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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포커스] 총수 신년사로 보는 5대 기업 2021년 로드맵 

키워드는 고객… 혁신과 역량 제고에 방점 

코로나19 위기 장기화 조짐 가운데 정면돌파 의지 다져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통한 위기 극복 승부수도


▎국내 5대 그룹 총수들은 2021년 신년사를 통해 위기 정면돌파 의지를 다졌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화두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재계는 신년 벽두부터 분주하기만 하다. 대한민국 경제의 엔진이라 할 5대 그룹 총수들은 신년사를 통해 고객과 가치 제고를 기반으로 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전략을 통한 위기 돌파 의지를 비쳤다. 총수들의 신년사 그리고 지난해 연말 인사를 통해서 5대 기업의 2021년 로드맵을 들여다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고객 가치 높이는 기업이 되자”


▎2020년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이 브라질 삼성전자 마나우스 공장 생산라인에서 스마트폰 조립 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21년 1월 4일 개최된 온라인 시무식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김기남 부회장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신년사를 전했다. 이 부회장은 “2021년은 변화에 대응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원년이 돼야겠다”면서 “도전과 혁신이 살아 숨 쉬는 창조적 기업으로 변모하고, 고객을 가장 중심에 두는 고객 경험 및 고객 가치를 높이는 기업이 되자”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시무식 참석 대신 현장을 찾는 것으로 신년 첫 행보를 열었다. 그는 이날 오후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사업을 점검하고 경영진들과 중장기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는 차세대 반도체 생산의 전초기지다. 2공장은 D램, 차세대 V낸드, 초미세 파운드리 제품을 생산하는 첨단 복합 생산라인이다.

이 부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반도체 메모리 부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시사한다. 반도체 메모리 부문의 성장 등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지난해 영업이익 35조9500억원을 달성했다. 2019년 27조7700억원보다 29.46% 증가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매출은 236조2600억원으로 2.54% 증가했다.

여세를 몰아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서 시스템반도체 글로벌 1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차세대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한다는 복안이다.

“미래 기술 확보는 생존의 문제다. 변화를 읽어 미래를 선점하자.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 사회에 기여하는 데 전념하자. 선두 기업으로서 몇십 배, 몇백 배 책임감을 갖자.”

신년사에서 강조한 이 부회장의 이 같은 메시지는 앞선 연말 인사를 통해서도 잘 드러났다. 연말 인사에서 삼성전자의 경우 기존 3인 대표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삼성디스플레이·삼성SDS 등 일부 계열사는 대표이사를 바꾸는 등 세대교체에 나섰다.

삼성전자의 부사장급 이하 임원 인사에는 2020년 실적 개선이 반영되면서 승진자만 200명 이상 쏟아져 나왔다. 대규모 세대교체를 통해 대내외적으로 ‘젊은 삼성’을 표방하는 동시에 차세대 최고경영자(CEO) 후보군을 확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임원 214명을 승진 발령했다. 발탁 인사 또한 25명으로 최근 5년 새 가장 큰 규모였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무선통신 기술 전문가인 이준희 네트워크사업부 선행개발그룹장. 그는 5G 기지국 가상화 기술 상용화를 주도함으로써 삼성전자가 미국 버라이즌 등 글로벌 통신사업자들로부터 수주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1969년생으로 신임 부사장 가운데 최연소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신성장동력으로 대전환 이뤄내야”


▎지난해 10월 타운홀 미팅에서 임직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통해 친환경, 미래 기술, 사업 경쟁력 영역에서 성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정 회장은 “현대자동차 그룹의 모든 활동은 고객 존중의 첫걸음인 품질과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품질과 안전은 그룹 전 부문의 임직원과 협력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일치단결해 다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완벽함을 추구할 때 비로소 고객이 우리를 신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정 회장 체제로 새롭게 출범한 현대자동차그룹은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 전환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투자 의지를 보인 정 회장은 완성차 제조업을 뛰어넘는 사업 영역 확장에 나섰다. 정 회장의 의지는 지난해 말 발표된 ‘2025 전략(연구개발·미래차 기술 확보 등에 60조1000억원 투자)’에서도 잘 읽을 수 있었다. 2025 전략을 통해 현대자동차그룹은 향후 전기차·자율주행·수소연료 등 미래 자동차 시장 주도권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 회장은 신년사 말미에 “일상의 업무에서도 언제나 고객과 인류를 최우선으로,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고 협력업체를 비롯해 우리와 함께하는 다양한 이웃과 사회·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해주길 바란다”며 그룹의 사회적 책무를 당부했다.

