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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잠망경(1)] 인생 걸고 아시아나항공 합병하는 조원태 한진 회장 

‘세계 7위 메가 캐리어’와 ‘경영권 상실’ 갈림길에 서다 

산업은행 조력 받고 한진칼의 아시아나 인수 감행, “인위적 구조조정 없다”고 선언
코로나19 위기 넘어 특혜 시비, 노조 설득, 3자 연합의 견제 딛고 실적으로 말해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합병이라는 모험을 결행했다. 빅딜이 성공한다면 국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세계 7위 항공사로 도약한다. / 사진:한진그룹
"민감한 부분이라 곤란하지만 우리도 지켜보고는 있다.” 조원태(46) 한진그룹 회장이 2019년 6월 3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답변한 것이다. 조 회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일축하지 않았다. 시장의 파장은 작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시장은 실현 가능성을 매우 낮게 봤다. 이유는 3가지였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을 가늠할 수 없고 ▷대한항공의 재무 상황도 그다지 좋지 못하며 ▷독점 문제로 인한 정부 규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무렵 만난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아시아나를 인수한다는 것은 대한항공마저 부실의 늪에 빠져드는 것”이라며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설은 힘을 받지 못했다. 이후 아시아나항공의 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2019년 11월 12일 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컨소시엄은 매각 입찰에서 2조5000억원을 써냈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12월 27일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조 회장은 아시아나가 새 주인을 찾은 소식에 대해 별다른 아쉬움을 표시하지 않았다. 2019년 11월 20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기존 경쟁 구도가 그대로 갈 것 같다”며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가 좋아질 테니 우리도 빨리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을 뿐이다. 그는 이어 “구조조정을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으나 이익이 안 나면 버려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위기 상황에서 비효율을 줄일 방편에 주력해야지 M&A(인수·합병) 같은 규모의 경제를 펼 때는 아니라는 시각이었다.

그러나 2020년을 덮친 코로나19 위기로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항공업이 치명적인 내상을 입었다. 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 주식 취득 예정일(4월 30일)을 불과 하루 앞두고 ‘인수 일정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6월 9일 채권단에 ‘인수를 원점에서 재검점하자’고 요구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작업을 주도한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6월 25일 “인수 조건을 완화해줄 수 있다”고 제시했지만 타협에 이르지 못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을 재실사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9월 11일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아시아나항공의 모(母)회사인 금호산업은 현대산업개발과의 인수 협상을 ‘없었던 일(no deal)’로 처리했다.

저비용항공사(LCC)도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로 몰렸다.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인 에어서울과 에어부산의 불확실성은 증폭됐다.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이 인수 의사를 밝혔지만 결국 무산됐다. 이후 이스타항공 직원들은 희망퇴직·정리해고를 피하지 못했다. 이스타항공 창업자이자 사실상 대주주로서 임금체불·횡령·배임 의혹을 받은 이상직 의원은 9월 24일 민주당을 탈당했다. 그는 여전히 무소속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항공업이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업(業) 자체를 사양 산업처럼 여기는 시대적 기류에 있었다. ‘언젠가 코로나19가 끝나더라도 사람들이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탑승해 여행을 떠나겠는가?’라는 본질적 의문과 마주했다. 업황을 선반영하는 주식시장에서도 1·2위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주가는 (합병 뉴스가 나오기 전까지) 가시적인 회복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항공업이 재편되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가장 속이 타는 쪽은 정부였다. 산업은행은 기간산업안정기금 명목으로 2조4000억원을 투입했다. 아시아나항공 부도를 막기 위해 국민 혈세를 쏟아부은 것이다. 민간 기업에 아시아나를 처분하지 않는 한 기약 없이 세금으로 메워야 할 판이었다.

