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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이슈]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왜 프로야구단(SK와이번스)을 샀을까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고 싶다” 

야구단 통해 오프라인 이마트, 온라인 SSG닷컴 잇는 시너지효과 기대
홍보 아닌 마케팅 목적 야구단 위해 1350억 투자… 상향식 의사결정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2021년 신년사에서 “좋았다면 멋진 것이고, 나빴다면 경험인 것”이라고 말했다. 야구단 인수는 경험 너머 증명의 영역이다. / 사진:신세계그룹
야구에 비유하자면, 정용진(53)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에 등장하는 케빈 유킬리스(전 보스턴 레드삭스) 같다. 이런 스타일의 타자는 고정관념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만의 스트라이크 존을 관철한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들여다보면, 출루율(아웃이 적고)과 장타율(2루타나 홈런이 많은)에서 우월한 데이터가 추출된다. 타율이나 도루처럼 화려하게 돋보이진 않지만, 현대 야구에서 중시하는 OPS(출루율+장타율)나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에서 비교우위를 점한다. 이런 유형은 대개 가치에 비해 저평가를 받는다.

정 부회장은 1월 4일 동영상 신년사를 공개했다. 여기서 꺼내놓은 “좋았다면 멋진 것이고, 나빴다면 경험인 것이다”란 화두는 그의 경영 철학을 압축한다. 이마트 대주주이자 신세계그룹 신사업 발굴을 책임진 정 부회장은 지금까지 몇몇의 작은 실패와 큰 성공을 거쳤다. 눈에 보이는 것에 천착하는 일부 여론은 큰 성공과 작은 실패를 동일 선상에 놓고 측정했다. 성공 케이스보다 잦았던 실패 사례를 부각하는 프레임이다. 그러나 시점을 전환하면, 이마트·스타벅스코리아·스타필드·이마트트레이더스·일렉트로마트 등의 성공 궤적과 미래 잠재력은 이미 손절한 사업들의 손실을 상쇄하고도 남을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또 하나 정 부회장을 향한 도발적 의문은 ‘오프라인 유통에 치중한 나머지 온라인 시장의 주도권을 놓쳤다’는 것이다. 이마트와 계열사의 2019년 매출액은 19조628억원이다. 매출 기준으로만 보면 2017년(15조515억원)과 2018년(17조490억원)에 비해 증가세다. 그러나 영업이익으로 따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2017년 5848억원에서 2018년 4628억원으로 감소하더니, 2019년에는 1506억원까지 줄었다. 불과 2년 만에 영업이익이 3분의 1토막 난 것이다. 이마트에 따르면 이 와중에도 “2020년 이마트 영업이익은 2372억원으로 회복”했다. 매출은 사상 처음으로 20조원을 돌파(21조3949억원)했다. 업계 1위인 이마트가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셈이다. 그러나 2020년 창궐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유통업의 물결을 한층 가속화한 것은 틀림없다.

쿠팡 출현 이후 유통업계는 ‘출혈경쟁’에 휘말려 있다. 쿠팡의 대주주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되 점유율을 키우는 전략을 단행했다. 쿠팡의 누적적자는 3조7591억원(2019년 기준)에 달한다. 자본잠식 상태다. 그러나 손 회장은 흔들리지 않고 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어느덧 연간 매출액이 7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나스닥 상장까지 추진하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의 숙명, 신사업 발굴

반면 정용진 부회장의 이마트는 상대적으로 건실함을 유지하며 안정적 성장을 지향했다. 그 결과 신세계그룹의 통합 온라인몰 SSG닷컴의 연간 손실 폭(818억원 적자)은 쿠팡(7205억원 적자)에 비해 9분의 1수준으로 적다. 그러나 연간 매출액도 9분의 1수준(SSG닷컴 8441억원, 쿠팡 7조1530억원)으로 적다. 2021년 2월 14일 종가 기준, 이마트의 주가는 17만3500원이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멸망하는 줄 알았던 2020년 3월 19일의 가격(9만7300원)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랐다. 그러나 2011년 9월 찍었던 최고가(33만4000원)까지는 갈 길이 멀다. 오프라인에서 이마트는 롯데마트·홈플러스·코스트코 등을 압도해야 한다. 온라인에서도 SSG닷컴은 쿠팡·마켓컬리·SK텔레콤의 11번가와 제휴한 아마존 등을 넘어서야 한다. 온라인 해외 직구(直購)도 위협 요소다.

