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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서양사 현장르포 - 승자의 조건, 패자의 교훈(23)] ‘통일 갤러리’ 밀라노 브레라 38호실 

‘전면전의 부재’가 평화라면 이탈리아는 없었다 

집 떠나는 젊은 통일 의용군 그린 ‘키스’ 등 10점 전시
평화 자체가 목적? 실상은 권력의 현상유지 정당화 수단


▎지난 3월 한 여성이 이탈리아 밀라노의 브레라 뮤지엄 앞을 지나고 있다. 건물 벽면에 하예즈의 명화 ‘키스’ 포스터가 걸려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민주주의 종언을 한순간 기습공격에 의한 암살 같은 식으로 본다면 오산이다. 냉담(Apathy)과 무관심(Indifference), 지적 결핍(Undernourishment)이 존재하는 한, 서서히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것이 민주주의다.”

20세기 후반 미국 교육철학가로 유명한 로버트 허친스(Robert M. Hutchins)가 남긴 명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본격화된 ‘평화론’을 보면서 떠오른 단상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평화는 문재인 정부를 가늠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평화야말로 문재인 정권 최대의 업적이란 식의 얘기도 듣게 된다.

그러나 평화는 보는 각도에 따라 백인백색 다르다. 문 대통령의 경우 ‘지금 당장 전면전이 없는 상황’을 평화라 말하는 듯하다. 미사일을 쏘거나, 핵탄두 탑재 잠수함이 한반도 전역을 돌아다닌다 해도 평화다. 휴전선을 넘어 전면공격에 나서지 않는 한 한반도는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식이다. 심지어 한국 시민이 북한군에 사살되더라도 전면전이 아닌 한 평화다.

평화통일과 ‘평화와 통일’의 차이


▎브레라 뮤지엄에 전시된 가리발디 의용군 제복. 붉은색은 의용군의 상징으로 쓰였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50대인 필자 세대의 경우, 평화의 의미는 ‘통일’이란 말로 연결해 이해한다. 평화라고 하면 곧바로 통일이 따라붙는다. 다시 말해 ‘평화통일’이다. 가히 국시(國是)라 불러도 될 개념이라고나 할까? 평화통일은, 통일을 평화적으로 행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북진통일·무력통일의 정반대 개념으로서의 평화통일이다. 전쟁 없이 대화를 통해 평화롭게 통일을 이루자는 것이 적어도 20세기까지의 대한민국 국시였다.

문재인 정부는 어떨까? 평화통일이 아닌, ‘평화와 통일’로 확실히 분리한 상태로 읽힌다. 문 대통령이 최근 행한 발언을 살펴보자.

“평화와 통일은 온 겨레의 숙원이며 우리의 헌법 정신이다.” (2020년 6월 15일 남북공동성명 20주년 기념사)

“만남과 대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2020년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 2주년 기념사)

평화통일과 ‘평화와 통일’이 오십 보 백 보로 비슷한 것 아니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한 꺼풀만 뒤집고 들어가 보면 전혀 다르게 풀이될 수 있는 말이다.

20세기 국시 격인 평화통일은 통일을 전제로 한 ‘수단’으로서의 평화다. 평화가 목적 그 자체는 아니다. ‘통일이란 목적을 위해 평화로운 방법을 선택한다’라는 것이 평화통일관의 출발점이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통일이 안 될 경우 평화를 지킬 이유가 없다는 의미로도 풀이될 수 있다. 주(主)가 통일, 종(従)이 평화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어떨까? ‘평화와 통일’은 평화와 통일을 주종 관계가 아니라, 전부 주인공으로 여기는 세계관으로 해석된다. ‘통일을 위한 평화’라는 개념과 다르다. 평화도 중요하고 통일도 중요하다. 어느 하나만을 위해 서로 양보할 수 없다. 좋게 보면, 평화와 통일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자는, 21세기판 진화된 개념이다.

그러나 다른 각도로 보면 죽도 밥도 아닌,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먼저 평화의 개념이 모호하다. 김정은의 미사일이 한반도를 넘나들고 국민이 총살 화형을 당해도 평화라 믿고, 주어도 애매한 김정은 편지 하나에 감읍하는 식의 자세가 평화라 불릴 수 있을까? 운동권의 가사에 자주 나오지만 ‘무릎 꿇고 사느니 목을 내놓겠다’는 식의 결전 의지와 무관하다. 비겁하고도 비굴하며 무책임하더라도 전면전이 없는 한 평화다. ‘이게 평화냐’고 되물으면, ‘그렇다고 전면전으로 나서라는 말이냐’라는 식으로 몰아갈 것이다.

