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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바이든 시대 개막! 한국의 선택 - 北核 해법] 바이든의 한반도 정책과 南北의 선택 시나리오 

미사일과 꽃다발 함께 쥔 김정은의 고민 

햇볕정책 지지한 바이든, 참모들은 독재에 부정적인 강경파 일색
바이든 취임 후 北核 협상 본격 시작 전에 도발 감행할 가능성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의 당선으로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과 관계 개선을 꾀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대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 사진:연합뉴스
15시즌 연속 올스타,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챔피언 반지 10개를 손에 낀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 은퇴 후 뉴욕 메츠의 감독을 맡던 1973년, 메츠가 시카고 컵스에 9.5게임 차로 뒤진 지구 최하위를 달리고 있을 때 한 기자는 “시즌이 끝난 것인가”라고 물었다. 베라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메츠는 컵스를 제치고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하고 월드시리즈 결승까지 진출했다. 골프는 장갑을 벗어봐야 알고 야구는 글로브를 벗어봐야 결과를 안다.

지난 1월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현직 대통령의 프리미엄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백악관이 은연중에 선거 캠프 역할을 할 수 있다. 지난 100년간 재선에 실패한 미국 대통령은 허버트 후버(1929~1933), 제럴드 포드(1974~1977), 지미 카터(1977~1981) 및 조지 부시(1989~1993) 등 네 명뿐이다. 이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경제 침체로 인한 인기 하락이었다. 트럼프 4년간 미국 경제의 성적이 평균 B+ 이상은 되는 만큼 재선은 낙관적이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트위터 정치는 당초 변수에 없던 코로나 바이러스로 종결됐다. 트럼프는 내년 1월 20일 백악관에 새 주인이 입성하기 전에 방을 빼서 본인 소유의 트럼프타워로 돌아가야 한다. 그 전까지 훗날 미국 정치론 수업시간에 최악의 사례로 거론될 변호사들의 소송 게임이 지속되겠지만 백악관 담장에 붙은 ‘당신은 해고야(You are fired)’라는 구호에 단잠을 잘 수는 없을 것이다.

2020년 미국 유권자들의 선택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의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특히 서울과 평양의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새로운 워싱턴 리더의 출현에 다양한 맞춤형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당선 이전에 여의도 트럼프타워 건립 사업 때문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래서 한국과는 비즈니스 거래 관계에 불과했다. 반면 변호사 출신으로 36년간 워싱턴에서 연방의원 등 정치인으로 활동한 바이든 당선인은 그간 세 차례나 한국을 방문했다. 1998년에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 자격으로 처음 방한한 데 이어 2001년 8월에는 미 상원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오찬을 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서로 넥타이를 바꿔 맸다. 바이든이 김 전 대통령에게 “넥타이가 아주 좋다”고 말을 건네자, 김 전 대통령이 “넥타이를 바꿔 매자”고 즉흥적으로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김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를 맺었으며 당시 바이든은 ‘햇볕정책’을 공식 지지하기도 했다. 2001년 8월 말에는 평양에 들어가 김정일을 만날 계획을 세웠다가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으로 무산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통령 시절 바이든의 대북 접근 정책은 2012년 북·미 간에 2·29 윤달 합의(Leap day agreement)가 3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물거품이 된 이후 급변하기 시작했다.

햇볕정책 지지한 바이든, DJ와 넥타이 바꿔 매기도


▎2001년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던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환담하고 있다.
바이든은 2013년 12월 부통령 자격으로 다시 방한했다. 당시 바이든은 연세대 연설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추구하는 한 절대로 안보와 번영을 누릴 수 없다”면서도 “한국과 북한은 한민족이며, 똑같이 존엄을 누릴 자격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의 영구적인 분단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은 방한 당시 15세 손녀 피네건과 동행했다. 바이든은 손녀와 함께 한국전쟁기념관과 DMZ(비무장지대)도 방문했다. 그는 지난 10월말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한국에 보낸 기고문에서도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이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손녀 피네건을 옆에 두고 DMZ에서 북한으로부터 100피트(3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것을 결코 잊을 수 없다”며 “나는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분단과 이산가족의 고통을 느꼈다”고 언급했다.

바이든이 부통령이었던 2015년 7월 그의 부인 ‘세컨드 레이디’ 질 바이든은 우리 여성가족부가 주최하는 세미나 참석차 방한한 적이 있다. 바이든 당선인의 한국에 대한 근본 인식은 한·미동맹이다. 기업인으로 부동산 사업을 하러 서울의 여의도 트럼프타워를 방문하고 헬기에서 삼성전자 기흥공장을 바라보며 방위비 증액 구상을 굳혔던 트럼프와는 발상과 인식부터가 다르다.

