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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700만 자영업자 경쟁 시대, 이대로 가면 공멸 

“창업의 자유보다 생존 문제가 더 절박” 

낮은 진입 장벽에 따른 경쟁 심화에 정책 실패가 부실 키워
자영업 총량제 도입하면 경쟁력·고용·임대료 안정화 기대


▎서울 명동의 한 가게에 임시 휴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가장 큰 규모로 두텁고 폭넓게.’ 사회적 거리 두기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 피해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4차 재난지원금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말이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자영업자를 지원할 때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문 대통령의 말 그대로 자영업자의 규모는 크고 두껍고 폭넓다고 볼 수 있다. 과잉도 한참 과잉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경제활동 인구 중 자영업자 비중은 평균 13%다. 한국은 두 배에 가까운 25%. 그리스·터키·멕시코·칠레·한국 순으로 자영업자 비중이 높다. 미국과 일본은 10% 안팎이다. 무급 가족 종사자까지 포함하면 1000만 명 이상이 자영업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다. 4인 이하 영세 사업체 비중은 90%를 웃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19로 피해를 당한 자영업자 지원을 위한 재정지출 증가에 따른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나라 곳간이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는 우려와 재정 건전성이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 없다는 주장이 부딪치고 있다. 재난지원금 포퓰리즘이라는 비난도 들린다. 다른 선진국의 경우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자영업자 비중이 낮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로 피해 입은 자영업자를 국가 재정으로 지원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기 때문에 국가가 폭넓게 감당하기에 분명 한계가 있어 보인다.

지난 1년 동안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집단이 자영업자다. 지금도 사적 모임 인원 제한과 영업시간 제한 등으로 많은 자영업자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해결책은 감염병 종식에 달렸다. 자영업자 또한 사회구성원이다. 당장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자영업자 문제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제기돼온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건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서민 삶의 문제이자 국가 경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노동 이슈에 밀려 방치해온 자영업 문제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하던 시기였던 1980년대는 번듯한 가게 하나 있으면 중산층으로 대접받는 시절이었다. 경제발전은 국민의 가처분 소득 상승을 가져왔고 늘어난 소득만큼 소비 또한 증가해 웬만한 점포 하나 가지고 있으면 그럭저럭 장사가 돼서 먹고살 만했다.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다 보니 기업의 고용은 증가했고 상대적으로 자영업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 산업화·민주화를 거치면서 노동자들은 강력한 연대와 투쟁으로 권리를 쟁취해나갔다. 특히 대기업 노동자를 중심으로 안정적인 일자리와 보상 시스템,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면서 노동자 권익 증진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었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라는 문제 또한 노출했다. 기업은 더 많은 인력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보다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로 대체했다. 기술 발전은 고용 없는 성장을 가속화했다. 1997년 IMF 경제위기 때는 수많은 노동자가 하루아침에 해고됐다.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는 도시 자영업자로 변신했다. 이후 자영업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경제는 저성장 기조를 유지했으며 대기업 중심의 질 좋은 일자리는 사실상 소수가 독점했다. 일자리 감소는 자영업자 증가로 이어졌고 자영업 부실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 이렇게 자영업자 공급 과잉은 노동시장 축소와 고용 양극화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 이슈가 근본적으로 자영업자 문제를 배제한 채 진행됐다. 결국 노동자 보호라는 기본적인 취지에서 소외된 자영업자가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를 그대로 떠안게 됐다. 자영업자가 고용하는 노동자가 많은 상황에서 실효성을 떠나 최저임금을 인상하자 자영업자가 느끼는 부담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단기 고용직은 그나마 유지하던 일자리를 잃었고, 기업은 빠르게 무인매장을 도입하거나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즉 초단기 계약을 통한 거래방식으로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노동복지 사각지대를 만들었다.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플랫폼 경제는 자영업자의 기반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자영업자의 사업소득과 임금노동자의 임금소득 간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소득 양극화 추세는 심화하고 있다. 결국 두꺼운 중산층을 형성해 한국경제를 떠받쳐줘야 할 자영업자가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노동비용의 증가와 기술발전은 기업의 채용구조를 변화시켰고, 고용 없는 성장과 자영업 비율의 증가를 유도했다. 자영업 생산성의 하락으로도 이어졌다. 비정규직 일자리 및 자영업자 증가는 상대적으로 정규직 노동자와 소득 격차가 더 벌어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정규직 임금에 비해 비정규직, 자영업자의 소득이 76% 수준으로 하락했다는 통계청의 자료만 보더라도 분배구조 개선은 시급한 과제다. 자영업은 국가 경제의 한 축이다. 자영업이 붕괴하면 서민이 몰락한다.

