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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동향] 수출 급감, 코로나19 협공당하는 방산업계 

적신호 켜진 K방산, 국가 지원 가능할까 

늘어난 국방예산 과실은 해외업체 몫… 컨트롤타워도 없어
수출 사양 반영 의무화 및 정부 주도의 패키지 대책 여론도


▎이라크, 필리핀 등에 수출한 경공격기 FA-50이 말레이시아 진출을 준비 중이다. / 사진:공군
143%. 올 초 스웨덴 싱크탱크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한 한국의 최근 5년간 방위산업 수출 증가율이다. 이는 상위 10개국 가운데 가장 가파른 추세다. 세계 방산시장 점유율 또한 2010∼2014년 0.9%에서 2015∼2019년 2.1%까지 끌어올렸다. 방산 후발주자이지만 점차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모습이다.

낭보도 잇따라 전해지고 있다. 국내 기술로 최초 개발 중인 한국형 전투기(KF-X) 시제 1호기가 마침내 최종 조립 단계에 들어간 것. KF-X 시제 1호기는 내년 상반기에 일반에 공개된 후 지상·비행시험 등의 과정을 거쳐 오는 2026년 개발 완료될 예정이다. 전 세계에 1700여 대 수출된 K-9 자주포는 호주 수출길을 뚫었다. 호주 육군 현대화 프로젝트 중 하나인 ‘자주포 획득사업’의 우선협상대상에 K-9이 선정된 것이다. 이 사업은 약 1조원 규모에 달한다.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방산업계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경영난 가중으로 실적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의 ‘2019년도 방위산업 통계연보’에 따르면 방산업체들의 매출액·수출액·방산인력은 2016년과 비교해 각각 13.5%, 37%, 5.1% 감소했다. 2018년 기준 방산업체 영업이익률은 제조업의 32% 수준이다. 더구나 제조업과의 영업이익률 격차는 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국내 방산업체의 매출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인 국방 예산은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확대 기조를 보이고 있다. 이 중 국내 방위산업과 관련되는 방위력개선비는 올해 16조7000억원이다. 전년 대비 8.6% 증가한 수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방위력개선비 평균 증가율은 11.0%에 달한다. 지난 정부 9년의 평균 증가율(5.3%)보다 두 배 높다. 그러나 국방예산 확대의 수혜는 해외 방산업체가 차지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F-35 전투기와 공중급유기 등 국외 구매 사업규모도 함께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수효과가 미미한 셈이다.

설상가상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여파로 수출 협상 진행도 차질을 빚고 있다. 방산 협상이 이뤄지는 에어쇼 등 각종 무기·방산 박람회가 줄줄이 취소되면서다. 해외 영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보잉 경영난 빠지자 미 공군은 27조원 계약 체결


▎한국 최초의 기동헬기 수리온의 수출기본형 시제기. / 사진:KAI
글로벌 방산시장 폐쇄로 수출 마케팅조차 힘든 상황에서 국내 방산업계는 생산라인 유지를 위해서라도 정부가 국산 무기 체계를 먼저 구매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숨통이라도 틔워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여의치 않다. 외국산 선호 풍토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방위사업청은 퇴역을 고려 중인 UH-60P 블랙호크 헬기를 대신해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을 추가 양산하려 했지만, 군의 반대로 원점 재검토 중이다.

외국의 상황은 다소 다르다. 올 7월, 미 공군은 미국을 대표하는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과 228억 달러(약 27조원) 규모의 F-15 EX 전투기 조달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보잉은 미 공군과 계약을 맺으면서 F-15 EX 1차 주문 8대와 선결제 기술 비용 등으로 12억 달러(약 1조4244억원)를 받았다. 노후화로 인해 퇴역 가능성까지 제기됐던 F-15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보잉은 두 차례 추락사고와 기체결함 논란에 휩싸인 항공기 ‘737 맥스’의 잇따른 주문 취소와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항공수요 급감으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이미 1만2000여 명을 감원했다. 이 상황에서 미 공군의 계약은 보잉으로서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다. 한국에는 낯선 모습이다.

국산 우선 구매만큼 시급한 것은 정부의 실질적인 방산수출 지원이라고 업계는 한목소리로 입을 모은다. 올 7월,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방위산업은 우리 내부의 수요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수출 수요까지 함께 만들어내야만 지속적인 발전 기반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정부도 방산수출의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다. 이에 청와대는 올 초 국방개혁비서관실 산하 방위산업담당관 직제를 신설하고 방사청은 방산수출진흥센터도 설립했다. 그러나 방산수출을 위해 국가 전체적인 역량을 결집하기에는 빈약하다는 평가다.

