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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분석] ‘이재명 대망론’의 실체와 경쟁력 

대권가도 앞에 놓인 ‘친문의 벽’ 넘을 수 있을까 

여권 잠룡 지지율 1위… 보수·영남 확장성, 대중 코드 읽는 감각 탁월
상대적 열세인 원내 조직 구축과 당내 부정적 인식 해소가 관건


▎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았다가 대법원의 원심 파기로 지사직을 유지하게 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7월 16일 입장 발표를 위해 도청 본관에서 나오고 있다. / 사진:김상선
거침없는 논리 전개와 직설적인 화법, 이슈를 치고 나가 의제를 선점하는 정치 감각. 별명은 ‘사이다 정치인’, ‘전투형 노무현’. 이재명(56) 경기도지사에 대한 호의적 평가다. 부정적 시선도 만만치 않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스트, 고집불통, 경찰국가를 꿈꾸는 위험한 정치인…. 호불호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양분된다.

그러나 누구나 동의하는 한 가지. ‘순발력과 아이디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점이다. 중앙 정치무대의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한 그를 현재까지 가장 앞서는 대권 잠룡으로 이끈 원동력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주목도에 비해 이 지사의 정치 이력은 상대적으로 단출하다. 본격적인 정치 활동은 성남시장 두 번과 3년 차 경기도지사가 전부다. 그 전에는 민주당 원외 부대변인과 경기 성남 분당갑 지역위원장이 거의 전부다. 2016년 겨울 촛불정국에서 광화문 광장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20여 년간 그의 활동반경은 성남 지역에 머물러 있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이 지사는 차기 대권후보 1순위로 자리매김했다. 한국갤럽이 9월 8일부터 사흘간 전국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22%가 이 지사를 다음 대통령감으로 꼽았다. 전달보다 지지율이 3% 올라 한국갤럽 조사에서 처음으로 20% 선을 돌파했다. 1% 뒤진 21% 지지를 얻은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형성한 2강 구도가 공고해졌다. 윤석열 검찰총장, 홍준표 의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은 3%대로 뒤처져 있다.

일개 ‘변방 장수’였던 이 지사가 유력한 대선후보로 떠오르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독보적인 개인기의 힘이 컸다.

우선 가장 뚜렷한 경쟁력은 아이디어에 기반해 치고 나가는 저돌성을 들 수 있다. 내놓는 정책은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그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했을 때 그는 유례없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해 지방재정 건전성 논쟁에 불을 지폈다. 2015년 재선에 성공한 뒤에는 당시 사회적 이슈였던 무상 급식 논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상 교복, 무상 산후조리원 등으로 ‘무상 시리즈’를 연달아 내놨다.

2016년 겨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촛불정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론’이 세를 얻을 즈음 앞장서서 ‘탄핵’을 꺼냈다. 경기도지사가 된 뒤에는 수술실 CCTV 설치를 앞장서서 의무화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재난기본소득’을 시작으로 ‘기본주택(장기공공형임대주택)’, ‘기본대출’ 등 기본정책 시리즈를 의제화했다.

의제를 선점하는 선명성이 강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여야를 통틀어 대권 잠룡 지지율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대중의 요구를 예리하게 포착해 자기만의 정책으로 만들어내는 남다른 정치 감각을 발휘할 줄 안다. / 사진:임현동
이 지사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는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간파하는 기민함을 꼽을 수 있다. 지난 4월 배달 대행시장을 독점한 업체의 횡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이 지사는 곧바로 공공배달앱으로 치고 나왔다. 이 지사는 공공배달앱을 ‘디지털 SOC(사회간접자본)’라고 규정했다. 도로, 철도와 같은 공공 자산의 개념을 디지털 세상으로 확장한 것이다. 공공배달앱은 7월부터 경기 오산시, 파주시, 화성시 3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개시 한 달 만에 가맹점 신청 건수가 당초 목표치(3000건)의 절반이 넘는 1700건에 달했다.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두고 정부와 대립하다가 결국 전국민 지급 주장이 관철되지 않자, 이 지사는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변형된 형태의 지원금 지급 아이디어를 내놨다. 경기지역화폐 사용자에게 두 달간 한시적으로 충전금액의 25%를 인센티브로 지원하기로 한 거다. 최대 20만원을 충전하면 5만원을 추가로 주는 방식이다. 4인 가구를 기준으로 한다면 가구당 20만원이 인센티브로 돌아가는 셈이다.