이마트의 강점으로 떠오른 스타필드와 트레이더스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유통산업 발전법)에 직면해 있다. 이동주 민주당 의원은 “스타필드 같은 복합쇼핑몰 서비스업 종사자의 건강권을 위해서라도 의무휴업을 적용해야 한다”며 “특히 이마트는 다른 업체에 비해 실적이 괜찮다. 1달에 2번 쉰다고 해서 (사업이) 죽을 정도일까 싶다”라고 말했다. 또 신영대 민주당 의원은 “소상공인과의 상생을 위해 SSG닷컴, 쿠팡 등의 배송·판매 품목 제한을 어떻게 법률로써 적용할 수 있을지 공청회를 고민하고 있다”며 “중소벤처기업부와도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엄혹한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정 부회장은 2015년 ‘신세계 2.0’으로 명명한 활로를 제시했다. “주말에 우리의 잠재적 고객을 흡인하는 야구장이나 놀이공원도 신세계그룹의 경쟁자”라고 강조했다. 정 부회장이 구상한 혁신은 독자적 기획 콘텐트로 채워지는 자체 브랜드(PB)와 복합쇼핑몰·대형마트·슈퍼마켓·편의점 그리고 온라인 등을 아우르는 종합 유통업체로의 진화였다. 그리고 본질은 초저가 전략이었다.

정 부회장의 여동생인 정유경(49)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은 백화점과 면세점 사업 부문을 맡고 있다. 상대적으로 ‘유지’에 방점이 찍히는 사업군이다. 사업 확장이나 신사업 발굴은 정 부회장의 롤(role)에 가깝다. 출구를 찾기 위한 나름의 실험에서 성과와 시행착오가 중첩되고 있다. 일례로 스타필드, 트레이더스, 일렉트로마트 등은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쇼핑몰과 체험형 콘텐트를 결합한 스타필드는 이마트의 주력으로 떠올랐다. 반면 삐에로쇼핑, 부츠, 쇼앤텔, PK피코크, 제주소주 등은 사업을 접었거나 신규 투자가 중단된 상태다. 일본 돈키호테를 카피한 삐에로쇼핑은 다이소에 밀렸다. 영국 브랜드 부츠는 CJ올리브영을 넘지 못했다. 이 밖에 노브랜드는 일본 무인양품, 노브랜드 햄버거는 버거킹 ‘사딸라’, 데이즈는 일본 유니클로와의 차별화 포인트가 무엇이냐는 소비자의 근본적 의문과 직면했다. 신세계그룹 측은 “톱다운(top-down)이 아니라 보텀업(bottom-up) 프로세스로 추진된 비즈니스 모델인데 언론이나 시장에서 정 부회장의 브랜드를 앞세웠다. 그룹 내부적으론 곤혹스럽다”고 호소했다.

이마트의 실적에 부침이 생길수록, 작은 실패 사례가 대박성공 케이스를 가리는 아이러니(irony)가 빚어졌다. 실적으로 말하는 CEO로서, 정 부회장은 세간의 우려 혹은 편견에 대해 파격 인사로 응답했다. 강희석 베인&컴퍼니 컨설턴트를 이마트 대표로 2019년 10월 21일 전격 발탁했다. 강 대표 체제에서 이마트는 삐에로쇼핑 등 실적 부진 사업을 정리했다. 선행투자가 진행된 호텔업 확장도 일단 멈췄다. 비효율을 깎아내는 구조조정에 전념한 결과, 이마트의 실적과 주가는 뚜렷하게 반등했다. 바로 이 구간에서 정 부회장은 예상 밖의 카드를 집어 들었다. 야구단 매입을 결단한 것이다.

