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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 2021 격랑의 한반도, 4강외교 해법을 찾는다] 미국과 중·러 대립, 그리고 한국의 대응 

반중(反中)전선 동참은 수출 위주 한국 경제에 치명적 

미·중 갈등 충격 분산하려면 무역·안보 다자 협력 체제 구축 필요
한쪽만 선택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 아냐… 안보·경제 체력 길러야


▎미국의 패권주의와 이에 맞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연합전선인 경제와 군사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한반도는 동북아 패권을 두고 벌이는 3국의 갈등 한가운데 놓여 있다. / 사진:연합뉴스
작년 초만 해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낙관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처에 실패하면서 수세에 몰렸다. 트럼프는 중국 때리기로 반전을 시도했지만, 결국 바이든에게 권좌를 내줬다. 바이든이 시진핑과 20여 차례나 만났고 트럼프의 정책 전반을 비판해왔기에 중국은 혹시 미국의 대중 강경책이 완화되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를 가질 만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취임 후 푸틴과의 전화 통화에서 대러 강경 기조를 분명히 했다. 취임 3주 만에 시진핑과 통화할 때도 미국에 꼭 필요한 부문에선 협력하겠지만, 무역·지식재산권·인권·홍콩·대만·국제질서 운영 방식 등에서 우방국과 연합해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시대보다 더 어려운 전략적 딜레마 상황에 놓였다. 한·미동맹을 주축으로 국가안보,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대외전략을 운영하는 동시에 중국 및 러시아와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협을 증진하려는 전략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어렵게 전개되는 상황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미국의 대 중·러 공세와 이에 대한 중·러의 대응을 검토한 뒤, 한국의 합리적인 대응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미국 패권 위협하면 주저앉히는 ‘양털 깎기’ 전략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해 12월 22일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유럽연합이 중국의 경제관행에 대해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사진:트위터 캡처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외교 격언은 미국이 자국을 선제공격한 유일한 나라인 일본과 공고한 동맹을 맺고 있는 데서 잘 확인된다. 미·중·러 삼각관계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대혁명으로 공산정권이 출현하자 경악했던 미국은 극우 나치와 싸우기 위해 소련과 연합했다. 스탈린은 미국과 국민당 장제스의 연대를 대세로 보고 국민당과 전후 중국 질서에 대한 협정까지 체결했다. 이를 불신한 마오쩌둥이 핵을 개발하자 소련은 핵 협력을 중단했고, 이념 노선 갈등을 벌이다 1969년 중·소 국경분쟁까지 발발했다. 닉슨은 마오와 손잡고 소련 견제 연합전선을 펼쳤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되자 미국은 중국을 새로운 도전자로 간주했고 중·러는 1996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이래 오늘날까지 미국을 견제해왔다.

미·중 관계의 변천을 살펴보면 1990년대 클린턴의 미국은 중국과 적대하기보다 중국을 순화해 미국 주도 국제질서에 편입시키려 했다. 반테러전쟁을 우선했던 부시는 봉쇄와 개입을 병행하는 대중전략을 시행했다. 특히 미국은 패권을 수호하기 위해 ‘양털 깎기’를 시행해왔다. 세계 2위 국가의 GDP가 미국의 40% 정도에 이르면 주저앉히는 전략이다. 냉전시대에 무한 군비경쟁으로 소련의 경제를 피폐하게 했고,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화를 절상해 일본을 30년 불황에 빠뜨렸다. 2007년경 중국이 이 선상에 올라왔지만, 뉴욕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중국이 세계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맡자 때를 놓쳤다. 오바마가 한 일은 ‘아시아 중시정책’을 채택해 해군력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배치하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기업가 출신 포퓰리스트 트럼프는 달랐다. ‘미국 국익 우선’을 내걸었지만, 실제 정책은 재선을 노린 ‘자기 이익 우선’이었다. 특히 그의 중국 때리기는 자신의 지지층 대다수가 저학력 백인 노동자이므로 미국에 중국 상품이 풍미해 노동자들의 대중 반감이 큰 점에 착안한 것이었다. 중국 공산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와 위안화 환율절상 압박이 나온 배경이다. 그런데도 미국의 대중 적자가 크게 줄지 않자 중국의 지식재산권 경시와 미국 기술 불법 절취 등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고, 급기야 화웨이 등 중국 IT 기업들이 제품에 정보수집 송신장치를 숨겨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라면서 직접 제재는 물론이고 미국 기술을 이용하는 타국 기업들마저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라고 압박했다. 마침내 일당독재 체제인 중국 공산당이 사실상 기업을 지배하고 운영에 관여하니 공산주의 체제를 전환하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또 중국의 남중국해 내해화를 저지하기 위해 ‘항해의 자유’를 내세워 수시로 이 지역에 군함을 통과시켰다. 미·중 수교 때 약속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경시하며 홍콩인권법 제정에 제재로 강경하게 맞섰다.