‘낮은 진입장벽→출혈 경쟁→폐업’의 악순환


▎정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2.5단계로 격상하기로 결정한 지난해 12월 6일, 서울 종로구의 한 노래방에 폐업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자영업(self employment)은 자영업자가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최소한의 자기자본과 함께 대출 등으로 조달한 타인자본 그리고 자신의 노동력(무급 가족 노동력 포함)이 결합된 사업방식을 특징으로 한다. 사업자 등록자이지만 사실상 자기 고용 노동자와 같다. 오히려 노동 보호에서 소외된 채 열악한 근무조건에 내몰린 불안정한 노동자로 볼 수 있다. 사업이 실패한다면 그나마 투자했던 자본마저 매몰 비용으로 잃고 생계를 위협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환경에 몰린 자영 노동자(self-employed worker)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코로나19는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자영업자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자영업 문제는 과잉에 따른 경쟁에 있다. 코로나19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영업자에게는 직격탄이 됐다. 그동안 자영업 시장은 창업과 폐업이 쉬운,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음식점 창업 기간은 형식적인 교육과 구청의 인허가 기간을 포함해 짧게는 보름에서 한 달이면 된다. 자영업의 서비스 생산성이 OECD 국가 중 꼴찌(평균 50% 수준)인 이유가 있다. 동시에 창업을 통한 삶의 질 개선이 아닌, 준비 안 된 창업의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한정된 시장수요 속에서 자영업자의 증가는 출혈 경쟁을 부추겨 전체 자영업의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영업자의 수익성 악화는 당연한 결과다. 특히 고만고만한 음식점과 미용실, 노래방과 PC방, 술집과 커피숍은 자영업 시장에서 대표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업종이다. 그렇다 보니 창업자들이 몰리고 경쟁은 심화하고 부실한 매장이 늘어나게 되는 구조적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현실성 없는 자영업 대책만 양산하고 있다. 자영업의 생산성·경쟁력 개선이 선결과제이지만 그 대신 비용 구조와 외부 환경에서 원인을 찾아왔다. 대형마트로 인해 골목상권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자 ‘대형마트 규제’라는 처방을 낳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대형마트가 폐점한 지역에서 오히려 상권이 붕괴해 자영업자가 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최근 보도도 있었다.

카드수수료 부담을 경감시켜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해소한다는 제로페이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을 지출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에는 민간 배달앱의 횡포가 심하다며 지자체가 공공 배달앱 구축 사업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공공 배달앱으로 자영업자 수익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보여주기식 행정의 전형이다. 문제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존재한 자영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만 정부의 진단은 단기적 처방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자영업 문제는 경직된 고용환경으로 인한 비자발적 창업의 성격이 내포돼 있다. 그렇다 보니 준비 안 된 창업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영업자의 실패 확률이 높다. 이는 자영업자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문제다.

조절 통한 안정적 자영업 생태계 유지 절실


▎지난 1월,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소상공인연합회와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자영업자 대책은 창업 지원과 유무형 비용 지원에 국한돼왔다. 카드수수료 인하, 최저임금 지원, 가맹수수료 인하 등과 같은 대책은 부실 자영업의 기간 연장을 부추기는 단기 미봉책에 불과하다.

정부가 자영업 시장에 미주알고주알 직접 개입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 정책은 중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지표관리에서 찾아야 한다. 적절한 자영업자 수를 총체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바로 ‘자영업 총량제’다. 자영업 다이어트라고도 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전체 경제 인구에서 차지하는 자영업자 비율을 OECD 평균에 근접한 15%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적정 수로 자영업자 규모를 관리한다면 제한된 총 소비지출에서 과잉 공급된 자영업자의 치열한 경쟁을 완화할 수 있다. 특히 진입장벽이 낮은 생계형 음식점 등의 관리는 필수적이다.

