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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정밀진단] 검찰 인사를 바라보는 검사들의 시선 

문재인 정부도 결국 ‘권력의 충견’ 원했나 

정권 교체 일등공신 대접하던 ‘윤석열 사단’ 발탁 1년 만에 적폐몰이
정치적 중립 보장하겠다던 개혁 명분 버리고 ‘정치 검찰화’ 되풀이


▎법무부는 8월 27일 검찰 중간간부 및 평검사 인사를 단행했다. / 사진:뉴시스
"이 정도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말라는 노골적인 메시지 아닌가.”

한 지방검찰청 현직 검사는 지난 8월 이뤄진 검찰 인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인사 후 검찰 내부는 겉으로만 고요할 뿐 뒤숭숭하다고 한다. 게다가 현직 검사장을 압수수색하면서 후배 검사가 육탄전을 벌인 초유의 일까지 벌어진 뒤여서 분위기가 더 어수선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이 검사는 “‘우리 윤 총장’이라며 한없이 추켜세우다가 적폐 취급하는 모습을 보니 정치권력의 속성은 이념을 초월해 똑같구나 싶었다”고 했다.

법무부는 올해 1월과 8월 두 번에 걸쳐 검찰 고위급 인사를 단행했다. 이어 8월 27일에는 중간간부 인사가 있었다. 검찰 안팎과 법조계 등의 평가를 종합해보면 1월 인사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측근으로 꼽히는 참모들을 뿔뿔이 흩어놓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8월의 두 번째 고위직 인사는 윤 총장 주변을 친정부 성향의 간부들로 포위하는 형국이었다. 이어진 중간간부 인사는 ‘보은’과 ‘학살’ 두 단어로 집약된다.

8월 27일 중간간부 인사의 백미는 정진웅(사법연수원 29기) 광주지검 차장이다. 정 차장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에서 광주지검 차장으로 영전했다. 한동훈 검사장과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을 수사하면서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 유심칩을 압수하려고 몸을 날린 주인공이다. 이 일로 한 검사장으로부터 독직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하고 감찰 대상이 됐다. 같은 인사에서 정 전 부장에 대한 감찰조사를 맡았던 정진기(27기) 서울고검 감찰부장은 도리어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정 감찰부장은 인사가 나자 곧바로 일신상 이유를 들어 사직했다.

지검의 부부장검사 A씨는 “검사끼리 몸싸움을 벌인 것도 황당하지만, 피의자 신분에다 감찰 중인 인물을 영전시킨 것도 코미디 같은 일”이라고 했다. 정 차장검사가 출중한 실력을 갖췄던 걸까. A씨는 “‘노코멘트’가 내 대답”이라고 했다. 짧은 대답에 담긴 의미를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정 차장검사 외에도 영전한 간부 검사들은 더 있다. 김욱준(28기) 서울중앙지검 4차장은 지검에서 선임 격인 1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차장은 [채널A] 전직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 수사를 맡고 있는 형사1부를 지휘한다. 그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를 기소한 최성필(28기) 의정부지검 차장은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왔다. 추미애 장관을 보좌했던 구자현(29기) 전 법무부 대변인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받았다.

자신의 SNS를 통해 친정부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온 진혜원(34기) 대구지검 부부장검사는 서울동부지검으로 영전했다. 진 검사는 문재인 대통령을 ‘달님’이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여비서 성추행 의혹을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옹호하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진 검사가 발령받은 서울동부지검은 추 장관 아들의 군 휴가 미 복귀 사건을 맡고 있다.

색깔만 달라졌을 뿐, 검찰 ‘정치색’ 더 짙어져


반면, 여권이 관련된 수사에 참여했던 중간간부들은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해온 이근수(28기) 서울중앙지검 2차장과 김태은(31기)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장은 안양지청장과 대구지검 형사1부장으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윤 총장의 입 역할을 했던 권순정 대검 대변인은 전주지검 차장으로, 검찰총장의 촉수 격인 대검 수사정보 1, 2담당관으로 일했던 김영일(31기), 성상욱(32기) 부장은 검찰 직제개편으로 보직이 폐지되면서 각각 제주지검 형사1부장, 고양지청 형사2부장으로 발령 났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사건을 기소했던 이정섭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은 수원지검 형사3부장으로 이동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휴가 미복귀 의혹 사건 수사팀을 이끌던 양인철(29기)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장은 서울북부지검 인권감독관으로 발령 나 수사팀에서 배제됐다.

이보다 앞서 단행된 두 번의 검사장(대검 검사급 검사) 이상 고위간부 인사는 중간간부 인사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 해당한다.

