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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 전문기자의 ‘책과 사람’(10)] 3년째 ‘니은서점’ 운영하는 노명우 아주대 교수 

“동네서점 리얼 삶의 현장 사회학 이론 피와 살이 된다” 

사회학 대중서 쓰다 서점 내고 세상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동네서점 생존 어려운 구조, 완전 도서정가제 도입 고려해야”


▎노명우 교수는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학을 공공사회학이라고 표현했다. 대중과 사회에 기여하는 직접적인 방법을 찾는 사회학이라는 뜻이다. / 사진:임안나
은퇴 후 희망 사항이나 아예 장래 희망을 서점 운영이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교보나 영풍 같은 대형서점 말고 주택가 골목에 숨어 있는 작은 동네서점 말이다. 마음속의 이 서점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이를테면 뿔테 안경의 나이 지긋한 서점 주인이 좋아하는 책을 팔아 풍족하지는 않아도 자족적인 삶을 산다. 까만 생머리 여학생이나 여드름 풋풋한 남학생이 은밀한 취향 혹은 불온한 상상력을 수줍게 드러내는 것도 이곳 서점에서다.

아쉽게도 이런 마음속의 서점은 더 이상 현실의 서점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있을 테지만 좀처럼 찾기 어렵다. 사람들이 예전처럼 책을 많이 읽지 않고, 10~15% 할인을 좇아 그나마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서점은 하나둘 사라지는 사양 업종이다. 지난여름 [동네책방 생존 탐구]라는 책을 출간한 출판평론가 한미화씨의 토로는 요즘 동네서점이 처한 녹록지 않은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최근 몇 년 새 동네서점이 많이 생겨 ‘전성기’를 써보려고 살펴봤더니 꿈과 열정만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업종이어서 ‘생존 탐구’로 책의 방향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 말이다.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2019년 기준 전국의 독립서점은 500여 개로 늘어났지만 커피 판매 같은 딴짓을 하지 않고 책만 팔아서는 생존이 어렵다는 게 한씨의 진단이었다.

열 평 크기, 주 5일 28시간 문 여는 서점


▎니은서점은 노명우 교수의 성인 ‘노’의 ‘니은(ㄴ)’에서 이름을 땄다. 세상을 떠난 노 교수 부모님에 대한 애틋함이 밴 이름이다. / 사진:임안나
서울 은평구 지하철 연신내역 근처의 주택가 골목길에 자리 잡은 니은서점도 그런 동네서점 중 하나다. 열 평이 채 안 되는 아담한 크기, 주 5일 28시간 운영, 깔끔한 내부, 독서욕을 자극하는 서가의 다채로운 책들. 니은서점은 마음속의 동네 서점에 딱 맞아떨어지는 매력적인 모습이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이런 방식으로 누군가의 생계가 충족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절로 드는 공간이다. 가늘고 담백하게 살겠다는 결심이라도 해야 운영 가능한 서점 같다.

다른 서점과 엇비슷하면서도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서점 주인이 단순한 탐서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가 이 서점의 실질적인 주인이다. 노 교수는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알려진 유명 인사다. 사회학이 더 이상 상아탑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서는 안 되고 적극적으로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는 게 이를테면 그의 지론이다. 그런 생각에 따라, ‘싱글남’이라는 자신의 처지를 대입해 ‘자전적 사회학’을 추구한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2013년 10월), 섹스·자살·명품 같은 일상의 세목들을 사회학적으로 풀이한 [세상물정의 사회학](2013년 12월),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부모 세대의 인생 궤적을 추적해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복원하려 한 [인생극장](2018년 1월) 같은 책들을 썼다.

이런 이력을 고려하면 노 교수의 서점 운영은 단순히 마음속 서점을 찾아 나선 낭만적인 일탈이 아닌 듯하다. 지금까지 사회학 대중서 쓰기가 딱딱한 학문 세계에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행위였다면 서점 개설·운영은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닌 사회적 행위자로서 직접 세상 속으로 뛰어든 격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지난달 11일 오후 니은서점을 찾았다. 서점은 2018년 이맘때 문을 열어 만 2년을 넘겼다. 그에 맞춰 노 교수는 니은서점 이야기를 최근 책으로 출간했다. 서점의 이모저모를 보여주는 사진을 여러 장 곁들인 단행본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클)이다. 책 안에는 부모님의 장례식 정산금을 활용해 서점을 차린 사연, 상가 임대 계약부터 ‘북텐더’라고 부르는 세 명의 서점 식구들을 만나기까지 서점을 창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정보, 영세자영업자로서 서점 주인이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 니은서점의 개별적인 어려움 이면에 도사린 사회 구조적인 문제점 등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최근 정부가 개악하려 한다고 알려져 이슈가 됐던 도서 정가제, 이 제도와 함께 동네서점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범으로 꼽히는 출판계의 차별적인 공급률 관행도 목소리를 높여 성토했다. 노 교수의 글쓰기 마법 때문일 텐데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인데도 책은 오히려 경쾌하게 읽힌다.