앞선 연말 인사에서 정 회장은 전기차와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미래 신사업 강화를 위해 신임 사장 5명을 승진 발령하는 한편 부회장 2명을 2선 후퇴시켰다. 신규 임원 승진자 가운데 30%가량이 미래 신사업 분야에서 배출됐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반면 정몽구 명예회장 측근이었던 김용환 현대제철 부회장, 정진행 현대건설 부회장, 김경배 현대위아 사장, 박동욱 현대건설 사장, 서보신 현대자동차 사장은 뒤로 물러났다. 이들이 비운 자리에 신규 사장 5명을 승진·임용한 것은 올해만 51세(1970년생)인 정 회장의 ‘젊은 현대자동차그룹’ 의지가 반영된 대목으로 해석됐다.

장재훈 현대자동차 신임 대표이사 사장은 현대자동차 고객 가치담당 전무를 거쳐 경영지원본부장 부사장에 오른 뒤 2020년 인사 때 국내사업본부장을 맡았다. 이어 같은 해 8월부터 제네시스 사업본부장까지 겸직했다. 장 사장은 이번에 승진과 함께 국내사업본부장에서는 겸직이 해제됐다. 장 사장은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는 정 회장의 경영철학에 걸맞은 인물로 평가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곧 올 것”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18일 개최된 상하이 포럼에서 글로벌 위기 극복을 위해 ESG 중심의 글로벌 협력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 사진:SK그룹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그룹의 사회 활동을 언급하며 2021년 신년사를 시작했다. 최 회장은 “SK그룹의 성장은 구성원들의 노력,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사랑과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사회가 허락한 기회와 응원으로 성장했지만 기업이 받은 혜택과 격려에 보답하는 일에 서툴고 부족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이에 앞서 1월 1일 전체 임직원들에게 e메일로 보낸 새해 인사에서 “기후 변화, 팬데믹 같은 대재난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곳을 먼저 무너뜨린다. 이미 수많은 사회 문제가 심화하고 있고, 기업도 더는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최 회장의 신년사와 e메일 인사말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회적 문제 공감과 기업가 정신으로 요약된다. SK 구성원들이 모두 스스로 창업자라고 생각하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방안을 찾자는 것이다.

SK그룹은 올해 전기차 수요 증가에 따른 전기차 배터리 개발에 전력투구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을 중심으로 전기차 배터리 생산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해 배터리 수요 안정화를 꾀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헝가리에 배터리 공장을 신설해 2025년까지 연간 생산량을 현재 대비 5배가량 끌어올릴 계획이다.

새해 SK그룹은 최 회장이 강조해온 ESG 경영 기반을 닦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임원 인사도 이에 맞춰 이뤄졌다. 최근 SK그룹은 부회장 승진 2명, 사장 승진 2명을 포함해 총 107명의 승진 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신규 임원 승진자 가운데 약 70%가 바이오·반도체·소재 등에서, 퇴임 임원 63%는 기존 사업에서 나왔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유정준 SK E&S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박 부회장은 자회사인 SK하이닉스 부회장직을 겸직하지만, 기존에 맡고 있던 SK하이닉스 이사회 의장직에서는 내려왔다. 유 부회장이 2013년부터 이끄는 SK E&S는 신재생 에너지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는 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발돋움했다.

수펙스추구협의회(관계사 CEO들로 구성된 협의체)에도 변화 바람이 불었다.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고 관계사의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가속하기 위한 거버넌스위원회를 신설했다. 더불어 기존 에너지·화학위원회를 없애고 환경사업위원회를 신설해 환경 이슈를 비중 있게 다룰 예정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 “LG가 나아갈 방향은 고객에 있다”


