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Home>월간중앙>사람과 사람

[구루·목민관 대담] 이문열 작가와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말하는 ‘경북혁신론’ 

“그릇된 편견에 ‘NO’라 말하라”(이문열), “경북에 절실한 건 자극·열정”(이철우) 

■ “30년 권력 메카라는 죄의식과 무기력 떨쳐버릴 때”
■ “경북 4차 산업혁명 플랫폼은 역사·문화 빅데이터”
■ “신공항, 행정통합은 TK 도약의 양 날개”
■ “윤석열, 대선으로 가자면 공부와 훈련 필요”

30년 전 지방자치를 부활시킨 대한민국이 ‘지방의 소멸’ 이라는 역설에 빠졌다. 중앙은 갈수록 반짝거리고 지방은 나날이 시들어간다. 이래서는 지방도, 중앙도, 나라도 미래를 점치기 어렵다. 각 지자체에 숨겨진 가치를 확산하고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시도가 절실한 시점이다. 행정을 책임진 지방단체장과 향토 정체성을 대변하는 원로의 대담은 지역의 존재 이유를 한국과 세계에 알리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철우 경북지사(왼쪽)와 이문열 작가가 3월 6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 이 작가 자택에서 만났다.
나라는 흥하다가도 망하지만 도시는 어떻게든 버텨가며 명맥을 이어나가는 법이다. 로마제국은 멸망했어도 로마는 망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한국의 도시(지자체)들도 대한민국 건국 이전에도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전망이다.

그런데 이는 절반의 진실일 수 있다. 줄어드는 인구로 인해 존립을 장담키 어려운 지자체들이 하나둘씩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발표한 주민등록통계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인구 3만 명 미만 기초지자체는 18곳에 달했다. 경북 울릉군 인구는 9035명으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인구가 가장 적다. 그다음이 영양군으로 1만6638명에 그친다. 정부는 인구 3만 이하의 도시는 독자 존립이 어렵다고 보고 이들 지자체에 특례를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의 저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비즈니스를 도시로 끌어들이는 요인은 ‘사람 풍토(people climate)’이지 세금 감면이나 정부 지원금은 아니라고 통찰했다. 사람을 모으고 경제를 살찌우는 건 지역이 주는 매력, 창의성과 혁신, 생활의 즐거움에서 좌우된다는 말이다.

경북도 활로를 목말라한다. 경북 동남 지역 영양 출신인 이문열 작가와 서북 지역 김천 출신인 이철우 경북지사의 대담도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생동하는 경북의 미래를 열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경북 일원에 신춘서설이 날리던 3월 6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 이문열 작가의 자택에서 두 사람이 자리를 함께했다.

‘지식인은 대중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중이 들어야 될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작가는 대중이 들어야 할 얘기를 하는 분이라면 도지사는 대중이 듣고 싶은 말도 하는 분 같다.

이문열 작가(이하 이 작가)_ 내가 공격적으로 말하더라도 그대로 써주면 좋겠다. 경북의 당면 문제를 푸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겠다.

이철우 경북지사(이하 이 지사)_ 그게 어떤 방향이든 경북도가 좋아지고 희망을 갖는다면 경청하겠다. 지금 경북에 절실한 건 강렬한 자극과 열정, 영감(靈感)이다. 그 길을 이 작가 같은 인문학자들이 열어줘야 한다. 이 작가가 쓴 귀향소설, 향토문학만 해도 경북 내방문화의 몰랐던 디테일을 애틋하고 아름답게 보여준다. 당시 이 지역 부녀자들이 얼마나 똑똑하고, 세상 이치에 밝고 우아했는가를 리얼하게 복원했다. 경북도 내면의 힘이 분출하는 느낌을 받았다.