한 시간 반가량 서점에서의 대화는 수시로 상대가 바뀌었다. 사람이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다. 서점 주인에서 사회학자로, 누구보다 책 읽기를 사랑하는 탐서가로, 노명우씨의 서로 다른 정체성들이 번갈아가며 튀어나온 탓이다. 편의상 지금부터는 노 교수를 서점주인 노씨로 표기한다.

동네서점은 헤비 유저가 좌우하는 업종


▎(왼쪽부터)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2013년, [세상물정의 사회학]2013년, [인생극장]2018년,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2020년
그동안 단골도 생겼을 것 같다. 서점이 주택가 골목에 있어서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듯한데 어떤 사람들이 서점을 주로 찾나?

“서점 손님을 크게 두 분류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1년에 한두 권 사는 분들과 내가 교양독자라고 부르는, 책을 많이 사는 분들, 이렇게다. 서점을 운영해보니까 니은서점처럼 전문서점을 지향하는 서점은 책을 많이 사는 헤비 유저들이 움직여 굴러가는 업종이다. 이분들은 베스트셀러는 잘 읽지 않는 청개구리 같은 분들이다. 각자 취향이 강해 자기가 읽을 책을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서점 문 연 지 1년쯤 됐을 무렵 여러 차례 서점을 찾은 단골이 전체 고객의 50%, 이분들에 의한 매출이 전체의 70%를 넘어서면서 서점 운영이 안정권에 들었다. 그때부터 이번 달에는 적자 폭이 어느 정도겠구나 예측을 할 수 있게 됐다.”

니은서점은 여전히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노씨는 “지속 가능한 적자 폭”이라고 했다.

전문서점이라니 무슨 뜻인가?

“어려운 전문서적을 갖춘 서점이라는 뜻이 아니다. 한 해 단행본이 8만 종가량 쏟아져 나온다. 광화문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에서도 그 많은 책들을 모두 전시하지 못한다. 그만큼 좋은 책이 독자에 의해 서점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작아진다. 대형서점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책들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서점,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전문서점의 지향점이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런 서점의 모습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서점의 본래 모습에 가까웠다. 노씨는 “각자의 취향이나 고유성이 살아 있는 동네서점에 비해 요즘 대형서점은 장소성을 상실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가령 부산 교보문고나 서울 교보문고나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서점은 취향이 살아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물론 그럴 때 취향들 사이에 어느 게 더 낫다는 우열 개념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손님이 오면 보통 어떻게 대하나. 학교에서와는 달리 자신을 낮춰야 할 텐데.

“처음 오는 손님들이 편안하게 책을 둘러볼 수 있게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주인이 먼저 나서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서점 구석에 있는 내 책상에 앉아 다른 일을 하는 척한다. 서점을 찾는 사람이 기대하는 감정은 고요함과 편안함이다. 그러다 궁금한 점이 생겨 손님이 뭔가 물어보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게 되고 결국 이름이 뭔지, 뭐 하는 분인지까지 알게 된다. 이런 과정은 천천히 진행된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말로만 가르쳤던 감정노동의 어려움을 서점에서 실감한다.”

나름 유명인인데 서점 운영에 도움이 되나?

“처음 출발할 때 굉장히 도움이 됐다. 부인할 수 없다. 문 열고 1년간은 그 덕에 버틴 것 같다.”

온라인 서점 무료 배송, 굉장한 착취 구조


▎노명우 교수는 출판산업은 단순히 비즈니스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출판업이 한국어를 살리고 보존하는 데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 사진:임안나
그 얘기는 서점업은 보통 사람이 손대기 어려운 업종이라는 얘기가 된다.

“서점이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독서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어려움은 대형서점도 똑같이 겪는 문제다. 책 이외의 미디어가 워낙 재미있게 발달하다 보니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걸 텐데 이건 서점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다.”

이 대목에서 노씨는 도서정가제 문제를 꺼냈다. “니은서점처럼 작은 동네서점에게는 도서정가제가 너무나 큰 장애물”이라고 했다. 책 정가의 10%까지 직접 할인, 포인트 적립 형태로 5%, 합쳐서 15%까지 할인을 허용하는 현행 도서정가제가 자금력이 달리는 동네서점에게 크게 불리하다는 얘기다.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들은 꼬박꼬박 15% 할인해주는 데 반해 동네서점은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판사가 거래 물량이 많은 대형서점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책을 공급하고(공급률) 동네서점에는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책을 공급하는 차별적인 관행도 문제다. 여기다 대형서점은 규모의 경제 덕분에 무료 배송이 가능하다.

그래서 가격 할인을 아예 하지 못하게 하는 완전정가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동네서점들 사이에서 나온다.

“동네서점 입장에서 완전정가제가 실시된다면 완전히 행복할 것 같다. 큰 고민이 사라지는 거다. 사실 도서정가제를 실시하는 유럽의 여러 나라는 대부분 완전정가제다. 그에 비하면 제도 이름과 내용이 맞지 않는 우리의 도서정가제는 무늬만 정가제, 누더기 정가제다.”