“1350억원, 비싸지 않은 가격”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야구단 인수가 알려진 뒤 개인 SNS에 새 팀의 이름을 SSG로 할 것임을 암시했다.
신세계그룹은 1월 26일 “SK와이번스 야구단을 인수하기 위해 (야구단 주식 100%를 보유한) SK텔레콤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인수 가격은 1352억8000만원으로 공표됐다. SK와이번스 주식 100만 주를 1000억원에, 야구단이 보유한 토지와 건물을 352억8000만원에 매입하기로 약속했다. 신세계는 “야구단 연고지는 인천으로 유지하며 코치진·선수단·프런트 전원의 고용을 승계한다”고 알렸다. 2월 23일 본계약이 이뤄지고, 구단 이름과 엠블럼·캐릭터 등을 확정한 뒤 3월 중 출범할 계획이다.

감정평가로 책정되는 토지와 건물 가격에 관해서는 이견이 나오기 힘들다. 이슈의 핵심은 주식 가치 평가(1000억원)의 타당성 여부다. 야구단은 굉장히 독특한 매물이다. 무형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방법이 현실적으로 부재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인수·합병(M&A)에 관여한 한 회계사는 “SK가 야구단을 싸게 팔 개연성이 없는 구조”라고 봤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아파트를 한 채 가지고 있다. 전혀 팔 생각이 없어 부동산에 매물로 올린 적도 없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당신 집에 놀러 와서 불쑥 ‘이 집을 너무 갖고 싶다. 나한테 팔 수 없겠느냐?’라고 요청한다. 이 경우, 통상적으로 당신이 부른 호가가 곧 가격이 된다.”

이와 관련해 신세계그룹 측은 “야구단이 그룹 마케팅에 기여할 잠재적 가치를 고려하면 비싸지 않은 가격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는 오래전부터 야구단 인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서울 팀인 두산 베어스와 히어로즈 야구단과도 접촉했다. “히어로즈 야구단은 소유권이 정리되면 거래할 의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장석 히어로즈 대주주가 팔 생각이 없다는 태도였다. 그다음으로 두산은 생각 이상의 금액을 불렀다. 그 가격에 비하면 SK가 제시한 가격은 합리적이었다. SK가 야구단을 매각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 값에 야구단을 인수할 기회는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무팀은 야구단이 그룹 계열사 전체에 발산할 효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를 받아본 정 부회장이 최종적으로 재가를 내렸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야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부 언론 보도처럼 야구에 빠져서 매입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오너의 취향으로 그룹의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작동하진 않는다는 의미다.

신세계그룹도 야구단 자체로는 흑자를 내기 힘든 구조는 인지하고 있다. 재무제표상 SK와이번스 야구단은 자본잠식 상태다. SK텔레콤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야구단 운영을 위해 연간 200억~300억원에 달하는 고정비용이 발생한다. 야구단은 현재도 돈을 못 벌고 있고, 앞으로도 돈을 벌 가능성이 희박한 비즈니스다. 일각에선 야구단을 공공재 혹은 대기업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형태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마트의 지출은 1350억원의 초기 인수 자금으로 끝나지 않는다. 해마다 적자가 누적될 것이다. 신세계그룹에서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겠지만, ‘기업 이익과 직접적 관련성이 없는 분야에 고정적으로 지출이 발생하면’ 주주와 시장의 회의감이 증폭될 수 있다.

