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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초점] 여권이 키운 야권의 잠룡들 

‘尹 돌풍’에 국민의힘이 더 놀랐다 

여당이 때릴수록 덩치 더 커지는 윤석열, 권력의지 엿보이나 ‘실력’엔 의문
소신 겸비한 ‘국정 빠꼼이’ 최재형, 흙수저 성공신화 ‘경제통’ 김동연도 주목


▎윤석열 검찰총장이 최근 야권 지지층의 지지에 힘입어 대권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윤석열 현상’이 연일 정가를 강타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11월 11일 발표된 한길리서치의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24.7%의 지지율로 ‘깜짝’ 1위를 했다. 양강 구도 이낙연(22.2%)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18.4%) 경기지사를 앞서는 결과다. 물론 이틀 뒤 발표된 한국갤럽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선 각각 11%로 3위로 내려앉았다. 당연히 여론조사 신뢰도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올초 법무부 장관과의 충돌로 차기 주자군에 이름이 오를 때만 해도 ‘변수’쯤으로 인식됐던 윤 총장이 이젠 정치적 실체 혹은 현상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당장 여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권이 파격적 발탁에 이어 크게 힘을 실어줬던 검찰총장이 정치적 대척점에 서게 된 탓이다. 무엇보다 ‘조국 대전’을 거친 뒤 그를 검찰 기득권의 상징쯤으로 ‘손절(損切)’키로 하고 갖은 ‘구박’을 하던 참에 오히려 정권 ‘핍박’을 발판으로 덩치를 키워가는 모양에 속이 쓰릴 만하다.

하지만 정작 더 크게 울상을 짓는 쪽은 제1야당 국민의힘이다. ‘대선주자 윤석열’이 만들어낼 정치 태풍 타격의 직접 영향권 한가운데에 국민의힘이 있는 탓이다. ‘윤석열 태풍’의 에너지원(源)은 다름 아닌 보수층이다. 한길리서치 조사를 보면 연령대는 60대 이상, 지역별로는 충청·PK, 정당별로는 국민의힘 지지층이 주로 윤 총장을 꼽았다. 그의 뜻과 상관없이 졸지에 야권 주자로 자리매김된 셈이다. 그렇다고 현 정권이 발탁한 윤 총장의 수사 지휘로 쑥대밭이 됐던 야당으로선 넙죽 ‘우리 후보’라고 껴안을 수도 없다. 그 역시 특정 정당은커녕 정치입문 여부마저 말끝을 흐리고 있다. 우리 편 같은 듯 아닌 듯, 무엇보다 진짜 정치를 할지도 확신할 수 없는 인물 때문에 당의 입지만 좁아드는 난감한 상황이다.

‘여왕벌’ 윤석열, ‘윤나땡(윤석열 나오면 땡큐)’ 넘어설까


▎11월 2일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대검찰청 밖에 진열했던 윤석열 검찰총장 응원 화환을 자진 철거하고 있다.
‘제2, 제3의 윤석열 케이스’도 있다. ‘월성 원전 1호기’ 감사를 둘러싸고 여당의 집중 타깃이 된 최재형 감사원장이다. 그가 또박또박 소신에 찬 반박을 내놓을 때마다 야권 지지층이 뜨겁게 반응하는 탓이다.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에 소극적이라는 여권 지지층 질타를 받다가 사퇴한 김동연 전 경제 부총리도 야당으로선 애증이 엇갈린다. 정권과 멀찍이 거리를 둔 채 사실상 정치적 행보를 하면서도 국민의힘의 구애엔 콧방귀조차 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정치적 비중이 커질수록 당의 존재는 줄어드는 정치적 반비례 현상이 윤 총장과 닮은꼴이다. 공교롭게도 윤석열, 최재형, 김동연 모두 문재인 정부의 ‘발탁인사’로 저마다 공직 인생의 꽃을 활짝 피웠던 인물들이다. ‘신의 한 수’쯤으로 평가받던 이들에 대한 인사가 이젠 정권에 적잖은 부담이다. 하지만 더 큰 정치적 당혹감의 주인공은 제1야당 국민의힘. 이들이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거나 소원해질수록 보수 지지층의 기대와 지지가 커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여권이 잉태하고 키웠지만, 범야권에 둥지를 틀지도 모르는 이들이 국민의힘엔 그야말로 ‘미운 오리새끼’인 셈이다. 과연 이들은 정말 대권 레이스에 뛰어들까. 그렇다면 국민의힘의 선택은 무엇일까.

