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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포럼 명사 인터뷰] 김진숙 변호사가 말하는 법조개혁의 방향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 실력 천차만별… 법조인 양성 시스템 개선 필요” 

‘특수부 여검사 1호’, 수사와 지휘라인에서 잔뼈 굵은 베테랑 검사 출신
“국민 편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국가 사법 시스템 개혁돼야”


▎김진숙 변호사는 “사법개혁 논의 테이블에 국민은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2021년을 전후해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일들이 벌어졌다.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던 ‘조두순 사건’의 장본인이 출소했고, 우여곡절 끝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 후보자가 결정됐다. 1월 1일부터는 검찰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시행됐다.

일선 수사와 지휘라인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인 김진숙(57·사법연수원 22기) 변호사는 이들 사안에 대해 두루 얘기해줄 수 있는 인물 중 하나다. ‘특수부 여검사 1호’라는 타이틀을 시작으로 ‘대검 첫 여성 부공보관’을 거쳐 ‘전주지검 첫 여성 차장검사’ ‘초대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 등 그의 이력을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최근 법조계를 둘러싼 현안들에 대한 김 변호사의 의견은 모두 ‘시스템’으로 모였다. “시스템이 불완전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좋을 수 없다”고 말한 그는 “결국 국민의 편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국가 사법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월간중앙은 중앙일보·JTBC 최고경영자과정인 J 포럼 23기로 활동 중인 김진숙 변호사를 만나 법조계 현안과 함께 변호사 업계의 실태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25년 검사 생활을 마치고 5년째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검찰에 있을 때는 형사적 분쟁이 있을 때 대부분 규명돼 잘 처리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와 보니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시스템 자체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아무리 열심히 사건을 처리한다 해도 결과는 완벽하게 나올 수 없는 구조다.”

어떤 부분이 환상이었나?

“국가기관이 법적 분쟁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을 많아야 60% 정도밖에 규명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수술을 통해 병의 근원을 정확히 찾아 치료해야 하는데 어설프게 봉합하는 기분이다. 변호사들은 사건 관계인과 자주 만나고 소통하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의 70~80%에 접근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검찰이나 법원은 50~60%의 실체적 진실을 놓고 법리를 적용하는 것이라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결과에 승복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물론 의도적으로 수사기관이 그렇게 할 리는 없다. 워낙 사건이 몰리고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사건이나 분쟁이 많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판결이나 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느낀다. 차라리 당사자들에게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판결을 대체하는 대체적 분쟁해결(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과정이 강화되면 어떨까 싶다. 미국에서는 변호사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가 ‘조정’이다. 조정이 불가능한 사건들을 검찰이나 법원으로 갖고 간다면 국가기관에서도 내실 있게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지 않을까. 법원·검찰이 모든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이도 저도 안 된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들은 이 잡듯이 뒤져서 해결할 수 있겠지만 99%의 대부분 사건은 그렇지 않다. 이를 해결하려는 고민은 사법개혁에 들어가 있지 않다.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게 사건과 분쟁을 해결해주는 방향으로 사법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진정한 사법개혁이다.”

사법개혁의 목적으로 올해부터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시행됐다. 검찰은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의 주요한 범죄에 한해서만 수사할 수 있게 바뀌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시행착오 과정에서 발생하는 국민 피해에 대한 고민은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검경수사권의 문제도 사건이나 분쟁을 누가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결해줄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역할이 대폭 축소됐다.

“경찰이 모든 사건을 감당할 만큼 준비가 돼 있는지 묻고 싶다. 제가 검찰 출신이라 경찰 입장에서는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검찰보다 경찰이 전문성이나 소명의식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교통사고, 폭력, 절도와 같은 1차원적인 범죄가 아닌 암호 화폐와 같은 고차원적인 범죄를 경찰이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 있는가. 더구나 형법, 형사소송법을 모르는 경찰이 수사파트에 배치돼서 발생하는 국민의 피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공수처 의식하다 보면 판·검사, 샐러리맨화(化)될 수도

