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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집중분석] 피격까지 34시간… 남북이 감췄던 그날의 진실 

실시간 첩보에도 ‘수수방관’ 軍, 신상공개는 전광석화 

北, 이씨 월북 의사 확인하고도 총격 후 시신 훼손까지
우리 군은 월북 입증하려 ‘이혼 후 빚더미’ 개인사 밝혀


▎피격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가 9월 26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 부근 해상에서 귀항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남북 접경지역에서 한국 공무원이 북한군 총격에 사망하는 ‘총격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앞서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 중이던 박왕자씨가 북한군 초병이 쏜 총탄에 사망한 지 십여 년 만이다. 9월 22일 해양수산부 소속 이모(47)씨는 북방한계선(NLL)에서 3~4㎞ 북쪽 등산곶 앞 해상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9월 21일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지 하루 만의 일이다.

그날 그곳에서 있었던 총격 사건을 두고 남과 북의 주장은 엇갈린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일어난 남북한 군인 사이의 총격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장면처럼 진실공방이 첨예하다. 한국 정부의 1차 판단은 월북을 시도한 이모씨가 북한군 총격에 사망한 뒤 소각됐다는 것이다. 이에 북한은 거동수상자를 발견해 대응 사격에 나선 것일 뿐 시신 소각도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사망 사건 이후 진상을 규명하면서 당시 접경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을 탐지한 각종 군사 첩보도 거론된다. 대북 첩보라는 매우 은밀한 군사비밀 틈에서 진실이 공개될 수 있을까. 적대 관계를 지속하는 남북한 대결 구도에서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할까. JSA가 군사분계선 위에 위치하듯 NLL도 해상분계선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파도에 휩쓸리면 순간적으로 경계선을 쉽게 넘나드는 바다의 변화무쌍한 특성 때문에 변수는 더 다양하게 중첩해 적용된다. 실체적 진실을 두고서 다양한 논란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궁에 빠진 그날의 진실은 어떠했을까. 의혹이 가득한 피격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씨가 사라진 걸 발견한 시점은 9월 21일 오전 11시 30분쯤이다. 어업지도선에 함께 타고 있던 선원들이 소연평도 남쪽 2.2㎞ 해상에서 이씨의 실종을 처음 파악했다. 이씨가 승선한 ‘무궁화 10호’는 9월 16일 목포항을 출항한 뒤 인근 해상에서 꽃게잡이 성어철을 맞아 어업지도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해양경찰은 무궁화 10호의 CCTV 영상은 실종 하루 전날인 9월 20일 오전 8시 2분까지만 저장돼 있었다고 밝혔다. 감시 장비 고장으로 정확한 실종 순간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의미다. 다만, 이씨는 9월 21일 오전 0시부터 새벽 4시까지 당직 근무가 예정돼 있었다. 이때 자리를 비운 뒤 실종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어업지도선 안엔 그가 신던 것으로 추정되는 슬리퍼만 남아 있을 뿐, 실종 배경을 설명해줄 수 있는 유서나 다른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실종 신고는 이씨의 부재를 확인하고 1시간 20분쯤 지난 오후 12시 51분에 이뤄졌다. 이날 오후 1시 50분부터 해경·해군·해수부는 선박과 항공기를 동원해 정밀 수색을 시작했지만 이씨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흔적 없는 실종, 그날의 총성, 남겨진 의혹


공무원 이씨의 실종 소식은 9월 23일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군 당국은 사실 확인을 요구하는 언론에 수색 중이라는 입장만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감추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날 늦은 오후부터 실종이 아닌 사망이라는 정황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씨가 북한 지역에 도착한 뒤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는 추측성 보도까지 나왔다. 각종 소문의 출처는 국회였다. 이튿날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관계자는 “합참이 월북과 조류에 떠내려갔을 가능성을 두고 조사 중이라고 알렸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이날 오후 4시 45분 유엔사를 통해 북측에 대북 전통문을 보내고 실종 사실을 통보하면서 사실관계 파악을 요청했지만, 답을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

정부는 9월 24일 오전 10시 50분 언론을 통해 이씨의 사망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이씨가 사망한 뒤 이틀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다.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이날 국방부에서 입장문을 발표하며 북한을 규탄했다. 청와대에서는 같은 날 오후 12시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개최한 뒤 서주석 NSC 사무처장(국가안보실 1차장)이 “북한군이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고 저항 의사가 없는 우리 국민을 총격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북한의 반응은 하루 만에 나왔다. 9월 25일 오후 청와대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북한이 이날 오전에 보내 온 통일전선부 명의 전화통지문(전통문)을 발표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유감 표명과 북한 측 주장을 담은 전통문을 청와대로 들고 왔다. 전통문은 이씨의 총격 사망과 관련해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면서도 총격과 관련해 북한의 책임을 추궁하는 한국 내 언론 보도에 대해선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하며 반박하고 나섰다.