현재로서는 세 사람 중 권력의지가 가장 돋보이는 이는 역시 윤 총장이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10월 22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그가 던진 이 한마디를 모두 ‘작심 발언’으로 받아들였다. 올 7월 채널A 검언유착 수사와 10월 라임·옵티머스 펀드사기 수사에 대한 장관 지휘권을 겨냥한 윤 총장의 반격이었기 때문. 특히 저항의 형식과 무대가 너무나 정치적이었다. 사실 지휘권 발동이 그의 말대로 검찰청법 위반이라면 법률가답게 법적으로 다투고 쟁송으로 가는 게 맞다. 그러나 그리하지 않았다. “법무·검찰 조직이 너무 혼란스러워지고 피해가 국민에게 가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혼란은 더 커져버렸다.

윤 총장이 반격 무대로 국정감사장을 택한 것도 상당히 전략적이었다. 아마 2013년의 강렬했던 기억의 재현을 노렸을 것이다. 당시 국정원 댓글수사로 정권에 밉보여 여주로 좌천됐던 그는 그해 국감에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로 사실상 ‘국민검사’로 등극했다.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결정적 한 장면이다. 이번에도 그에 버금가는 정치적 충격파를 던졌다. 윤 총장이 의도를 갖고 시나리오를 짰다면,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국감 직후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확실한 여왕벌이 나타났다”며 그를 차기 대권 레이스에서 야권 판세를 주도할 최강자로 꼽았다. 실제 때맞춰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야권이 아니라 정치권 전체 판도를 흔들 정도다. 11월 2일 국감 후 처음 나온 리얼미터 조사에서 3위를 차지한 17.2%의 의미는 각별하다. 불과 4.3%포인트 차이로 공동 선두 양강을 바짝 추격할 정도의 급격한 상승세가 확인됐다. 진짜 주목되는 점은 ‘문지방 효과(threshold effect)’가 작동되는 15%를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역대 대선 경험치로 볼 때 이 문지방을 넘은 주자는 지지층 기대 때문에라도 완주가 불가피했다. 독자 정치세력화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고 그가 당장 정치판으로 뛰어들 것 같진 않다. 중도사퇴보다는 굳건히 총장직을 지키면서 권부와 ‘맞장’ 뜨며 정치 근육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그게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당장 장관의 잇따른 지휘권·감찰권 발동이 선출 권력의 검찰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넘어 ‘검찰 장악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인 탓이다. “윤 총장을 여권이 때리면 때릴수록 더 커질 것”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설사 전격 해임되더라도 그로선 ‘땡큐’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다 억울하게 쫓겨난 ‘권력의 희생양’, 그게 바로 정치적 훈장이다.

그러나 여권은 냉가슴을 앓으면서도 과히 나쁘게 보진 않는다. 10월 26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온 신동근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이 그 한 보기다. “한때 ‘황나땡(황교안 나오면 땡큐)’이라고 했지만, 이젠 ‘윤나땡(윤석열 나오면 땡큐)’이다.” 그 이유로 검증되지 않은 정치신인, 개혁 반대편 이미지, 검찰 문화와는 너무나 다른 정치에의 적응 어려움을 꼽았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실제 신상 검증은 당장의 뇌관으로 작동 중이다. 지난해 7월 총장 청문회 때 적극 호위무사를 자처했던 정권이 이젠 그를 향해 칼을 빼 들었다. 당시 문제 됐던 사안은 측근 윤대진 검사장, 자신의 부인, 장모 관련 의혹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이를 콕 집어 그의 지휘권을 박탈한 뒤 일선 검찰의 직접 수사를 지시했다. 1차 관문치곤 제법 긴장할 만하다. 여권이 씌우려는 ‘개혁 반대편’ 프레임도 만만찮은 과제다. 대권에 도전하는 인물이 개혁을 반대하는 ‘수구’라면, 그건 해보나 마나 한 게임이다.

사실 그가 장관의 지휘권에 저항하는 명분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다. 인사권을 가진 장관의 잦은 간섭이 검찰을 또다시 권력의 충견(忠犬)으로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의 진정성(?)은 실종된 지 오래다. 다수 언론 보도를 거칠게 요약하면 ‘살아 있는 권력에 겁 없이 대드는 검찰총장’이란 이미지가 떠오른다. 여권은 이를 ‘국민의 명령’인 검찰개혁에 막무가내로 저항하는 인물로 역이용한다. 문제는 그가 작심하고 정권을 치받을수록 검찰이 정치 공방의 인질이 돼버린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내세운 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이 먹힐까. 오히려 검찰개혁 반대자 이미지만 강화될 뿐이다. 그래서 “총장직에 미련 갖지 말고 사내답게 내던지라”(홍준표 의원)는 얘기가 나오는지 모른다. 어쩌면 총장 계급장을 뗀 이후가 그에겐 제대로 된 시험대다. 검사는 우리 사회 대표적 갑(甲)이다. 거기다 윤 총장은 상명하복에 익숙한 대표적 ‘검찰주의자’다. 간도 쓸개도 다 빼줄 듯이 처절하게 자신을 낮춰야 하는 정치인으로 변신이 절대 쉽지 않다. 정계에 투신한 고위직 검사들의 숱한 실패담이 이를 뒷받침한다.