1972년 최연소 상원의원으로 당선해 36년의 상원의원과 8년의 부통령을 역임하고, 7명의 대통령을 거쳐 세 번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며, 이제는 최고령 대통령 당선인 신분인 바이든은 2007년 출간한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Promises to Keep: On Life and Politics)]에서 외교는 겸손보다 솔직함(frankness)이 중요하다고 기술했다. 세계 정계 거물들을 상대할 때는 솔직히 말하고 힘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미국 정계에는 부와 권력을 모두 소유한 정치 명문가들이 즐비하다. 그에 반해 일가친척 중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흙수저’ 출신 바이든은 말 그대로 맨몸으로 사회에 부닥쳐야 했다. 집안 최초로 대학에 진학하고, 잘나가는 로펌을 그만두고 국선변호사를 선택했으며, 카운티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바이든은 자서전에서 “나 자신의 힘만으로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그러면서도 신념과 원칙에 맞는 길을 걸어왔다”고 자평했다.

세계 리더로 복귀하려는 바이든의 외교 구상


▎2019년 2월 10일 장원삼 외교부 방위비분담협상 대표(오른쪽)와 티모시 베츠 미국 측 대표가 특별협정문에 서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외교통으로 분류되는 바이든 당선인의 기본적인 외교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바이든 당선인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 결정되고 올해 1월 외교 전문 잡지인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외교 안보 정책의 윤곽에 관한 글을 실었다. 제목은 ‘Why America Must Lead Again: Rescuing U.S. Foreign Policy After Trump?’다. 우리 글로 번역하면 ‘트럼프가 망쳐버린 미국의 외교를 되살리기 위해 미국이 다시 리더 노릇을 해야 한다’이다. 그는 이 기고에서 자신의 3대 외교정책 기조를 제시했다. 첫째는 ‘국내에서 민주주의 갱신(Renewing Democracy at Home)’이다. 바이든은 민주주의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부패와의 전쟁 ▷권위주의 공세에 대응 ▷인권증진을 정책 우선순위에 두겠다고 밝혔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만들었던 핵안보정상회의를 벤치마킹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구성하고 민주주의 국가들의 협력을 도모하겠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중산층을 위한 대외정책’이다. 경제안보가 국가안보이며, 미국의 통상정책은 중산층을 강화하는 정책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통상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을 비롯해 경제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세력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미국 스스로의 혁신과 민주주의 국가들과 단결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마지막은 ‘리더 지위의 회복(Back at the Head of the Table)’이다. 바이든은 첫 업무 명령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국익에 맞지 않는다고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복귀하는 것을 제시했다. 미국이 리더 지위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 미국의 국제적 지위가 추락했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바이든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외정책 기조로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명성과 영향력을 추락시켰다고 비판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강압과 강요가 아닌 외교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외교를 통해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들과 공통의 이해를 찾아내고 그들과 관계를 이어가며, 갈등 요소를 관리해 미국이 국제사회의 리더로 다시 자리매김하게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세 가지 기조에서 핵심 전략은 민주주의의 복원과 권위주의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이다. 바이든은 민주주의 국가들과 미국의 결속력을 복원해 권위주의 국가들에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인 실천 전술은 ▷동맹 강화 ▷글로벌 리더십 회복 ▷대중 견제로 구체화될 것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권위주의 국가들에 대항해 자유주의 국가들의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진:ABC뉴스
바이든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기존 트럼프의 정책을 가급적 배제하는 ‘ABT(Anything But Trump)’ 정책을 고수할 것이다. 바이든은 대선후보 토론에서 “동맹관계를 바로잡고(repair), 상호 이익을 증진하도록 재창조(reinvent)해야 한다”고 밝혔다. 핵심 키워드는 동맹의 강화다. 거래의 관점보다 가치 중심의 동맹 중시 정책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국제 질서 재건에 외교력을 동원한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다양한 어려움에 봉착했던 한·미동맹 역시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동맹은 적에 대한 인식이 동일하고 바라보는 방향이 동일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중국과 러시아, 북한과 같은 권위주의 체제에 대응하기 위해 ‘같이 갑시다(Go together)’의 가치(value)를 동맹국들에 강조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했던 5조원 수준의 방위비 인상안은 바이든 당선인이 ‘갈취(extorting)’라고 언급한 만큼 조정될 것이다. 8개월째 공전되고 있는 방위비분담금협정(SMA) 협상은 실마리를 찾을 것이다. 양국 협상단이 지난 4월 합의한 잠정안은 매년 13%를 인상하고, 5년 후 13억 달러가 최종 인상액이 되는 안이다.

