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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경영자’ 이건희의 유산 | 이건희 경영학] ‘삼성 웨이’ 연구한 이경묵(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 ‘이건희 新경영’을 말하다 

“지르기 경영으로 삼성에 변화의식 심었다” 

위험 감수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반도체 사업 성공시켜, 質 중심 초격차 도달
기술·인재 향한 강박적 집착, 지역전문가 육성 통한 글로벌 전략으로 1등 반열 올라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미국 GE, 일본 도요타 등에 필적할 만한 고유의 성공 방식을 삼성이 창출했다고 본다.
'대한민국 초일류 시대 연 개척자.’ 10월 25일 세상을 떠난 이건희(1942~2020) 삼성 회장에 관한 [중앙일보] 1면 헤드라인이었다. 고(故) 이 회장은 1987년 그룹 회장에 올랐다. 그는 1987년 12월 1일 취임사에서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으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이 다짐을 관철했다.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 이후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삼성을 글로벌 강자로 키웠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D램·낸드플래시), 스마트폰, TV, 냉장고 등에서 월드베스트 제품을 만들어냈다. 1987년 이 회장 취임 당시 9조9000억원이었던 삼성전자의 매출은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커졌다. 영업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259배,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글로벌 5위(71조원)에 해당하고, 매출의 85%를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 회장의 부고 기사에서 ‘삼성의 큰 사상가(Samsung’s big thinker)’라고 표현했다. 실제 이 회장은 유일한 저서인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나의 바람은 삼성이 일류 기업이 되어 일류 국가, 풍요로운 가정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서 한 국가를 넘어 인류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이윤을 추구하는 경영인의 차원을 초월한 철인(哲人)의 면모로 각인된다. 그리고 삼성 퀀텀 점프의 출발점이었던 신경영 선언은 ‘삼성식 경영으로 세계 1등이 되겠다’는 의지였다.

이경묵(56)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건희식 경영의 요체인 ‘삼성 웨이(Samsung Way)’를 연구한 학자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졸업한 이 교수는 2011년 세계 최고 권위의 경영 저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삼성의 성공을 분석한 ‘The Paradox of Samsung’s Rise’라는 논문을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공동 게재했다. 이어 2013년 이건희 신경영(New Management)의 20년 궤적을 분석한[삼성 웨이]를 송 교수와 공동 출간했다. 그해 이 교수는 한국경영학회의 제1회 삼성경제연구소(SERI) 중견경영학자상을 수상했다.

월간중앙은 11월 5일 서울대 경영대학원 이 교수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건희 시대 삼성은 왜 강했는지,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은 삼성의 개혁에 어떻게 투영됐는지, 인재 발굴을 위한 삼성의 노력은 무엇이었는지, ‘포스트 이건희 시대’ 삼성 웨이의 지속가능 조건은 무엇인지 등에 관해 포괄적으로 들었다. 이 교수와의 인터뷰는 가독성을 위해 강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 이건희 신경영의 성공 코드(1) 장기적 관점의 통찰 | “5년 후, 10년 후를 고민하다”

삼성을 연구한 계기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 신경영이 10년을 넘긴 시점에 이건희 회장이 “삼성이 어느 정도 세계적 기업이 됐으니, 국내 다른 기업들도 (삼성처럼)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 그 원리를 찾아보자”는 뜻을 비쳤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연구를 했다. 아무래도 내부에서 하려다 보니 체계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나와 송재용 교수에게 삼성에서 의뢰가 왔다. 당초 출간은 2004년으로 예정됐다. 원고를 다 썼는데 삼성 미래전략실이 검토 과정에서 보류를 요청했다. ‘일본의 경쟁 기업에 이 정보가 공개되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원고가 봉인됐다. 그러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20주년(2013년)이 가까워지면서 ‘그동안 연구했던 것을 다시 책으로 냈으면 한다’는 제안이 왔다. 삼성이 그 10년 사이에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추가적인 연구를 거쳐서 2013년 [삼성 웨이]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삼성 임원을 100명 넘게 만났다. 우리가 기자가 아니니까 더 솔직하게 얘기해준 것 같다. ‘삼성이 신경영 혁신 이후 극적인 변신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어떠한 변화 과정을 거쳤으며, 변신에 성공하게 된 주요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게 첫째 목표였다. 신경영의 핵심은 크게 두 줄기였다. ‘경영의 글로벌화와 인재의 글로벌화’ 그리고 ‘질(質) 위주 경영을 통한 세계 1등 추구’가 그것이다.

