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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靑 ‘마무리 투수’ 유영민 비서실장의 과제 

‘경제’ 강속구로 세이브 기록하고 마운드 내려올 수 있을까 

정치베테랑·최측근도 배제하고 발탁… 실물경제 전문가로 위기돌파 의지
文 인정한 친화력·상상력 바탕으로 ‘아름다운 퇴장’ 이뤄낼 수 있을지 관심


▎지난해 12월 31일, 청와대에서 신임 유영민 비서실장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2013년 10월 1일,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당시 새누리당 원내 지도부를 자신의 공관으로 초청해 만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 비서실장은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나는 대통령 뜻을 밖에 전하고 바깥 이야기를 대통령께 전할 뿐이다. 옛날 말로 승지(承旨)다.” 승지란 조선시대 왕의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서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던 관리다. 대통령의 의중과 여론 전달만 할 뿐이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비서실장의 역할과 영향력을 ‘과대포장’하지 말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법적으로만 따졌을 때 그의 말은 크게 틀리지 않는다. 대통령 비서실을 규정한 법률은 「정부조직법」 14조 제1항의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하여 대통령 비서실을 둔다’와 제2항 ‘대통령 비서실에 실장 1명을 두되 실장은 정무직으로 한다’가 전부다. 비서실장도 ‘대통령의 비서’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실제 정치적 위상도 그럴까.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당장 김기춘 실장부터 보자. ‘기춘 대원군’. 임기 내내 그를 따라다닌 별칭이다. 왕보다 더한 권력을 지녔던 흥선 대원군에 빗댈 만큼 세상은 그를 정치적 실세로 여겼다. 역대 비서실장이 모두 그처럼 막강 영향력을 휘두르진 못했다. 그럼에도 ‘비서실장=권력의 2인자’로 인식해온 게 한국적 현실이다. ‘제왕적’이라고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의 중심에 있는 대통령. 그와 매일 마주 앉아 각종 정국 현안을 직접 보고하고 논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 비서실장이다. 국정 파악을 명목으로 고급 정보를 한 손에 거머쥘 수 있고, 거기다 대통령의 속 깊은 생각까지 교감할 수 있다면 거칠 게 없다.

꾸준한 하마평 양정철은 왜 선택받지 못했나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은 차기 청와대 비서실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은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었다.
실제 비서실장직을 발판으로 정치적 도약을 한 이도 여럿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만 따져도 국회의장(박관용·문희상), 국무총리(노재봉), 부총리(전윤철·김우식)를 비롯해 장관, 국회의원으로 잘 풀린 케이스가 다수다. 무엇보다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정치적 분신으로 인식되는 만큼 그의 성향이나 생각이 국정에 미치는 영향이 자못 크다는 점을 절대 간과할 수 없다. 비서실장 인선만 보고도 향후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21년 새해 첫날 신임 유영민 비서실장이 업무를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년 5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다. 사실상 현 정권 마지막 비서실장이라는 얘기다. 그를 발탁한 문 대통령의 의중에 더 큰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지난해 8월 청와대 참모들의 다주택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노영민 비서실장이 사의를 표했다. 이에 언론과 여권에선 저마다 후임 하마평을 내놓았다. 당시만 해도 ‘유영민’이란 이름은 없었다. 유력 후보로 떠오른 이들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우윤근 전 주 러시아 대사,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최재성 정무수석 등이었다. 하나같이 정치판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이다.

그중에서도 양 전 원장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정치라면 손사래를 치던 문 대통령의 오늘을 있게 만든 일등공신. 그럼에도 집권 초 ‘친문 패권’ 우려가 일자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는 말만 남기고 정치 유랑 길에 올랐다. 지난 총선 때는 민주연구원장으로 인재영입과 선거기획을 주도하며 민주당 압승을 일궈냈다. 그러곤 홀연히 당을 떠났다. 여권 입장에선 그에게 적잖은 정치적 빚을 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서실장 자리가 빌 듯하자 너도나도 입을 모았다. 권력 핵심과의 거리두기를 해온 ‘양정철의 자가격리 종식’이었다.