방위비 협상은 낙관적… 동맹 참여 요구는 커질 듯


▎2013년 12월 6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이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방위비 인상이 관철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는 트럼프의 거래적 압박은 중단될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2013년 연세대 연설에서 “한·미동맹은 아태 지역 안보에 필수적이다. 미군은 다른 곳으로 절대 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조기에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을 희망하는 한국의 전략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동맹국을 갈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만큼 내년 3월경이면 방위비 협상이 타결될 전망이다. 하지만 국제정치에서 무임승차는 없다. 돈을 적게 내는 대신 한국은 미국이 강조하는 가치 동맹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적에 대한 압박을 시행할 때는 맨주먹으로라도 동참해야 한다.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을 외교정책 기조로 삼는 바이든 행정부는 가치 동맹으로서 한국의 역할 확대를 더 요구할 것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광폭 행보를 보이는 중국의 팽창을 막는 반중 전선에 한국의 동참 요구는 점차 늘어날 것이다. 대북 유화책으로 한·미연합훈련에 소극적인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교정을 요구받을 것이다. 트럼프의 반중 전선인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 참여에 미온적이었던 한국의 대미정책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부분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쿼드의 동참에 상관없이 한·미 동맹 강화가 논의될 것이며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대중국 압박 문제도 거론될 것이다.

2013년 부통령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바이든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이 좋은 베팅이었던 적은 없었다”고 말한 뒤 “미국은 한국에 계속 베팅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당시 바이든이 기자회견에서 이런 작심성 발언을 한 것은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한 의도적인 불만 표출이었다. 또 대통령 면담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일 간 원만한 관계 진전을 이뤄 달라”며 한·일 문제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요구하는 한편,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은) 핵으로 무장한 북한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의 도발로부터 동맹국 수호를 위해 어떤 일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바이든의 발언은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2020년 대선 이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 방향을 예고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집권 후반기 문재인 대통령의 단골 주장인 한국전쟁 종전선언 역시 남·북·미 협상 테이블의 관심 대상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핵 협상에서 실무진을 건너뛴 트럼프 대통령의 톱다운(top-down)과 달리 바텀업(bottom-up)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처를 하지 않고서는 북·미 관계가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이든 후보는 2019년 5월 뉴햄프셔 유세에서 “김정은은 테이블에 마주 앉은 고모부의 머리통을 날려버린 남자이자 폭력배”라고 호되게 비판했다. 1주일 뒤 필라델피아 유세에서는 “트럼프는 김정은 같은 독재자와 폭군을 좋아한다. 그래서 북한은 (나보다) 트럼프를 더 좋아한다”고 트럼프와 김정은을 싸잡아 비난했다.

“김정은은 미사일을 쥔 폭력배”


▎바이든의 외교·안보 라인은 대북 강경파들로 채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왼쪽부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 토니 블링컨 국무부 부장관,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 전 부통령 안보보좌관. / 사진:연합뉴스·중앙포토
지난 10월 22일 테네시주에서 열린 마지막 대선 TV 토론회에서 바이든은 어떤 조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수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가 핵 역량을 축소할 것이라는데 동의하는 조건으로(On the condition that he would agree that he would be drawing down his nuclear capacity)”라고 대답했다. 바이든은 북한 문제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북한의 지속되는 위협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중국에 그들도 (북한과의) 합의의 일부가 돼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역내 미국의 미사일 방어자산과 미군 배치, 한국과의 군사작전 등을 거론하며 “중국이 일어나 (북한 문제를) 돕지 않을 경우 이런 것들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토론 말미에 김정은 위원장을 거듭 ‘폭력배(thug)’라고 부르며 “북한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쉽게 미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더 역량을 갖춘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당선인의 김정은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바이든이 오바마 행정부 시절 추진된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에 기초한 대북 방관 정책으로 회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특히 북핵과 ICBM 등 대량살상무기 능력이 과거에 비해 급증했기 때문에 더는 방치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세 가지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 북한의 강경한 핵 보유 방침이다.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일방적으로 핵보유국을 선언했다. 북한의 핵 보유 고집은 김정은과 트럼프 정상회담의 결정적인 걸림돌이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시종일관 전략적 인내 정책을 고수했던 것은 아니다. 오바마 행정부 1기에는 비핵화 협상이 진지하게 이루어졌다. 2009년 2차 핵실험을 계기로 비핵화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으로 대북제재 결의안 1874 합의가 이루어진 가운데 2012년 2·29 합의를 도출했다.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윤달 합의(Leap day agreement)’ 내용은 나쁘지 않았으나 북·미 양측의 신뢰 부족으로 한 달 만에 휴지조각이 됐다. 미국으로부터 북한은 24만t의 식량을 지원받는 대신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3월 이후 북한이 광명성 3호를 발사하고 2013년 3차 핵실험을 하자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 협상에 흥미를 잃고 국내적 관심이 높았던 이란 핵 협상 타결에 주력했다.