삼성이 이렇게 갈 수 있었던 기본 전제는 이건희 회장이 오너경영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오너경영이 전문경영인 체제보다 반드시 우월하다고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삼성의 당시 지배구조가) 이 회장의 인사이트가 발휘될 수 있는 최적의 구조였음을 간과할 수 없다. 최고경영인 이건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삼성을 이끌었다. 계열사 사장들이 지난 분기 사업실적 자료를 만들어서 가면 이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거 관심 없다. 그건 당신들이 알아서 하는 거고, 나는 삼성이 5년 혹은 10년 뒤에 무엇을 먹고살지, 이를 위해 어떤 길이 필요한지, 그 루트를 어떻게 확보할 건지, 인재를 어떻게 데려올 건지에 관한 보고를 듣고 싶다.”

그룹 총수가 단기 지향적일 성향이 매우 높은 계열사 사장들에게 장기적 관점에서 경영하도록 계속 자극을 준 것이다. 단기 주주가치 중심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리스크 테이킹(위험하지만 높은 수익을 주는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당시 여타 대기업에 비해 삼성은 이런 문화가 더 강했다. 대규모 반도체 투자가 대표적 사례다. 메모리반도체에 관한 지식이나 기술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투자를 결행했다. 삼성 계열사가 가진 돈을 거의 모조리 반도체 사업에 쏟아 넣었다. ‘반도체가 안 되면 삼성이 망할 거다’라는 말도 많았지만 감수했다.

■ 이건희 신경영의 성공 코드(2) 위기의식의 침투 | “세계 1등을 노리지 않는 분야는 접었다”


▎이건희(가운데) 삼성 회장이 1993년 LA 회의에서 신경영 개념을 임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본래 경영자들은 위기를 강조한다. 그러나 구성원을 쉽게 감화하지 못한다.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고 예전 방식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위기론은 스케일이 달랐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어떤 사업에 대규모 투자 결정을 내린다. 기술이나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감행한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위기의식이 돈다. ‘이거 망하면 우리 다 망하겠네.’

삼성전자의 성장 과정을 보자. 예전에는 다양한 가전제품을 만들어서 팔았다. 그러다 주력제품 분야를 정했고, 나머지 사업은 접었다. 주력 사업을 정할 때, 기준을 정했다. ‘삼성이 세계 1등을 할 수 있는 분야’, ‘글로벌 시장 규모가 큰 분야’가 그것이다. 결정하면 대규모로 투자했다. 그 불확실성 자체가 회사에는 위기였다. 가령 신사업에 투자했는데 초기 공장 가동률이 15~20%밖에 안 될 것 같다. 그러면 가동률을 100%로 끌어올리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조직 안에 돈다. 지금은 절대 안 될 얘기지만, 삼성전자가 수원에 반도체 공장을 6개월 만에 지었다.

그런 면에서 이건희 회장은 ‘지르기의 달인’이었다. 크게 성장하고, 큰돈 벌 수 있는 사업 기회를 포착하면 그 시점에 삼성의 경쟁력이 높지 않더라도 (경쟁기업들이 엄두도 못 낼 수준으로) 지른다. 이러면 조직 안에 위기감이 돌고 선순환이 일어난다. 삼성전자의 영광을 만든 반도체, 삼성의 미래 사업으로 꼽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은 최고경영자의 판단으로 가능했다.

일례로 반도체 사이클을 보면 바닥일 때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경영인은 바닥일 때 비용과 투자를 줄인다. 그러다 때를 놓친다. 그러나 삼성은 투자비용이 적게 드는 바닥일 때 지를 수 있었다.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경영 체제였고, 최고경영자에게 그만한 파워가 있었다. 삼성은 굉장히 큰 조직이면서도 스피디했다. 요약하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성공 요인은 여섯 가지다. ▷도전적 목표 설정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 ▷기술 중시 ▷핵심인재 중시 ▷위기의식 ▷스피드가 그것이다.

■ 이건희 신경영의 성공 코드(3) 거버넌스(governance)의 혁신 | “일본식·미국식·유럽식 경영을 구분하는 건 무의미”


▎이건희 회장은 2004년 삼성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 반도체 사업은 삼성 신경영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 사진:삼성전자
존 코터 하버드비즈니스스쿨 명예교수는 변화관리 8단계 모델을 정립했다. ▷1단계: 위기감 조성 ▷2단계: 변화추진 주체세력 결집 ▷3단계: 비전 설정 ▷4단계: 비전 전파 ▷5단계: 구성원 임파워먼트 ▷6단계: 단기적 성과 개선방안 탐색과 실행 ▷7단계: 전반적인 경영방식의 변경 ▷8단계: 새로운 경영방식의 제도화가 그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혁신에 이 모델을 적용하면 초기에 1~4단계를 병행했다. 회장 취임 5년 차인 1993년 개시된 LA 회의를 필두로 프랑크푸르트 회의, 런던 회의, 후쿠오카 회의, 오사카 회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제2 창업’을 선언했다. 그 연장선에서 근무 유연제에 해당하는 7·4제, 불량제품 화형식, 라인 스톱제, 혁신팀 설치, 신경영 교육 등이 나왔다. 5~8단계에서는 비서실 개편과 사장단 교체 등 인적 쇄신에 이어 사업 구조조정, 책임경영과 인사제도(평가와 보상) 개혁이 뒤따랐다. 이는 양이 아니라 질 중심으로 가겠다는 혁신이었다. 당시에도 삼성은 국내 재벌기업 중 매출 1등이었다. 그런데 ‘매출을 포기해도 좋으니 질을 높이자’고 강조한 것이다. 그때 삼성 계열사 사장들은 양 중심 경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이 회장은 취임 후 5년을 지켜본 뒤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질 중심 경영에 반대하는 인사들을 전부 물러서게 하는 쇄신을 가했다. 비서실도 새롭게 구성했다. 거버넌스(governance)를 바꾼 것이다.