정치권 이목이 그에게 집중될 즈음 후임 비서실장 논의가 갑자기 쑥 들어가버렸다. 문 대통령이 노 실장 사의를 뭉개버렸기 때문이다. 함께 사표를 낸 수석비서관 4명은 경질하면서도 그를 유임시킨 것이다. 그렇다고 청와대는 ‘사의 반려’라는 표현도 쓰지 않았다. 아예 그의 거취에 대해 입을 닫아버렸다. 두어 달 뒤 여권 안팎에선 “노 실장의 유임은 연말까지”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에 맞춰 새로운 인물들이 후임 실장 후보로 떠올랐다. 그중 한 명이 유영민 실장. 언론 취재가 시작되자 펄쩍 뛰었다. “지금 경기도 양평에서 풀 뜯고 있는 사람이 무슨 비서실장을 하겠느냐. 청와대도 내가 풀 키우는 걸 아는지 아무런 전화가 없다.” 그의 적극적 부인이 연막작전이었는지, 실제 본인도 몰랐는지는 정확히 알 순 없다.

그때도 여권의 전반적 기류는 유 실장보다는 양 전 원장 쪽이었다. 사실 여권의 그에 대한 ‘러브콜’은 단순히 정치적 미안함 또는 보상 때문만은 아니다. 문 정부의 마지막 비서실장이 떠안아야 할 역할에 적임이라는 이유가 더 강했는지도 모른다. 역대 정권의 경우 마지막 비서실장은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의 권력방전 차단, 미래권력과의 원만한 관계 설정, 퇴임 후 신변보장책 마련 등에 주력했다. 이를 위해 대략 두 부류의 인물들이 마지막 비서실장에 올랐다.

먼저 ‘최측근 또는 믿을 맨(man)’. 대표적 사례가 같은 진보정권인 김대중 정부의 박지원 실장과 노무현 정부의 문재인 실장이다. ‘대통령을 대신한다’는 뜻의 ‘대통령(代統領)’으로 불렸던 박 실장은 정권 재창출에도 불구하고 야당 공세로 불거진 대북 불법 송금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럼없이 ‘친구’라고 했던 문 실장은 대통령 퇴임 뒤 검찰의 집요한 수사에 직접 변호인으로 뛰어야 했다. 또 한 부류는 여의도에서 잔뼈가 굵은 ‘정무형’. 김영삼 정부의 김용태 실장, 박근혜 정부의 한광옥 실장이 이에 해당한다. 두 사람 모두 정권 주류는 아니었으나 집권 말기 혼란 수습을 위해 전격 발탁된 4선 의원 관록의 ‘정치통’이었다.

여의도 베테랑 대신 정치적 마찰 최소화할 카드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세계 최초 5G 상용화 기념행사에 참석해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5G+ 전략’ 발표를 들은 뒤 박수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어쩌면 양 전 원장은 ‘최측근과 정무형’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겸비한 인물. 마지막 비서실장감으론 딱 들어맞는 셈이다. 무엇보다 여권으로선 전혀 새로운 형태의 정권 마무리를 위해서라도 그가 필요했을 것이다. 전국 단위 선거 4연승에다 지난해 총선 압승, 여전히 30%를 웃도는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까지. 이를 바탕으로 여권은 ‘20년 집권’을 천명한 상태다. 과거와 같은 수세적 정권 마무리가 아닌 다소 공세적 입장에서 정권 재창출 초석까지 놓을 수 있는 비서실장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반면 녹록지 않은 작금의 상황도 그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충돌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차기 대선주자로 급부상하고, 여당 소속 서울·부산 시장의 성 추문으로 인한 낙마로 보궐선거까지 예정된 탓이다. 그가 아니라면 최소한 ‘양정철 비슷한’ 역할을 할 만한 정치 베테랑들 이름이 그래서 등장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선택은 양정철이 아닌 ‘유영민’이었다.

유 실장 발탁에 대해 여론은 대체로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사실 이번 인사는 ‘양정철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기존 정치 문법과 상당히 궤를 달리했다. 적어도 외형상 드러난 정황으로 볼 때 유 실장은 문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여기다 2번의 총선 낙선 경력을 제외하면 사실상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아온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언론뿐 아니라 정치권은 해석에 분주했다.

