 아니라 임원 중심 경영으로 굳어진다. 도전적이고 신선한 아이디어는 초기 단계에서 ‘이걸 어느 임원이 좋아하겠냐?’거나 ‘이걸 임원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겠냐?’는 질문에 막혀버리고 만다. 이러면 신인류를 사로잡을 수 없다. 팬덤은커녕 소통조차 하기 힘들어진다.

새로운 도전에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임원의 생각도 신입직원의 생각도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기준은 오직 고객의 손끝이 만들어내는 데이터다.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때에는 가능한 한 많은 과거 데이터를 모아 그걸 기반으로 결정해야 한다. 그 성과를 데이터로 측정하는 방식도 미리미리 세팅해 둬야 한다. 그래야 빠르게 피드백을 하고 더 나은 방식을 창조해낼 수 있다. 이번 갤럭시 언팩 행사를 통해 확보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음 행사를 다시 빠르게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고객 중심 경영의 기본이다. 언택트 문명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하려면 이렇게 바꿔야 할 것들이 많다. 푸념은 쉽고 배우는 건 어렵다. 그래서 변화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된다.

혁명적으로 바뀌는 생태계에 잘 적응하며 생존을 모색하는 기업도 있지만, 아예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생태계를 포노 사피엔스 문명 중심으로 새롭게 디자인하고 그 구심점으로 성장하는 기업도 있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을 표준으로 새로운 생태계를 디자인하며 성장한 대표적 플랫폼 기업이 캐나다의 쇼피파이(shopify.com)다. 2004년 창업한 이 기업은 최근 애프터 코로나 시대를 맞아 시가총액 138조원을 기록하며 캐나다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 회사는 아주 편리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로 유명하다. 2019년 아마존에 이어 미국 온라인 상거래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하며 아마존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 달에 30달러만 내면 자신의 쇼핑몰을 쉽게 만들고 창업할 수 있게 지원하는 이 플랫폼의 고객 수는 어느새 100만 명을 넘어섰다.

미국을 제친 중국 온택트 기업의 비결

일반적으로 유통은 장터에서 이루어진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완성한 것이 백화점이고 대형마트다. 지난 100년간 이들이 시장의 지배자였다. 제조업체는 이들에게 납품하는 것을 상식으로 여겼다. 온라인으로 시장이 전환되고도 이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장터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플랫폼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베이나 G마켓이 이렇게 성장했다. 뒤를 이은 아마존도 기술 혁신을 통해 편의성과 가격 경쟁력을 대폭 개선하긴 했으나 아마존이라는 거대 플랫폼을 거래 장터로 이용하는 개념은 여전히 동일하다.

그런데 여기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기 상품에 자신감을 가진 기업이 아마존과의 거래를 끊고 독자적인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나이키와 이케아다. 나이키는 2019년 아마존과 결별하고 독자적인 쇼핑몰을 키우기 시작했다. 마치 디즈니가 넷플릭스와 결별하고 디즈니 플러스를 론칭한 것처럼. 그리고 이 변화의 바람은 전체 업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 바람을 따라 승천한 기업이 바로 쇼피파이다.

물건을 파는 업체 입장에서 보면 백화점이든 아마존이든 판매처 수수료 명목으로 매출의 30%를 주는 건 아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전 문명에서는 이를 당연한 역할 분담으로 생각했다. 만약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D2C 판매가 가능하다면 제조업체나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거래 방식이 된다.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 이 가능성이 열릴 거라고 생각한 쇼피파이는 D2C 판매가 가능한 쇼핑몰 창업에 투자를 시작했다. 더 똑똑해진 소비자는 이 거래 방식의 장점을 이해하고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유통 채널로 당당히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쇼피파이는 유통의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했을 뿐 아니라 시장 진입에 비용이 많이 들어 엄두도 내지 못하던 기업까지 달랑 30달러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이 우리가 신문명에서 배워야 할 전략이다.

중국은 이미 소셜커머스 시장 규모가 500조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포노 사피엔스 인구가 많다 보니 새로운 시장의 창출과 기업의 변화가 매우 빠르다. 이들 기업은 실적도 좋을 뿐 아니라 미래 기대치도 매우 높다. 2020년 미국의 [포천]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중국이 124개를 차지하며 사상 처음으로 121개에 그친 미국을 제쳤다. 중국 기업의 대부분은 포노 사피엔스 마켓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앞으로 이들 기업의 미래 전망도 밝다. 미·중의 패권 다툼이 치열한 가운데 세계의 경제 생태계는 더욱 빠른 속도로 언택트 문명, 포노 사피엔스 시대로 내달리고 있다. 푸념만 하고 있을 틈이 없다. 빠르게 신문명으로 내 마음의 표준, 우리 사회의 표준, 우리 기업의 표준을 리셋하고 예정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일, 오늘부터 시작해보자. 포노 사피엔스 문명으로 내 마음부터 Change!

※ 최재붕 - 성균관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워털루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와 서비스융합디자인대학원 학과장을 겸직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 시대의 시작이라고 정의하면서 융합을 기반으로 문명을 읽는 공학자로 알려져있다. 저서로는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사피엔스] [엔짱] 등이 있다.

202009호 (202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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