사실 북핵 문제에서 바이든은 대화파로 분류됐다. 하지만 2·29 합의 파기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북한이라면 진절머리(sick and tired)가 난다”고 공공연히 언급했다. 결국 핵 보유에 대한 북한의 근본적인 복심의 변화가 있어야 진지한 협상이 시작될 수 있다.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에서와 같이 전체 북핵의 50% 선인 영변 핵시설 포기만으로 제재를 완화하려는 북한의 복안으로는 김정은이 바이든과 협상 테이블에서 만날 수 없다.

둘째, 시간적인 변수다. 바이든 당선인이 새 대통령이 되면 외교정책 평가와 인력 배치까지 최대 1년은 걸린다. 한반도 문제는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책임을 지는데, 상원의 인준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린다. 동아태 차관보는 빨라야 내년 7월에나 업무를 시작할 수 있어 이전까지 대북 정책은 일시 정지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기다림의 미학’을 발휘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다.

마지막으로 바이든 외교·안보 라인의 대북 성향이다. 바이든 정부의 외교 인사로는 ‘대북 매파’가 거론되고 있다. 바이든 선거 캠프 담당자들에 의하면, 비공식적으로 외교·안보를 조언하는 자문단이 2000명에 가까우며 이들은 20개 그룹으로 나뉘어 국가안보를 비롯해 무기통제, 방위, 정보, 국토 안전 등 광범한 주제를 다룬다고 한다. 이들 정책그룹은 트럼프 대통령이 벌인 수많은 실수와 외교정책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일에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교통정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매파로 채워진 바이든의 외교·안보 라인


▎북한은 미국 새 정부가 출범한 뒤 한·미연합훈련이 열리는 내년 3월경 저강도 도발을 통해 미국을 협상장으로 유인할 가능성이 크다. / 사진:연합뉴스
우선 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는 대북 강경 입장이다. 1순위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토니 블링컨은 바이든이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 정책보좌관으로 일했고, 오바마 행정부 1기 내내 바이든 부통령의 안보보좌관(2009~2013)을 지냈다. 이어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2013~2015), 국무부 부장관(2015~2017)을 거쳤다. 블링컨은 김정은을 ‘최악의 폭군’이라고 일갈할 만큼 북한에 비판적이다. 역시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수전 라이스(Susan Rice)는 바이든의 러닝메이트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으며 향후 중용이 예상된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부비서실장을 지낸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은 힐러리의 양자라고 불릴 만큼 최측근이었다. 외교·안보 라인들은 북한의 핵 포기에 불신이 큰 만큼 북한 비핵화 문제는 시급한 외교 현안에서 후순위로 밀릴 공산이 크다.

이제 다가오는 동장군의 추위만큼이나 평양의 대미정책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더는 미국 정상이 트위터로 갑자기 만나자고 하거나 호텔 로비에서 대통령 개인을 유혹해 합의안에 서명하게 하는 기이한 방식의 북·미 정상회담은 없을 것이며 영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평양 외무성은 김 위원장에게 3개의 시나리오 보고서를 상신할 것이다.

첫째, 도발 자제 관망(wait and see) 시나리오다. 북한도 2006년 5월 1차 핵실험 이후에는 미국의 국내 정치 일정이 북·미 협상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고, 새로운 정부가 대북 외교 라인을 구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하는 만큼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특히 북한 입장에선 이미 내년 1월 초 제8차 당대회 개최를 예고한 상황에서 새로운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발표 등 성공적인 행사 개최로 북한 내부 안정을 가져오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상반기에는 미국의 새 정부 출범 전후 미국을 자극하는 대륙간장거리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유예하며 바이든의 대북정책이 구체화하는 6월까지 ‘관망정책(Wait and See)’을 고수할 것이다.