야구단 인수로 SSG닷컴 최대 수혜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스타필드 1호점. 옥상에 인피니티풀 등 스포츠 시설이 설치된 초대형 복합쇼핑몰이다. / 사진:신세계프라퍼티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교수는 “신세계그룹이 야구단을 왜 샀는지 현 단계에서 재단할 순 없다. 다만 김택진 NC소프트 대표가 최동원을 동경해서 출발한 NC다이노스와는 다른 맥락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기업 규모가 작은 NC소프트의 KBO 입성에 대해 견제의 시선이 불거졌을 때, 김 대표는 “내 개인 재산만 갖고도 100년은 유지할 수 있다”고 응수했다. 그러나 정 부회장은 이렇게 ‘꽂혀서’ KBO에 입성하는 것이 아니다. 전 교수는 “신세계그룹이 야구단을 마케팅 목적으로 쌌다면, 프로야구를 비롯한 체육계 전체가 지속적으로 주시할 일”이라며 “야구단의 필요성이 충족되거나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익절 혹은 손절할 수 있다는 함의가 있는 것이다. 이제 기업이 프로스포츠 판에 들어오는 배경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대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프로야구계 진입은 정 부회장이 추구한 새로운 시도 중에서 비교적 비중 있는 투자에 속한다. 연 2370억원의 흑자가 나는 회사에서 일시적으로 1350억원을 지출하는 것이다. 게다가 유통업의 특성상, 소비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 금융인은 “가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신사업에 실패해도 대개의 일반인은 잘 모른다. 반도체나 IT 분야는 워낙 전문적이다. 그러나 정용진 부회장이 뜻을 이루지 못하면 온 세상이 바로 체감한다. 정 부회장이 그만큼 대중에게 친숙한 분야에서 사업을 하기 때문”이라고 빗댔다.

세간의 관심은 정 부회장이 야구단을 도구로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고 있느냐에 쏠린다. e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에서 거래액 6위 수준인 SSG닷컴을 키우기 위한 의지를 정 부회장이 SK와이번스 인수로 보여줬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야구단 명칭에 거의 모든 국민이 아는 신세계나 이마트를 붙이기보다 SSG가 유력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오프라인 야구단을 통해 온라인 SSG의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프로야구 관중에 20~30대 비율이 높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평가했다. 미래의 소비를 주도할 충성고객을 선점하겠다는 포석이다. MLB파크 등 야구 커뮤니티에서도 ‘SSG 야구단이 젊은 여성층으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확보하고 있는 스타벅스(신세계그룹이 스타벅스코리아의 지분 50% 보유) 굿즈와 연계하는 마케팅을 펼치면, 신규 팬을 비교적 손쉽게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인천 상권 탈환 작전 의미도


▎SK와이번스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4차례 차지한 신흥 명문구단이다. 지역밀착 마케팅으로 인천야구의 중흥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도 들었다.
야구단 인수의 여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시점인 1월 28일, 정 부회장은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네이버 본사를 방문했다. 강희석 이마트 대표도 동석했다. 이들은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 한성숙 네이버 대표와 회동했다. 150조원(2019년 기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의 합종연횡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만남이다. 신세계그룹의 판매 채널과 네이버의 플랫폼이 손을 잡으면 판 자체를 뒤흔들 것이다. 이런 큰 흐름 안에서 SSG 야구단도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한편에선 야구단 인수 효과에 관한 회의론도 나온다. ‘신세계가 야구단으로 할 수 있는 혁신이 있었다면, 유통 라이벌 롯데가 일찌감치 했을 것’이란 시선이다. 부산 연고인 롯데 자이언츠는 KBO 최고 인기구단 중 하나다. 이에 대해선 “롯데는 야구단을 통해 마케팅 시너지를 끌어내려는 노력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반론도 설득력을 지닌다. 특히 야구계 인사이더 사이에서 이런 의견이 힘을 얻는다. ‘야구 도시’ 부산이란 황금 시장을 보유하고도 롯데그룹과 롯데 자이언츠가 프로스포츠의 자생력 생성에 별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는 실망감이 배어 있다. 그래서 이들은 “후발주자인 신세계 야구단이 창의적인 무언가를 보여주면, 롯데가 따라와서 판이 커지는 모양새가 될 것”을 기대한다.