“경북에 문화적 종주권, 정통성 있어”


이 작가_ 안채에만 거하던 지역 여성들이지만 서울 고관대작 부인들 못지않은 안목과 품격을 갖춘 이가 적지 않았다. 이는 음식·복식·서간 등 분야를 넘나드는 광범위한 현상이었고 각종 풍속과 기록을 통해 전승되고 있는 곳이 경북이다. 2019년 경북도가 펴낸 [한복인문학사전〉의 경우 한복의 역사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하고 직물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서술한 노작이다. 아무래도 한국 정신문화의 핵심을 느끼고 싶으면 경북으로 오는 게 맞다. 영남 남인들이 200년 이상 중앙정치에서 소외돼 판서도 제대로 배출하지 못했지만 노론에 비하면 훨씬 더 국가의 정통성에 깊이 관여했다. 한국의 3대 종교 중 2개(경주의 불교, 안동의 유교)가 이곳에서 비롯됐고 퇴계의 학맥, 학풍이 조선조 유학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에서 경북에 문화적 종주권이랄까 정통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지사_ 그렇다 경북은 인간의 삶에 직결되는 데이터의 보고(寶庫)와도 같다. 이 작가가 얘기한 경북의 역사적·정치적·사상적 힘에 더해 도내 곳곳에 산재하는 역사·문화 빅데이터는 스토리텔링의 원천이자 경북 4차 산업혁명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데이터와 아이디어로 승부를 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풍부한 정신적·문화적 자산을 가진 경북이 단연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구·경북통합신공항, 행정통합이 보태지면 재도약을 위한 준비작업에 마침내 마침표가 찍힌다.

경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5건 있어 국내 최다이며 산사·향교·서원·고택·전통마을 등 등록문화재만도 2100개를 넘게 헤아린다. 1999년 한국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도 ‘한국에서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간직했다’고 해서 안동을 찾기도 했다. 조성된 지 600년 된 안동 하회마을, 500년을 헤아리는 경주 양동마을, 400년에 가까운 영양 두들마을도 노장청 모든 세대에게 사랑받는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2018년 취임한 이 지사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대구·경북 행정통합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사업 규모가 큰 만큼 갈 길도 멀어 보인다.

이 지사_ 권영진 대구시장이나 저나 대구와 경북이 지금처럼 따로 가서는 미래가 없다는 절실함을 가지게 됐다. 행정통합을 하면 대구의 교육·의료·금융, 경북의 생산거점·역사·힐링이라는 파워 콘텐트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지역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게 된다. 군위와 의성 경계선에 들어설 신공항은 대구와 경북이 세계로 나가는 국제 관문이다. 지역의 산업·물류·관광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온다. 중앙정부와 정치권, 타 시도의 동의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도 총력을 쏟겠다.

“대구·경북이 말을 잃어간다”


이 작가_ 조선시대 영남 출신 관료가 조정과 담쌓고 낙향할 때 ‘고향으로 가면 앞으로 3령을 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곤 했다. 그 3령(嶺)이 바로 조령·추풍령·죽령이다. 영남에서 수도 한양으로 가자면 반드시 그 세 곳 가운데 하나를 넘어야 한다. 당시 3령은 다른 세계로 가는 관문이었다. 요즘은 공항과 항만이 그 역할을 한다. 경남에는 김해공항이 있고, 부산 가덕도에는 신공항이 들어선다고 시끄럽지만 대구·경북의 여망을 담은 대구·경북 신공항 조성 사업이 별다른 난관 없이 잘 추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대구·경북은 지역적으로 말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이들 숙원사업이 급물살을 타자면 뒷심이 받쳐줘야 한다.

지역의 응집력이랄까, 발언권이 약해졌다는 말로 들린다.

이 작가_ 경북이 군사정권 내지 유신정권의 핵심으로 권력과 공존하는 동안 야성(野性)이 많이 사라졌다. 경북은 왜 과거 호남 같은 결기를 보여주지 못하는가. 40여 년 전부터 호남의 지방정부는 한 덩어리로 뭉쳐 그들의 입지를 확장해왔다. 중앙정부와 싸울 때는 싸우고 대화할 때는 하면서 지방정부의 이익을 관철했다. 경북도 호남이 그랬듯 중앙정부를 향해 각을 세울 땐 세우고 할 말은 해야 그에 걸맞은 권한과 예산을 가져올 수 있다. 국정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 망쳐놓은 모습을 보라. 역대 정권 중 이렇게 모질게 편가르기로 사법부의 한 축을 탈취한 정권은 없었다. 과거 중앙정부를 향해 호남이 했던 역할을 이제 경북이 해야 한다.