남과 북의 주장이 엇갈린 쟁점은 몇 가지 있다. 군 당국은 실종 하루 만인 9월 22일 오후 3시 30분쯤 북한 수산사업소 소속 단속정이 황해도 등산곶 앞바다에서 이씨를 처음 발견한 정황을 파악했다. NLL 북쪽 3~4㎞ 해상으로 이씨는 구명조끼를 입고 한 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부유물에 의지했고, 북한군이 발견했을 당시에 기진맥진한 상태였던 것으로 군 당국은 설명했다.

北 전통문 ‘엇갈린 주장’에 의혹만 남아


▎2008년 7월 당시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이 서울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서 故 박왕자씨 피살 사건 진상조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월북 정황에 대한 군 당국의 설명은 더 구체적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은 방독면과 보호의를 입었고, 실종자를 단속정에서 일정한 거리를 띄워놓은 뒤 표류 경위를 확인하면서 월북 진술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며 “도망가지 못하도록 끈으로 신체 일부를 묶은 뒤 해상에서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다양한 첩보를 통해 이씨가 이처럼 거리를 둔 ‘해상조사’ 과정에서 월북하겠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힌 점을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북한은 전통문에서 우리 군 당국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북한군은 이씨 신원을 확인했던 과정을 설명하면서 “80m까지 접근하여 신분 확인을 요구하였으나 처음에는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 답변을 하지 않았다”며 “단속(정지) 명령에 함구무언하고 불응해 두 발의 공포탄을 쏘자 놀라 엎드리면서 도주할 것 같은 상황이 조성됐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국 정부의 발표와 달리 이모씨가 월북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고, 총격 원인도 북한군에게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북한은 ‘해상경계근무 규정’의 ‘행동준칙’에 따라 현장에서 정장이 사격 명령을 내렸다고 했다. “10여 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를 향해 사격하였으며, 이때의 거리는 40~50m였다”며 비교적 먼 거리에서 총격이 있었다는 주장을 폈다. 당시 상황은 전적으로 현장에서 결정된 사안으로 북한 지도부와 상관이 없다며 거리두기를 했다. 그러면서도 총격 시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달리 한국 정부는 총격 시간도 세세하게 밝혔다. 북한군 총격은 오후 9시 40분쯤 이뤄졌고 이때 구명조끼와 부유물에 의지해 해상에 떠 있던 이씨가 피격돼 사망했다는 분석이다. 군 관계자는 “현장에 추가로 배치된 경비정에서 총격을 가했다”며 “총격 직전 상부로부터 사격 명령을 받았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이는 상부의 지침 없이 현장에서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사격을 했다는 북한군 주장과 대치한다.

남북한 주장을 종합하면 북한군이 이씨를 NLL 북쪽 해상에서 발견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다만, 북한은 ‘이씨는 월북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고 수상한 행동을 보여 사격했다’는 주장으로 책임을 피하고 있다. 하지만 비무장 상태로 바다에 떠 있던 이씨가 중무장한 군함에 탑승한 북한군 앞에서 도주 시도를 했다는 북한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씨는 당시 부유물에 의존해 해상에 30시간 이상 머물며 체력이 소진된 상태였다.

더구나 북한군 경비정 여러 척이 둘러싼 상황에서 이씨가 도주를 기대했다고 보기 어렵다. 이씨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마땅히 빠르게 도주할 방법도 없었다. 북한군 경비정엔 웬만한 목선 정도는 충분히 파괴하는 14.5㎜ 중기관총이 탑재돼 있었고, 탑승 병력도 소총으로 무장해 언제든 사격이 가능했다. 말 그대로 ‘허튼 수작’을 부릴 틈이 없었다는 말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북한군 상부에서 ‘7.62㎜ 소총으로 사살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는 정황이 있다고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7.62㎜ 소총은 북한군 병사의 기본적인 개인 무기로 유효 사거리는 수백m 수준이다.

