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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 반도체 이후 미래 먹거리(2) 전기차 배터리] 한·중·일 3국의 무한경쟁 펼쳐지는 2차전지 산업 

시장 규모 1000억 달러의 ‘제2 반도체 시장’ 

점유율 세계 1위 LG화학, 배터리 표준 세우며 중국 CATL, 일본 파나소닉 눌러
삼성SDI·SK이노베이션이 맹추격… 테슬라의 배터리 자체 개발도 변수


▎LG화학이 GM의 고급차 브랜드 캐딜락과 함께 개발한 전기차 리릭.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시스템 ‘얼티엄’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 사진:캐딜락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올 9월 22일 연단에 올랐다. 평소에도 큰 관심을 받는 머스크였지만, 이날은 훨씬 더했다. 그가 ‘엄청난 발표’를 예고한 데 따른 기대감이 무대를 감쌌다. 이 자리에서 머스크가 테마로 잡은 것은 전기차 2차전지(배터리)였다. 행사 이름도 ‘배터리데이’였다. 그는 이날 새로운 배터리를 공개했다. 테슬라 차세대 전기차에 쓰일 ‘4680 배터리’였다. “기존 배터리 셀(2170) 대비 용량은 다섯 배, 출력은 여섯 배가 크고 주행거리는 16%나 늘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터리 셀의 숫자는 크기를 나타낸다. 앞의 두 자리는 셀 단위당 지름, 뒷자리는 높이다. 기존 21㎜ 배터리 셀 지름을 46㎜로 확 키우고, 높이도 70㎜에서 80㎜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테슬라 CEO 머스크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새 배터리 셀의 세부 규격까지 밝혔다. 그만큼 전기차에서 배터리가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배터리의 성능을 개선하고 원가를 낮추면, 전기차 시대가 훨씬 빠른 속도로 온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전기차 원가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30~40%에 이른다. 테슬라는 그들에게 배터리를 공급하는 LG화학, 파나소닉, CATL 등과 협업은 계속하겠지만 직접 배터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향후 배터리 수요가 공급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 생산공정 단순화와 대규모 생산능력 확보 등으로 지금보다 배터리 생산 비용을 56% 낮추겠다고 했다.

배터리데이 이후 언론 평가를 요약하면 “기대했던 것보다 별것 없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산업계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달랐다. “테슬라 배터리데이를 기점으로 글로벌 자동차 업체와 배터리 업체 간 합종연횡, 기술개발이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한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테슬라의 ‘2년 이내에 배터리 가격을 절반으로 낮추겠다’는 선언은 매우 도전적인 과제”라며 “이 말이 실현되면 자동차 산업의 판도는 보다 빠르게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4년 뒤면 보조금 안 받아도 자립


테슬라는 전기차를 대중에 알리고 보급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3년 전만 해도 전기차는 ‘먼 미래’로 여겨졌지만 요즘은 아니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바꿀 때 전기차 모델을 한 번쯤은 고민할 만큼 ‘현실’이 됐다. 배터리 성능이 급격히 개선되고, 가격이 내려간 요인이 결정적이다.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gy)에 따르면 배터리 셀의 에너지 밀도는 2013년 ℓ당 130Wh 수준이었던 것이 2016년 300Wh에 도달했고, 현재는 800Wh까지 올랐다. 밀도가 오르자 주행거리는 확 길어졌다. 2016년 전 세계에 출시된 전기차의 주행거리 중위값은 134㎞에 불과했다. 최근 테슬라는 한 번 충전에 670㎞를 가는 전기차를 선보였다. 가솔린차가 기름통을 가득 채운 뒤 달리는 것과 비슷하다. 운전자가 배터리 방전을 걱정하며 노심초사하는 상황은 ‘옛일’이 되고 있다.

반면 배터리 가격은 빠르게 내려가고 있다. 리튬이온 전기차 배터리팩의 지난해 평균 가격은 1㎾h당 156달러로, 2010년 1000달러 대비 84.4%나 하락했다. 배터리 셀에 들어가는 가장 비싼 원료인 코발트 함량이 감소하고 저렴한 니켈과 망간 비율이 높아진 영향이 컸다. 여기에 배터리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규모의 경제 효과’가 발생했고, 배터리 생산 업체들이 생산 노하우를 쌓아가며 공장 효율을 개선한 것도 가격을 낮춘 요인이었다.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는 2024년 배터리팩 가격이 ㎾h당 100달러 밑으로 떨어지리라 예상하고 있다. 100달러 이하면 내연기관 자동차와 가격이 엇비슷해진다고 배터리 업계에서는 본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보조금을 받지 않고도 전기차를 살 만하다는 얘기다.