반면 주요 방산 선진국은 방산수출 세일즈를 지원하는 정부 컨트롤타워가 상설조직 및 기관으로 존재하고 있다. 미국은 국무성 내 무기통제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이 대통령을 보좌하며, 프랑스는 총리실 직속의 국가계약지원위원회(CIACI)를 통해 방산수출을 국가 주요 전략산업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국방부가 방산수출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 수출통제 및 방산수출 진흥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방산수출 지원을 위한 실무 조직으로는 영국은 무역투자 국방·안보본부(UKTI-DSO), 프랑스는 국방부 병기본부 산하 국제개발국(DI) 및 전략국(DS), 이스라엘은 방산수출국(SIBAT) 등이 있다. 미국은 국방안보협력본부(DSCA), 국무성 안보지원기구 등 지원 조직이 전 부처에 산재해 있다.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 올 7월, 국방부에서 국방·산업부 장관이 공동주재하는 ‘제6회 국방산업발전협의회(이하 협의회)’가 열린 바 있다. 범정부 방산수출 지원 방안, 무기체계 핵심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등을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이 자리에는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중소벤처기업부, 방위사업청,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이번 범정부 협의회는 현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 열린 것인데 2018년 9월 이후 약 2년 만이었다. 국방산업발전협의회 규정에 따르면 매년 한 차례 정례 회의를 여는 게 원칙이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2015년 2월 제4회 협의회 이후에는 3년 넘게 열리지 않았다. 정부 부처에서 방위산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다.

전문가들은 방산 정책을 이끌 사령탑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를 중심으로 ‘팀 코리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사전마케팅, 국가 대 국가(G2G) 패키지 제안 등 역량을 결집해야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무기 수출 강국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주재로 ‘방위산업위원회’를 분기(3개월)마다 한 차례씩 연다는 점에서 범정부 협의회의 정상화 혹은 청와대 주관 회의의 정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해외에서 국산 제품 도입에 관심을 표해도 산 넘어 산이다. 동남아 국가의 경우 경공격기 FA-50의 무장확장과 항속거리 연장을 요구하고 있고, 중동 국가들은 기동헬기 수리온의 경무장 능력을 조건으로 내거는 상황이다. 그러나 추가 성능 개량에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FA-50의 무장확장과 항속거리 연장을 위해서는 각각 1500억과 500억원이 소요된다. 수리온도 중동 국가들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1000억원에 이르는 비용이 필요하다. 열악한 경영환경에 놓인 국내 방산업체가 감당하기에는 막대한 개조 비용이다.

물론 ‘무기체계 개조개발사업’ 명목의 정부 지원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규모는 고작 400억원이다. 이마저도 2018년 22억원, 2019년 200억원에서 늘어난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국내 환경에 특화된 무기체계를 개발 및 운영하는 데 집중한다”며 “수출을 위해서는 수출형 제품을 별도로 개발해야 하는데 자체 투자나 기존의 정부 자금 지원으로는 한계”라고 말한다.

개발 단계부터 수출 염두에 둬야… 기술료 철폐는 트렌드


▎한국형 전투기(KF-X) 시제기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경남 사천 공장에서 최종 조립에 들어갔다. 시제기는 내년 상반기 일반에 공개된다. / 사진:KAI
방산업계에서는 정부의 특별 지원과 함께 업계에서도 선(先)투자를 통해 성능 개량을 추진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가령 공중급유와 공대공 성능개량 등에 소요되는 2215억원을 보자. 정부가 ‘항공기 수출형 개발 특별사업’으로 1100억원, 업계가 부품 국산화 등의 연구·개발 투자 등으로 1115억원을 분담하는 방식이다.

근본적으로 ‘진화적 무기체계 개발’ 방식으로의 전환과 ‘수출 형상 의무 반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업계에서는 우리 군이 선진국보다 지나치게 높은 작전운용성능(ROC) 기준을 고수해 진화적 향상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초기 단계 ROC가 설정되면 수년이 지나 신기술·신공법이 나와도 이를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기존 ROC를 바꾸면 업체 봐주기라는 오해를 살까봐 군에선 ROC 변경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이라고 말한다.