‘평화와 통일’ 개념에 기초해볼 때, 통일은 어떤 식으로 이뤄질까? 평화가 쌓여서 상호신뢰가 이뤄질 경우 자연스럽게 통일로 이어진다고 본다. 통일을 위해 인위적으로 노력하기보다 평화가 지속될 경우 통일은 결과물로서 나타날 것이란 의미다. 해상에서의 한국인 총살 화형 이후 김정은이 보냈다는 편지는 남북 상호신뢰의 증거로 제시된다.

바다에 표류하던 공무원 한 명의 총살 화형에 그치지 않는다. 어선 전체가 불타고, 미사일 하나가 대한민국 어딘가에 떨어져도 실수나 유감으로 얼버무리는 식의 평화론이 득세할 수 있다. 사과 편지 하나에 상호신뢰가 급신장하면서 통일로 갈 수 있다고 자랑한다. 그런 식의 평화와 상호신뢰라는 것이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국 통일은 끼워 넣기 조미료에 불과할 뿐이다. 애초부터 통일은 염두에도 없다. 통일이 아니라, ‘전면전은 없는 평화’만이 전부인 건 아닐까.

그렇다면 평화의 의미는 무엇일까? 권력유지다. ‘평화를 지켜나가기 위해 20년, 30년 장기집권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전면전이 없다는 자화자찬과 함께, 상호신뢰 증진을 위한 친북 활동도 가속화된다. 남과 북, 각각 권력을 유지하면서 20~30년간 함께 가자는 장기집권론이 ‘평화와 통일’이란 논리의 실체라 볼 수 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통일은커녕 거꾸로 반(反)통일 논리가 ‘평화와 통일’의 이면에 드리워져 있다.

영화 [대부(代父)]에 보면, 피격된 말론 브란도가 아들 알파치노에게 흥미로운 경고 하나를 전해준다. “내가 쓰러진 뒤 가장 먼저 너에게 다가와 평화를 주장하는 자가 나의 암살자다.” 평화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패권과 권력이 진짜 목적이다.

적어도 대한민국 구성원이라면 통일을 갖고 장난을 쳐서는 안 된다. 방법론이란 측면에서는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20세를 넘어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는 한반도의 지상 명제가 통일이다. 일본 도쿄 국회의사당 주변에 가면 일본이 규정하는 평화가 뭔지 알 수 있는 비석이 하나 들어서 있다. ‘북방영토가 돌아오는 날이 평화의 날(北方の領土かえる日,平和の日)’. 1945년 8월, 패전 직전 소련에 점령당한 4개 섬의 반환이 일본 평화의 원점이란 의미다. ‘통일되는 그날이 한반도 평화의 날’까지는 요구하지도 않는다. 위선·수단·권력으로서가 아닌, 진실·목적·순리로서의 통일관이 절실하다는 말이다.

통일은 21세기에도 계속될 한반도의 최대 이벤트이자 국시 그리고 숙명이다. 신라 중심의 통일 역사를 언젠가 맞이할 통일의 교본으로 삼자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1300여 년 전 통일 교본을 21세기에 적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대·환경·사람이 변했기 때문이다. 민족을 근거로 한 통일론이 주효하겠지만, 백인백색으로 나눠진 민주주의 체제 하의 이해관계가 민족론 하나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伊 통일 반세기사 담은 브레라 38호실


▎하예즈의 1867년 작 ‘피옴보 계단에 선 마리노 팔리에로 최후의 순간’. 왕정 쿠데타를 시도한 베니스 총독 팔리에로의 마지막을 그렸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그러나 통일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 통일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면서 풀어나갈지에 관한 교본은 수없이 많다. 정신과 마음에 관한 부분이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과정을 보면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합칠 때의 정신이나 마음 자세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이탈리아 통일 과정을 21세기 한반도에 적응하자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당시를 살아간 보통 이탈리아인들의 정열과 결의, 그리고 분위기에 관한 부분이다. 정치가와 혁명가, 이념가의 깊고도 통 큰 생각이 아닌, 생계를 걱정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보통 시민들의 생각에 관한 것이다. 세계 문화·문명의 중심, 고대 로마의 후손 이탈리아는 과연 어떤 마음가짐으로 통일에 임했을까?

이탈리아 밀라노의 브레라 뮤지엄(Pinacoteca di Brera)은 19세기 통일 역사를 이룩해낸 이탈리아인들의 정신과 자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당시의 상황을 명화로 표현한 작품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눈을 통한 체험은 가장 쉽고도 간단한 증거다. 주로 유화로 표현된 크고 작은 그림들을 통해 통일 전후의 보통 이탈리아인들의 심정을 가늠할 수 있다. 대제국 로마의 후손이라고 하지만, 갈라진 나라를 하나로 엮어가는 과정에서 이탈리아인이 보여준 시련과 인내 그리고 정열을 발견해낼 수 있다.