이 지사가 지역화폐 인센티브를 내놓은 건 다소 이례적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자기가 제안한 정책이 채택되지 않으면 정부 결정에 따르면 될 일이다. 굳이 별도의 정책을 내놓지 않더라도 정책의 책임 소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지사는 오히려 지역화폐 인센티브 정책이 빌미가 된 ‘퍼주기’ 비판의 중심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셈이 됐다.

여기에 이 지사의 세 번째 경쟁력이 숨어 있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들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추진하는 실행력이 그것이다. 이 지사가 2차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데에는 1차 재난기본소득의 경제적 효과를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1차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방식도 이 지사의 아이디어였다.

경기도와 31개 시·군이 지난 4월부터 지급한 1차 재난기본소득액은 2조116억원이었다. 경기도가 BC카드 매출 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재난기본소득 가맹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9.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4월 매출이 다른 7대 도시보다 7%p 높게 나타났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이 결과에 대해 “보편적 지급과 지역화폐 형태가 결합해 만들어낸 효과”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지사가 두는 수는 정석이 아니다. 임기응변에 능해 변칙적인 요소가 많다. 바둑으로 치면 ‘흔들기’가 주특기다. 이 지사가 즐겨 쓰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시대정신’이란 단어다. 시대정신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어서 시시때때로 변화한다. 주의 깊게 관찰해야 실체를 간파할 수 있다. 시대정신을 정확히 짚어내는 능력은 정치인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라고 그는 믿는다.

이 지사에 대한 대중의 긍정적 평가 중에는 ‘시원시원하다’는 평가가 유독 많다. 현역 정치인 중 가장 대표적인 ‘사이다 정치인’으로 꼽힌다. 일 처리 방식이 일사불란한 점, 원칙을 지키는 데 있어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 점 등이 이런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 지사의 한 측근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이슈를 재빠르게 치고 나가 주목도가 높았다. 정곡을 찌르는 화법으로 기성 정치인들과 차별화한 것도 지지를 얻는 이유”라고 말했다.

불공정과 타협하지 않는 원칙주의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하천·계곡 주변 음식점의 불법 영업을 1년 만에 근절했다. 2019년 11월 22일 가평군 어비계곡 현장. / 사진:경기도
이 지사는 선이 굵고 뚜렷하다. 특히 규칙(법)을 지키는 데 있어서만큼은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다. 이 지사는 지난 7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법은 공동체 모두를 위한 강제력이 담보된 약속”이라며 “기득권자의 불법뿐만 아니라 생활 적폐도 청산해야 우리 사회가 공정한 사회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소신을 엿볼 수 있는 최근의 사례가 계곡 주변 음식점의 불법 영업 근절 대책이다. 계곡 음식점들의 불법 영업은 수십 년 동안 계속돼온 생활 속 적폐였다. 음식점이 평상을 설치하고 사실상 계곡을 사유화하다시피 해 행락객과 종종 마찰이 빚어지곤 했다. 이 지사는 취임 약속으로 이런 불법 행위를 뿌리 뽑겠다고 공언했다.

한 철 장사로 먹고사는 업주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했다. 2019년 8월 24일 이 지사는 양주시 석현천 일대를 찾아가 주민들을 만나 설득했다. “내게 화내도 좋다. 하지만 작은 잘못에 눈감으면 큰 잘못을 시정하기 어렵다. 규칙은 누구나 지켜야 한다.” 자발적으로 시설물을 철거하면 그에 상응하는 행정적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올해까지 198개 하천에서 1460개 업소의 불법 시설물 1만1383개가 철거됐다. 자진 철거 비율이 90%를 넘었다. 이 지사는 “저항이 꽤 심하고 힘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주민들이 필요성에 공감하고 동참했다”고 말했다.

