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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K1 기관단총 40주년, 원조 생산기지를 가다 

오차범위 100분의 1㎜ ‘차세대 병기’ 개발 한창 

SNT모티브 부산공장, 1981년 K1 시작으로 국산 총기 생산 총망라
10여 년간 20개국에 수출… “세계 3위 총기생산 업체 도약이 목표”


▎18개의 강선이 나선형으로 꼬여져 있는 40㎜ 고속유탄기관총 K4의 총열. 강선을 따라 회전력을 가지게 된 탄환은 목표지점에 보다 정확하게 도달하게 된다.
화물용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기계 100여 대가 내뱉는 굉음이 귀를 때린다. 축구장 3개 크기(2만592㎡) 공장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다. 부산 기장군의 산 중턱에 자리 잡은 SNT모티브(대표 김형철) 무기 공장의 첫인상이다. 공장 가운데 큰 길을 중심으로 한쪽엔 자동화 설비들이, 다른 한쪽엔 색 바랜 구형 설비를 이리저리 매만지는 직원들이 눈에 띄었다.

소총부터 기관총까지 한국군이 쓰는 총기 대부분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수량으로 따지면 연간 소총 10만 정, 기관총 2000여 정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1981년 한국이 처음 국산화한 현대 무기인 K1A 기관단총의 고향도 이곳이다. 올해부턴 K-15 경기관총 생산을 시작한다. ‘K-시리즈’ 탄생 40주년을 맞아 지난 1월 22일 찾은 부산공장에선 이른 아침부터 1만 개에 달하는 생산라인이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김신조 사건 계기로 공장 설립


▎신형 소음기를 개발하는 SNT모티브 특수개발팀 직원이 K2C 돌격소총을 시험사격하고 있다. 각종 액세서리 부착이 가능한 레일형 총열 덮개가 눈에 띈다.
공장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부산역에서 차로 40분을 달린 끝에 정문에 도착했다. 군부대처럼 출입로 주변으로 철제 바리케이드가 즐비했다. 공장 부지를 둘러싼 철조망엔 ‘방위산업 시설이니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의 표지판이 달려 삼엄한 분위기를 더했다. 정문 초소에서 출입 인가를 받은 뒤 다시 차로 한참을 올라간 뒤에야 공장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 공장은 해발고도 605m 철마산이 감싸고 있다. 물류비용을 생각하면 경제적인 입지가 아니다. 배경은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월 21일 무장한 북한 공작원 31명이 청와대 1㎞ 근방까지 침투한다. 이른바 ‘김신조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미국의 도움을 얻어 국내 첫 무기 공장을 세운다. 북한의 위협이 설립 계기였던 만큼, 입지는 ‘북한군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이 기준이었다고 한다. 김회영 SNT모티브 영업 책임은 “곡사·박격포는 물론 폭격기 접근도 쉽지 않은 지형”이라고 설명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한쪽에서 자동화 설비들이 매끈한 외관을 자랑한다. 젊은 직원 한 사람이 설비 여섯 대씩을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반대쪽에선 청자색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설비들을 주름 깊게 패인 베테랑들이 조작하는 중이다. 비용 문제가 아니다. 김 책임은 “철판을 크게 깎는 작업은 자동화했지만, 세밀하게 다듬는 공정은 여전히 사람 몫”이라고 말했다.

약실리밍(Reaming) 작업을 맡고 있는 채기승(60)씨가 대표적 사례다. 약실리밍이란 탄약이 약실(총열 입구)에 부드럽게 들어가도록 입구를 다듬는 공정을 뜻한다. 약실 내부에 들어갔는지 채씨가 직접 손끝 감각에 의존해 판단한다. 총열 입구가 충분히 다듬어졌는지 판단하는 일도 온전히 채씨의 몫이다. 허용 가능한 오차범위가 100분의 1㎜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최종 불량률이 채씨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자동화 설비 속 ‘대체불가’ 공정


▎개발팀 직원들은 “총기 성능은 총열에 달렸다”고 입을 모은다. 탄환이 총열로 들어가는 입구인 약실의 모습.
채씨는 1981년 이곳 공장이 국방부 소속 조병창에서 대우정밀공업으로 민영화될 무렵부터 근무했다. 강원도 태백 광산촌 출신이라는 채씨는 이곳과 인연을 맺은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광산이 재미없어지기 시작했거든. 진로를 고민하던 차에 창원공단에서 일하던 형이 기계 관련 자격증을 따면 병역특례도 받으면서 일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선택한 게 벌써 40년이지.”