브레라의 간판으로 통하는 그림은 ‘키스(Ilbacio)’라는 타이틀의 유화다. 베니스 출신의 프란체스코 하예즈(Francesco Hayez)가 그린, 가로 88㎝, 세로 110㎝ 크기의 아담한 작품이다.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예술에 문외한이라도 어디선가 한 번쯤 본 그림일 듯하다. 대리석 벽과 계단을 배경으로 한 남녀의 뜨거운 키스 장면이 그림 한가운데에 들어서 있다. 얼굴 모습이나 표정도 알 수 없지만, 키스로 연결된 남녀의 불타는 사랑이 그림 밖으로 번질 듯한 구도다. 제작연도가 1859년이란 점을 고려하면, 시대를 뛰어넘은 이탈리아만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비친다.

필자에게 명화 ‘키스’와의 만남은 연례행사와 같다. 밀라노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브레라이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브레라=키스’로 느껴진다. 카라바지오(Caravaggio)와 라파엘(Raphael)의 성화도 있지만, 왠지 ‘키스’야말로 자유의 도시 밀라노에 어울리는 아이콘이라 느껴진다. 밀라노는 패션의 도시만이 아닌, 지적으로도 가장 리버럴한 도시로 통한다. 유럽 공산당과 사회당의 본거지가 밀라노다. 명화 ‘키스’는 밀라노에서 탄생한, 밀라노만의 캐릭터로 통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최근 브레라에 들른 것은 코로나19가 퍼지기 직전인 지난해 12월이다. ‘키스’는 브레라의 2층 마지막 갤러리 제38호실에 전시돼 있다. 티켓을 끊은 뒤 1층부터 하나씩 살피면서 관람할 경우 제일 마지막으로 만나는 명화가 ‘키스’다. 38호 갤러리에 전시된 그림의 중심 테마는 통일이다. 다시 말해 19세기 이탈리아 통일에 관련된 그림들이 브레라 뮤지엄의 마지막 전시화들이다. 따라서 38호 갤러리는 보통 ‘통일 갤러리’라고도 불린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점(点)에서 선(線), 그리고 면(面)으로 이어지는 입체적 분석이 필요하다. 유명 뮤지엄의 경우 전시 작품 곳곳에 비밀 코드(Code)를 심어놓는다. 큐레이터의 심중을 관람객이 이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뮤지엄은 눈으로 보는 곳만이 아닌,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머리싸움의 공간이기도 하다. 점·선·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큐레이터가 숨겨놓은 코드를 찾아내면서 입체적 차원의 분석이나 평가가 필요하다. ‘키스’만이 아니라, 갤러리의 구도나 주변 그림들 전부를 통해 총합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심미안이 필요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공부한 만큼 느낄 수 있다.

현장에서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기 전에 미리 머리에 넣은 뒤 현장에서는 재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보통 가로·세로 50㎝ 정도 유화 제작에 걸리는 시간은 적어도 1주일, 길면 1년도 걸린다. 화가의 인생과 정열에 대한 예의라는 의미에서도 미리 공부한 뒤 들르는 것이 좋다.

팔리에로의 피로 ‘통일 공화국’ 결의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으로 꼽히는 하예즈의 1859년 작 ‘키스’. 전장에 나서는 의용군 청년이 연인과 입맞춤하고 있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통일 갤러리에는 모두 10개의 유화작품이 걸려있다. 주인공인 ‘키스’를 중심으로 할 때, ‘키스’ 바로 옆에 각각 한 점씩, 키스의 왼쪽 벽면에 한 점, 오른쪽 벽면에 3점, 그리고 ‘키스’의 반대편 벽면에 3점이 걸려있다. 하나하나 자세히 보면서 풀어가야 전체의 의미를 파악해낼 수 있다. 물론 통일 전후를 지켜본 이탈리아인의 정신과 자세가 10개 그림 전체에 흐르는 공통 주제다. 슬로건이나 명분으로가 아닌, 매일 호흡하고 피부로 느낀 피와 땀의 현실과 현장으로서의 통일 갤러리다. 19세기 통일 이탈리아를 완성한, 보통 이탈리아인의 자화상인 셈이다.