이 지사_ 근래 들어 보수의 본질적 의미는 왜곡되고 부정적인 면만 너무 부각된다. 포용, 개방, 진취라는 경북인의 진정한 기질은 뒷전이다. 사림과 유림의 혁신적 역사에서부터 사회주의 수용과 항일투쟁,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 학생의거, 가난한 현실을 타파하는 새마을운동 등 삶속의 진취성은 경북의 오랜 역사, 전통과 동행해왔다. 나는 평소 도청 공무원들에게 호남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라고 말한다. 그들의 끈끈한 네트워크, 결속력 강한 정치적 에너지는 우리도 배워야 한다. 우리도 고칠 게 없는 건 아니다. 체면에 살고 고집에 얽매이고 남에게 부탁하는 건 잘 못하는 그런 경향도 있다. 그렇다 보니 예산이나 정책에서 ‘TK(대구·경북) 패싱론’이 나오기도 했다. 지자체가 자기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와 각오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풀이 죽고 기가 꺾인 것인데, 그 원인을 짚는다면.

이 작가_ 해방 후 30년에 걸친 영남 정권의 핵심이 대구·경북이라는 사실에 사람들이 은근히 주눅이 들어 있는 듯하다. 하고픈 말이 있어도 ‘예전에 그런 적이 있으니 우린 말할 자격이 없다’는 기분이 들었는지, 하여간 요즘같이 무기력한 대구·경북을 전에 본 기억이 없다. 30년 집권 기간 동안 경북인들이 꿀단지를 안고 산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결속력 약해 ‘TK(대구·경북) 패싱론’ 나와”


▎3월 4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 행정통합 권역별 대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주최 측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 지사_ 경북인에게는 어쩔 수 없는 기질이 있었다. 영남 남인의 꼿꼿한 지조와 강인한 기개, 뚝심과 의리라는 덕목이 그것이다. 기본적으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비굴함을 싫어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사회 현실과 정치적 모순 비판에 적극적이었다. 의병활동, 독립운동 등 실천에 유난히 강한 곳도 경북이었다. 경북은 한국의 정신과 전통 문화가 강력하게 뿌리내린 지역이다. 또 나라가 어려울 적마다 새 길을 열었다고 자부한다. 이런 역사적 행보에 권위가 실리면서 선비의 고장, 호국의 향토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이런 집단정신과 동질적인 경험을 새 미래를 여는 동력으로 전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작가_ 조선조 경북 유림들은 진실을 말하는 데 자기 목숨을 걸었다. 지부상소(持斧上疏,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머리를 쳐 달라는 뜻으로 도끼를 지니고 올리는 상소)가 그래서 나온 말 아닌가. 지금 경북에 필요한 건 저항 정신의 회복이다. 30년 동안의 죄의식 같은 것은 때늦은 죄의식에 다름 아니다. 경북이 30년 권력을 향유했다는 의식이 마음을 짓누를 순 있다. 사실 경북이 크게 누린 것도 없고 설령 부당하게 누린 게 있더라도 바른 건 바른 거고, 틀린 건 틀린 거다. 할 말은 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 코로나19가 대구와 경북에서 말썽을 부릴 때 ‘대구를 봉쇄하라’느니 ‘경북 환자를 못 받는다’느니 조롱하는 듯한 일들이 잇따랐다. 누군가가 그렇게 폄훼하고 시비를 거는데도 제대로 된 반박도 없이 순응하는 듯한 모습에 답답하고 화가 날 때도 있었다. 잘못된 시선과 편견에는 단호하게 노(No)라고 항변해야 한다.

한때 경상북도는 전국 지자체의 맏형 격이었다. 정부 수립 직후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했다. 1949년 경북 인구는 321만 명으로 주요 시도 중 1위에 올랐고 수도 서울은 145만 명으로 7위에 그쳤다. 신생 대한민국 인구가 2016만 명임을 고려하면 예닐곱 중 한 명은 경북에 살았던 셈이다. 산업화 시대는 인구 대이동을 불렀다. 1970년 경북(448만)은 서울(543만)에 인구 1위 자리를 내줬다. 서울이 인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자 경북은 정체기로 접어들었다. 대구가 경북에서 분리되기 직전인 1980년 495만 명이던 경북의 인구는 지난해 대구를 포함해 505만 명에 그쳤다. 40년 동안 대구·경북 인구는 제자리걸음만 했다.