추 장관이 취임한 직후인 올해 1월 8일 검사장급 인사에서 이성윤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령났다.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의 핵심 요직 빅4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중앙지검장은 참여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장을 지냈다. 당시 민정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현 정부 출범 후에는 대검 형사부장, 반부패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요직을 거쳤다. 문재인 정부 들어 법무부 정책기획단장과 대변인을 지내고, 추 장관의 인사청문회를 도왔던 심재철 서울남부지검 1차장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진했다. 심 부장은 인사 이동 직후 조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윤 총장에게 원점 재검토 의견을 내기도 했다. 또 동료 검사의 장인 장례식장에서 후배인 양석조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 선임연구관으로부터 “조국이 왜 무혐의인지 설명해보라”는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반면, 적폐 수사 일등공신으로 상찬받으며 2019년 7월 윤 총장과 함께 검찰 요직에 발탁됐던 이들은 불과 반년 만에 정권의 눈엣가시로 전락했다. 강남일(23기) 대검 차장은 대전고검장으로, 윤 총장의 ‘왼팔’로 불렸던 박찬호(26기) 대검 공공수사부장은 제주지검장으로 각각 전보됐다.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은 법무연수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표면상으론 영전이지만, 수사 현장에서 배제돼 좌천이란 평이 나왔다. ‘소윤(小尹)’ 윤대진(25기) 수원지검장은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한동훈(27기)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부산고검 차장으로 각각 전보 조치됐다. 한 검사장은 이후 [채널A] 강요미수 의혹 사건에 휘말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됐다.

윤 총장의 수족을 자른 뒤에 이어진 인사는 정권에 우호적인 검사들이 윤 총장을 포위한 형국이 됐다. 8월 7일의 검사장급 인사에서 추 장관의 핵심 참모로 꼽히는 조남관(24기) 법무부 검찰국장이 대검 차장에 올랐다.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대검의 의견서 제출 요구를 거부했던 김관정(26기) 대검 형사부장은 추 장관 아들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동부지검장으로 옮겼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호흡을 맞췄던 신성식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대검 반부패 강력부장으로, 추 장관과 한양대 법학과 동기인 고경순 서울서부지검 차장은 대검 공판송무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국 전 장관 때 검찰개혁 추진지원단 부단장을 맡았던 이종근 서울남부지검 1차장은 대검 형사부장에 발령됐다.

180도 달랐던 1년 전 윤석열 힘 실어주기 인사


▎지난 7월 29일 ‘강요 미수 의혹 사건’ 수사팀이 한동훈 검사장(왼쪽)의 휴대전화를 추가로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한 검사장과 수사팀장인 정진웅 부장검사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 사진:연합뉴스
추 장관의 검찰 인사가 역대 유례를 찾기 힘든 ‘학살’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윤 총장과 특수통 검사들을 중용했던 게 다른 누구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까지도 윤 총장과 그 측근들에 대해 현 정부와 여당은 상찬(賞讚) 일색이었다. 2013년 국정감사장에서 국정원 댓글수사를 벌이다 지방으로 좌천된 윤 총장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조국 전 장관은 “두고두고 내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문 대통령과 가까운 안도현 시인은 “사람에게 아부하고 있는 해바라기 ‘정치 검찰’의 가슴을 후벼 팔 것”이라고 극찬했다. 당시 새누리당은 윤 총장 흠집 내기에 바빴고, 민주당은 윤 총장 보호에 힘을 쏟았다.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 당시 부장급(대전고검 검사)이었던 윤 총장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승진 발탁한 일은 문 대통령이 그를 얼마나 신뢰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문 대통령은 고검장급인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사장급으로 한 단계 격하해 윤 총장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도를 오롯이 드러냈다.

이후 2019년 7월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뒤 고위직 물갈이를 통해 적폐수사 공로를 치하하고, 윤 총장 체제에 힘을 실어줬다. ‘윤석열 사단’이라 불린 특수통 검사들이 대거 승진하거나 요직을 맡았다. 당시 검사장으로 승진한 7명은 현 정부가 출범하는 데 그 공이 작지 않았다. 그만큼 상징성이 컸다. 현직 특수통의 정점인 윤 총장과 동고동락했던 후배들이 대검과 주요 보직에 포진했다.

이원석 기조부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다.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은 박영수 특검팀에서 윤 총장과 함께 적폐 수사를 도맡았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로 있을 때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사도 총괄했다. 박찬호 공안부장은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맡아 국정원 댓글 사건 재수사와 국군기무사령부의 세월호 유가족 불법 사찰 의혹 등을 수사했다.

