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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분석] 자동차 시장의 주류로 떠오른 SUV 

넓은 시야에 다양한 활용성까지 아재들을 홀렸다! 

코로나19 여파로 ‘차박’ 열풍에 다양해진 라인업도 한몫
미래 차 시장에서도 유틸리티 차량이 ‘기본’ 자리잡을 듯


▎SUV 차량에서 차박을 즐기는 운전자가 동해안의 일몰을 감상하고 있다.
"차박(車泊)요? 한 번 해본 적 있죠. 아이들이 다신 안 하겠다고 하던데요? 하하.”

회사원 김경업(40)씨는 지난해 가을 현대자동차의 대형 스포츠유티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를 구입했다. 평소 ‘캠핑 마니아’였던 터라, 이른바 ‘차박(자동차에서 잠을 잔다는 뜻의 신조어)’을 염두에 뒀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텐트가 여의치 않으면 차박도 나쁘지 않죠. 실제로 차박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요즘 SUV 붐을 모두 ‘차박’용이라고 생각하는 건 난센스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엔 유틸리티(활용)성과 넓은 공간, 그리고 아내도 쉽게 운전할 수 있는 넓은 시야가 차량 구입의 이유였습니다.”

SUV가 자동차 시장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예전엔 ‘짐 싣는 차’로 여겨졌던 SUV는 이제 패밀리카의 표준이 됐다. 소형에서 대형에 이르기까지, 대중 브랜드에서 프리미엄·럭셔리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차가 시장에서 경쟁한다. 과거 디젤 일변도였던 파워트레인(구동계)도 가솔린, 하이브리드, 전기차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팔린 승용차는 165만7186대였다. 개별소비세 인하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차 판매는 전년(154만880대)보다 7.5%나 늘었다. 이 가운데 SUV 판매(RV·픽업트럭 포함)는 85만949대로 전체의 51.4%를 차지했다. 2019년 SUV 판매 비중 49.0%에서 2%p 늘어난 수치다.

레저용 차량과 픽업트럭을 제외하면 SUV 판매 증가세는 더 가파르다. 지난해 팔린 순수 SUV는 71만7814대로 전년(61만3508)보다 17.0%나 늘었다. 대형 SUV 판매도 지난해 처음으로 연간 13만대를 넘어섰다. 2018년 연간 대형 SUV 판매량이 2만8184대에 불과했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SUV 시장이 확대된 것은 소비자의 요구가 커진 데다 제조사들이 촘촘한 라인업을 구축하면서 ‘선순환 구조’를 이뤘기 때문이다. 불과 3년 전까지 현대·기아의 SUV 라인업은 소형(니로), 준중형(투싼·스포티지), 중형(싼타페), 대형(모하비) 정도로 단조로웠다.

지난해 SUV 국내 판매량 세단 앞질러


▎도심형 럭셔리 중형 SUV 제네시스 GV70. / 사진:현대기아자동차
과거에는 제조사들이 트림(차급)이 겹칠 경우 카니발라이제이션(같은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을 침범하는 현상)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라인업을 확대하길 꺼렸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요구가 커지면서 차급별로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대·기아는 최근 3년간 소형 SUV 베뉴·스토닉·코나·셀토스를 내놨고 대형 SUV 팰리세이드도 선보였다.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도 GV80에 이어 GV70을 출시하는 등 SUV 라인업을 확장하는 중이다. 선택의 폭이 늘어나면서 판매도 늘었다. 일부 차종의 카니발라이제이션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시장의 확대는 제조사로선 유리할 수밖에 없다.

주목할 부분은 구동계의 변화다. 지난해 한국에서 팔린 자동차 가운데 디젤을 연료로 쓰는 차는 58만8032대로 전년(65만6605대) 대비 10.4%나 줄었다. 휘발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차의 판매는 2019년 85만2019대에서 지난해 95만1112대로 11.6% 늘었다.

SUV 판매가 급증했지만 디젤차 판매가 줄었다는 건 ‘SUV=디젤차’라는 공식이 깨졌다는 의미다. 과거 중량이 많이 나가는 SUV는 디젤 엔진을 장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같은 출력이라 해도 차체가 무거워 연비와 토크(가속력)가 좋은 디젤 엔진을 선호해서다. 예전 SUV가 트럭이나 승합차 같은 상용차를 기반으로 만든 것도 디젤 엔진이 많이 장착된 이유다.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하는 디젤엔진을 꺼리게 되고, 배출가스 규제에 맞추려면 엔진의 단가가 비싸진 것도 이유다. 내연기관 기술이 발달하면서 휘발유 엔진이라 해도 낮은 회전수에서 높은 토크를 발휘하며, 터보차저 같은 과급기를 장착해 출력도 높아졌다.