1991년 지방의회 의원을 국민이 선출하면서 지방자치가 부활했다. 그런데 그 뒤로 수도권은 더 비대해졌다. 지방 소멸론이 나올 정도로 중앙과 지방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이 지사_ 내가 1968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학교 다닐 때 많은 이가 보따리를 싸서 서울로 갔다. 1966년에서 1970년 사이에 전부 ‘인서울’ 하더라. 그 뒤로 이런 추세는 더 가속화하면서 서울의 구심력이 전국의 인력과 자본을 끌어당겼다. 지자체는 결국 자치권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키워 스스로가 기회의 땅으로 변신하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이 작가_ 경북 살림도 어렵지만 대구는 GRDP(지역내총생산)가 27년째 전국 꼴찌다. 섬유산업이 사행길로 드는데 주력산업을 길러내지 못한 결과다. 인구 동태만 보더라도 대구·경북이 지난 30년 동안 지자체 중에서 가장 낙후한 축에 들어가지 않나.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인천·광주·수도권 등은 쭉쭉 뻗어나가는 흐름인 데 반해 대구·경북은 한구석에 웅크린 모양새다.

이 지사_ 서울이 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한다. 이제 모든 게 서울이 표준이고 규범이 됐다. 심지어 언어도 편견과 차별을 받는다. 서울말은 표준말, 지방 말은 사투리 취급을 받지 않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사투리야말로 지역의 자산이자 경쟁력이다. 경북도는 사투리를 권장하는 뜻에서 사투리 경진대회를 열고자 한다. 사투리는 아는 만큼 어휘력이 풍부해진다. 서울 출신 내 며느리는 내가 하는 말의 절반 정도밖에 못 알아듣는다고 하더라. 내가 쓰는 사투리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해력에서 누가 더 뛰어난가. 며느리는 내 말의 절반만 이해하지만 나는 며느리 말 전부를 읽어낸다. 서울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게 지역 발전의 출발점이다.

“대구·경북 신공항과 가덕도 신공항은 성격부터 달라”


▎지난해 7월 경북 내 유림 단체 회원들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관련 당사자들의 결단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채택했다.(왼쪽) 2028년 개항을 목표로 하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조감도. / 사진:연합뉴스
이 작가_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되고 30년이 흘렀다고 하는데 지방분권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지방 재정이 확충은 되는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중앙과 지방이라는 이분법 구도에 갇힌 지방자치는 중앙중심주의에 눌려 제대로 숨을 못 쉬는 게 아닐까. 심지어 지자체가 중앙정부의 말단 기관으로 비쳐진다는 세간의 시선도 있지 않나.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비판에 중앙정부가 귀 기울여야 한다.

이 지사_ 수도권으로 모든 게 쏠리다 보니 중앙과 지방의 양극화는 날로 심화하고 있다. 어디에 살든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나라로 가야 하지 않겠나. 그러자면 무엇보다 지자체가 자기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투자 유치를 위해 외국을 방문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이 교통편에 관한 것이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버스 또는 열차를 타고 서울 와서 다시 경북으로 와야 한다고 구구절절이 설명하다 보면 왠지 초장부터 벽에 부닥친다는 느낌이 확 와닿는다. 경북이 정체된 가장 큰 책임도 관문공항의 부재에 있다. 지난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입지를 확정한 것은 경북의 미래에 새 이정표를 세운 것과 같다. 우리가 공을 들이는 통합신공항, 행정통합을 애정을 갖고 봐주면 좋겠다.

여권은 부산 가덕도에 신공항을 세우는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경북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소식일 수 있다.

이 지사_ 영남권 신공항과 관련해서는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논의가 시작돼 2016년 박근혜 정부 때 영남권 5개 시도의 협의를 거쳐 기존의 김해공항을 확장해서 쓰는 쪽으로 큰 가닥을 잡은 사안이다. 그런데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부산 가덕도 신공항 문제가 불거졌다. 국토부 공무원도 가덕도 입지의 문제점을 지적할 뿐 아니라 여당 의원도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다. 여론조사에서 가덕도 신공항에 대해 잘못된 일이라는 응답이 60%로 나오는 등 국민도 우려하고 있다. 반면 군위와 의성군 경계면에 들어서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은 2013년 제정된 ‘군공항 이전 및 지원 특별법’에 따라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추진된다. 대구의 K2 비행장을 군위, 의성으로 옮기면서 민간 항공기도 함께 이착륙 가능한 통합공항을 만드는 것이다. 기존의 법에 따라서도 통합신공항은 가능하지만 보다 신속한 추진을 위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 제정을 요청하는 중이다. 가덕도 신공항과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대구시장은 물론 지역 정치인들과 긴밀하게 공조해서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겠다.