▎2018년 9월 서울시 강서구 마곡 LG 사이언스파크를 방문한 구광모 ㈜LG 대표(오른쪽)가 연구원과 함께 투명 플렉시블 OLED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LG그룹
취임 2년 차를 맞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고객’이란 단어를 강조했다. 그는 “과거 7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오늘의 LG를 만들어준 근간이자 LG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고객”이라며 “고객 가치를 높이고 고객의 삶에 더 깊이 공감해야 한다. 고객을 더 세밀히 이해하고 마음속 열망을 찾아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재계에서는 지난해 9월로 취임 1주년을 맞은 구 회장이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안정과 혁신을 키워드로 삼고 ‘두 토끼’ 잡기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특히 차세대 먹거리 사업인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는 경쟁사인 SK와는 법정 공방을 벌이는 한편 현대자동차 등과는 전략적 관계를 맺는 등 투 트랙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또 LG는 세계 3위 자동차 부품 업체인 마그나인터내셔널과 합작 법인을 세워 자동차 전장(電裝)부품 사업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양사 법인인 ‘LG 마그나파워트레인’은 친환경차·전동차 부품 시장 공략을 목표로 7월에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LG그룹은 5개 계열사를 분리하고 본격적인 ‘구광모 시대’를 열었다. 계열사 CEO 대부분을 유임시킨 가운데 미래 성장 사업 추진을 위해 젊은 인재를 대거 발탁했다. 신구 조화를 통해 위기 극복 역량을 강화하고 지속 성장의 토대를 구축하고자 하는 구광모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용퇴했지만 권영수 ㈜LG 부회장과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유임됐다. LG유플러스 신임 CEO로는 황현식 컨슈머 사업총괄 사장이 낙점됐다. LG화학에서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에는 김종현 사장이 초대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사장 승진자는 2018년과 2019년에는 1명씩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5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상규 LG전자 한국영업본부장과 손보익 실리콘웍스 대표이사, 손지웅 LG화학 생명과학 사업본부장, 이명관 LG 인화원장, 이방수 ㈜LG CSR 팀장 등 부사장 5명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또 임원 승진자 124명 가운데 45세 이하 신규 임원이 24명(19%)에 달하는 점이 눈에 띄었다. 만 37세의 지혜경 LG생활건강 중국 디지털 사업부문장이 상무로 발탁되는 등 역대 최대인 15명의 여성 임원(전무 4명, 신규 임원 11명)이 승진했다. 그룹 내 여성 임원 규모는 2019년 말 39명에서 2020년 말 51명(부사장 1명, 전무 9명, 상무 41명)으로 증가했다. 전체 임원 중 여성의 비중은 5.5%.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사회적 가치로 조화로운 성장 추구하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이 지난해 11월 롯데정밀화학 울산공장을 방문해 자동차 세라믹 필터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롯데그룹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실행력을 주문했다. 신 회장은 “강력한 실행력으로 10년 이후에도 일하고 싶은 회사를 함께 만들어가자”면서 “축적한 역량을 바탕으로 간과했던 위험요소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자”고 촉구했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 차원의 자원 선순환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ESG 경영을 본격적·장기적으로 추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롯데그룹만의 자원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확산해 나가는 노력을 이어왔다. 신 회장은 지난해 11월 롯데정밀화학 울산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코로나19 및 기후변화 등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ESG 경쟁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의 이 같은 위기감은 연말 인사에도 잘 반영됐다. ‘비상경영’을 선포한 롯데그룹은 젊고 민첩한 조직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임원 600명 중 100여 명을 줄이는 한편 롯데칠성음료·롯데마트·롯데푸드 등에는 50대 초반 임원들을 대표이사로 배치했다.

롯데그룹의 식품 분야를 이끄는 식품BU장인에는 이영호 사장을 대신해 이영구(59) 롯데칠성음료 대표이사가 사장으로 승진·보임됐다. 롯데칠성음료 대표에는 박윤기(51) 롯데칠성음료 경영전략부문장이 전무로 승진하며 선임됐다. 롯데마트 사업부장에는 강성현(51) 롯데네슬레 대표이사, 롯데푸드 대표에는 롯데 미래전략연구소장을 역임한 이진성(52) 부사장,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대표이사에는 황진구(53) LC USA 대표이사 부사장이 자리를 옮겼다.

롯데그룹은 철저한 성과주의에 따라 승진 및 신임 임원 수를 전년 대비 80% 정도로 줄였다. 2020년 신규 임원 승진자는 총 50명으로 2018년(110명)의 절반 이하일 뿐만 아니라 인사 폭이 역대 최고로 컸던 2019년(64명)보다도 더 줄었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들의 신년사를 살펴보면 코로나19 장기화 등 어려운 상황에서 위기 돌파의 원동력을 고객이라고 판단한 점이 눈에 띈다”며 “올해는 기업들이 미래를 위해 자체적인 혁신과 역량 제고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2102호 (20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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