윤 총장을 발탁한 이유는 분명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공정한 검찰상을 구현할 적임자라는 판단이 그것이다. 2019년 6월 17일 고민정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윤 총장 발탁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윤 후보자는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부정부패를 척결했고, 권력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강직함을 보였다. 남은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고 시대의 사명인 검찰개혁과 조직쇄신 과제도 훌륭하게 완수할 것으로 기대한다.”

홍익표 당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검찰개혁을 원하는 국민적 요구를 반영한 인사”라고 평가했다.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문 대통령의 당부는 더 목적이 뚜렷하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그에 대해서는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허니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이나 현 정권 유력 인사들이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라임사태 등 살아 있는 권력과 관련된 수사를 검찰이 밀어붙이면서 파국의 전조가 싹텄다.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이 관련된 부정 의혹에 검찰이 칼날을 들이대면서부터 윤 총장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입장은 180도 돌변했다.

급기야 추 장관은 인사를 통해 윤 총장을 고립한 데 이어 검찰 직제를 개편해 특수부를 축소하고 여권 관련 수사팀을 와해했다. ‘여의도 저승사자’라고 불렸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6년 만에 해체했다. 합수단은 라임사태를 수사해왔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반부패강력부 선임연구관, 공공수사정책관, 과학수사기획관 등 대검의 차장급 4개 보직도 폐지했다. 이 과정에 대검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7월 29일 한동훈 검사장과 ‘육탄전’을 벌인 후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가 병원 입원 치료를 받는 모습. / 사진:서울중앙지검
추 장관 취임 이후 벌어진 검찰 길들이기 과정은 앞서 문 대통령이나 여권 관계자들이 검찰의 중립을 강조했던 것과 전혀 딴판이다. 처음부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립서비스에 불과했던 게 아닐까. 이런 해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장면이 있다. 8월 16일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고위원 출마 합동연설에서 “임명받은 권력이 선출 권력을 이기려고 한다”며 “권력을 탐하는 윤석열을 끌어내리고 검찰개혁을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최고위원은 “개가 주인을 무는 꼴”이라고도 했다. 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나온 적 없는 대단히 모욕적인 극언”이라고 비판했다.

검찰 내부에선 “사적인 자리에서나 할 법한 말을 여당 국회의원이 공식석상에서 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어안이 벙벙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중견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권력의 눈치를 보는 충견이 되지 말라는 게 이 정부가 내세워온 적폐 청산의 명분 아니었나? 결국 현 정부와 여당도 검찰을 저들 맘대로 할 수 있는 정권의 개쯤으로 여긴다고 자인한 것 아닌가.”

추 장관의 인식도 이 의원과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지난 1월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찰 간부 인사의 적절성을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윤 총장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야당 지적에 추 장관은 “검찰총장이 제 명을 거역한 것”이라고 받아쳤다. 6월 25일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주최한 초선 의원 대상 강연에서 추 장관은 “제 지시의 절반을 잘라먹고, 장관 말 들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지휘랍시고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고 윤 총장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사법부에 대응하는 준사법기관의 성격을 가진 검찰은 역대 정권에서도 다른 어떤 외청보다 독립성을 보장해왔다. 추 장관의 발언은 ‘봉건적 사고’란 비판이 제기됐지만, 개의치 않는 듯하다. 추 장관의 발언 이후 여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검찰총장 직함도 다른 곳처럼 ‘청장’으로 바꿔야 한다”거나, “일개 외청이 상관과 인사를 협의하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주장들이 쏟아졌다.

정부와 여권이 검찰을 대하는 태도는 기시감을 준다. 6년 전 박근혜 정부 시절의 검찰 흔들기와 놀라우리만치 흡사하다.

2014년 1월 검찰 정기 인사 때다. 당시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한 굵직한 사건들을 수사하고 있었다. 하나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개인정보 유출 관련 사건이었고, 또 하나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이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사건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이끌던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을 대구고검으로 보냈다. 박형철 부팀장은 대전고검으로 좌천됐다. 수사팀 평검사들도 지방으로 쫓겨났다. 초기 수사팀 7명 중 6명이 전보 조치됐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수사팀을 무력화한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박수현 당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검찰 특별수사팀이 사실상 공중분해되었다”며 “공소 유지를 불가하게 만들려고 하는 박근혜 정권의 꼼수”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의 ‘윤석열 찍어내기’와 데칼코마니