현 정부 들어 여권은 주요 국책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했다. 가덕도 신공항도 특별법에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조항을 넣기도 했다.

이 지사_ 보수 정권은 금도(襟度)가 있었다. 현정부처럼 일방적으로 국정을 하진 않았다. 무엇이 나라에 도움이 되는가를 따져 우선순위를 정했다. 김천~거제 간 철도 건설 사업을 예로 들자면 이명박 정부 때부터 추진됐지만 예비타당성조사에 번번이 걸려 보수정권 10년 동안 겉돌았다. 현 정부 들어서는 경남 등에서 이 사업을 강력하게 요구하자 예비타당성조사를 아예 면제해주더라. 경북이 집권할 때는 염치가 있었고, 법치에 따르는 걸 당연시했다. 지금처럼 지역에 이익이 된다고 선물을 안기듯 국정에 임하진 않았다.

이 작가_ 문재인 정부와 여권을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2월 오리발을 착용한 북한 남성이 헤엄쳐서 강원도 고성 민간인통제구역을 통해 월남한 사건만 해도 그렇다. 정부가 관할 육군 22사단장이 보직 해임했는데 그 책임을 사단장에게 지우는 건 어불성설이다. 현 정부 들어 이미 대북 경계망은 무너진 상태다. 제도를 통해 경계망을 해체해놓고 사단장에게 책임을 돌리는 격이기 때문이다. 비관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우리 군 전력이 3분의 1 줄어들었다고 한다. 경계태세가 태만한 데다 군 복무기간도 감축됐다. 병의 우두머리인 병장의 경우 임무 숙련도에서 과거 상병의 수준에 그치고, 사단, 별(장군)도 상당수 날아가는 등 안보가 점점 불투명한 상황으로 가는 거 같아 곤혹스럽다. 22사단으로 귀순한 북한 남성도 우리 군에게 잡히면 북한으로 송환될까 두려워 피해 갔다고 하지 않았나.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특히 북한의 민간인까지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책임진다는데 나는 잘 믿기지가 않는다. 이런 점들을 고려치 않으면 경북의 미래, 나라의 미래에 대한 논의 자체가 상당히 공허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 작가는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비관이 짙게 밴 예감을 토로했었다. 그는 “미래에 대한 좋지 않은 예감 같은 게 있어요. (중략) 헤까닥 뒤집히면서 희한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나쁘게 말하면 월남 패망 뒤의 보트 피플이나 킬링필드의 까만 비닐봉지를 떠올리게 한다든가” 따위의 급격한 국가 전복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이번 대담에서도 그는 “내가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 부분이 궁금하다. 지금 정부를 보면 대한민국이 어느 순간 북한에 점령되더라도 하등 이상할 게 없어 보이는 길로 가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문 정부에서 경북은 ‘자유민주주의의 마지막 수도’”


▎대담을 마친 뒤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의 자작나무숲을 찾은 이문열 작가(왼쪽)와 이철우 경북지사. / 사진:경북도청
작가는 일반인이 못 보는 사물의 여러 측면을 두루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 작가의 시대 촉감은 아주 불길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 지사_ 그런 우려가 있다는 건 안다. 그건 대한민국의 안보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데서 오는 불안일 수도 있다. 북한에 대한 동향은 한국과 미국이 손바닥 보듯 파악하고 있고 북한의 경제는 외부 세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지탱하기 힘들 정도여서 섣부른 도박을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으로 이해된다. ICT(정보통신기술) 시대는 서로가 서로를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보는 시대여서 급작스러운 어떤 공격이나 시도가 불가능하다고 들었다.