흔들리지 않는 원칙주의자, 관건은 권력의지


▎국정원댓글사건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이 2013년 검찰 산하 기관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당시 윤 지청장의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세간의 큰 이목을 끌었다.
최대 관건은 태도가 아니라 내용이다.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고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때는 ‘머리’를 빌릴 수도 있었다. 지금은 소셜미디어 시대다. 이해가 첨예한 시대적 과제를 스스로 발제하고, ‘즉문즉답’하지 못하면 지도자로 쳐주지 않는다.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 부동산 가격 폭등, 기본소득 논쟁, 미국 바이든 행정부 등장과 북핵 문제 등에 대해 제대로 생각을 한번 해봤을까. 필요조건(권력의지)은 어느 정도 갖췄지만, 충분조건(실력)에는 아직 의문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정치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훈련이라는 관점에서 최재형 감사원장은 나름 준비된 인물이다. 감사원장이라는 자리가 국정 전반에 대한 충분한 학습 기회를 제공한 탓이다. 올해 국회에 제출된 ‘2019회계연도 국가결산심사보고’를 한번 보자. 476조4000억원 예산(추경 포함)이 허투루 사용된 것은 없는지 꼼꼼히 심사한 결과가 담겨 있다.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와 국회까지 총망라한다. 단순히 예산의 씀씀이만 따지는 게 아니다. 재정수지와 국가채무 추이도 들여다보고 이를 바탕으로 중장기 재정관리에 대한 조언도 담고 있다. 특히 고용장려금 관리, 요양병원 운영 실태, 전자바우처사업 현황 등 국가 주요 정책의 현실이 상세히 실려 있다. 이 결산 보고서는 감사위원회 과반수 의결을 거쳤다. 의결에는 감사원장도 위원 한 명의 자격으로 참여한다. 이 때문에 원장이라도 보고서를 세세히 파악해야 한다. 국가 주요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최 원장이 누구 못지않은 국정 ‘빠꼼이’랄 수 있는 이유다.

흔들리지 않는 소신과 원칙 또한 강점으로 꼽을 만하다. 최 원장이 정치권의 시선을 끌어모으게 된 계기는 월성 원전1호기 감사. 2018년 6월 한수원의 조기 폐쇄 결정에 야당이 경제성 과소평가 의혹 공세를 펼치자 여당은 국회의 감사원 감사 청구로 정면 대응에 나섰다. 탈원전 정책이 정부 에너지정책의 근간임을 잘 아는 감사원이 이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내심 믿었던 것. 그러나 감사는 여권 속내와는 정반대로 매우 깐깐하게 진행됐다. 이에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산업부가 강력히 반발하자 최 원장은 담당국장까지 교체하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대선에서 41%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 과제(탈원전 정책)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느냐”는 그의 발언까지 전해지자 여당은 발끈했다. 국회에 출석한 최 원장에게 “대선 불복이나 다름없다”며 “사퇴하고 나가서 정치하라”고 몰아붙였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았다. 친여 성향 감사위원들과의 제법 긴 밀당 끝에 “월성1호기의 중단을 위해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고 결론 내렸다.

‘유쾌한 반란’ 김동연, 결과도 유쾌할까


▎최재형 감사원장이 올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국민의힘은 환호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숱한 방해에도 감사를 끌어낸 최 원장의 고군분투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최 원장이 주장하는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강하는 법을 발의했다. 언론은 ‘최재형 수호법’이라 불렀다. 졸지에 정치적 관심이 집중되자 그의 신상에 관한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대한해협해전의 영웅 아버지(최영섭 예비역 해군대령)를 둔 병역 명문가, 학창시절 장애 친구를 업어서 등교시킨 우정, ‘가슴으로 낳은 두 아들’ 입양 사례까지. ‘미담제조기’급 그의 인물됨 역시 ‘정치인 최재형’의 자산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그가 과연 정치에 뛰어들 생각이 있느냐는 점이다. 적어도 현재까진 상당히 부정적이다. ‘제2의 윤석열’ 가능성에 그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적극 손사래를 쳤다. 월성1호기 감사와 관련한 여권의 비판엔 “전혀 핍박이나 압력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런 논란 자체가 감사원에 대한 압력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으로 감사원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훼손되는 점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국감장에서 정권을 직격한 윤 총장과는 권력의지 측면에선 아예 비교 자체가 안 된다. ‘평안 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인 법. 여론조사 기관이 차기 주자 조사에 그의 이름을 넣지 않은 이유다.