검찰의 권한이 비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모든 권한을 검찰이 가져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바쁘다는 핑계로 사건을 묵혀 놨다 배려 없이 갑자기 피해자, 변호인에게 출두하라 하기도 하고 서둘러 사건을 종결하는 사례들도 많이 봐왔다. 조직의 우수성을 따지자는 문제가 아니다. 경찰이 잘할 수 있는 수사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구분하고 사건을 배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놓고 권한을 이양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수사권을 확대한 경찰이라고 해서 사건을 다 규명할 수 있겠는가. 시행착오 과정에서 자신의 사건이 제대로 다뤄지는 않는 것에 국민이 동의한 건 아니지 않나. 이런 부분은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하나도 논의되지 않았다. 걱정스럽다.”

진행 중인 사법개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사법개혁 논의 테이블에 국민은 빠져있다는 느낌이다. 국회가 국민을 대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국민의 목소리로 포장해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관철하려는 듯하다. 진짜 국민의 편익을 위해 개혁을 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점이 든다. 그런 점에서 사법 시스템의 불완전성을 가장 잘 인식하고 있는 변호사들도 사법 개혁 논의에 참여하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쉽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이 다가오고 있다.

“사실상 판·검사가 수사·기소대상이 아닌가. 지금도 실체적 진실의 50~60%만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판·검사들이 공수처를 의식해 적극적으로 수사나 판결을 내리지 않으려 할 수 있다.”

비리를 저지르지 않으면 상관없는 일 아닌가?

“일 잘하는 며느리가 그릇도 깬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전에는 기개 있는 검사들이 의지를 갖고 사건을 파헤쳐서 발본색원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다 수사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공수처에 진정이라도 넣으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공수처에 소환되는 것만으로도 기세가 확 꺾인다. 이러면 수사나 판결도 욕 안 먹는 선에서 적당히 봉합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 판검사가 샐러리맨처럼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우리나라의 구조적인 거악(巨惡)이 점점 활개 칠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셈이다.”

김 변호사가 초대 부장을 지낸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여조부) 신설에는 ‘조두순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당시에는 여성아동범죄에 대해 무지하고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이를 전담할 부서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초대 부장까지 맡게 됐다”고 말한다. 이런 가운데 국민적 공분을 샀던 ‘조두순 사건’의 조두순이 출소를 하면서 재범 위험성과 사회적 불안감이 다시금 커지고 있다. 김 변호사는 “전자발찌밖에 대안이 없다”면서 “교정·교화 시스템을 손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조두순 사건은 빙산의 일각… 교정·교화 시스템 손질 필요


▎중앙일보·JTBC 최고경영자과정인 J 포럼 23기 입학식에 참석한 김진숙 변호사(둘째줄 오른쪽 여섯째).
최근 출소한 ‘조두순’의 재범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복역 과정에서 여론을 접했을 것이고, 출소 과정에서의 일들을 겪으면서 본인도 느끼는 바가 있지 않겠는가. 달라졌기를 바란다. 조두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더군다나 흉악범들을 마냥 가둬둘 수 있는 형벌 시스템도 아니다. 그렇다면 형벌의 종류를 분화해서 가택연금이나 보호감호 성격의 제도를 부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재 교정·교화 시스템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사회적으로 영구히 격리하지 못한다면 재범을 막아야 한다. 그들을 멀리하고 불이익을 가하고 오갈 데 없어지면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사지로 내 모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복역 기간에 교정·교화시켜 사회 속으로 다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흉악범은 아니지만, 소년범의 경우 재범률이 40%가 넘는다. 이것을 막아야 사회안전망이 촘촘하게 구축된다. 이런 일은 법무부 소관이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쫓아내는 데만 관심 둘 게 아니다.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하다.”

중앙지검의 여조부를 시작으로 일선 청에도 해당 부서가 만들어지는 등 여성아동범죄에 대한 검찰의 관심은 전보다 커졌다. 김 변호사도 “전보다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시스템도 안착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는 “생각지도 않았던 부작용들이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더라”고 얘기한다.

어떤 부작용을 의미하는가?