둘째, 저강도(low-key) 도발 시나리오다. 미국의 정치 일정상 상반기에 북·미 협상이 본격화할 수 없다는 현실은 정확하게 이해하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워싱턴을 바라만 보기에는 평양의 내부 사정이 매우 다급하다. 2016년 이후 지속된고통스러운 대북제재, 수해 피해 및 코로나 봉쇄 등으로 평양의 대중국 무역액은 20% 이하로 축소됐고, 김정은의 외화 보유고는 상당한 수준 이하로 소진되고 있다. 하지만 강력한 군사 도발로 자신을 잊지 말라는 ‘강력한 물망초 전략(hard forget-me-not)’을 구사하기에는 실익이 분명치 않고 ‘유화적인 관망정책(a conciliatory observation)’으로 일관하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 특히 내년 1월 8차 당대회 개최 이후 통합과 충성 경쟁을 통해 인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동원전술(mobilization tactics)’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말싸움(rhetoric attack)’은 기본이고 최소한의 군사적인 도발은 불가피하다고 북한 외무성은 판단할 것이다. 대미 적개심 고취를 통해 인민들의 지지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대미 긴장 관계가 필요한 북한 내부의 통치전략도 저강도 도발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3개의 패를 쥔 북한의 시나리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 뒤인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당시 평양에서 열린 군중대회 참석자들이 핵실험 성공을 자축하고 있다.
1차 저강도 도발의 시기로는 1월 20일 미국의 제46대 대통령 취임 직후인 2∼3월이 유력하다. 특히 3월 마지막 주로 예상되는 한·미연합훈련은 저강도 도발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일단 대미 비난의 수사적 강도를 높이며 한·미연합훈련의 강도 등을 지켜본 후 1000㎞ 안팎의 방사포 발사를 시작으로 사정거리 2000㎞인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해 미국의 반응을 지켜볼 것이다. 도발과 병행해 뉴욕의 북한 유엔대표부 채널 및 스웨덴 채널 등을 통해서 제재 완화와 북핵 일부 폐기를 소규모로 거래하는 ‘스몰 딜(small deal)’ 등을 미국에 물밑에서 제안할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고강도(aggressive) 도발 시나리오다. 평양의 대미 강경파들은 내년 여름까지 인내심을 발휘하는 현실에 대해 수용하기 곤란하다는 보고서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제출할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지난 70년간의 대미 협상 시작 전에 유보적인 자세보다는 공격적인 입장을 견지했을 때 미국이 신속하게 협상에 나왔던 경험으로 돌이켜볼 때 공격적인 도발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강하게 대두된다.

오바마 행정부 8년은 ‘네오콘(Neo-con)’ 개념의 공화당보다 협상이 소프트했지만, 비핵화를 요구하는 입장이 확고했고, 협상의 내용도 만족스럽지 못한 만큼 집권 초기에 강공 모드가 필요하다. 고강도 도발이 협상 주도권 잡기에서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 특히 내년 미국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집권 10년 차(2011. 12. 30~2021. 1)를 맞이하는 김정은 입장에선 2012년 2·29 합의 당시와 달리 핵무기와 다수의 ICBM을 보유한 만큼 자신이 비핵화 대상이라는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할 필요는 없다.

한편 바이든 당선인이 중국의 북핵 문제 해결 동참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를 상대하며 항미원조(抗美援助) 개념으로 북한을 지원하고 있는 만큼 과거와 같이 고강도 도발 시 중국이 나서서 만류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신축년 3월 한·미연합훈련에 맞대응해 ICBM과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등을 발사하며 대미 압박을 강화할 것이다.

필자의 평가와 전망은 다음과 같다.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합의 이후 미국의 신정부 출범 첫해에 북한이 고강도 도발을 자행한 대표적인 사례는 2009년 5월 25일 오바마 행정부 첫해에 자행한 두 번째 핵실험이다. 하지만 오바마 집권 첫해에 북한이 두 번째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북·미 간에 갈등이 지속되었던 점을 감안할 때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을 상반기에 발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중국 입장에서 바이든 행정부 첫해부터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는 것이 미·중 무역 분쟁의 새로운 국면에서 반드시 긍정적이지는 않다는 판단하에 일단 북한의 절제를 요청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상반기에는 저강도 도발 시나리오로 미국을 협상장에 유인하면서 물밑에서 대북제재 해제를 위한 다양한 협상을 제시할 것이다. 한반도의 당사자인 한국의 효율적인 대응 방향은 다음 편에 제언하기로 한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012호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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