SK와이번스는 인천 연고 구단이다. 공교롭게도 신세계그룹은 인천에 아픈 과거가 있다. 1997년부터 20년간 임차 계약한 남동구 구월동 신세계백화점은 인천 상권의 핵심이었다. 당시 재정난에 빠진 인천시는 2012년 신세계 측에 파격적 제안을 건넸다. 인천시 소유인 백화점 땅과 주변부지(인천터미널과 농산물 도매시장 터)를 묶어서 9000억원을 내면 영구 소유권을 넘겨주겠다고 신세계에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신세계는 이 제안을 바로 받지 않고 지체했다. 가닥이 잡히지 않자 인천시는 공개입찰로 방향을 바꿨다. 롯데가 재빠르게 인천시의 제안에 호응했다. 신세계는 ‘인천시와 롯데의 계약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걸었지만 5년에 걸친 법정 싸움 끝에 2017년 최종적으로 패소했다. 결국 2019년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롯데백화점이 입점했다. 롯데는 터미널과 농산물 시장 부지에 대형 쇼핑몰 등 상업·문화 시설과 5성급 호텔·아파트 등을 포함한 소위 ‘롯데 타운’을 조성할 계획이다.

절치부심한 신세계는 인천 청라지구에 스타필드를 포함한 ‘신세계 타운’ 건설로 응수했다. 2023년 완공을 목표로 잡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신세계가 청라에 돔구장을 지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추측도 나돌고 있다. 2020년 4월 받은 건축허가 용도엔 운동시설도 포함돼 있다. 법적 제약은 없다.

청라 ‘신세계 타운’과 유사한 트랙에서 진행되는 신세계그룹의 대형 프로젝트는 테마파크 비즈니스다. 정 부회장은 2019년 11월 경기도 화성에서 테마파크 비전 선포식을 가졌다. 신세계프라퍼티·신세계건설 등이 4조5693억원을 투자해 테마파크·호텔·쇼핑몰·골프장 등을 아우를 계획이다. 2021년 착공에 들어가고, 2026년 부분 개장한 뒤, 2031년 전체 개장이 목표다. 정 부회장은 비전 선포식에서 “국내 시장에 국한된 것이 아닌 아시아 랜드마크로, 세상에 없던 테마파크를 조성해 국가 관광사업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미국의 유니버설스튜디오나 디즈니랜드에 필적하는 공간을 창조하겠다는 포부다.

어떤 새로움을 보여줄까

야구단 인수나 테마파크는 결국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겠다’는 정 부회장 경영 마인드의 반영에 해당한다. 물이나 석유처럼 관심도 자원이라고 여기는 관점이다. 고객의 호의적인 시선을 모으는 CEO나 회사가 무엇이든 잘 팔 수 있다는 추론이다. 일례로 테슬라와 CEO 일론 머스크는 그 자체가 하나의 플랫폼이자 미디어다.

온라인 쇼핑에 집중하는 경쟁자들과 달리, 정 부회장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밸런스를 중시하는 차별화된 방향성을 견지하고 있다. 이마트나 스타필드의 장점을 버릴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지르기 경영’에 주력하는 경쟁자들에 비해 이마트의 재무상태를 건전하게 유지하면서 SSG닷컴을 키워가려는 안정적 행보를 정 부회장은 취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이마트는 자체 브랜드(PB, Private Brand) 사업, 하이브리드 매장, 점포 효율화, 온라인 강화 등을 시도했다. 여기에 더해 정 부회장은 야구단과 테마파크를 추가했다. 관심의 영역에서 야구나 테마파크 콘텐트는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적수와 만날 것이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새로운 경쟁자다. 프로스포츠계와 유통업계는 정용진 부회장이 브랜딩(branding)하는 야구단이 보여줄 ‘야구 콘텐트와 유통 비즈니스를 잇는 구체적 액션 플랜이 무엇일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품고 있다.

정 부회장은 익숙한 홈 필드(유통업)를 떠나 원정경기(프로야구)에 나섰다. 그는 타석에 서는 그 자체로 팬들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유형의 타자다. 병살타가 될지, 그랜드슬램이 될지는 시간이 알려줄 터다. 다만 분명한 점 하나는 그의 야구팀은 집요하게 그들만의 문법으로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리라는 것이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103호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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