전동화(electrification) 추세에 따라 전기 SUV도 늘었다. 코나 일렉트릭이나 니로 EV 같은 지난해 한국시장의 주력 전기차는 모두 SUV 형태였다. 수입차 브랜드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구동계를 앞다퉈 선보이는 중이다. 여기에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달아 출력을 보조하고 연비를 높이는 기술도 나왔다.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인 이른바 ‘디젤 게이트’ 이후 수입차 시장에서도 디젤 엔진은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수입 프리미엄 SUV 역시 디젤 엔진 대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나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경우가 늘었다. 올해부터는 전기 SUV 역시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차박 열풍은 분명 미디어에 의해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유틸리티(활용)성에 대한 소비자 요구가 늘어난 건 사실이다. 도심에서 출퇴근으로 사용하는 것 외에 휴일에 여행을 가거나 캠핑을 즐기는 용도를 원한다는 의미다.

굳이 차에서 자지 않더라도 넓은 공간과 험로 주파 능력을 갖춘 SUV는 매력적인 선택이다. 캠핑카가 부담스러운 이들은 캐러밴이나 트레일러를 구입하기도 한다. 강력한 견인력과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공간은 필수다. 세단 대신 SUV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이유다.

디젤 자동차 특유의 진동이나 소음이 줄었고, 휘발유·하이브리드 등 파워트레인 선택지가 다양해지면서 SUV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런 변화는 한국 시장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픽업트럭과 미니밴을 선호해온 미국 시장에서도 SUV 시장의 확대는 뚜렷한 현상이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SUV의 부상(Rise of S.U.Vs)’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미국 자동차 시장은 2015년 처음 SUV 판매가 세단을 앞지른 이후, 2019년엔 격차가 두 배로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이어 “지난해 SUV의 시장점유율은 47.4%로 세단 시장점유율(22.1%)을 압도했다. 미국에서 인기 있는 픽업과 미니밴 등을 포함한 경트럭(Light-Truck) 전체의 시장점유율은 2025년 78%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탁월한 험로 주파 능력도 매력 포인트


[NYT]가 분석한 SUV의 성공 요인은 편의성이다. [NYT]는 같은 기사에서 “승용차만큼 운전의 즐거움을 주면서도 과거 픽업트럭이나 미니밴보다 안락하고 시야가 넓어 운전하기 편한 SUV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1980년대 중산층의 상징이 미니밴이었다면 베이비부머의 자녀들이 가족을 이룬 지금은 넓은 공간과 편의성, 연비까지 갖춘 SUV를 좋아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프리미엄 브랜드는 물론 럭셔리·스포츠카 브랜드까지 SUV를 내놓는 건 다 이유가 있다”면서 “연비와 효율성이 향상되면서 운전하기 편리하고 세단 못지않게 안락한 SUV의 선호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자동차 제조사들도 촘촘하게 SUV 라인업을 구성하면서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한국 자동차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왜건(지붕을 뒤쪽까지 늘려 뒷좌석 뒤에 화물칸을 설치한 형태) 시장의 성장이다. 2019년 팔린 왜건 차량은 2717대로 전년(1712대)보다 1000대 넘게 팔렸다. 성장률로만 따지면 무려 58.7%나 된다. 아직 판매 대수가 미미한 수준이지만, 성장률만 놓고 보면 차종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한국 자동차 시장은 ‘왜건과 해치백(트렁크 공간이 따로 없이 차량 뒷부분에 들어 올리는 문을 장착한 형태)의 불모지’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일부 수입차 브랜드를 중심으로 이들 차종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판매가 늘었다. 왜건형 승용차를 선보이고 있는 수입차 브랜드 관계자는 “SUV가 부담스럽지만 적재 공간과 유틸리티성을 원하는 고객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며 “유럽이나 미국처럼 자동차 소비에서도 실용성을 중요시하게 된 것 같다”고 풀이했다.

전기차 선두주자인 테슬라가 지난해 선보인 ‘모델Y’는 SUV 형태를 띠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통적인 SUV와도 모습이 조금 다르다. 이런 장르의 자동차를 완성차 업계에선 ‘크로스오버유틸리티 차량(CUV)’이라 부른다. 장르를 넘나드는(crossover) 형태에 활용성(utility)을 극대화했다는 의미다.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 폴크스바겐이 두 번째로 선보이는 전기차 역시 CUV 형태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MEB를 기반으로 만드는 I.D4는 넉넉한 공간과 넓은 시야를 갖췄다. 포르쉐처럼 스포츠카 DNA를 고집하는 브랜드는 전기차 역시 스포츠카 형태로 만들지만, 대부분의 대중 브랜드는 SUV나 CUV 형태를 택했다.