대체적 견해는 문 대통령의 ‘순조로운 퇴임을 위한 작전상 후퇴’ 내지는 ‘통합을 위한 결단’으로 모였다. 실제 양 전 원장처럼 최측근에다 아주 센 캐릭터를 가진 인물을 임기 막바지에 전진 배치하면 정치적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당장 야당의 강력한 반발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자칫 불협화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과거 여당 내 차기 대선 경선이 과열될 때마다 대통령 의중이 문제가 됐다. 그 논란 한가운데엔 비서실장이 있었다. 이런 정치적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카드가 유 실장이라는 해석이다. 문 대통령은 1월 7일 신년인사회에서 ‘통합’을 강조했다. 사실 통합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취임사 때 약속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조국 사태’와 ‘추미애-윤석열 갈등’을 거치며 오히려 국론 분열만 심화한 상태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치는 다소 몰라도 사회 경험이 풍부한 유 실장을 선택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런데 정말 이게 다일까. 여권 관계자들이 주목하는 유 실장의 별명은 ‘밤의 총리’다. 현 정권 초대 내각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맡았던 그가 국무위원들 간 모임을 자주 주선하며 소통에 앞장선 것을 당시 총리로 지켜봤던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높이 평가해 붙여줬다고 한다. 유 실장은 장관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1기 내각 간사역을 자처해 퇴임 장관 친목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과 친화력으로 대변되는 또 다른 형태의 ‘정치력’ 없이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부산 쪽 민주당 인사들 사이에선 문 대통령이 진작부터 유 실장의 이런 특징을 눈여겨봤다는 말이 나돈다. 윤 실장은 2016년 총선 때 해운대갑에 ‘문재인 영입 10호 인사’로 출전했다 낙선했다. 정치를 접고 떠날 것이라던 주변 예상과 달리 그는 지역에 머물며 이때도 민주당 부산 원외 위원장 모임을 주도했다고 한다. 그해 총선에서 민주당이 단 한 석 앞선 원내 1당이 되긴 했지만 막강한 박근혜 정권의 장악력 탓에 여전히 집권 전망이 암울하던 시기였다. 그래도 유 실장의 긍정 에너지와 낙관적 태도가 부산 위원장 다수를 ‘문재인 대망론’에 붙잡아뒀다는 후문이다. 당시 고향 부산을 자주 오가던 문 대통령이 그를 각별하게 여겼을 법하다.

이런 해석이 맞다면 이번 청와대 인사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이른바 ‘허허실실(虛虛實實) 전법’이다. 먼저 정치적 경험도, 뚜렷한 색깔도 없는 유 실장 인선을 통해 야당 경계심을 풀게 한다. 아울러 통합과 안정을 국정 기조로 정치 현안과는 분명한 거리를 둔다. 정쟁에 넌더리를 내는 중도층 지지를 자연스레 견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정권 재창출에 뒷짐 지지도 않는다. 친화력과 소통을 내세운 유 실장이 소리 소문 없이 움직인다. 당·정·청을 오가며 ‘원팀(one team)’을 강조하며 단일대오를 흩트리지 않는 전략이다.

兪 저서 읽은 文 “정치도 상상이 풍부해야”


▎2016년 1월, 유영민 전 포스코 경영연구소 사장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외부 영입인사 10호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문 대통령에게 이상의 시나리오는 정권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충분조건’은 따로 있다. 바로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 경제에 대한 해법이다. 1월 11일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은 “새해가 새해 같지 않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 이유로 코로나19를 언급하며 “유례없는 민생경제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회복·포용·도약’으로 “새해는 분명히 다른 해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경제 회복과 도약이 올해 최대 국정과제임을 역설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유 실장은 이 과제에 더 적합한 해결사일 수도 있다. 자타가 인정하는 실물경제 전문가인 탓이다. 그는 부산대 수학과 졸업 뒤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해 LG CNS 부사장을 거쳐 포스코 ICT 총괄사장을 지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원장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등 공직도 거쳤다. 장관 재직 땐 우리나라를 세계 최초 5G 상용화 국가로 만들었다. 향후 5년 동안 5G 시장 규모는 1500조원으로 커질 전망. 이의 선점을 위해 관련 기업과의 소통과 협조로 상용화 시점을 8개월이나 앞당겼다.