배터리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테슬라 혼자 이뤄낸 것이 아니다. 배터리 업체들의 대규모 기술 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이 투자에 나선 것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본격적으로 배터리 시장이 커져 경쟁이 치열해지기 전에 기술을 확보하고 입지를 다지겠다는 포석이었다. 배터리 시장 규모는 배터리 업체들의 예상처럼 빠르게 커졌다. 2016년 글로벌 배터리 시장 규모는 150억 달러였다. 3년 만인 지난해 이 규모는 388억 달러로 두 배 이상 뛰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향후 5년간 배터리 시장의 연평균 시장 성장률이 25%에 이를 것으로 본다. 2026년 1000억 달러에 근접할 것이란 예상이다. 배터리가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불리는 이유다.

배터리 경쟁에서 한국은 앞서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세계 각 나라에 등록된 전기차의 배터리 에너지 총량은 64.7GWh였다. 순수 전기차(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하이브리드차(HEV) 등을 모두 합한 숫자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배터리를 공급한 데가 LG화학이었다. 총 15.9GWh에 달해 시장 점유율 24.6%를 기록했다. 또 4위에 삼성SDI(시장점유율 6.3%), 6위에 SK이노베이션(4.2%)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 한국 기업 3사를 합친 시장점유율은 35.1%에 달했다.

한국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는 나라가 중국과 일본이다. 세계 전기차 시장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중국은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주고 물량을 몰아줘 대대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중국 CATL의 올 1~8월 전기차용 배터리 물량은 15.5GWh. 근소한 차이로 1위 LG화학에 뒤처졌다. 시장점유율은 24%였다. 또 중국 BYD가 점유율 5.8%로 5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3위에 파나소닉이 이름을 올렸다. 테슬라 설립 초반부터 이 회사에 배터리를 공급 중인 파나소닉은 시장 점유율 19.2%를 기록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가 배터리 시장을 놓고 대결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들 3국의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90%를 넘어 세계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이 같은 3국 간 ‘동시 경쟁’은 생소한 것이다. 원래 전통적인 제조업에서는 일본이 늘 앞서갔다. 일본이 시장을 개척하면 한국이 빠르게 추격하는 ‘빠른 추격자’ 전략을 취했다. 이후 중국이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최대 제조국 지위를 차지하곤 했다. 하지만 배터리 시장에선 동시에 함께 경쟁하고 있다.

배터리,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떠오르다


▎최태원 SK 회장(가운데)이 SK이노베이션 서산공장에서 배터리 셀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사진:SK이노베이션
여건은 조금씩 다르다. 일본은 자동차 산업을 이끄는 도요타가 전기차 대신 수소차를 미래 자동차로 선정한 영향이 시장을 선점하지 못한 이유로 꼽힌다. 파나소닉 등 일본 배터리 기업은 기술력 면에서 과거 가장 앞서갔지만 투자에는 소극적이었다. 자동차 배터리를 개발해도 자국 내에서 팔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춤하다가 투자 시기를 놓쳤고, 한국과 중국에 기술을 확보할 시간을 내줬다.

중국은 달랐다. 단숨에 전기차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테슬라 등 해외 기업이 공장을 짓고 전기차를 생산하면 자국 배터리를 쓰게 했다. 보조금 대상에서 한국 등 해외 기업 배터리는 제외했다. 자연스럽게 자국의 전기차, 배터리 산업이 커졌다.

한국은 기업들이 매우 적극적이었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에 들어가는 소형 배터리를 제조한 경험이 기반이 됐다. 특히 삼성전자 스마트폰용 배터리를 공급하는 삼성SDI, 석유화학 기업에서 배터리 기업으로 변모한 LG화학이 그 중심에 섰다. 수요처가 불확실한 가운데 대량 생산시설을 짓고 기술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빚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은 해외로 나갔다. 미국·중국·유럽 등 다양한 수요처를 확보했다.