이에 반해 방산대국 미국은 무기체계 소요기획 단계부터 ROC에 유연하게 접근해 지속적인 성능개량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소량 생산 후 성능을 개량해 나가는 LRIP(Low-Rate Initial Production, 저비율 초도 생산) 제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은 무기체계 양산과정에서 LRIP 제도를 적용해 안정화 단계를 충분하게 거치면서 ROC를 확인하고 대량 생산 여부를 결정한다. 결과적으로 ROC 충족과 국방예산 절감이라는 일거양득 효과를 거두고 있다.

미국이 주기적인 성능개량으로 수출 경쟁력을 높인다면 영국과 이스라엘은 내수형 무기 개발 단계부터 수출 형상을 의무적으로 반영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특히 철저하게 세계 시장을 겨냥한 제품의 개발과 판매를 유도하는 이스라엘은 방산 총 생산액의 약 80%를 수출이 차지하고 있다.

업계는 기술료 철폐 역시 강하게 주장하는 바다. 최근 방사청은 수출 기술료를 2%에서 1%로 인하하고 내년까지 한시적으로 면제했다. 기존에는 방산물자를 생산, 수출하는 경우 기준 가격의 2~5%를 기술료로 지불해야 했다. 이 때문에 방산업체를 중심으로 기술료 부담이 국산 무기체계의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수출에 걸림돌이 된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업계에서는 한시적 면제를 넘어 세계 시장 추세에 따라 철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자국 업체가 방산 물자를 수출할 경우 기술료를 면제해주고 있으며 영국은 수출을 목표로 개발된 기술이나 제품에 대해 기술료 면제 방식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 정부 소유 기술을 이용하여 개발한 제품이 수출될 경우 기술료를 면제하고 있다. 방산수출 선진국들은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본적으로 기술료 면제라는 방식을 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25년 상환 조건 내거는 경쟁국


정부의 수출금융지원도 방산수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다. 한국은 그간 아시아·중동·남미 등 방산 중·후발국 시장 진출을 공략해왔다. 미국·프랑스·영국 등 방산 선진국의 첨단무기체계에 비해 우리 방산제품이 가격 대비 성능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3년 이후 우리나라 방산수출국은 일부 북유럽 국가를 제외하고 필리핀·태국·말레이시아·세네갈·인도 등 모두 개발도상국에 해당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구매국들이 판매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원자재 수출에 의존한 경제성장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에 글로벌 경기 변동에 민감하고 정부 재정이 불안해 외환 보유고도 낮은 것이 현실이다. 대금 지급 여력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구매국에서는 사업 수주의 전제조건으로 수출국의 금융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들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공적수출신용협약상 국가리스크가 5~6등급에 포함되는 고위험 국가임에도 장기, 초저금리의 대규모 금융지원을 계약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새로운 큰손들을 위해 경쟁국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7월 발표한 ‘주요 선진국의 방산수출 파이낸싱 정책과 발전과제’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중국, 러시아 등이 차관 수준의 금리와 25년 상환이라는 장기간의 파격적인 파이낸싱을 제공하고 있다. 덩달아 방산수출 강국인 프랑스, 스웨덴도 구매국이 요구하는 수준의 경쟁력 있는 파이낸싱을 보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 차원의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산업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공적수출신용기관(Export Credit Agency, ECA)은 방산수출에 대해서는 민간제품 수출 대비 보험요율을 우대하고 상환 기간도 20년 이상, 파이낸싱 한도도 계약금액의 100% 수준까지 확대하는 등의 인센티브 부여 방안에 대해서 검토가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방산수출에 특화된 파이낸싱을 위해서는 재원 확보가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예산 계정 신설, 추가 출연금 조성 등 다양한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1990년대 설비투자 외화대출제도와 같은 국가 외환 보유고 활용 방안도 언급된다. 한 관계자는 “금융지원을 비롯해 불용물자, 산업협력 등 경쟁우위 전략을 정부 차원에서 확보하고 있어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방위산업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 분야다. 개별 기업이 대응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다. 최근에는 무기교역을 매개로 수입국에 연구 기관 설립을 지원하거나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컨설팅을 제공하고 현지에서 자체 생산이 가능하도록 기술이전을 요구받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방산 교역을 현물 거래 방식으로 추진하거나 방산수출과 국외 무기 도입을 연계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러한 양상은 앞으로 지속될 뿐 아니라 더욱 다양한 형태로 확산될 것이라는 게 방산업계의 전망이다. 특히 방산 후발국들은 무기 구매를 국익에 직결되는 국가 정책을 수출국에 관철하는 지렛대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방산수출 분야에 국가적 지원과 협력이 필요한 이유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2010호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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