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창간 53년 특별기획Ⅰ |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 부활 30년] 특별기고 : 성숙한 지방자치를 위한 조건 

세금 80% 움켜쥔 중앙정부, 지방 자율권 한계 

중앙정부에 집중된 재정·행정권 지방으로 대폭 이양해야
인구 감소는 심각한 위협, 지방의 주거·교육 환경 높여야


▎2018년 11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광역의원 지방분권 촉구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자치입법권과 지방분권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2021년 신축년은 1991년 지방의회가 구성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공자는 논어-위정편에 ‘이립(而立)’이라 하여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설파한 바 있다. 특히 올해는 32년 만에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과지방일괄이양법제정안,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자치경찰법)’ 등 이른바 ‘자치분권 3법’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하여 시행되는 첫해여서 더욱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이로써 주민 중심의 자치실현을 위한 제도적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가 제대로 정착되어 실행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연원을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48년 제헌헌법에 따라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후 제1, 제2공화국에서 지방의회를 두고 단체장을 직접 선출하는 등 헌법상의 지방자치를 구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 후 군정과 제3, 4, 5공화국 시절에는 지방의회가 구성되지 못한 데다 지방자치단체장은 모두 임명직 국가공무원으로 충원되는 ‘관치’체제였다. 따라서 이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지방자치는 껍데기에 불과한 형식적인 것으로 ‘실질적인 자치’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방자치는 왜 필요한 걸까, 지역의 문제를 지역주민 스스로가 참여해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지방자치의 본질이라고 볼 때, 이러한 과정의 종착역은 결국 지역주민의 삶의 질(복지증진)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30년의 연륜을 맞은 한국의 지방자치가 제대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떠한 요소들이 필요할까. 크게 4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분권(decentralization)과 주민 참여(participation), 지방정부의 책임성(accountability), 그리고 지역소멸(local annihilation)이다.

첫째, 지방분권이란 행정과 재정에 대한 결정 권한이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지방자치단체)로 옮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물적 자원인 돈과 인적 자원인 사람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분산되는 것을 뜻한다. 보통 행정과 재정에 관한 의사결정 권한이 지방정부로 옮겨지게 되면 돈과 사람도 함께 이동이 가능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에 근거해 볼 때 분권의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자치(조례)입법권의 강화, 재정분권, 그리고 사무이양 등을 들 수 있다. 자치(조례)입법권의 경우 지난해 통과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제28조)에 따르면 법령의 범위에서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할 수 있으며, 법령에서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한 사항에 대해 행정명령 등 하위 법령으로 위임내용과 범위 등을 제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둘째, 재정분권의 측면이다. 우리나라의 조세수입 비중을 보면 국세 대 지방세의 비율이 80% 대 20% 구조를 갖고 있다. 이에 비해 순지출 규모는 중앙정부가 45%, 지방정부가 55% 정도로 나타나고 있어 조세수입의 35% 정도가 지방교부세나 국고보조금 등의 형식으로 지방으로 이전된다. 이 같은 재정구조 아래에서는 지방교부세나 국고보조금의 배분을 통해 재원이 중앙에서 지방으로 상당 부분 이전되므로 지방정부의 재정 자율성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재정(물적 자원) 측면에서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지속해서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지방정부가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많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지방세 비중을 올리자는 의견도 내놓고 있으나 현재와 같이 경제상황이 우호적이지 않은 경우에는 지역주민의 조세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돼 문제해결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지방일괄이양법’ 제정으로 지방 자율권 행사 늘어


▎2017년 10월 12일 대구지역 44개 단체가 모여 지방분권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한 ‘지방분권 개헌추진 대구회의 출범식’을 열었다.
셋째, 중앙과 지방간의 사무배분이다. 지방사무의 경우 국가 전체 사무의 30% 선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 경우에도 중앙정부가 위임하는 사무가 많고 지방의 고유 사무는 적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관련, 장기적으로 이양되지 않은 사무의 신속한 이양 및 이양사무 실시에 따른 행정적·재정적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제1차 ‘지방일괄이양법’이 제정되어 올해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지방일괄이양법의 시행으로 지방정부는 앞으로 이양사무를 처리하는 데 적지 않은 자율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중앙정부가 제·개정하는 법령이 자치권을 침해하는지를 사전 검토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자치분권사전협의제’가 2019년 7월부터 운영되고 있다. 2020년 12월 말까지 사전협의제 운영결과를 보면 모두 2587건이 접수됐고, 이 중 검토 완료된 2426건 중 99건의 개선의견이 제시됐고 해당 부처와도 협의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자치경찰제다. 자치경찰제는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했으나 공전을 거듭하다 2020년 12월 ‘자치경찰법’이 제정되고 올해 1월부터 시범실시단계를 거쳐 7월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될 예정이다. 자치경찰제는 자치분권과 경찰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전부 개정된 자치경찰법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같은 법 2조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에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전에 치안업무는 국가 즉 중앙정부 사무였으나 이제는 중앙과 지방정부의 공동책임 아래에 시행하게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같은 법 4조에 따르면, 자치경찰 사무로는 지역교통·지역경비·학교폭력·가정폭력·생활안전·아동학대 범죄 수사 등이 포함되고 있다. 특히 이번 자치경찰법에서는 시·도지사로부터 독립된 시도자치경찰위원회를 설치해 시·도 자치 경찰을 지휘·감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경찰행정의 권한남용을 방지할 수 있게 되어 경찰행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다음으로 주민참여의 측면을 살펴보기로 한다. 지역공동체의 주체인 주민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지역의 공공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과 열정으로 참여하는 문화가 형성될 때 지방자치의 성숙도는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주민의 자율적인 참여의 정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지역주민이 지방의 현안을 다루는 데 있어서 객체로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종국에는 지방자치의 성숙도를 더디게 만드는 주요요인으로 등장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행정학자인 덴하르트(Denhardt) 부부가 ‘종래의 공공행정(old public administration)’과 ‘신공공관리(new public management)’의 대안으로 제시한 ‘신공공서비스(new public service)’에서 강조한 시민정신(citizenship)의 가치는 지방자치의 내실화를 위해서 눈여겨봐야 할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Denhardt 부부에 의하면, 공직자는 고객의 요구에 반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시민(지역주민)들과의 신뢰와 협력(collaboration) 관계를 형성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설파한다.