국내 배터리 기업은 저마다 강점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 LG화학의 경쟁력이 가장 높다는 평가를 듣는다. 기술력, 생산능력, 특허, 수주잔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가장 큰 성과를 내고 있다.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수주 잔고는 2017년 말 42조원이었다. 이듬해인 2018년 상반기 60조원을 넘겼고, 그해 말에는 78조원에 이르렀다. 작년 말 기준으로 150조원까지 올랐다. 고객사도 다양하다. 국내에선 현대차와 기아차에 배터리를 공급 중이고 미국의 GM·포드·크라이슬러 등과도 거래하고 있다. 또 유럽 폴크스바겐, 르노, 볼보, 아우디, 다임러, 메르세데스벤츠, 재규어, 포르쉐 등도 LG화학 배터리를 쓴다. 이는 테슬라에 치우친 일본 파나소닉, 자국 내수시장 위주인 중국 CATL과 큰 차이다.

이렇게 확보한 ‘일감’을 바탕으로 LG화학은 빠르게 생산 능력을 늘리고 있다. 충북 오창과 미국 미시간 홀랜드, 중국 난징, 폴란드 브로츠와프 등 4곳이 현재 주력 공장이다. GM과 미국에 배터리 합작법인을 세우고 공장을 짓고 있기도 하다. LG화학은 연말까지 연간 생산능력을 100GW 이상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이는 1회 충전 시 380㎞를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 165만 대에 쓰일 수 있는 양이다. 2023년까지는 생산 능력을 200GWh로 늘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특허도 LG화학이 내세우는 부분이다. 배터리 관련 특허가 약 2만2000건에 달한다. 전기차뿐 아니라 에너지저장장치(ESS), 소형 전지, 원통형 전지 등 2차전지 대부분의 분야에서 특허를 갖고 있다. 특히 LG화학은 내부 공간을 극대화해 에너지 밀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원천 특허 ‘래미네이션&스태킹’(lamination&stacking), 배터리 분리막의 표면을 세라믹 소재로 얇게 코팅해 안전성과 성능을 크게 끌어올린 ‘안전성 강화 분리막’ 등 기술적 우위가 가장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故 구본무 회장의 숙원 이룬 LG화학


▎구광모 LG 회장(오른쪽 두번째)이 LG화학 기술연구원을 찾아 3세대 전기차용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LG
LG화학이 앞서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1998년부터 20년 이상 배터리 사업에 꾸준히 투자한 결과였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배터리 사업에 의지를 갖고 추진한 것이 시작이었다. 구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때 정부 주도의 ‘빅딜’(사업교환)로 반도체 사업을 현대전자에 넘긴 것을 내내 아쉬워했다. 반도체 산업 성장을 예측했으나,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이후 그가 눈을 돌린 것이 배터리였다. 영국 출장길에 2차전지를 본 것이 계기였다. 충전했다가 다시 쓸 수 있는 배터리는 그에게 새로운 사업 기회로 여겨졌다.

LG화학은 2000년 미국에 법인을 설립하고 배터리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일본이 자동차 배터리로 니켈수소 배터리에 집중한 것과 달리, LG화학은 리튬이온 배터리로 방향을 잡았다. 이후 LG화학은 석유화학 사업에서 번 돈을 배터리에 투자, 기술력을 쌓았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이후 자동차 배터리의 ‘표준’이 됐다. 표준을 장악한 LG화학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게 된 비결이다.

삼성SDI는 LG화학과는 다소 다른 길을 갔다. 이 회사는 원래 계열사 삼성전자에 주로 배터리를 공급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세계 1위에 오른 비결 중 하나가 삼성SDI 배터리 덕분이었다. 삼성SDI는 2000년대 중반 전동 공구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전동 공구에 2차전지가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업체들이 90% 이상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2007년 독일 기업 보쉬로부터 배터리 부문 최고 품질상을 받는 등 빠르게 기술 격차를 따라잡아 결국 1위가 됐다. 자동차 배터리 시장에서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 주요 타깃 시장을 중국과 유럽으로 정했다. 스마트폰, 전동 공구, ESS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익이 나는 계약 위주로 사업을 추진했다. 투자 또한 급격히 생산량을 늘리기보다는 차세대 배터리와 소재 개발 등에 주력했다.