▎서울동부지검으로 영전한 진혜원(34기) 전 대구지검 부부장검사(가운데). 진 검사는 지난 7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팔짱을 낀 사진을 올렸다. / 사진:진혜원 페이스북
이런 비판에 당시 정부 입장은 어땠을까?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는 수사팀 인사 이동에 관해 “당연히 인사 때가 되면 이동하기 마련”이라고 일축했다. 정 총리는 2014년 2월 1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홍익표 민주당 의원이 “수사팀이 사실상 해체됐다”고 지적하자, “법무부와 검찰의 조직개편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겨레]는 당시 사설에서 “(수사팀) 검사들 상당수가 빠져나간다면 과연 공소유지가 가능할지조차 의심스럽다. 이마저 위태롭게 하는 검찰 인사라면, 사실상의 수사방해”라고 비판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정적에 대한 수사를 치하해 중용하는 정치권력의 검찰 사용법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권세를 누렸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경우가 그렇다. 우 전 수석은 노무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에 참여하는 등 이전 정권의 폐부를 드러내는 수사로 권력의 눈에 들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우 전 수석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BBK 사건을 무혐의함으로써 정권의 족쇄를 제거했지만, 윤 총장은 정권의 의도와 반대로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민주당과 여권은 윤 총장이 검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반개혁 진영으로 돌아섰다고 비판한다. ‘조직을 사랑한다’고 윤 총장 스스로 말했던 만큼 검찰 수장으로서 그가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검찰개혁보다 조직 보호를 우선순위에 뒀을 거란 해석이다. 윤 총장이 온갖 비난의 화살을 맞아가며 조직을 보호하는 것은 맞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가 정부의 검찰개혁을 적극적으로 저지한 사례는 찾을 수 없다. 도리어 윤 총장은 정부의 검찰개혁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여러 번 내비쳤다.

한 현직 검사는 “윤 총장은 정부에 반기를 든 게 아니라 정부와 검찰의 충돌을 막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이어지는 설명이다. “만약 윤 총장이 개혁안에 반대해 직을 던지는 식으로 저항했다면, 일선 검사들도 동조하는 집단행동이 나왔을 거다. 하지만 총장이 묵묵히 개혁안을 받아들이니 일선에서 반발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총장이 무기력하다고 할 검사는 아무도 없을 거다.”

“권력 줄 세우는데 강골 검사 나오겠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2일 청와대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석열 검찰총장(왼쪽)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검찰을 권력에 줄 세우는 게 이 정부가 말하는 정의냐”는 일부 구성원의 격앙된 반응도 있지만, 넋두리에 그치고 만다. 검찰을 떠난 이들은 “정부가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고 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C씨는 “달면 삼켰다가 쓰니까 뱉는 걸 보고 앞으로 어떤 강골 검사가 나오길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추 장관은 8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 검찰에서 사단이라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직전의 검찰 고위간부 인사가 ‘윤석열 사단 해체’라는 평가를 의식한 대목이다. 그는 “애초 특정 라인과 특정 사단 같은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며 “특정 학맥이나 줄을 잘 잡아야 출세한다는 것도 사라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추 장관의 해석이 ‘검찰 줄 세우기 인사’였다는 평가까지 희석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추 장관 취임 후 단행한 검찰 인사에 ‘반(反)윤석열’, ‘친여’ 성격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좌천성 인사가 나자 사표를 낸 문찬석 전 광주지검장은 검찰 내부망에 올린 사직 인사를 통해 추 장관의 인사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문 지검장은 “천하에 인재는 강물처럼 차고 넘치듯이 검찰에도 바른 인재들은 많이 있다. 그 많은 인재들을 밀쳐두고 이번 인사에 관해서도 언론으로부터 ‘친정권 인사들’이니 ‘추미애의 검사들’이니 하는 편향된 평가를 받는 검사들을 노골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이런 행태에 대해 우려스럽고 부끄럽다”고 지적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를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권이 강한 집단사고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강한 응집력이 있거나 가치를 공유한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일수록 획일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커지는데, 결국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선택한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집단 능력에 대한 과신이나 폐쇄성, 획일성 압력이 높아지면 집단사고의 위험은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인사에는 인사권자의 메시지가 녹아 있다. 조직의 수장은 인사를 통해 의도를 관철한다. 의도는 명분으로 포장된다. 의도와 명분의 지향점이 다를 경우 명분은 힘을 잃는다. 의도만 드러낸 인사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분을 흔들림 없이 움켜쥔 윤 총장의 존재감만 더 부각시킬 뿐이란 해석도 나온다.

스스로를 ‘야인’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한 검사는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적폐를 혐오했던 이에게서 적폐의 그림자를 보는 게 서글프고 고통스럽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010호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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