산업은행의 ‘묘수’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지원을 위해 8000억원 투입을 결정했다. / 사진:산업은행
SK, 한화 등 대기업은 진작부터 아시아나 인수에 난색을 표했다. SK의 한 임원은 “그룹에서는 항공업에 미래 비전이 있다고 보는 것 같지 않다”며 증권가에서 도는 루머를 일축했다. 익명의 한화 임원도 “(항공기 엔진 제작회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있다고 항공사에 관심 있다는 시나리오가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하루라도 빨리 팔아야 하지만 구매자는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아시아나 매각 작업 지휘자인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묘수’를 냈다. 대한항공에 제안을 넣은 것이다. 왜냐하면 남들이 마다하는 매물이었지만, 대한항공 최고 경영진이라면 솔깃하게 여길 만한 필연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대한항공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대한항공이 정상적 상황이었다면 절대 받지 않았을 카드”라며 “그러나 조원태 회장이 처한 특수한 상황에서는 뿌리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야기는 2014년 12월 터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소위 ‘땅콩 회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벌 오너 가문의 ‘갑질’에 국민적 공분이 일었고, 그 여파로 한진가에는 시련의 시간이 밀려왔다. 한진그룹은 18차례에 걸쳐 정부 각 부처의 압수 수색을 받았다. 조양호 전 회장 자택에까지 수사가 이뤄졌다. 거듭된 악재에 조 전 회장의 건강은 악화했다. 결정타는 2019년 3월 대한항공 대표이사직 연임 실패였다. 찬성 64,1%, 반대 35.9%였다. 연임 성공을 위한 지지율(66.66%)에 불과 2.5% 모자랐다. 끝내 상실감을 이기지 못한 조 전 회장은 2019년 4월 8일 미국 LA에서 별세했다.

위태로웠던 경영권 방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은 경쟁력 상승 기대감과 구조조정 우려가 교차한다.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조 전 회장은 “가족들끼리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나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유족들은 이 유훈을 지키지 못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대열에서 이탈한 것이다.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지주회사 한진칼 지분이 필수적이다. 조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시점에 한진칼 지분 보유 비율은 조원태 회장 6.52%, 누나 조현아(47) 전 부사장 6.49%, 여동생 조현민(38) 한진칼 전무 6.47%, 어머니 이명희(72) 정석기업 고문 5.31%였다. 이 지분을 모두 합치고(24.79%), 한진그룹 산하 재단 등 특수관계인 지분 4.15%와 우호세력인 미국 델타항공의 지분 10%를 더하면 38.94%에 달한다. ‘강성부펀드’로 불린 KCGI(17.29%)와 반도건설(8.20%)의 당시 지분을 합한 것보다 10% 이상 높다. 비교적 순조롭게 경영권 방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현아 전 부사장은 2019년 12월 23일 법무법인을 통해 ‘조원태 회장을 그룹 총수로 인정할 수 없다’는 요지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후 그녀는 KCGI와 반도건설 연합에 합류했다. 순식간에 한진칼 지분 비율은 친(親)조원태 진영 33.45%, ‘3자 연합’으로 칭하는 반(反)조원태 진영 31.98%로 좁혀졌다. 이런 구도에서 펼쳐진 2020년 3월 27일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 측은 완승을 거뒀다.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통과(찬성 56.67%, 반대 43.27%, 기권 0.06%)됐다. 또 사내·사외 이사 선임안도 조 회장 측의 의도대로 이뤄졌다. 예상보다 일방적인 결과가 나온 데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작동했다. 하나는 주주총회 하루 전에 나온 국민연금의 조원태 회장 지지 표명이었다. 국민연금의 한진칼 지분은 2.9%(추정)에 불과했지만, ‘정부 입장’을 대변한다는 측면에서 상징적이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반도건설 측이 보유한 한진칼 의결권을 제한한 법원 판결이었다. 법원은 “반도건설이 주주명부 폐쇄 이후인 2020년 1월 10일에야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가’로 변경했다”며 반도건설 보유 지분 8.2% 중 5%에 대해서만 2020년 3월 27일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후 경영권 분쟁은 잠복기로 접어들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 국면에서 ‘노이즈’를 키울 시 발생할 부담감도 작용했다. 그러나 양측은 끊임없이 지분 확보를 위해 물밑 경쟁했다. 3자 연합은 45.24%까지 지분 비율을 끌어올렸다. 한진칼 지분의 과반에 접근한 것이다. 경영권 분쟁이 격화하기 전까지 3만원도 안 됐던 한진칼 주식은 한때 11만1000원까지 치솟는 과열을 보였다. 이런 국면에서 산업은행이 ‘게임 체인저’로 나타났다. 산업은행은 이대로 가면 경영권 유지가 어려웠던 조 회장에게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한진칼이 아시아나항공을 사들이는 방식’을 제시했다.