집안일로 많은 고초를 겪기도 했다. 친형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이 지사에게는 가슴 아픈 가정사이기도 하다. 시장의 형이란 관계를 내세워 수시로 공무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다 못해 갈수록 악화하는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입원 절차를 밟다가 이를 중단했다. 전후 사정이 사라지고 친형을 강제로 입원시키려 했다는 왜곡된 정보가 이 지사를 공격하는 빌미가 됐다. 대법원의 판결로 혐의는 벗었지만, ‘패륜’의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다만 원칙을 지키는 비타협적 인물이란 이미지를 얻은 것은 소득이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지사의 지지층은 특정 지역이나 세대에 갇혀 있지 않고 열려 있는 형국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한국리서치 4개 여론조사업체가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한 9월 1주 차 전국지표 조사에서 이 지사는 23%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다. 연령대별로는 40대(31%)와 50대(32%)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18~20대에선 20%, 30대는 28%로 당내 경쟁자인 이낙연 당대표를 앞섰다. 다만 60대(15%)와 70대 이상(10%)의 지지율이 낮았다. 지역별로는 경기·인천(30%), 호남(27%), 충청(23%), 대구·경북(22%), 부·울·경(18%), 서울(16%) 순이었다. 이낙연 대표와 비교하면 경기·인천, 대구·경북, 부·울·경, 충청에서 우세했다.(응답률 31.8%,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이 지사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어릴 때 성남으로 이주했다. 정치권에선 이 지사가 안동 출신이란 점을 유리하게 본다. 민주당 내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원외 인사는 “영남 출신 대선후보는 민주당의 전통 강세지역인 호남에 더해 보수색이 강한 영남의 표심까지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선거는 냉정한 승부다. 호남 출신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그러나 자력이었다기보다 당시 여권의 분열과 김종필 전 총리와의 연합(DJP연합)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 지사의 경우 유권자 절반이 집중된 수도권 표를 얻는 데에도 유리한 위치다. 도지사로서 다양한 정책을 통해 유권자에게 능력을 각인할 수 있어서다.

입지전적인 인생 스토리 ‘노무현 닮은꼴’


▎대권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7월 30일 경기도청에서 만나 활짝 웃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가난한 어린 시절을 거치며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자수성가형 인물이란 점도 선거에 플러스 요인이다. 이 지사는 가난 때문에 학교 대신 성남공단의 꼬마 노동자로 생활하다 팔에 장애를 입었다. 이후 독학해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뒤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해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한 정치 평론가는 “정치인에게 입지전적인 인생 성공담은 유권자의 정서를 움직일 수 있는 최고의 무기다. 이 지사의 인생은 ‘개천에서 난 용’이 되길 꿈꾸는 평범한 이들에게 그 자체로 희망 메시지가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수도권 국회의원의 보좌관은 “이 지사의 인생 역정은 노무현 대통령과 너무나 닮았다. 게다가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유창한 언변까지 ‘노짱’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지사의 별명 중 하나는 ‘전투형 노무현’이다.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하면서 공격적인 전투력까지 갖췄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지사가 대권가도의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극복해야 할 난관이 있다.

가장 큰 관문은 당내 경선이다. 현재로선 당내 최대 계파인 친문(親文, 친문재인)의 지지가 승부를 좌우할 결정적 요소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이 누구에게 향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지사와 이낙연 대표는 비문(非文, 비문재인)으로 분류된다. 이 지사는 지난 대선과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 과정에서 친문 지지자들로부터 거친 공격세례를 받았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면 갈등이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두고 이 지사가 정부와 다른 의견을 낸 게 대립하는 모양새로 비치자 이 지사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성공을 위해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걸음 물러섰다.