이 회장은 외부 전문가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삼성 변화의 트리거가 된 ‘후쿠다 보고서’도 그렇게 나왔다. 사실 이 회장의 위기론과 별개로 당시 삼성은 변하지 않아도 먹고살만했다. 신경영을 발표한 1993년,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좋았다. 신경영 초기, 일각에선 “삼성의 신경영은 돈 버는 신경영이 아니라 돈 쓰는 신경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라는 진짜 위기가 오자 삼성은 성과주의를 도입했다. 부실사업을 정리했다. 일본식 경영과 미국식 경영을 섞은 것이다.

2020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밀그롬 스탠퍼드대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미국식 경영방식과 일본식 경영방식을 섞어서 쓰면 단점만 발현될 것’이라는 주장의 논문을 게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삼성은 두 가지를 섞어서 성공했다. 미국 주류 경제학계의 생각을 깬 것이다. 1997년 이전의 삼성은 일본의 전자기업, 종합상사가 했던 방식을 따라 하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였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삼성 출장기록을 보면 미국행 횟수가 일본행을 앞섰다. 말단에서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규율·집단주의 같은 일본식을 유지했고, 상부에서는 전략경영·브랜드 및 디자인 중시 같은 미국식 경영을 강조했다.

후발기업이 선두에 서려면 다른 기업이 가지지 않은 경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삼성은 세 가지(▷대규모 조직이면서 스피디함 ▷다각화와 전문화의 조화 ▷일본식 경영과 미국식 경영의 결합) ‘패러독스 경영’을 통해 초일류기업이 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이 회장은 1994년 독일신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차이퉁]에 글을 기고했다. “과거에는 규격에 맞는 모범적 경영방법이 존재한다고 믿었지만, 오늘날의 일류기업은 이런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털어버리고 상황에 따라 자신만의 독특한 경영 스타일을 채택한다. 즉 ‘일본식’, ‘미국식’ 또는 ‘유럽식’으로 경영 스타일을 구분하는 것은 더는 의미가 없어졌다. 모든 기업이 제각기 고유한 경영 스타일을 가지게 될 미래의 경영이란 전통적 경영학에 대한 반란을 의미한다.”

■ 이건희 신경영의 성공 코드(4) 경영 다각화와 고도화의 조화 | “삼성 계열사끼리도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협상”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이 1998년 방한한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를 접견했다. / 사진:삼성전자
(기업의 확장정책에 해당하는) 경영 다각화 구조에서는 여러 사업을 하고 있는 한 회사 안에서, 돈을 많이 버는 계열사가 돈을 못 버는 계열사를 지원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경쟁력 있는 계열사조차도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다각화를 지향하면 전체적으로 하향평준화될 수 있다. 그런데 삼성은 다각화된 사업을 하면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 많다. 상향평준화를 해낼 수 있었던 중요한 기제가 있다. 삼성에서는 계열사들끼리 거래할 때에도 시장거래 방식을 채택한다. 가령 삼성전자가 삼성전기 부품을 반드시 사주지 않는다. 더 싸게 얻을 수만 있다면 다른 데서 사 온다. 각자가 경쟁력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다. 가령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스마트폰은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에게 안정적인 공급처로 보인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아마 두 부서가 치열하게 협상할 것이다.

이건희 시대 삼성은 삼각편대 경영 시스템이었다. ▷비전과 핵심 경영방침을 제시하는 이건희 회장 ▷각 계열사 사업에 대한 전략을 책임지는 전문경영진 ▷계열사 간 조율과 시너지를 창출하는 미래전략실이 그것이다. 전문경영인은 당연히 경영 능력이 좋다. 문제는 자기의 사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미래전략실은 전문경영인의 도덕적 해이를 통제하기 위한 조직이다. 계열사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다면, 그 결정이 타당한지를 검토한다. 왜냐하면 계열사는 단기 목표 중심으로 결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삼성 미래전략실 사람들이 “우리는 계열사 사장들과 공동 경영한다”고 말했던 이유다. 다른 대기업도 회장 비서실이 있다. 유독 당시 삼성의 미래전략실이 부각된 이유는 다른 그룹의 헤드쿼터에 비해 훨씬 파워풀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삼성의 사업구조 고도화는 (미래전략실이 해체되고, 이재용 부회장 체제로 바뀐) 지금도 필요하다. 성장 가능성이 낮은 분야는 팔고 신사업에 집중해야 하는데 제약이 많다. 기존 사업 정리가 쉽지 않고, 신규 사업은 바이오 외에는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현재 삼성이 잘하고 있는 초격차는 기존 사업에서의 초격차다.