미국의 대중·러 견제 기조는 연설과 국가문서로도 확인된다. 트럼프는 2017년 11월 아시아 순방 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지역 활성화’를 주창했고, 곧 일본·호주·인도와 쿼드(QUAD, 4국안보대화) 연합체를 형성해 두 차례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바이든은 정상회담까지 추진하고 있다. 2017년 12월 미 국가안보전략서는 전략적 경쟁국 또는 수정주의 국가로 규정한 중국과 러시아에 승리할 것을 선언했고, 이후 국방전략서, 인도-태평양전략보고서 등 도 이를 확인했다.

이러한 미국의 대중·러 포위·견제전략은 한국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미동맹을 북한의 남침 억지 역할을 넘어 반중·반러 동맹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20년 정도 진행돼왔다. 미국의 동북아 미사일방어망 가담 요구에 한국이 응하지 않자 미국은 단계적 진행을 추진했다. 먼저 미국은 한·일 간 소통이 막혀 동북아 미사일방어망의 작동이 더디므로 한·일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도록 압박·종용해 성사시켰다. 종말단계 요격미사일인 사드(THAAD)를 주한미군에 배치하는 과정을 끝내가고 있다. 2019년 8월 러시아와 맺은 INF조약을 파기한 뒤에는 한국에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는 중거리미사일 배치까지 모색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에 유탄 맞은 한국


▎2017년 미국의 요구에 따라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THAAD)를 도입하자 중국은 즉시 한한령 등 경제 보복으로 대응했다. 경북 성주의 사드기지 현장. / 사진:뉴시스
미국의 의도는 주효했다. 중국은 미국에 항거하기보다 한국을 때렸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을 박대하고 한한령을 내려 한국 문화 진출과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행을 통제했다. 한국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봤지만, 미국은 여기에 개입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도 북한의 비핵화가 부진한 탓도 있지만, 사드 배치로 한·러 관계가 소원해진 게 정체의 이유다.

바이든 행정부도 중국에게 환경, 반테러, 반확산 등 협력이 필요한 부문은 협력하겠지만, 미국의 국력 사용은 최소화하면서 동맹과 우방을 동원해 대중 강경책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 주석이 사활 걸린 국익이자 내정(內政)이라고 주장하는 신장웨이우얼(신장위구르) 인권문제, 홍콩 민주화 탄압에 관한 문제 제기뿐만 아니라 대만과의 관계 강화를 모색하며 남중국해에서 군사 시위를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트럼프와 달리 러시아와의 뉴스타트 조약은 갱신했지만, 야당 지도자 나발니 탄압과 인권 경시, 우크라이나 공격, 대미 사이버 공격 및 선거 관여 등을 강력히 항의하는 등 러시아에 대해서도 강경책을 채택했다.

소련 해체 이후 미국은 존재 이유가 사라진 나토를 오히려 동진 확대하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접근해 러시아를 포위했다. 중국을 사실상 주적으로 간주해 견제하기 시작하자 중국과 러시아는 1996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한 러시아에 대해 미국과 EU가 제재를 가하자 러시아는 신동방정책을 추진해 극동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를 더 강화했다. 중국 역시 오바마의 아시아 중시전략에 이어 트럼프가 노골적으로 중국 때리기에 나서자 더 적극적으로 중·러 협력을 모색하게 이르렀다.

미국의 국제질서 독주 견제 외에도 양국은 구조적으로 많은 협력 요인을 갖고 있다. 소련 해체로 사회 혼란과 경제 위기에 처한 러시아는 외화 획득을 위해 시베리아의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를 개발하면서 에너지와 무기 수출 판로를 찾아 나섰다. 이때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던 중국은 부족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군사력 강화에 필요한 첨단 무기를 도입해야 했다. 그런데 미국이 중국과 경쟁하면서 이를 규제하니 러시아와 호혜적인 협력을 추구하기 안성맞춤이었다.