연일 이슈 전면에 등장해 의제를 주도하고 있는 이 지사의 행보가 청와대의 견제를 자초할 수도 있다. 차기 권력으로 시선이 집중되면 정권의 국정 동력이 빠지게 마련이다. 여권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과 도덕성 시비로 정부 지지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미래 권력이 급부상하면 레임덕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그럴 경우 청와대로선 차기 주자의 부상을 억제할 수밖에 없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비슷한 후보 여럿이 경쟁하면 차기 권력을 향한 힘 쏠림 현상이 덜하기 때문에 청와대는 차기 주자 여러 명이 서로 경쟁하는 상황을 가장 선호할 것”이라며 “또 비슷한 지지율을 가진 후보들이 경쟁하면 차기 권력 경쟁에서 청와대 입김은 더 세진다”고 분석했다.

다른 난관은 이 지사의 약점인 조직 경쟁력이다. 여의도 정치무대에서 활동한 경험이 없는 탓에 원내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계파라고 할 만한 주류 조직도 아직 실체가 없다. 지난 7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소재·부품·장비 육성방안 경기도 정책 토론회’에는 의원 20여 명이 참석했다. 7월 30일에 창립한 기본소득 연구포럼에는 현역 의원 11명이 정회원으로 참여하고, 20명이 준회원으로 참여했다. 기본소득이 이 지사의 대표 의제라는 점을 고려할 때 친이재명계로 분류도 가능하다는 게 당내 해석이다.

당내 주류인 86그룹의 아성을 극복해야 하는 것도 이 지사에게 당면한 과제다. 학생운동 경력이 없는 탓에 전대협 시절부터 다져진 동지애로 뭉친 86그룹과 이 지사 사이에는 다소 어색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이런 조직적 한계를 이 지사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대협 세대’ 이을 ‘한총련 세대’ 키운다


최근 이 지사가 ‘한총련 세대(70년대생 90년대 학번)’를 영입하기 시작한 것이 자신과 호흡을 맞출 새로운 정치 그룹을 형성하려는 시도로 읽히기도 한다. 이 지사는 7월에 정책 공약수석에 김재용 전 경기연구원 부원장을 발탁했다. 김 수석은 한양대 총학생회장으로 전대협 후신인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1기 의장을 지냈다.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장을 맡고 있는 강위원 전 더불어광주연구원장은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한총련 5기 의장 출신이다. 이 밖에 남총련 의장 출신인 정의찬 전 조선대 총학생회장(현 수원월드컵경기장 관리재단 근무)과 윤용조 전 부산대 총학생회장(현 이재명 지사 통일비서관) 등 한총련 지도부로 활동했던 이들이 속속 이 지사에게 모여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보수 진영의 대선후보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이 지사의 확장성이 희석될 가능성도 있다. 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 회사의 전국지표조사에서 이 지사는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층과 보수당인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각각 24%, 10% 지지를 받았다. 이념 성향별로도 이 지사의 지지율은 중도층에서 25%, 보수층에서 12%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만약 보수 진영에서 민주당을 위협할 만한 지지를 얻는 후보가 나타날 경우 중도·보수로의 확장성이 큰 이 지사가 본선 경쟁력을 내세워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반대로 보수 진영에서 거물급 후보가 부상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커진다는 말이고, 당내 다수파인 친문은 이 지사 아닌 다른 대안을 선택하는 데 마음의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당사자의 권력 의지다. 아무리 유능한 참모와 조직을 가졌어도 당사자의 권력 의지가 약하면 대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은 과거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권력 의지가 그의 당락을 가른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양 전 원장은 문 대통령이 대권에 도전하게끔 한 킹메이커였다. 2012년 첫 대권 도전 당시만 해도 문 대통령의 권력 의지는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땐 참모들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나온 기색이 역력했다”고 양 전 원장은 떠올렸다. 그러나 2016년 네팔에 다녀온 문 대통령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고 했다. 양 전 원장은 “그때 문 대통령에게서 강한 권력 의지를 읽었다. 이번에는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양 전 원장의 기대대로 문 대통령은 2017년 두 번째 도전에서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 지사에게도 문 대통령에게서 보였던 권력 의지가 있을까? 이 지사의 측근들은 이 지사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강한 권력 의지를 갖고 있다고 단언한다. “지사에게 권력 의지가 없었다면, 기초단체장에 불과한 그가 탄핵 정국의 전면에 나서지도 않았을 거고, 지난 대선 경선 도전도 없었을 것”이란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이 지사가 걸어온 정치 경로는 참모의 손에 이끌려 잘 닦인 길을 지나온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가 스스로 길을 열었다고 측근들은 입을 모은다.

