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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수돗물 유충’ 오명 깔따구 수질 개선의 첨병일 줄이야 

 

모기처럼 생겼으나 물지는 못해… 물속 유기물·오염물질 섭취해 정화
5일 생애 동안 번식하고 죽어… 눈·코 들어가면 천식·아토피·비염 유발


▎5~7일의 짧은 생애를 사는 깔따구 성충. / 사진:위키백과
전국 곳곳에서 ‘수돗물 유충’ 의심 신고가 잇따랐다. 대부분 정수장은 안전하다고 하지만 시민들은 “벌레가 나오는데, 뭐가 안전하다는 것이냐” “인체에 무해하기만 하면 수돗물에서 벌레가 나와도 된다는 것이냐”는 등의 찝찝한 반응을 보인다. 이에 환경부는 ‘활성탄여과지(池)’가 설치된 정수지에서 유충(幼蟲, 애벌레)을 걸러내지 못한 채 배수지를 거쳐 가정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수돗물 유충’은 다름 아닌 깔따구(midge)의 애벌레(구더기)다. 깔따구의 생물학적 분류를 따지면 절지동물문의 파리목 깔따굿과 곤충이다. 주로 지구 북반부에 위치한 한국·일본·유럽·북아메리카 등에 서식한다. 성충(成蟲, 어른벌레)의 몸길이는 11㎜ 남짓으로(유충은 30㎜), 작은 모기처럼 생겼으나 입이 완전히 퇴화해 깨물지 않는다. 모기와 달리 날개에 비늘조각(인편, 鱗片)이 없으며 주둥이가 모기보다 훨씬 크다.

깔따구 성충은 복안(겹눈)과 촉각(더듬이)이 있고, 몸통과 다리가 가늘고 길며, 머리는 작고, 황갈색인 날개는 투명하다. 수컷의 촉각(절지동물의 머리 부분에 있는 감각 기관)은 12마디인데 제1마디는 원반 모양이나 나머지는 채찍처럼 생겼으며, 마디마다 긴 깃털 모양의 털이 빽빽하게 난다. 암컷은 촉각이 6마디로 연한 색이며, 털이 매우 짧고 적다. 쉽게 말해서 수컷은 더듬이에 털이 풍성하게 나지만 암컷은 매끈하고, 수컷은 배(복부)가 가늘지만, 암컷은 통통하다.

깔따구는 4~5급수에서 서식하며, 서식지의 환경조건이나 오염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동물(指標動物)이다. 이른 봄부터 나타나고, 흔히 황혼녘에 수십만 마리가 커다란 무리를 지우며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깔따구는 초여름의 하루살이들처럼 단번에 대량 번식하고, 동시에 죽는다. 그래서 썩는 냄새는 물론이며,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어 미관상 좋지 않다. 또한 부스러기가 눈이나 코에 들어가면 알레르기성 천식이나 아토피·비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유충은 구더기(maggot) 모양이고, 맑은 물에 사는 것은 녹색·흰색·검은색이지만 오염된 물의 것은 붉은색이다. 가장 많은 축에 드는 새빨간 유충은 보통 몸을 미친 듯이 흔들어대는 붉은 실지렁이(환형동물)가 있는 곳에 살며, 깔따구 유충도 쉬지 않고 꿈틀거린다. 이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은 가능한 산소가 많이 든 신선한 물을 만나기 위한 짓이다.

유충은 몸과 아가미가 붉기에 붉은 벌레(bloodworm)라 불리며, 학명(Chironomusplumosus )의 속명을 따서 성체나 유충을 모두 키로노무스(Chironomus)라 부른다. 다시 말해서 여름철에 고인 물웅덩이를 보면 빨간 실지렁이 같은 것들이 바글바글, 꼬물거리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게 바로 깔따구의 유충 키로노무스다. 그런데 유충 키로노무스는 실지렁이와 같이 물속의 유기물과 오염물질 등을 섭취해 물을 정화하기 때문에 나름 수질을 개선하는 역할도 한다. 물고기와 개구리의 대표적인 먹잇감으로 깔따구 유충이나 실지렁이를 냉동 건조해 관상어의 먹이로 사용한다.

더러운 물에서의 생존 비결, 헤모글로빈


▎인천 시내 일부 수돗물에서 발견된 깔따구 유충.
길어야 닷새를 사는 깔따구 성충은 살아있는 동안 오직 짝짓기에 몰두한다. 해 질 녘이면 1.5~2m 상공에서 모기 같은 것이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떼 지어낢(swarming)으로 짝짓기의 성공률을 높인다. 물고기가 떼(school)를 지우거나 새가 무리(군비, 群飛)를 짓는 것도 비슷한 목적이다.

얕고 유속이 느린 늪·웅덩이·저수지·강가 등에 산란하고, 알 덩어리(난괴, 卵塊)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알-유충-번데기-성충의 생활사(한살이)를 갖는 깔따구는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이다. 알은 2~7일 사이에 까이고, 유충은 바닥 흙에 관을 뚫어 집을 만들고 유기물 찌꺼기(쓰레기)나 이끼와 같은 조류(algae)를 먹는다.

4~5번 탈피하면서 3~7주 동안 자라 번데기가 됐다가 3일 뒤에 수면으로 떠올라 몇 시간 머문 뒤에 날개돋이(우화, 羽化)하여 성체가 된다. 상대적으로 한 달이 넘는 긴 유생 시기를 보낸 다음에, 오직 5~7일 남짓 짧은 성체로 머물면서 생식활동을 끝내고는 떼 지어 죽고 만다. 하루살이와 다름없이 짧되 짧은 일생을 살고 간다.

절지동물은 원래 피가 무색이다. 하지만 키로노무스의 피는 붉다. 이는 피에 산소결합력(포화도)이 매우 큰 호흡색소인 헤모글로빈(hemoglobin)이 있기 때문이다. 산소가 적은 물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4~5급수에 사는 키로노무스나 실지렁이, 그리고 개펄에 사는 피조개는 산소가 부족한 곳에 살기에 새빨간 헤모글로빈을 갖고 있다. 깔따구 유충이 물에서 꼬물거리는 것도 2개의 긴 아가미를 통해 산소를 많이 흡수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깔따구(키로노무스) 이야기에 문득 대학 3학년 때(1962년)의 유전학 실험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장충동의 작은 연못에서 빨간 키로노무스 유충을 채집한 기억도 나면서 말이다.

초파리나 깔따구, 모기 등의 쌍시류(雙翅類, 곤충이면서 뒷날개가 퇴화하여 앞날개 1쌍인 종류) 유충의 침샘 염색체(salivary chromosome)는 보통 염색체보다 100~200배 더 크기 때문에 염색체 관찰에 좋다. 이렇게 간단하게 광학현미경에서 염색체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분자생물학 시대 이전까지 염색체 변이나 유전자 위치들을 알아내는 중요한 실험방법으로 사용됐다.

그런데 왜 오늘따라 대학 은사님들을 기리면서 존함을 불러보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이 이는 것일까. 80살이 넘은 이 나이에, 아마도 이렇게 은사님들을 챙겨보는 것도 내 평생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애잔하고 찹찹한 마음에서 그러는 것이리라. 최기철(崔基哲) 선생님, 김준민(金遵敏) 선생님, 이주식(李周植) 선생님, 이웅직(李雄稙) 선생님, 고맙습니다. 못나고 어리석은 이 제자를 용서하소서.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2011호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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