그렇더라도 이제 와서 완전정가제로 가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15% 할인을 없애자고 했다가는 지금 제도의 수혜를 입고 있는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들이 당장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할인에 익숙해진 소비자들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동네서점들은 교섭력이 떨어지다 보니 이들의 목소리가 정책 입안자들 귀에 잘 안 들어갈 수 있다. 도서정가제가 굉장한 내부 착취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무료 배송 문제 말이다. 미국의 아마존과 달리 한국의 온라인 서점들은 8000원짜리 책 한 권을 사도 무료 배송을 해준다. 책 가격과 상관없이 무조건 무료 배송이다. 좀처럼 이슈가 되지 않지만 배송 노동자들의 엄청난 저임금을 짜내는 구조 때문에 무료 배송이 가능하리라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책 구입하는 사람만 국민이고 배송 노동자는 국민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안타깝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누군가 소신 있는 정책 입안자가 이번 기회에 국가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목소리라도 내야 하는 상황인 것 같다. 한국처럼 앞으로 고유어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인구 규모의 나라에서 출판산업은 한국어 텍스트를 생산해 한국어를 성장시키고 지키는 데 기여한다. 그래서 산업 논리로만 출판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근본적인 문제인 독서 열기를 높일 방안은 있을까?

“노동시간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유럽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책이라는 슬로 미디어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는 데 서점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한 번도 독서가 즐거웠던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독서가 즐거운 경험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줄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상호작용을 통해 취향의 공동체를 형성하면 가령 술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두터운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노씨는 이 대목에서 동네서점은 사람들에게 시각적 경험을 제공해 책을 읽게 할 가능성이 있어 중요하다고 했다. 거리에서 빵집을 목격하면 언젠가 빵을 사게 되고 카페를 보면 커피를 마시게 되는 것처럼 오가는 길에 서점이 있어 그 존재를 시각적으로 확인하게 되면 결국 서점에 발을 들여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얘기다.

대중적인 사회학책을 쓰다 이번에는 아예 저잣거리로 나와 서점을 차렸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 사회학자는 항상 사회라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대학은 예외적인 사회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보편적인 현장이 필요한데 이런 맥락에서 서점이 있는 골목길은 아주 탐나는 현장이다. 자영업자이자 사회학자로서 골목길에서 ‘아, 내가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 속에 있구나, 내가 진짜 리얼한 사회를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 굉장한 기쁨을 느낀다.”

그래도 본업은 선생이고 연구자인데 시간을 많이 뺏기지 않나?

“시간을 뺏긴다기보다 서점에 나와 있는 일요일에도 연구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알고 있던 사회학 이론들이 보다 구체화되고 뼈대만 있던 것에 살이 붙는 느낌이다. 다음 책이나 연구 논문은 이런 걸 해봐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그래서 시간을 뺏기기보다 좀 더 바쁘게 지내는 느낌이다.”

글 쓰다 막히면 정확한 표현 위해 사전 찾아

글쓰기 얘기도 해보자. 지금까지 쓴 대중적인 사회학책들이 사랑받은 건 촉촉하다는 느낌을 주는 특유의 글쓰기 때문인 것 같다. 글 쓰다 막히면 어떻게 하나?

“사전을 찾는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단어를 몰라 글이 막힌다고 생각해서다. 내가 추구하는 글쓰기는 정확한 글쓰기다. 아름답거나 멋있게 쓰는 건 내가 추구하는 게 아니다. 나는 글쓰기를 역설적으로 박사학위를 딴 독일에서 독일어로 논문을 쓰면서 배웠다. 외국어로 논문을 쓰다 보니 모든 문장, 모든 단어를 의심해야 했다. 글을 잘 쓰려면 정확하게 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당시에 처음으로 했다. 오스트리아의 기능주의 건축가 아돌프로스가 ‘장식은 범죄’라는 말을 했다. 내게 퇴고의 과정은 문장의 부정확한 요소, 불필요한 단어를 빼버리는 과정이다.”

글 쓰는 데 있어서 루틴이나 버릇 같은 건 있나?

“글이 안 써지면 안 쓴다. 억지로 쓴 글은 결국은 버리게 된다. 글이 안 써져 안 쓴다고 노는 건 아니다. 계속해서 뭔가를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터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야말로 집중력을 다해서 최고의 몰입을 한다. 글이 안 써진다고 스스로를 너무 학대하거나 내 능력을 의심하지 말자, 나는 슬럼프에 빠져 있을 뿐이다, 지금은 내 조건이 그런 것일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 신준봉 문화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 1993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신문사에서 10년 가까이 문학담당 기자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문학과 인연을 맺었다. 상식의 눈에는 괴짜인 문인들, 그들이 생산한 영롱한 것들을 초롱초롱한 독자들에게 중개하는 일, 제도로서 문학의 생로병사에 관심이 많다.

202010호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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