다만 이 지사는 아직까지 대권 도전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자신의 지지율에 대해선 “바람 한 번 불면 쉽게 꺼지는 것”이라며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는 여러 언론의 대권 재도전 의사를 묻는 말에 “지금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을 아낀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도지사 재선으로 마음을 굳혔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섣부른 해석이다.

공정 가치만으론 부족, 기회의 정의 집중해야


▎친문과의 갈등을 어떻게 봉합하고 지지를 이끌어내느냐가 이재명 지사가 당면한 대권가도의 난관이다. 2017년 3월 문재인,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TV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 지사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묵묵히 내 할 일을 열심히 하면 길은 하늘이 열어준다(진인사대천명)”고 했다. 진인사대천명은 이 지사가 지난 대선 경선 결과를 기다릴 때, 그리고 정치 명운을 쥔 대법원 판결을 앞뒀을 때와 같이 운명의 변곡점에 섰을 때마다 되풀이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초연하게 운명을 기다리는 건 이 지사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 운명은 하늘이 결정할지언정, 목표를 향해 전력투구하는 게 그의 권력 의지가 구현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앞선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이 지사는 자신의 비전을 이렇게 설명했다.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시민운동을 거쳐 시장, 도지사에 이르기까지 제가 기획을 했겠나. 그냥 죽어라 열심히 하다 보니 그 판에 불려 나간 거고, 그래서 이 자리까지 왔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하늘이, 가깝게는 도민들이 길을 정해줄 거다. 난 그 길로 가면 된다.”

이 지사가 시대정신을 주도하기 위해선 중요한 가치로 꼽는 공정의 개념을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라정주 재단법인 파이터치연구원장(경제학 박사)은 “공정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정의를 의미한다. 기회와 결과 중 어느 쪽 정의에 가치의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정책의 색깔과 효과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겪고 있는 정책의 난맥상과 권력자들의 도덕성 시비의 근본 원인이 결과의 정의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란 게 라 원장의 지적이다. 그는 “기회와 과정이 정의롭지 못해도 결과가 정의로우면 된다는 생각이 정부 정책 기저에 깔렸다 보니 결과를 포장하기 위한 땜질 처방이 속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정책은 가장 좋은 예다. 내 집 마련의 통로가 제한된 기회 측면의 문제를 도외시한 채 기회 불공정의 결과인 부동산 가격만 억지로 통제하려다 보니 오히려 부의 쏠림은 더 심해졌다. 자녀 입시와 병역 관련 도덕성 시비에 빠져 있는 두 전·현직 법무부 장관의 경우도 기회의 정의가 지켜지지 않은 데서 비롯된 면이 크다.

진보 진영 일부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지향과 관련해 결과가 정의롭다고 과정의 불공정이 덮이는 건 아니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그릇된 신념에 빠져 현실과 이상이 괴리되는 딜레마의 늪에 스스로 뛰어드는 친문 권력 주체들의 균형감각을 걱정하는 이들도 늘어난다. 이를 만회하는 게 기회의 정의다. 여권에 만연한 패거리 문화에 맞서 공평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느냐에 이 지사의 미래 주자로서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하겠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010호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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