북한군이 총격 뒤 시신을 불태운 정황도 포착됐다. 군 관계자는 “사격 이후에 방호복과 방독면을 착용한 인원이 시신에 접근해 기름을 뿌리고 불태웠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이씨의 시신을 “화장한 게 아니라 불태운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군 당국은 총격이 30분 정도 지난 오후 10시 11분쯤 시신을 태우는 불빛이 우리 측 지역에서 감지됐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서욱 국방부 장관은 9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불빛이) 40분 정도 보였다”고 말했다.

시신 불태운 정황 확보, 北은 ‘방역 목적’ 변명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왼쪽)이 9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피격 사건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서욱 국방부 장관. /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북한 측 주장은 달랐다. “10여 발의 총격을 가한 뒤 10여m 접근해 수색했지만, 정체불명 침입자는 없었다”며 “많은 양의 혈흔이 있어 사살됐다고 판단해 국가비상방역 차원에서 소각했다”고 했다. 북한 지역 경계선을 넘어온 뒤 수상한 움직임을 보여 총격을 할 수밖에 없었고, 시신은 찾지 못한 가운데 방역 차원에서 부유물만 소각했다는 주장이다. 적어도 고의로 시신을 불태우진 않았다는 입장이다.

북한 주장과 달리 시신 소각 당시의 구체적인 정황을 군 당국에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인철 합참의장은 10월 8일 합참 국정감사에서 ‘시신이 40분간 탔다고 하는데 영상이 있는 걸로 안다. 의장은 영상을 봤느냐’는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의 질문에 “사진으로 봤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구체적인 출처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고성능 영상 감시장비로 소각 당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고의로 소각했다는 정황을 입증할 다양한 첩보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대체로 군 발표를 신뢰하는 분위기다. 국회 국방위 소속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북측에서 의도적으로 내용을 축소했거나, 일부 내용을 밝히지 않았거나, 왜곡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며 “국방부에서 (9월 24일) 발표한 내용은 굉장히 신뢰도가 높고, 사건의 정황을 잘못 파악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방부가 감청을 통해 ‘연유(燃油)를 발라서 태우라고 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군 당국이 그날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군과 미군은 다양한 첩보 능력으로 북한군 움직임을 꽤 상세하게 파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당국자는 “정부가 그 정도로 발표할 때에는 한두 가지의 첩보에 의존하는 게 아니다”며 “첩보를 얻어낸 과정과 방법을 보호하기 위해 구체적인 과정을 밝힐 수는 없지만,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다”고 말했다. 국방위 소속인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미 연합 정보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팩트 중심으로 분석된다”고 강조했다.

총격 사건 당시에도 미국의 첩보 정찰기가 한반도 상공을 비행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사건 당일인 9월 22일 오후 통신감청 정찰기인 RC-135V/W(리벳조인트)가 서해 상공을 비행했다고 전했다. 정찰기는 550㎞ 범위 안에서 전자·통신 정보를 탐지할 수 있다. 미군은 다양한 정찰기를 투입해 대북 감시망을 가동한다. RC-12X(가드레일) 정찰기도 한반도에 자주 등장한다. 가드레일은 370㎞ 거리까지 통신·교신을 감청한다. 항공 정찰 통합 전자 시스템(ARIES, 에리스)을 싣고 최대 250㎞까지 탐지하는 P-3E도 한반도 주변을 비행하며 북한 지역에서 나오는 통신을 잡아낸다.

한·미 정보자산 총동원해 실시간 첩보


▎사망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오른쪽 둘째)가 10월 6일 서울 용산 국방부 민원실 앞에서 조카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읽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군은 신호정보 수집기인 ‘백두’를 투입해 북한에서 나오는 전자정보를 수집한다. ‘777’(일명 스리세븐) 사령부에서 신호정보 수집과 분석을 맡는데, 비밀스러운 이 부대의 존재와 능력은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 출신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에서 언급됐다. NSA의 지원을 받는 한국 내 감청 기지는 총 22곳으로, 이 중 12곳은 지상의 고정 시설, 8곳은 이동식이며 해상과 공중에서 운용하기도 한다. NSA의 한국 지부인 ‘서슬락(SUSLAK)’에는 777 사령부 요원과 주한미군이 함께 근무하며 24시간 쉴 틈 없이 첩보를 공유하고 분석한다고 한다. 스노든은 ‘스테이트룸 작전(Operation Stateroom)’도 언급했는데 크기가 작은 소형 안테나로 감청뿐 아니라 인터넷 통신 내용도 가로챌 수 있다.