핵심은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주체가 대한항공이 아니라 한진칼이라는 점이다. 산업은행은 한진칼에 총 80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고, 이 가운데 5000억원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참여에 넣었다. 이로써 한진칼 주식 706만2146주를 갖게 됐다. 지분율은 10.66%에 달한다. 종전까지 조원태 회장 우호세력(22.44%)은 델타항공(14.9%)을 합쳐도 37.3%로 추산됐다. 반면 3자 연합은 45.24%(조현아 6.49%+강성부펀드 19.55%+반도건설 19.2%)에 달했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들어오면서 3자 연합의 지분율은 40.4%(조현아 5.79%+강성부펀드 17.46%+반도건설 17.15%)로 축소됐다. 반면 조원태 회장 우호지분은 44.02%(조원태 진영 20.5%+델타항공 13.31%+산업은행 10.66%)로 급등했다. 여기에 ‘정부 지원’이라는 묵시적 프리미엄까지 더하면 사실상 조 회장의 지배력이 안정권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합병을 향한 따가운 시선


▎2020년 대한항공은 여객기를 화물 전용기로 개조하는 아이디어로 수익을 창출했다. / 사진:대한항공
서울중앙지법은 12월 1일 강성부펀드 측이 한진칼을 상대로 낸 신주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쉽게 말해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을 한진칼에 매각하는 방식을 허가한 것이다. 이후 한진칼 주가는 폭락했다. 9만원을 육박했던 주가는 6만원마저 위협 받았다. 시장은 사실상 경영권 분쟁이 끝난 것으로 판단한 셈이다.

정부가 발등의 불인 아시아나 문제를 하루빨리 처리하려다 ‘조원태 회장이 1원도 안 쓰고 경영권을 방어하도록 특혜를 줬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특정 사주를 정부가 도와주는 식의 모습이 보여서 말들이 많다”며 “산업은행은 손해가 나면 정부가 자동으로 메워주는 곳이다 보니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당인 민주당도 마냥 우호적인 시선이지만은 않았다. 민병덕·민형배·박용진·송재호·오기형·이용우·이정문 의원 등은 11월 1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부담이 있던 산업은행과 경영권 분쟁에서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총수 일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며 “한진칼 및 대한항공 주주들의 지분가치는 희석되고, 아시아나 대주주의 이익은 배가될 것”이라고 공격했다. 또한 이들은 “국민 혈세가 항공산업의 독점에 이용된다는 우려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도 페이스북에 “산업은행이 아시아나에 돈 빌려주고 떼인 걸 왜 한진칼 주주와 대한항공 주주가 책임져야 하는가”라고 지적했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기존 주주들은 지분율이 희석되는 상황을 경시할 수 없다는 관점이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전제로 취재에 응한 항공업 전문가는 “아시아나항공이 호남 기업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오래 끌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호남 정서를 고려하다 보니 회생이 어려운 기업을 무리하게 연명시키려다 세금은 세금대로 쓰고, 이 지경까지 왔다는 시각이다. 이 교수도 “산업은행이 정치권 눈치 보느라 호남 기업을 제대로 손도 못 본 채 현대산업개발과 딜을 진행했다가 잘되지 않았다. 구조조정 실패 면피가 이번(한진칼과 아시아나항공) 딜의 감춰진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온갖 우려 누르는 독점 기대감

이런 시선과 별개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한 우산 아래 모이면 시너지가 날 수 있다는 긍정론도 힘을 얻는다. 가장 큰 기대감은 이번 빅딜을 통해 ‘한국도 세계적 규모의 항공사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운송량 기준 세계 7위인 ‘메가 캐리어’가 탄생한다. 2019년 기준으로 대한항공(22.9%), 아시아나항공(19.3%)과 산하 LCC 진에어, 에어서울, 에어부산의 국내선 수송객 점유율을 합치면 62.5%에 달한다. 국제선 수송객 점유율은 대한항공 19.3%, 아시아나항공 14.1%였다. 국제 화물 수송 점유율은 대한항공 30.2%, 아시아나항공 17.5%씩 점했다.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의 애런 슐트 아시아·태평양 항공·물류·운송 분야 총괄 대표는 11월 2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년간 글로벌 항공산업의 주요 트렌드는 통합이었다”며 “에어프랑스와 KLM(네덜란드)의 합병 사례를 보면 수요가 적은 노선의 비행편을 줄이고, 기항이 어려웠던 도시에 새로 진출할 수 있었다”며 “항공사 규모가 커지면 항공기나 엔진 제조업체와의 협상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지난 15년 사이 항공사 통합은 모두 성공을 거뒀다”고 주장했다.