앞선 두 사람과는 달리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여러모로 애매하다. 벌써 2년여 전 물러난 야인이다. 그렇다고 현 정권과 특별히 각을 세우면서 낯을 붉히는 사이도 아니다. 당연히 그의 말이나 행동이 현재로서는 큰 주목을 모으지 않는다. 그런데도 야권에선 그의 영입 희망설과 대선 등판설이 끊이지 않는다. 그 첫째 이유는 경제통이라는 점이다. 코로나19로 타격 입은 경제회복이 대선 이슈가 되고, 경제부처 수장을 지낸 그가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부총리급만 따져도 10명이 넘는 전직 경제관료 중에서 유독 그가 꼽히는 까닭은 최근 행보 때문이다.

올 3월 비영리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을 만든 뒤 전국을 돌며 혁신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그의 발품은 경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에 상당한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 정치에 구호와 정쟁은 있지만, 리더십·대안·실천·민생은 없다. 한국 정치를 깨야 한다.” 거의 출사표에 버금가는 표현과 의지다. 여기에 ‘흙수저’ 성공신화가 더해지면서 대권 준비설이 증폭되고 있다. ‘소년 가장-상고 졸업-은행 취직-야간대학 주경야독-고시 합격-경제 부총리’. 이런 입지전적 드라마에 성공만 있는 게 아니다. 아들을 지병으로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날도 출근해 업무를 챙긴 그의 아픔과 그 다운 처신에 동정적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개발연대 시절 ‘개천에서 용 난’ 스토리가 그만의 것은 아니다. 국졸 학력으로 공장을 전전하면서도 변호사가 된 ‘소년 노동자 이재명’에 비하면 약과일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력도 그에겐 ‘양날의 칼’이다. 부총리 당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증세 등에 대해 ‘소극적으로’ 저항하다 사실상 불명예 퇴진한 것이 그를 정권의 대척점으로 밀어 올린 요인이다. 이는 거꾸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로서 청와대 독주를 견제하지 못한 채 자리만 보전한 것 아니냐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양날의 칼’을 쥔 국민의힘, 위기냐 기회냐


▎김동연 전 부총리가 올 7월, 어촌체험 차원에서 방문한 경남 거제 다대마을 앞바다에서 작업복을 입은 채 멸치잡이 그물을 끌어 올리고 있다.
정작 현 상황에서 가장 크고 위험한 양날의 칼을 쥔 쪽은 국민의힘이다. 차기 주자 1위를 기록한 ‘윤석열의 득세’가 국민의힘엔 ‘웃픈 현실’이기 때문이다. ‘소신의 최재형’, ‘반란의 김동연’ 역시 손뼉만 칠 수 없는 입장이다. 물론 한때 탕평과 능력 위주 발탁인사의 모범사례로 자랑했다가 이젠 ‘깜도 안되는 인물’인 양 깎아내리기에 급급한 여권의 모습은 분명 자가당착적이다. 이를 통해 권력의 위선과 오만이 드러난 것은 야당엔 ‘손 안 대고 코 풀기’식 반사이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고민은 시나브로 이들이 야권에 포진함으로써 ‘제로섬’ 게임마냥 보수 지지층 서로 따먹기 싸움의 양상을 빚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반대로 이들과 분명한 시너지 효과를 내야만 보수를 넘어 중도, 나아가 진보 일부까지 아우를 수 있다. 그러려면 이들을 적극 포용해서 확실한 우리 편부터 만드는 게 순서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다. 보수는 윤 총장이 지휘한 적폐수사로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섣부른 ‘윤석열 껴안기’는 보수의 분열만 자초할 수 있다. 더 큰 우려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주객전도(主客顚倒) 양상 가능성이다. 지지율이나 국민 관심도 측면에서 이들은 현재 103석인 제1야당을 압도하고 있다. 일부 의원은 윤 총장을 미꾸라지 양식장의 건강성을 담보하기 위해 일부러 넣은 ‘메기’로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메기 효과’도 보기도 전에 미꾸라지(당내 잠재후보)가 전부 다 잡아먹힐 형국이다. 설사 이들이 본격 정치에 뛰어들어도 당장은 국민의힘보다는 제3지대를 선택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래야 국민의힘의 기득권을 깨고 야권 단일후보 지위를 차지할 공산이 큰 탓이다. 이 경우 제1야당은 ‘무정란 암탉’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당연히 국민의힘으로선 야권의 구심점과 주도권을 절대 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들이 정치 문외한이라는 점도 야당이 과감한 베팅을 주저하는 요소다. 고건·이회창·반기문의 실패가 눈에 밟힌다. 그러나 정치는 누가 국민을 더 많이 확보하느냐의 싸움. 그 정도(正道)는 말 그대로 ‘국민의힘’이 가리키는 쪽이다. 그런데 그게 어느 방향일까.

-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 교수

202012호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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