NSA는 미국 첩보 능력의 일부에 불과하다. 상위기구인 국가정찰국(NRO)은 신호정보(SIGINT, 시긴트) 수집에 특화된 네메시스(NEMESIS)·레이븐(Raven)·오리온(Orion) 위성 등을 우주에 띄워놨다. 위성의 안테나는 레이더 전파(ELINT), 미사일 텔레메트리(MASINT), 통신(COMINT) 등 지구상 모든 전파를 잡아낸다.

미군은 잘 듣는 것뿐 아니라 잘 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해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우리는 북한에 대해 잘 안다. 구석구석(every inch)까지 안다”며 대북 정찰 능력을 과시했다. KH-12·13(키홀) 위성 등 다양한 영상 감시 위성이 촘촘하게 한반도 상공을 지나가며 살펴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24시간 위성으로만 감시하기는 어렵다. 빈틈은 정찰기로 메운다. 고고도 전략 정찰기 U-2S(드레곤 레이디)는 휴전선 인근에서 최대 7~8시간씩 비행한다.

한국도 대북 첩보에서 강점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북한 인접 지역에서 얻는 감청 정보와 사람을 통해 얻는 정보(휴민트)에선 우리가 미국에 비해 유리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함께 공유한 첩보가 융합되면 꽤 정확한 대북 정보가 만들어진다. 지난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유고설이 돌던 때도 정부가 김 위원장의 건재를 확신했던 배경이다. 당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정부는 특이 동향이 없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군 당국은 이번 총격 사건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관련 정황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사안을 공개하기도 했다. 군 관계자는 “상당한 수준의 비밀을 언급한 것과 다름없다”며 “내부적으론 이 정도까지 공개해도 괜찮을까 걱정이 있었지만 한 점의 의혹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최대한 관련 정황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전통문을 보내 변명을 꺼내면서도 총격 시간을 언급하지 않는 등 주장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이는 장시간 이씨와 접촉했던 정황을 감추고 우발적인 상황에서 총격이 이뤄졌다는 북한 측 주장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아닌 한국 내부에서 나오는 다양한 논란을 보면 군 당국이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유족은 여전히 이씨가 자진해 북한으로 올라갔다는 해경과 군 당국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는다.

10월 9일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은 해수부로부터 입수한 ‘무궁화 10호 선원 13명의 진술조서 요약 보고서’를 공개했다. 해경이 9월 23~24일 무궁화 10호 동료 선원 15명 중 13명을 상대로 이씨의 최근 개인 동향과 사건 당일의 정황에 대해 조사를 벌인 내용이다. 월북 가능성을 묻는 말에 답변한 사례를 보면 “평소 북한에 대해 말한 적 없고 월북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이혼했고 금전적으로도 문제가 있어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아 자살이라고 생각한다” 등 월북을 부정하거나 다른 가능성을 제기한 경우도 있다.

앞서 10월 7일 열린 합참 국정감사에서 이 의원은 “자력 월북을 하려면 가까운 연평도에서 하면 되는데 38㎞를 헤엄치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정부가 판단한 월북 가능성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보였다. 해경 조사에 응답한 동료 진술에서도 “조류도 강하고 당시 밀물로 (조류가) 동쪽으로 흘러가는데 부유물과 구명동의를 입고 북쪽으로 헤엄쳐 갈 수 없다”며 지적한 부분과 맥을 같이한다.