자치경찰제, 경찰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 의미 커


▎제주국제공항 대합실에서 제주자치경찰단 직원들이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하고 있다. 올해부터 전국에서 자치경찰제가 전면 실시된다.
특히 그는 정부(중앙과 지방정부 포함)는 시민(지역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시민(지역주민)은 시민정신의 형태 혹은 외연(extension)으로 간주되며, 시민정신은 법적인 지위가 아니라 책임감과 도덕성의 문제로 인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지역주민)은 보다 커다란 지역공동체를 위해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명해야 하며, 그들의 이웃(neighborhood)과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기꺼이 책임을 떠맡아야 하고, 정부는 시민들의 욕구와 관심사항에 반응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또 시민(지역주민)과 함께 시민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처럼 지방정부가 시민인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참여하에 그들과 수평적으로 교류하면서 공동체의 현안이나 의제들을 함께 해결해 나간다면 보다 내실 있는 지방자치가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주민의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참여를 통한 근린자치의 활성화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주민조례청구제도의 활성화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전국의 여러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제도도 시민정신(citizenship)을 가진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더욱 내실을 다져나가야 한다.

셋째, 지방정부의 책임성(accountability) 강화가 밀도 있게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의존적인 조직운영행태를 청산하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즉 지역의 현안이나 문제를 주민이나 내부고객인 공무원, 그리고 직간접적인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논의해 대안을 창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공익(public interest)을 도출하기 위해 정부는 시민(지역주민), 이해관계 당사자 등과 격의 없는 토론 등 민주적인 담론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Denhardt 부부의 제안은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도의회 의장에게 직원에 대한 임용권 부여, 지자체 특성에 부합하는 직류 신설, 지방의원의 겸직금지와 윤리특별위원회의 설치 의무화 등 인사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출산율 0.7명대, 지방 소멸 막기 위해 머리 맞대야

이밖에 공공행정의 환경은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 전개로 공공조직운영에 적지 않은 장애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미리 예견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리더십이 특히 지방정부의 지도자와 관리자에게 필요하다. 이에 따라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 적응적 리더십(adaptive leadership),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등 리더십 교육훈련이 지방정부의 고위직 인사에게 필요하다.

끝으로 저출산, 고령화와 지역소멸 문제에 대응하는 주도면밀한 전략을 설계해 실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출산율이 꼴찌인 것은 물론 비 OECD 국가까지 합쳐도 최하위 수준이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84를 나타냈고, 2020년 4분기 기준으로도 합계출산율 0.75로 사상 최초로 0.7명대까지 주저앉았다. 이처럼 신생아 수가 계속 감소하면서 65세 이상이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이에 따라 2017년부터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등 인구감소에 따른 본격적인 위기에 노출돼 있다.

이처럼 저출산과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지역소멸의 위험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제공한 2020년 5월 인구소멸위험지수(65세 이상 고령인구 수 대비 20~39세 여성인구 수) 자료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05곳이 인구소멸위험지역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8년보다 16곳 증가한 것으로 인구소멸 위험지역은 2014년 79곳, 2016년 84곳, 2018년 89곳으로 늘고 있다. 105곳의 인구소멸위험 지역 중 대부분(92.4%, 97곳)은 비수도권 지역에 집중된 것으로 분석됐다. 비수도권 지역의 경우 출산율이 저조한 데다 젊은 층이 직장과 진학을 위해 대도시로 대거 이동하면서 인구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통계자료가 보여주듯 기초지자체인 시·군·구가 머지않아 소멸된다면 우리의 지방자치 수준은 커다란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소멸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역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교육과 의료, 주택 등의 만족도 수준이 수도권에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으로 올라간다면 자동으로 사람과 돈이 지역으로 흘러들어올 것이다. 이를 위해 지방정부와 중앙정부는 머리를 맞대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세부전략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 김호균 한국행정학회 부회장(전남대 행정학과 교수) khg1427@jnu.ac.kr

202104호 (2021.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