이탈리아가 반도 내 통일을 달성한 것은 1871년이다. 통일 운동이 1820년대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거의 반세기에 걸쳐진 결과물인 셈이다. 이탈리아인은 19세기 이룩된 통일을 ‘리솔지멘토(Risorgimento)’라 부른다. ‘재기·부활’이란 의미다. 대제국 고대 로마의 영광을 재건한 것이란 의미가 함축돼 있다.

브레라 뮤지엄에서의 리솔지멘토 출발점은 ‘키스’ 왼쪽 벽면이다. ‘피옴보 계단에 선 마리노 팔리에로 최후의 순간(The Final Moments of Doge Marino Faliero on the “del Piombo” Staircase)’이란 긴 타이틀의 유화다. 10점 가운데 가장 큰, 가로 192㎝, 세로 238㎝에 달하는 대형 작품이다. 명화 ‘키스’를 그린, 하예즈의 작품이다. 이탈리아 화단에서는 ‘리솔지멘토=하예즈’로 통한다.

팔리에로는 유럽 중세사에 등장하는 비극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1354년 공화국 베니스의 대표자인 도지(Doge, 행정 최고 지도자)에 오른 인물이다. 도지에 오르자마자, 공화국 체제를 왕국으로 바꾸려는 쿠데타를 벌이려다 적발된다. 체포된 뒤 시민법정에서 최악의 형벌에 처해진다. 공개 참수와 사지 절단이다. 관련된 10명도 전부 비슷한 형벌에 처해진 뒤 베니스 시민 모두에게 공개된다. 공화정에 반대할 경우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인지를 보여준, 이탈리아 정치의 기본정신이 팔리에로 그림에 나타나 있다.

통일의 환희 아닌 개인의 고독 느껴져


▎하예즈의 ‘키스’ 양옆으로 인두노 형제의 두 작품이 걸려 있다. 집단의 대의가 아닌, 개인들의 고독과 비장감이 엿보인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피옴보 계단에서 내려오는 팔리에로는 검은 옷을 입고 있다. 공개 참수 형벌이 내려진 직후의 모습일 듯하다. 도끼를 들고 있는 참수 집행자가 그림 하단에 들어서 있다. 붉은 옷을 입은 베니스인들이 차가운 시선과 더불어, 어두운 표정의 팔리에로 얼굴이 인상 깊다. 19세기 이탈리아 리솔지멘토는 폭정과 압제에 대한 반발에서부터 시작됐다. 외부의 개입과 함께 이탈리아 전체가 조각난 채 경제·종교·정신적 수탈이 이어졌다. 하나로 합쳐, 공화정에 기초한 하나의 원칙에 의해 국민 한 명 한 명이 모두 자유롭고 인간답게 살자는 것이 리솔지멘토의 근본이념이다. 반대자는 팔리에르와 같은 운명에 처해질 뿐이라는 강력한 결의가 하예즈 그림 속에 각인돼 있다.

통일 갤러리 중심은 하예즈의 명화 ‘키스’다. 이탈리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그림인 동시에, 리솔지멘토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크게 두 가지 해석으로 나눠진다.

이탈리아 통일을 도와준 프랑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서의 키스가 첫 번째다. 중세풍 붉은 바지를 입은 남자가 이탈리아, 푸른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프랑스로 풀이된다. 리솔지멘토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합스부르크가(家)의 억압정치에서 시작됐다. 나폴레옹 사후의 유럽질서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베니스를 비롯한 이탈리아 국토의 상당수가 오스트리아 수중에 넘어간다. 원흉인 합스부르크가를 타도하는 과정에서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힘을 합친다. 중세 봉건제를 타도하자는 나폴레옹의 혁명이념이 이탈리아 지식인의 시대정신으로 떠오른다.

두 번째 해석은 전장으로 떠나는 통일 의용군의 마지막 인사로서의 키스다. 붉은색은 리솔지멘토를 주도한 가리발디(Garibaldi) 의용군의 상징이다. 이탈리아 곳곳에 존재한 중세체제를 타도하는 과정에서 가리발디 의용군의 도움은 필수적이었다. 통일에 응하지 않는 곳은 의용군이 무력으로 타도했다. 명화 ‘키스’는 붉은 바지 청년이 의용군으로 떠나기 직전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죽음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최후의 순간을 사랑하는 여인에게 바치는 성스러운 장면이다. 숭고하고도 고결한 목적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청년, 그를 지지하고 아끼는 여성과의 애틋하고도 순결한 시간이 화폭에 담겨 있다. 청년이 계단에 왼쪽 다리를 올린 것은 이별의 키스가 끝나는 순간 곧바로 떠난다는 것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키스’의 양쪽에는 리솔지멘토 당시 군인이자 화가로 활동한 형제의 그림이 걸려있다.