유족 항변에 개인정보 흘린 군 당국


▎10월 3일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해경 경비함들이 사망 공무원의 시신 및 유류품을 수색하고 있다. / 사진:해양경찰청
하지만 해경은 이씨가 월북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홍희 해경청장은 10월 8일 국회 국정감사에 이씨의 자진 월북에 무게를 뒀다. 해경 관계자 등에 따르면 정부는 개인적 동기가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최근 이혼했고 불어난 빚 문제가 거론됐다. 총격 당시 구명의를 착용했고 별도의 부유물을 준비했기 때문에 사전에 월북을 준비한 정황이라 해석하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연평도에서 월북을 시도하면 해병대 또는 해군에 포착된다”며 “낮에는 잘 보이기 때문에 밤에 시도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 장관은 실종 당일 합참에서 “조류 흐름을 고려할 때 북측으로 표류해 들어갔을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군과 해경은 표류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수색을 했다. 당시 수색 상황도를 확인한 결과, 실종 이튿날인 9월 22일 해군 초계기와 고속정, 해경 헬기와 함정은 이씨가 총격을 받은 등산곶 앞 해상에서 20여㎞ 떨어진 곳에서 수색을 벌였다. 자연스럽게 표류할 경우 주로 연평도 남쪽에 머물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월북이 갖는 특별한 의미와 개인정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유족이 받는 감정적인 상처를 살폈다면 신중하게 정보를 공개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씨의 월북 정황을 강조하기 위해 과도한 개인정보 공개가 이뤄졌다는 뜻이다.

논란의 본질은 북한의 비인도적인 총격 자체에 문제가 있고, 사건 이후 드러난 정부의 민첩하지 못한 대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를 지적하는 입장에선 남북관계 중시와 북한 눈치 보기 때문에 악화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대북 첩보의 정치적 편향성은 지난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에도 논란이 된 바 있다. 적시에 제공해야 할 대북 위협 첩보와 정보가 정치적 상황 때문에 왜곡되거나 제한적으로 공유된다는 부분이다. 당시에 북한의 도발 의도를 파악하고도 현장 부대에 이를 알리지 않아 기습 공격의 빈틈을 허용했다는 지적이 사후에 제기됐다. 남북관계를 중시할 경우 대북 위협을 축소한다는 논란이 나온 배경이다.

북한의 비인도적 살해, 정부의 미온적 대처

9월 22일 오후에 북한군이 이씨를 접촉한 정황을 포착하고도 총격으로 사망할 때까지 6시간 동안 아무런 조처를 하지 못했다는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강조된다. 정부는 “첩보를 수집하던 상황으로 정보 수준을 분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실시간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 관계자들은 “당시 얻은 첩보는 사실상 정보 수준으로 신뢰성이 높았다”며 발 빠르게 대처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외부에서 제기하는 논란에 설명이 궁색할 땐 정부가 먼저 나서서 관련 첩보를 선택적으로 흘렸다. 정부가 강조하던 군사비밀 보호라는 신념은 그 존재를 찾기 어려워졌다. 정작 필요할 때 정부 내 정보공유는 막혔다. 이씨가 9월 22일 저녁에 이미 사망했지만, 이를 알지 못한 해군과 해경은 9월 23일에도 실종자 수색작전에 투입돼 헛심을 쓰고 말았다.

총격 사건에 대한 ‘9·19 군사합의’ 위반 논란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에서도 북한 눈치 보기가 엿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 장관은 ‘적대행위에 해당하느냐’는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포괄적으로 크게 보면 적대행위로 볼 수 있다”면서도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9·19 군사합의 위반이냐’는 질문에도 “전반적으로 합의 정신에 위배된다”면서 명확한 답을 피했다.

북한은 전통문이나 이후 나온 보도문에서 9·19 군사합의에 관한 어떤 언급도 꺼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북한이 보낸 전통문을 공개하면서 동시에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주고받은 친서를 공개했다. 남북한 정상 간 신뢰에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에서 비난의 수위를 누그러뜨리려는 의도가 짙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정부의 노력에도 북한은 진상 규명에 협조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서 장관은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군 당국과 북측 발표의 차이점에 대해 “진상 규명이 돼야 하며 공동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9월 27일 서 주석 NSC 사무처장은 “남과 북이 각각 파악한 사건 경위와 사실관계에 차이점이 있으므로 조속한 진상 규명을 위한 공동 조사를 요청한다”며 이날 문 대통령 주관으로 가졌던 안보장관회의의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북한에선 10월 15일까지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금강산 총격 사건 때도 북한은 유감 표명과 재발 방지를 언급했지만 공동조사는 거부했다”며 “전통문에서 김 위원장 유감을 전달한 수준으로 상황을 종료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정부의 눈치 보기와 북한의 오리발 때문에 또 다른 의혹이 굳어지고 한국 사회 내부 혼란은 더 커지게 된 모양새다.

- 박용한 중앙일보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202011호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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