그의 손을 거친 총기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으로 채씨는 7.62㎜ 기관총(K12)을 꼽았다. 국산 헬기인 수리온에 장착하는 모델이다. 2009년 개발 당시 채씨도 관여했다. 이전까지 이곳에서 개발·생산해온 총기와는 다르게 처음으로 7.62㎜ 탄약을 쓰는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일반적으로 적용하던 5.56㎜ 탄약보다 파괴력이 우수하다. 7.62㎜ 구경에 최적화된 총열을 개발하는 데 채씨가 힘을 보탰다고 한다.

SNT모티브는 2000년대까지만 해도 군의 요구에 부합하는 제식총기를 개발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최근부턴 업체가 먼저 차세대 전장에 부합하는 총기 개념을 개발하고 군에 제안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K2 소총 등 군에 공급해온 제식총기 공급사업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뿐더러, 새로운 경쟁업체가 등장하면서 독점공급 체계가 무너진 것도 한몫했다.

지난해 11월 대한민국방위사업전(DX KOREA 2020)에서 처음 선보인 기관단총인 STSM-21이 그 결과물이다. 대테러 등 특수작전 임무에 쓰이는 총으로, 기존에 군에서 쓰던 9㎜ 기관단총인 독일산 MP5를 대체하려는 목적으로 이곳에서 개발 중이다. 외관상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위는 장전 손잡이다. 약실에 탄약을 장전할 때 뒤로 잡아당기는 장치다. K2 소총을 비롯해 그간 SNT모티브에서 개발했던 총기들은 우측 측면에 장전 손잡이를 달았기 때문에 왼손잡이가 사용하는 데 불편했다. 그런데 STSM-21의 경우 장전 손잡이 부품을 손쉽게 뽑아서 좌측에도 달 수 있도록 해 편의성을 높였다.

공산권 총기에서도 장점 흡수


▎채기승씨가 총열 입구를 부드럽게 다듬는(리밍) 작업을 하고 있다. 손끝의 감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장갑을 착용하지 않는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방아쇠뭉치 부품이다. 군필자라면 누구나 익숙해할 법한 형태를 갖고 있었다. 개발팀 관계자에 따르면, K2 부품을 그대로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품 호환성을 염두에 둔 포인트다. 이 관계자는 현재 특수부대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독일제 HK416 기관단총을 예로 들었다. 외형이 멀쩡해 보이는 HK416이 컨테이너째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품 하나만 고장 나도 수급이 어려워 못쓰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부품 교체보다 신형 판매를 유도하는 제작사의 요구도 부담이다. 이 관계자는 “기존 제식화기에서 쓰는 부품과 호환할 경우 실전에서의 신뢰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곳 연구개발팀은 AK-47 소총도 개발하고 있다. AK 계열 소총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개발한 뒤 공산권에서 주로 쓰이던 총기다. 값싸고 잘 고장 나지 않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총기(1억 정)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이 개발자는 “AK 설계의 장점을 차세대 총기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곳에서 생산한 총기는 지난 2007년 이후 20여 개국에 10만여 정이 나갔다. 이 과정을 진두지휘했던 건 박문선 특수사업 본부장이다. 1985년부터 이곳 연구소에서 시작해 총기개발에 적극 관여해왔다. 내부적으로는 ‘한국 총기 넘버원’이라는 애정 어린 별칭으로 불린다. 박 본부장은 “1973년 문을 연 이곳은 한국 기계공업의 시발점”이라며 “전 세계 총기 업체 빅(Big) 3에 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특수개발팀 직원이 해외업체가 개발한 저격소총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SNT모티브는 최근 군이 사용할 대물 저격소총 개발에 착수했다.



▎수락검사를기다리고 있는 K2C1 소총이 공장 한쪽에 도열해 있다.



▎특수개발팀 직원들이 SNT모티브에서 개발 중인 소음기의 성능을 측정하고 있다. 소음기를 장착하면 적어도 25㏈ 이상 소음이 줄어든다.



▎직원이 개발 중인 총기를 양손에 든 채 사무실 복도를 지나고 있다. 민간의 총기 소유를 제한하는 국내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다.



▎공장에 출입하는 모든 인원은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공장 밖으로 나갈 수 있다.



▎SNT모티브 부산공장 정문에 철조망과 함께 일반인 출입제한을 알리는 경고문이 걸려 있다.



▎박문선 SNT모티브 특수사업본부장이 K-15 경기관총을 앞에 두고 말하고 있다. 1985년부터 총기 개발에 참여한 박 본부장은 업계에서 ‘한국 총기 No.1’으로 통한다.



▎공장에서 생산한 모든 총기는 시험사격을 거친 후 출고된다.
- 글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 사진 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202103호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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