왼쪽은 형인 도메니코 인두노(Domenico Induno)의 ‘위대한 희생(Il Grande sacrificio)’, 오른쪽은 동생인 제로라모 인두노(Gerolamo Induno)의 ‘애절한 기분(triste presentimento)’이 걸려있다. 가리발디 의용군으로 떠나기 직전 어머니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는 청년, 손에 적힌 뭔가를 응시한 채 애절한 기분에 휩싸인 젊은 여성의 그림이다. 자식에게 축복과 안전을 희구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전장으로 떠난 오빠나 연인에 관한 슬픈 소식을 접했을 듯한 여성의 어두운 표정이 화폭에 표류한다.

은유적·상징적 의미지만, 죽음은 명화 ‘키스’와 인두노 형제의 그림 모두에 투영된 공통분모다. 숭고한 목표와 드높은 이상일수록 뜨거운 피를 필요로 한다. 특히 내일을 책임질 젊은이의 피가 절실하다.

민족도 대박도 아닌, 농부의 한가로움


▎이탈리아 통일 16년 뒤 완성된 조반니 파토리의 작품 ‘휴식’. 평화를 향유하는 주체로도 집단이 아닌 개인을 강조한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이탈리아 리솔지멘토는 화려하고 웅장한 대형 오페라나 대규모 심포니와 무관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살벌한 상황이지만,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다는 피에 기초한 고독한 풍경이 이탈리아 통일 운동의 실체다.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 개인의 생명이다. 어머니와 연인 그리고 주변 모두가 살아 돌아오길 기원한다. 그러나 그런 희망과 기대를 못 지키는 사람들도 많다. 전의에 불타는 뜨거운 눈빛이나 승리의 환희로 채워진 나팔 소리가 아니다. 약하고도 고독하지만, 목숨을 건 역사적 이벤트에 참가할 수밖에 없고, 기꺼이 참가했다는 것이 세 그림의 공통주제다.

명화 ‘키스’의 반대편에는 통일을 이룬 뒤 이탈리아 모습을 담은 그림 하나가 들어서 있다. 통일 갤러리의 마침표로서, 리솔지멘토 이후의 이탈리아가 어떤 나라인지를 전해주는 풍경화다. 과연 어떤 통일 자화상이 담겨 있을까? 저수지를 배경으로 한, 흰 소 두 마리와 함께 쉬고 있는 농부의 평화로운 모습이 전부다. 이탈리아 통일 16년 뒤인 1887년 완성된, 조반니팟토리(Giovanni Fattori)가 남긴, ‘휴식(Il riposo)’이란 타이틀의 그림이다.

가난한 농부의 쉬고 있는 모습이 엄청난 청년들의 피와 함께 반세기 동안 싸운 통일 운동의 결과물이다. 김빠진 맥주를 대하듯, 너무도 시시하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기억에도 새롭지만, 통일 대박론이 얼마 전까지 횡행했다. 통일 대박론에 따른 통일 후 한반도 풍경화는 어떤 식으로 묘사될 수 있을까? 아마 고층빌딩이나 고급 자동차 같은 물질적 차원의 번영이 중심 테마가 될 듯하다. ‘세계의 중심으로 치닫는 1등 한국의 위상’이란 식의 자화자찬 풍경화도 상상해볼 수 있다.

이탈리아는 인류 문화·문명의 큰 형, 아니 대부에 해당하는 나라다. 조각난 나라를 하나로 모은 뒤 얻은 통일 이탈리아의 풍경화가 쉬고 있는 시골 농부와 두 마리 소, 그리고 자연으로 구성돼 있다. 고개가 숙어지고 품격이 느껴지는 통일 초상화다. 그림 전체를 통해 인류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바로 평화다. 가난하지만 단정한 옷차림의 농부의 자세를 통해, 자유에 기초한 평화가 그림 전체에 표류한다. 통 크고 화려하고 잘난 1등 만세 통일이 아니다. 검소하지만, 안정되고 자유롭고 소박하며 평화로운 통일이다. 전면전 없는 평화라 자랑하면서 상호 신뢰를 통해 통일로 가자는 식의 판타지 망상의 정반대에 선, 살아있는 풍경화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로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브레라 뮤지엄이 남다르게 느껴질 듯하다. 밀라노에 들를 경우 반드시 방문하기를 권한다. 뜨거운 젊음의 키스와 더불어, 통일이 약속해 줄 너무도 평범한, 그러나 너무도 소중한 ‘평화의 가치와 의미’를 재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011호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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