“여성 성폭력 사건의 경우 무게추가 한쪽(여성)으로 너무 쏠리는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 여조부 신설의 취지는 옳은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는 것이었다. 성별에 따라 편견을 갖고 한쪽의 의견을 들어주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요즘엔 과도하게 여성의 말만 믿고 남성의 말은 들어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 때문 아닌가?

“피해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말이 되지 않는 사건에서도 유죄가 나온다. 실체적 진실을 왜곡하는 피해자까지 성인지 감수성을 내세운다. 끝까지 억울함을 호소하는 남성들이 있지만, 시민단체나 언론을 의식해서인지 검찰이나 법원이 면피성으로 기소하고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요즘 제일 맡기 두려운 사건 중 하나다. 판결이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서 변호사의 숫자는 이미 3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숫자만 늘었을 뿐 질적 향상은 없다. 이러다간 로스쿨 도입 취지에 반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변호사 숫자가 많아지면 국민에게는 문턱이 낮아지는 것 아닌가?

“실력 없는 의사를 찾아가면 죽을 수도 있지 않나. 마찬가지로 실력 없는 변호사에게 가면 마음이 죽을 수 있다. 변호사 업계를 보면 가장 큰 문제가 실력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특히 로스쿨 출신 가운데는 기본을 갖추지 못한 변호사들도 많다. 그런데 국민은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법조인 실력 떨어지면 국민이 불행해져


▎김진숙 변호사는 “법조인 양성 시스템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때”라 말한다.
원인은 무엇이라 보는가?

“저희 세대에서는 법조인으로서 필요한 지식은 2년의 사법연수원 기간에 배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한다. 60년 노하우를 가진 사법연수원 법조인 양성 시스템의 힘이었다. 등수에 차이가 있더라도 실력은 균질했고 ‘리걸 마인드(legal mind·법학적 사고방식)’를 갖춰서 수료했다. 그러나 지금은 로스쿨이 그런 역할에 미흡하다고 느낀다.”

법조인 양성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로스쿨이 국민의 법률서비스 향상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현재 예비 법조인 교육을 가장 잘하는 곳을 물으면 하나같이 법원이라고 말한다. 법원의 재판연구원(Law Clerk) 얘기다. 재판부에 소속돼 도제식으로 사건과 함께 노하우를 배우기 때문이다. 로펌에서도 재판연구원 출신을 선호한다. 지금이라도 사법연수원 수준의 교육을 받게 해서 실력을 균질화해야 한다. 법조인이 실력이 없으면 의뢰인은 권리구제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궁극적으로 국민이 불행해진다. 법조인 양성 시스템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때다.”

J 포럼 23기로 활동하고 있다.

“심리적인 제약이 있던 공무원 시절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각계 인사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한 제약 때문에 더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인상 깊었던 강의는?

“대부분의 강의가 알차고 유익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서은국 연세대 교수의 ‘행복의 과학: 누가, 왜 행복한가’라는 강의가 기억에 남는다.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강의에서 ‘인간은 함께 할 때 행복하다’라는 말이 코로나19 시대에 더욱 공감됐다.”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원리원칙에 따라 살기 위해 검사를 택했고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다. 나를 믿고 찾아온 의뢰인에게 최선을 다하되 가능하면 정확한 사실과 때로는 바른 소리도 전달하는 변호인이 되려고 한다. 아울러 30년 가까이 법조인 생활을 하면서 가족과 많이 떨어져 살았다. 남은 인생은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가족들과 소소한 행복을 찾으면서 지내려 한다.”

※ J포럼은 - 2009년 국내 언론사 중 중앙일보가 최초로 시작한 최고경영자과정이다. 시사와 미디어·경제·경영·역사·예술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강좌와 역사탐방, 문화예술 체험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올해로 13년째를 맞이한 J 포럼은 매년 두 차례(봄·가을) 원우를 선발하여 진행된다. 그동안 졸업생 약 1000여 명을 배출해 국내 최고의 오피니언 리더와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학습과 소통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 문의·접수: J포럼 사무국(02-2031-1018), http://ceo.joongang.co.kr

202102호 (20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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