먼저 러시아는 아무르주 스코보로디노에서 중국 다칭까지 송유관을 2010년 완성해 안정적으로 석유를 제공해왔다. 2019년 12월에는 중국 동북지역까지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도 완성해 중장기적인 에너지 협력을 지속 강화하고 있다.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과 러시아가 추구하는 유라시아경제공동체(EAEU) 간에도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기득권을 중국이 잠식한다는 갈등 요인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상호 호혜성이 큰 부분을 강조하면서 시너지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양국 교역도 빠르게 증대돼 2018년에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미국 압박에 중·러 경제·군사 협력 강화


▎2019년 7월 23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 5대가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 (KADIZ)에 무단 진입했다가 우리 공군의 경고사격을 받고 물러났다. F-15K 편대가 독도 상공을 날고 있다.
금융부문에서도 미국의 달러본위제에 순응하지 않고 있다. 이미 이란은 중국과의 석유 거래를 위안화로 결제하고 있고, 2020년 7월 BP와 스위스 머큐리아도 원유 선물계약을 위안화로 했다. 또 중·러 교역에서 달러 결제 비중을 계속 낮춰 유로화와 위안화 결제 비중이 각각 30%와 17% 수준에 이르렀다. 러시아는 외환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을 줄이고 위안화 비중을 늘리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디지털 위안 활성화와 위안화의 세계화를 모색하고 있는 중국이 금융 패권에 관심이 많은 유럽과 제휴해 달러 패권에 도전할 경우 머지않아 달러 패권의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더구나 미국이 대중 관세 부과와 직간접 제재를 가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시장 규모가 미국과 역전되고 있다. 이에 중국 지도부는 반도체와 사물인터넷 등 핵심 분야에서 미국으로부터 기술독립을 위해 집중 투자하면서 수출 위주 노선을 접고 내수를 증진하는 동시에 수입을 늘려 위안화의 국제 유통을 증진하는 새로운 전략을 채택했다.

군사부문에서도 양국 협력이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이 원하는 첨단 전투기 수호이(Su)-35나 S-400 대공요격미사일을 수출하고 최근에는 우주 협력까지 도모하고 있다. 또 양국은 2005년부터 육지와 해상에서 매년 1회 이상 연합훈련을 해왔고, 최근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이란이 참여하는 연합훈련을 시행하기도 했다. 양국은 형식상 동맹을 결성하진 않았지만, 안보협력에 있어 동맹에 준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

문제는 중·러 협력 강화가 한국의 안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먼저 양국은 미국의 한국 내 사드 배치에 대해 지속해서 반대하고 경고해왔다. 2016년 6월과 2017년 7월 양국 정상은 한목소리로 사드 배치 반대를 표명했고 2017년 12월 양국은 베이징에서 사드를 겨냥한 미사일 방어훈련도 가졌다. 이미 양국의 군사 협력이 연합 공군훈련으로 이어지면서 양국 공군은 수시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해왔다. 2019년 7월 중·러 군용기는 편대비행으로 독도 인근 KADIZ는 물론이고 영공까지 침범했다가 한국 공군의 경고사격을 받고서야 돌아갔고, 작년 12월 22일 또다시 양국 군용기 19대가 한국 KADIZ를 침범했다. 작년 12월 러시아 군사잡지는 북한이 첨단 전투기 도입을 검토하면서 러시아의 미그35 구매 의사를 보이자 중국이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4.5세대 젠(J)-10 전투기를 판매할 의향을 보이면서 경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현재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는 한국 공군의 제공권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북핵문제해결 과정에서도 미국과 중·러 간 갈등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직전과 6월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까지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을 세 번이나 중국으로 불러 소원했던 북·중 관계를 청산하고 혈맹에 준하는 관계를 맺었다. 미국이 중국에게 제로섬게임에 준하는 준적대관계를 형성했으므로 시 주석은 북·미가 쉽게 타협하지 못하도록 “뒤를 봐줄 테니 굴복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그 결과 싱가포르에서 미국이 북한보다 600배의 경제력을 가진 것과 상반되는 합의문이 나왔다. 합의문 4개 항 중 1, 2항에 북한이 바라는 양국관계 정상화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이 들어갔고, 3, 4항에 가서야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용의와 미군 유해 송환이 기술됐다.

한반도 문제를 이해관계 지렛대로 삼는 미·중


▎2018년 6월 28일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전시작전통제권 이전 등을 논의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미 핵 실험장을 폐쇄하고 미국인 인질을 송환한 김정은은 유해 송환과 장거리미사일 및 핵실험 유예 등으로 성의를 보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 사항을 아예 잊어버린 듯 북한의 비핵화만 외쳐댔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평양을 방문해 새로운 북·미 합의의 돌파구를 열었지만 시 주석은 2019년 1월 김정은을 다시 불러 미국과 쉽게 합의하지 말 것을 격려했다. 그 결과 베트남 하노이 회담에서 트럼프가 남북 정상 간 평양 합의를 넘어 영변 비핵화 등 추가적인 요구를 내놓자 김정은은 응하지 않았고 회의는 결렬되고 말았다. 이어 같은 해 12월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안보리에서 북한이 나름의 성의를 보였으므로 대북 제재를 일부 완화해주자고 했다가 미국에 냉정히 거절당했다. 이처럼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보다 대중 견제를 더 중시하고 대북 제재를 북핵문제 해결 수단이 아닌 남·북·중·러·일의 행동을 규제하는 외교 수단으로 활용하는 한 북핵문제 해결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 등의 가치를 내세우면서 우방국을 결집해 대중 견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한국, 베트남, 뉴질랜드에게도 쿼드 참여를 권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미국의 대중 봉쇄·견제의 핵심인 쿼드가 작동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첫째, 미국이 NPT에 가입하지 않고 핵을 개발한 인도와 협력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 둘째, 미국의 대중 수출의존도(3.7%)는 낮지만, 호주(30%), 인도(26%), 일본(21%)은 중국이 주요 수출대상국이므로 미국의 요구대로 움직이기 어렵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의 ‘동아시아판 나토’ 구상을 반중 포위망이라면서 반대했고, “중·일 간 안정된 관계는 국제사회를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셋째, 인도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브릭스(BRICS) 회원국이고, 중국과는 국경분쟁도 하지만 러시아의 매우 중요한 협력국으로서 주요 첨단무기를 주로 러시아에서 구입한다.