총량제와 관련해서는 ‘버스 차량 총량제’와 ‘택시 총량제’가 있다. 이런 총량제는 과밀을 예방하고 적정 수의 차량을 통제해 서민의 교통 편익을 제공하고 기사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데 의미가 있다. 시장에서 해결이 안 될 경우 국가가 수요 대비 공급을 조절함으로써 시장을 안정화한다는 취지다. 자영업 총량제는 자영업 핵심 역량 및 자영업자가 창출하는 일자리 지원 강화, 상가 임대료 안정화라는 거시적인 틀에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적절한 자영업자 수를 조절함으로써 한계에 다다른 자영업자의 연착륙을 지원하고 자영업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총량제 도입은 기존 자영업자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안정적인 영업기반을 조성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적절한 수의 자영업 생태계를 조성해 자영업자의 안정적인 매출과 수익을 확보한다면 노동자의 고용 안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자영업자의 최저임금 지급능력 향상은 고용을 촉진하는 효과, 즉 신규 일자리 창출도 기대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용의 80%가 중소기업 이하 소상공인 자영업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안정적인 고용능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과잉 창업으로 인한 상가 임대료의 인상을 억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반복된 폐업과 창업의 악순환 속에서 피해는 오롯이 자영업자가 떠안았다. 상가 수요가 많다는 것은 자영업 창업이 많다는 뜻이고 결국 임대료 상승의 한 원인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자영업 총량제를 통한 상가 수 조절은 임대료 문제 해결의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물론 단기간에 급진적인 방법으로 이 제도를 실행할 수 없다. 지자체 단위로 진입장벽이 낮은 과포화 자영업군을 선정한 다음 거리·환경·인구수·수요량 등의 기준을 설정하고 신규 진입에 제한을 두는 총량 기준을 설정하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자영업자의 사업소득을 우리나라 평균적인 노동자의 임금소득 수준으로 올릴 수 있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인허가 등 행정력 동원해 자영업 경쟁력 키워야


▎지난 2월,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 비상대책위 주최로 열린 방역기준 불복 개점 시위에서 참석자들이 정상 영업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준비 없는 창업으로 인한 실패가 많아지면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 그래서 전문성을 갖추고 역량을 키워 창업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인허가와 교육 기간을 둬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창업의 자유보다 생존 문제가 더 절박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각 지자체의 인허가와 교육 행정을 적절하게 활용해 자영업자의 시장 진출을 제어한다면 충분히 안정적인 총량 관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준비 안 된 창업으로 인한 과잉경쟁과 기존 자영업자의 동반 부실에 따른 사회적 손실이 크기 때문에 무리하고 조급한 창업을 억제해 공급을 조절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 등은 식당을 차리기 위해 길게는 18개월 정도의 준비 기간이 소요된다. 이들 국가의 관공서가 식당을 허가해주는 조건 중에는 기존의 비슷한 업종을 영위하고 있는 자영업자의 영업에 지장을 주는 업종인지도 고려한다. 이렇듯 일정 규모의 지역에 유사·동종 업종의 창업을 억제한다면 핫도그나 대왕 카스텔라처럼 유행성 미투 창업으로 인한 피해 예방도 기대할 수 있다.

국가는 자영업 창업 촉진이 아니라 관리를 해야 한다. 장기간에 걸친 체계적인 교육과 전문성 강화 과정을 통한 창업을 유도하고 창업 후 지속해서 경쟁력 있는 자영업이 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자영업자 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자영업 총량제 도입이 초래할 문제점도 있다.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즉 신규 창업기회를 박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업 선택의 자유가 헌법적 가치인 생존 문제보다 상위 개념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실패할 위험이 높은 자영업자가 시장에 진입하도록 방임하는 것이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는 정책 실패로 볼 수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적극적인 고용촉진 정책을 통해 자영업 시장에 진입할 노동자를 고용으로 유도할 국가의 책임이 더 크다.

진입장벽을 높이는 것이 기존 자영업자의 기득권 강화라는 역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바로 권리금 상승의 문제다. 하지만 권리금은 노동자의 퇴직금 개념처럼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인정해온 자영업자의 안정적인 퇴로 중 하나인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권리금을 신고제 등을 통해 양성화해서 관리한다면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코로나19로 최근 1년간 자영업자 수가 일부 줄었다고 한다. 더는 버틸 수 없는 한계 자영업자가 결국 경착륙하는 사태를 맞은 것이다. 자영업자가 시장에서 퇴출당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빈곤층 증가와 연결되고 고용률 하락과도 맥이 닿는다. 빠르고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사회적거리 두기가 자영업자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합리적인 방역지침을 만들어 자영업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다양한 정책처럼 자영 노동자인 자영업자를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자영업자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건강하고 경쟁력 있는 자영업 시장을 조성해나가야 한다. 향후 또 다른 위기가 닥쳤을 때 대통령이 말한 ‘가장 큰 규모로 두텁고 폭넓게’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정한 수의 자영업자 관리가 필수적이다.

- 이성훈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fchub@sejong.ac.kr

202104호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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