대한항공 내에서는 합병에 우호적인 기류가 강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일선 직원은 “꼼꼼히 살펴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국제선 노선은 생각보다 겹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그는 “가령 몽골 울란바토르에 취항하는 건 한국에서 대한항공밖에 없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편이다”라며 “그래서 독점이 되면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 그 대신 대한항공은 프리미엄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성으로 어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사의 국제선 여객 노선은 총 115개다. 이 중 대한항공 단독 노선이 53개, 아시아나 단독 노선이 14개다. 48개 노선은 중복이다. 그러나 이 중복 노선 중 상당수가 단거리 노선이라서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대한항공은 비행기 자체 보유 비율이 높은 편이다. 반면 아시아나 비행기는 리스(lease)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아시아나 부실이 심화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리스는 만기가 있다. 합병 후 어떻게든 버티기만 하면 리스 기한이 끝나고, 부담을 갈수록 덜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19년 4월 기준, 아시아나항공기 84대 중 51대, 에어부산과 에어서울 21대가 리스다. 반면 대한항공은 165대 중 리스 비율은 16%뿐이다.

항공 빅딜의 최대 변수로 꼽히는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대한항공 내부적으로는 낙관론이 존재한다. 조원태 회장과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 등 수뇌부는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이 선언을 믿는 이는 거의 없다. M&A 실사를 담당한 한 회계사는 “구조조정 없는 M&A는 세상에서 들어본 적 없는 말”이라고 일축한다. 실제 항공 빅딜에 대한 양사 노조의 입장은 첨예하다. 특히 합병을 당하는 쪽인 아시아나 직원들의 불안감은 상당하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 열린조종사노조(아시아나), 아시아나 노조는 “양사 노동자의 의견이 배제됐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대한항공에서는 최대 노조(가입자 1만1679명)인 대한항공 노조가 “고용안정 약속”을 전제로 합병에 찬성 의사를 나타냈지만,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와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는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인위적 구조조정 없는 통합 가능할까?

이에 대해 대한항공 내에서는 의미심장한 예상이 나오고 있다. “경영진이 아시아나항공의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일단 지킬 것 같다. 항공업 특성상 생각보다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대한항공이 장거리 하이엔드 서비스를 담당하고 아시아나가 진에어, 에어서울, 에어부산 등 LCC를 관할하는 구조를 상상해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LCC나 협력업체에서 중복인력이 발생하게 된다. 여기서 발생하는 구조조정으로 아시아나 인력 감축을 대체할 수도 있다. 이런 기조 속에 향후 항공업 신규채용도 줄어들 것이 유력하다.

일각에서는 아시아나의 부채 비율을 감당하지 못하고 대한항공마저 동반 부실화할 수 있다는 경계도 나온다. 그러나 합병 발표 이후 주식시장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산하 LCC 관련 주들은 강세를 보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진통이 있어도 결국에는 연착륙할 것, 정부가 항공업이 몰락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담겨 있다.

조원태 회장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건 사실상 아버지 조양호 전 회장이 별세한 2019년 4월 이후부터다. 중국의 한한령,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일본노선 축소, 홍콩 민주화 사태 등 악재 속에서도 대한항공은 2019년 영업이익 2909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년 대비 56.4% 감소한 숫자였다. 2020년은 코로나19라는 최악의 시련이 닥쳤다. 그 골이 가장 깊었던 2분기에 대한항공은 1485억원이라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델타항공(-5조7100억원), 루프트한자(-2조3800억원), 싱가포르항공(-7000억원)이 큰 적자를 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여객기 140여 대를 개조해 화물 운송에 투입한 발상의 전환이 결정적이었다. 조 회장이 아이디어를 냈고, 결단력을 발휘했다. 2020년 1월 30일에도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우리 교민을 구하기 위한 중국 우한행 비행기에 조 회장은 동승을 결행했다. 그가 보여준 의외의 실행력에 여론은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조 회장은 산업은행과 손잡으며 스스로 배수진을 쳤다. 이미 어머니 이명희 고문과 여동생 조현민 전무는 항공계열사 경영에서 손을 떼는 수순을 밟고 있다. 항공업 관계자는 “잘되면 할아버지 조중훈 창업주와 아버지 조양호 전 회장도 이루지 못한 글로벌 초대형 항공사로 대한항공을 도약시킬 수 있게 된다. 반면 못하면 경영권을 정부에 뺏기고 주주로만 남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조 회장은 2020년 3월 월간중앙과 가진 인터뷰에서 “항공산업은 다른 어떤 사업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성장할 수 있는 시점에 성장 동력을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다”며 “어려운 외부 환경에서도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궁극의 목표”라고 밝혔다. 전 세계 항공 동맹체 ‘스카이팀’의 의장을 맡고 있는 조 회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서 성장 타이밍과 동력을 구했다. 그리고 인위적 구조조정 없이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고난도 과제를 풀어야 한다. “문제도, 해답도 현장에 있다”고 강조하는 조 회장에게 이를 증명할 시간이 왔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101호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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