올해 출시하는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도 다르지 않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CUV로 볼 수 있다. SUV보단 키가 작지만 세단보단 높아 운전자의 시야를 확보했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마차의 차체를 이용했던 초창기엔 2박스(엔진룸+탑승공간) 형태였지만, 이후 엔진룸과 4개의 문이 달린 캐빈(탑승공간), 트렁크(적재공간)로 나뉜 3박스 형태로 자리 잡았다.

100년 넘는 내연기관의 시대가 끝나고 미래 차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전통적인 자동차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미래 차는 100년 전 2박스의 모습으로 회귀했다가 상자 모양의 1박스 형태로 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자동차의 모습이 바뀌는 가장 큰 이유는 구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가장 무겁고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건 파워트레인이다. 거대한 엔진과 여기 맞물린 변속기, 구동력을 바퀴로 전달하는 프로펠러 샤프트 같은 부품 때문에 탑승 공간과 적재 공간은 제한된다. 현재의 자동차가 3박스로 자리 잡은 이유다.

전기차 시장에서도 강자로 부상 중


▎한적한 숲 속에서 SUV 차량을 이용해 캠핑을 즐기고 있는 젊은 커플. / 사진:현대기아자동차
하지만 전기차 시대가 되면 후드(보닛)의 거대한 엔진룸은 필요 없게 된다. 변속기와 프로펠러 샤프트가 사라지면 캐빈 안에 불룩 솟은 센터 터널도 사라진다. 바닥에 배터리를 깔고 모터와 바퀴만 달린 전기차의 구조를 ‘스케이트보드’ 플랫폼이라 부른다. 스케이트보드처럼 평평한 판(board) 위에 바퀴만 달려서다.

현대자동차가 투자해 유명해진 전기차 플랫폼 스타트업 카누(Canoo)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를 지향하는데, 스케이트보드 플랫폼 위에 필요에 따라 다양한 ‘껍데기’를 씌울 수 있다. 탑승 공간을 만들면 승용차나 여객수송 차량이 되고, 적재공간을 실으면 화물운송 차량이 된다. 레벨4 이상의 자율주행 기술이 도입되면 운전석 자체도 사라진다.

카누가 선보인 콘셉트카들은 네모난 1박스 상자 형태다. 카메라와 레이더·라이다 같은 센서를 통해 자율주행을 구현한다. 세계 최대 이커머스 기업 아마존이 인수해 화제를 모은 자율주행 스타트업 기업 죽스(ZOOX)도 1박스 형태의 로보택시를 공개했다. 상자에 바퀴가 달린 듯한 외관인데, 앞뒤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전·후방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고, 탱크처럼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미래 자동차들이 박스 형태로 만들어지는 건 차량의 목적이 달라져서다. 자율주행 기술이 발달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개인용 승용차가 완전 자율주행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차량·사물통신(V2X·Vehicle to Everything communication) 기술이 발달해야 하고,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로직과 천문학적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컴퓨팅 능력도 갖춰져야 한다.

현실적인 자율주행은 정해진 경로를 다니는 셔틀버스나 화물운송 차량이 될 것이란 게 업계의 관측이다.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일 필요가 없어 공력(空力) 성능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유선형이 아닌 박스 형태가 가능한 이유다. 여러 대가 군집(群集) 주행을 하기 때문에 돌발 상황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무작위의 장소와 경로를 다니는 승용차보다 변수가 작아 자율주행 구현에 용이하다.

미래 모빌리티(이동성)로의 확장을 생각하면 SUV 열풍은 당연할 수 있다. 이한응 기아 판매사업부장(전무)은 “이미 시장에서 SUV의 선호도는 판매로 확인이 됐다. 백오더(계약했지만 인도되지 않은 차)가 많아 인기 차종은 대기 기간도 길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넓은 시야와 승용차 못지않은 편의성과 승차감, 무엇보다 다양한 활용성이 SUV 선호도 증가의 이유”라고 말했다.

고태봉 센터장은 “제조사 입장에선 수익성이 높고 고객 선호도도 높은 SUV에 집중하는 게 당연하다”며 “포르쉐 같은 스포츠카 브랜드까지 SUV가 기업 성장을 이끄는 핵심 상품이 됐다”고 말했다. 고 센터장은 “자동차의 목적과 구조가 변화하는 미래 차에서도 유틸리티 차량이 기본이 될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 이동현 중앙일보 기자 offramp@joongang.co.kr

202103호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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