각국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고려하면 한국도 미·중 간에 한쪽을 선택하는 게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명·청 교체기에 명나라 장수 모문룡은 조선을 청으로부터 지켜주겠다면서 평북 가도에 진주했고, 인조는 명분에 치우쳐 친명배청 정책을 썼다. 정묘년 청나라가 침공했을 때 모문룡은 숨어 있었다. 그런데도 인조는 명과의 의리를 강조하다 결국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이마를 땅에 찍는 수모와 함께 두 아들과 수많은 인질을 보내고 청에 복속당했다. 사드 배치 당시 중국의 보복이 가해졌을 때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2028년 이전에 경제력에서 미국을 실질적으로 능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베이더우(北斗) 체제를 세워 GPS에서 독립했고, 항공모함 3척을 건조해 20년 후에는 미국과 비슷한 규모의 항모 전단을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미국은 멀리 격리돼 있고 중국은 이웃해 있다는 지리적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

중국 수출길 막히면 경제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

어쨌든 미국과 중·러 간 갈등 심화는 한국의 국가전략에 심각한 도전 요인이다. 한·미동맹은 외교·안보 전략의 주축이지만 중국·러시아와의 협력도 한국의 국익에 점점 더 절실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중·러는 경제와 교역뿐만 아니라 북핵문제 해결, 북한의 남침 억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한 급변사태 대비, 평화적 통일 달성까지 협력해야 할 동반국이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을 달성하려 할 때 미국과 일본은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중·러는 여차하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반중 노선 가담 요구는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므로 이에 대한 현명한 대응방안이 필요하다. 먼저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굴복해 반중 행위에 가담할 경우 중국의 보복을 피하기 어렵다. 수출 없이 생존 불가능한 우리 입장에서 대중 수출(26.7%)은 일본, 미국, 그리고 EU 절반에 수출하는 것의 합과 비등하다. 중국 수출길이 막히면 한국 경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을 것이다. 가능한 한 마지막 순간까지 양자택일은 삼가야 한다.

우리가 미리 준비해야 할 일을 살펴본다. 우선 대중 수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무역 다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미국의 대중 보복 때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첨단기술 독립개발에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중국이 새로운 소재의 반도체를 개발한다면 한국의 반도체 아성이 무너질 수 있으므로 우리도 신소재 반도체 연구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미국에 의존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국가안보에서 대미 의존이 지나치기 때문이다. 동맹 체결 후 네 차례 이상 주한미군이 일방적으로 감축됐고, 미국을 지나치게 믿는 것은 국가안보에 치명적일 수 있음을 트럼프가 잘 보여줬다. 이를 교훈 삼아 자강력을 키워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환은 한·미연합사령관 1인 교체에 그치므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던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독립적인 지휘체제를 갖추고 병렬적으로 협조하는 미·일동맹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문제는 미국이 전작권을 쉽게 이전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한·미동맹을 반중동맹으로 전환하려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군의 독립적인 작전지휘능력에 대한 의문이다. 우리 군은 그간 소프트웨어 개발과 교육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군 고위간부 교육을 강화해 지휘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국방비를 증액해 첨단무기를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끝으로 정부는 21세기 시대정신에 맞춰 ‘평화와 공동번영을 향한 전방위 국제협력’을 한국의 외교·안보정책 기조로 삼아야 한다. 한·미동맹은 설립 목적인 북한의 대남 침략 억지를 중심으로 아태지역에서 양국의 방위 동맹으로 역할을 국한시켜야 한다. 핵 확장 억지는 확보하고 대미 의존은 줄이면서 한·미동맹은 목적에 부합하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여기에 한·중, 한·러 전략적 협력도 동시에 확보해 동북아 다자 안보협력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국가전략이 추진되는 게 바람직하다.

-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hyunik@sejong.org

202103호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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