SK이노베이션은 전자사업이 있는 삼성, LG와 상황이 달랐다. 배터리를 생산해도 초반에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할 그룹 계열사가 없었다. 이 때문에 배터리 사업을 1982년 매우 빨리 시작하고도 본격적인 사업 전개는 2010년대부터 했다. 현대자동차 ‘블루온’에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공급하면서부터다. 최근 8년간 10조원 이상의 자금을 쏟아부으며 배터리 사업을 빠르게 확장했다. SK이노베이션은 생산 규모를 올해 20GWh, 2023년 71GWh, 2025년 100GWh로 빠르게 확대할 계획이다. 또 배터리 완성품뿐 아니라 분리막 등 배터리 소재 내재화를 통해 수직 계열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배터리 사업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험 요인들도 산재해 있다. 전기차가 빠르게 늘면서 화재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이다. 지난 10월 현대자동차는 자사의 전기차 코나EV에 대한 리콜을 결정했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브라질·인도 등 해외에서 판매된 코나EV 7만7000대가 대상이다. 코나EV 화재 사고는 국내 9건, 해외 4건 등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13건에 이른다. 현대자동차는 우선 배터리 셀을 문제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잇단 화재와 기술 분쟁은 리스크 요인


▎중국 시안에 투자한 삼성SDI 전기차용 중대형 배터리 공장. / 사진:삼성SDI
현대자동차뿐만이 아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GM의 전기차 쉐보레 볼트EV 화재 사건을 접수하고 예비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로이터 등이 10월 14일 보도했다. 조사 대상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생산된 쉐보레 볼트EV 7만7842대다. NHTSA 측에 접수된 화재 사건 세 건은 모두 뒷좌석 밑부분에서 발생한 불이 내부로 옮겨붙은 것으로 나타났다.

BMW도 최근 PHEV 차량의 화재 위험성 탓에 2만6700대에 대한 판매 중단과 리콜에 들어갔다. BMW 측은 “배터리 충전 시 화재 위험이 있어 당분간 충전을 하지 말라”고 고객들에게 권고했다고 밝혔다. 해당 차량은 SUV 모델인 X시리즈부터 3·5·7시리즈, 미니 컨트리맨 등이다. BMW는 독일에서만 1800대가량을 회수했고, 이미 생산한 3500대는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중국에선 앞서 지난 8월 CATL 배터리가 들어간 전기차에서 잇단 화재가 발생했다. 중국 광저우기차(GAC)의 ‘아이온S’ 모델에서 세 차례나 불이 나 배터리 결함 이슈가 제기됐다. 전기차 화재의 대부분은 배터리와 관련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배터리 성능을 높이다 보니, 안정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화재 사고가 전기차에 대한 전반적 불신으로 번지지 않을까 이들은 우려하고 있다.

기술 분쟁 우려도 상당하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기술 분쟁이 대표적 사례다. 2019년 4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미국 법원에 제소한 것이 분쟁의 시작이었다. LG화학에서 배터리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들이 무더기로 SK이노베이션으로 옮겨가자 LG화학 측은 이들이 이직하면서 영업비밀을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당초 양측은 제소 이후 합의를 시도했지만 불발됐다. 합의금으로 LG화학 측이 ‘수조원’을 언급하자 SK이노베이션 측이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후 양측 간 ‘진흙탕 싸움’이 이어졌다.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 침해에 대응해 LG화학을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미국에서 제기했고, 여기에 LG화학은 또다시 특허 침해 맞소송을 제기해 소송에 소송이 더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양측은 법정 공방이 이어지는 중에 이례적으로 장외 ‘설전’도 펼쳤다. LG화학 측에서 SK이노베이션의 자료 삭제를 문제 삼자, SK이노베이션은 ‘억지 주장’이라며 “소송에 당당하게 임하라”고까지 훈계했다.

재계에선 국내 간판 기업 간 분쟁 탓에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주도권을 빼앗길 것을 우려한다. 특히 중국 CATL은 실질적 위협이다. 코로나19 탓에 중국 내 전기차 시장이 주춤한 영향이 있지만, 언제든 세계 1위로 올라설 저력이 있다. 실제 CATL은 최근 테슬라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고, 지난해 BMW 등 유럽 자동차 업체들의 주요 공급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LG화학 관계자는 “기술 침해 분쟁과 한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반드시 바로잡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 안재광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ahnjk@hankyung.co.kr

202011호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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