그래서 청와대 개편과 관련해 그의 이름이 처음 나왔을 때 다수는 정책실장 후보로 봤다. 말 그대로 ‘정책통’인 그를 청와대 최선임 실장에 앉혔다는 것은 경제 회생에 ‘올인’하려는 대통령 의지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문 대통령은 그에게 정책 능력, 그 이상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 실장은 장관 발탁 뒤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2014년부터 내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그가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창의성을 주제로 [상상, 현실이 되다]라는 책을 내자 문 대통령이 SNS에 감상문을 올렸다. “정치도 상상이 풍부하면 좋겠다.” 집권 마지막 시점에 산적한 현안 해결의 청와대 총참모장으로 나선 유 실장에 대한 주문처럼 들리기에도 충분하다.

하지만 유 실장이 당면한 경제 정책적 과제는 절대 만만하지 않다. ‘발등의 불’은 역시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국민생계 지원방안이다. 1월 11일 3차 재난지원금 지급도 시작하기 전에 4차 지원 문제가 불거졌다. 당장 경제사령탑 홍남기 부총리는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지급하더라도 “피해계층을 두텁게”라며 선별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새해가 되자마자 “전 국민을 대상으로 1차 재난지원금 규모 이상 지원”을 주장한 이재명 경기지사를 겨냥한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 1차 재난지원 때처럼 ‘이재명-홍남기 충돌’의 2라운드 모양새다.

그러자 정세균 총리가 나섰다. “더는 ‘더 풀자’ ‘덜 풀자’와 같은 단세포적 논쟁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여기엔 이 지사도 “말씀 잘 새기겠다”며 일단 자세를 낮췄다. 그러나 “관료에 포획”됐다고 회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록을 소개하면서 뼈 있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균형재정’ 신화에 갇혀 있는 정부 관료들에 대한 이보다 더 생생한 술회가 있을까.” 차기 대선 구도에서 여권의 ‘다크호스’로 불리는 정 총리에 대한 견제구를 잊지 않은 셈이다. 여기에 야당은 4차 지원금 시기가 4월 재보선 시점과 맞물리는 점을 들어 ‘선거용’이라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여야 정쟁에 내부 선명성 다툼까지. 코로나19 극복과정에서 유 실장이 반드시 풀어야 할 고차 방정식이다.

재보선·부동산·사면 등 해결과제 산적


▎1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이 유영민 비서실장과 ‘2021년 신년인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그래도 문 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의 가장 큰 책무는 정권 재창출이다. 동질적 정치 철학과 가치를 지향하는 정권이 들어서는 것, 그 자체가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재신임인 탓이다. 그래야 ‘성공한 대통령’을 얘기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국정개혁과 포용성장, 한반도 평화구조 정착을 위해 어렵게 시작한 여러 정책이 5년 단임의 한계를 이겨내고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야구로 치면 유 실장은 8회 말쯤 올라온 ‘마무리 투수’라 할 수 있다. 초반 대량 득점으로 다소 싱겁게 보였던 경기가 중반 실책으로 조금씩 점수를 까먹다 이젠 누상에 동점 주자까지 나가 있는 상황. 그간 전력으로 보면 충분히 ‘세이브’로 승점을 챙길 수 있지만 방심할 경우 역전패의 멍에를 쓸 수도 있다. 타석에 줄줄이 들어설 타자들 면모도 예사롭지 않다.

최강 타자는 ‘부동산’. 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낙심 큰 국민에게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며 고개를 숙이게 한 장본인이다. 문제는 부동산 타자를 솎아낼 승부구가 마땅찮다는 점이다. 일단 ‘공급확대’로 정책 노선의 ‘변화구’를 시도한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은 시큰둥하다. 여기에 ‘양도세 완화’ 카드를 슬쩍 제시했으나 열광적 홈팬들은 야유를 퍼붓고 있다. 사실 열성 지지층에 의한 ‘팬덤 정치’는 현 정권 내내 ‘양날의 칼’이었다. 정권 호위무사로서 고비 때마다 큰 힘이 되었지만 이젠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걸림돌이 되곤 한다.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도 이런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일반적으로 마무리 투수에게 요구되는 최고 덕목은 삼진 능력이다. 아예 타자가 공에 손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강속구 못지않게 필요한 게 공 끝의 움직임, ‘무브먼트’라 불리는 다양한 구질 변화다. 정치와 정책의 현장에서도 때론 상대를 감복하게 만드는 융통성과 국민의 기대를 뛰어넘는 창조적 발상이 반드시 필요하다.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설파했던 유 실장. 정무형도 관리형도 아닌, 전혀 새로운 ‘창조형 비서실장’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 jwhn20@naver.com

202102호 (20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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