사람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영역에 한계가 있듯, 기업도 여러 사업을 벌이고 있으면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 미국 기업들이 대부분 한 가지 산업 영역에 집중하는 이유다. 삼성은 여전히 다각화 기업이다. 바뀌고 있는 세상에 맞춰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여의치 않다. 가령 애플과 삼성은 똑같은 휴대폰 사업을 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은 다르다. 애플은 스마트폰을 팔 때에도 돈을 벌고, 그 폰을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iOS 운영체계에서) 돈을 번다. 반면 삼성은 폰을 팔면 끝이다. 애플은 플랫폼 사업자가 됐고, 삼성은 아니다. 삼성도 자체 OS(운영체계)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삼성 갤럭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계를 채택했다.)

현재 삼성은 ‘우리가 잘하고 있는 제조업을 더 잘해서 돈을 벌자’는 마인드다. 이런 제조업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그룹 안에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미국의 애플, 구글, 페이스북은 인수합병(M&A)을 지속하고 있다. 반면 삼성은 거의 못하고 있다. 삼성의 글로벌화가 덜 된 측면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정책이나 노조를 고려할 때 시도하기 어렵다. 지금 상태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다 애플 주식 사지, 누가 삼성전자 주식 사겠는가?

■ 이건희 신경영의 성공 코드(5) 기술과 인재 그리고 성과주의 | “삼성의 성공은 전체 국부를 올렸다”

이건희 회장 이전부터 삼성은 동종 산업에서 가장 높은 임금을 줬다. 이병철 선대회장 때에도 반도체를 키우기 위해 사장보다 월급 더 많이 받는 연구자를 모셔왔었다. 삼성의 장기 성장을 위한 주요 기반은 크게 두 가지다. 기술과 인재. 삼성은 인재를 그 어느 기업보다 강조했다. 다른 기업과 달리 성과주의를 중시했다. 잘하는 사람한테는 파격적 대우를 해줬다.

대표적 사례가 지역전문가 제도다. 연봉과 체재비를 합치면 1인당 2억원은 들어간다. 이 회장은 1년에 200명씩 보냈다. 그렇게 육성된 지역전문가가 지금 아마 5000~6000명은 될 것이다. 이는 삼성의 글로벌 전략이기도 했다. 가령 삼성전자에서 휴대폰을 만들면 전 세계에 판매를 해야 한다. 이럴 때 일본 경쟁기업의 현지 주재원은 영어만 잘한다. 반면 삼성 사람은 현지 언어까지 할 줄 안다면 비교가 안 될 것이다. 삼성 제품이 전 세계에 팔릴 수 있는 인프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 지역전문가 출신이 그룹의 높은 위치로 갈테니까 삼성이 전체적으로 글로벌화가 된 것이다. [삼성 웨이] 취재 과정에서 실감한 것인데 이건희 회장은 ‘우리 회사 돈 벌자’ 이런 관점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비쳤다. ‘삼성을 세계 1등 기업으로 만들겠다’, ‘삼성 말고 국내 다른 기업도 세계적 기업이 될 수 있게 돕자’는 마인드였다.

경영인 이건희의 가장 큰 공적은 한국 국민에게 ‘우리도 첨단 분야에서 1등을 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준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 성공사례를 보여줬다. 삼성 같은 거대 기업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1인당 국민소득이 1970년대 수준이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경찰이 하는 업무는 1970년대와 달라진 게 많지 않다. 그런데 월급은 그때에 비해 엄청나게 올랐다. 거대 기업이 생겨나고 생산성이 높아지면 월급이 올라간다. 그러면 세금도 많이 낸다. 대학교수도 마찬가지다. 가령 이공계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삼성 갈까, 대학 갈까 갈림길에 선다. (삼성에 인재를 일방적으로 뺏기지 않으려면) 대학도 처우를 올릴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모든 기업이 혜택을 받는다. 다른 기업들도 ‘삼성이 했는데 우리는 왜 못해’라며 세계 1등을 목표로 노력하게 됐다. 그렇게 다들 노력하다 보면 전체 국부가 올라가고, 나눠 먹을 몫이 커진다.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 녹취 정리 김재현 월간중앙 인턴기자

202012호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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