이 작가_ 그런 낙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맞기를 바란다. 문제는 체제가 바뀔 때는 일거에 되는 게 아니라 중요한 고리가 몇 개 바뀌다가 때가 되면 벼락 치듯 뒤집히게 된다는 점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전체 덩어리에서 중요한 고리에 코가 꿰게 되면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된다. 한국이 좌파와 우파로 갈렸다는 현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경북이 스스로를 정신문화의 본향이라 일컫는다면 ‘자유민주주의의 낙동강 방어선이자 마지막 수도’라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지역의 정치인들은 중앙 무대에서 제 몫을 하는가.

이 작가_ 요즘 대구·경북 정치인은 누가누가 있는지 기억이 잘 안 날 정도다. 주호영 의원 등 겨우 몇몇 이름 정도일까. 서글픈 건 악한 정치인으로도 떠올려지는 이도 지역에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정치 신인이라는 사람들은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고…. 솔직히 말해 다들 존재감도 없고 뭐에 홀린 사람들 같다. 나는 지역 정치인들의 주장과 신념이 뭔지를 모르겠다. 외부의 시선을 끌 파당을 만드는 것도, 세력을 형성하는 것도 아니고. 국민의힘 자체가 계파가 사라진 지 오래고 막후에서 누가 당을 조종한다더라는 식의 허황한 소문만 파다한 정당이다.

이 지사_ 지역 정치인들도 나름 열심히 뛴다. 표로 정치를 하는 곳이 국회다.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이 워낙 거세게 나오니까 수에서 밀리는 야당은 감당이 안 된다. 지금의 여당은 과거 우리가 여당일 때 하던 방식과는 사뭇 다른 정치를 하고 있다. 경북 정치인들도 현 정부 들어 많은 걸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 작가_ 야당 입장에서는 요령부득한 상황일 수도 있다. 의원 개개인을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데 분명한 건 옛날 대구·경북 의원들 같지가 않다는 점이다. 과거엔 ‘누구’ 그러면 정치에 별 관심 없는 이들도 어느 동네 의원인지는 알곤 했는데 지금은 다 고만고만하고 별로 떠오르는 이도 없다. 정치 인재 풀을 채우는 과정도 흥행을 못하는 것 아닌가. 예전엔 고압적이긴 했어도 검사, 판사 혹은 박사, 교수라 해서 능력 위주의 묘한 엘리트성 같은 게 있었는데 그마저도 사라졌다. 그렇게 당이 어설프고 허름하니까 비대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온갖 이상한 일을 하고 있는 거다. 비대위원장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역할에 그쳐야 하고, 결국은 당내 정치인 중에서 누가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누가 할지 모르겠다. 대구·경북 정치인들은 뭔가 기운이 빠져버린 듯하다. 아마 박근혜 탄핵에서 받은 충격이 있기는 할 텐데 빨리 털어내야지(한숨).

이 지사_ 현 정권이 잘못해도 (보수가) 조용히 나오다보니 나라가 더 어려워진 것 같기도 하다. 지역민들은 여당의 독단적 국정운영에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정부를 향해 더 강하게 싸우라는 요구가 있는 게 사실이다.

“보수 정권에서 고생한 윤석열 누구 편인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기세가 드세다.

이 작가_ 저 사람은 생각보다 선택지가 넓다. 민주당도 다급하면 윤석열같이 잘 알려진 인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끝까지 붙든 것도 윤 전 총장이 나가서 여권의 대항세력으로 자라지 못하게 하려는 것도 있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 사람이 우리 사람’이라는 여운을 남겨둔 것일지도 모른다. 극단하게는 그쪽 내부 경쟁 대열에서 유력한 사람일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쨌든 함부로 단정하기 어려운 인물 같다. 윤 전 총장이 생태적으로 가까운 쪽은 민주당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 때 고생도 했다. 점치기가 어려운 인물이다. 모든 게 난마같이 얽힌 형국이다.

이 지사_ 정치는 생물과 같아서 ‘윤석열 신드롬’ 향배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또 검찰총장에서 곧바로 대권을 가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와 훈련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다. 이제 정치제도를 선진국형인 내각제로 바꿀 때가 되었다고 본다. 개헌 준비는 20대 국회 초반에 이미 다 했고 당시 의원이던 내가 국회 개헌특위 간사를 맡아서 사정을 잘 안다.

대담을 마친 이 작가와 이 지사는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의 자작나무숲을 찾았다. 1993년 30㏊(9만 평) 부지에 조성된 이 숲은 국내 최대 규모의 자작나무숲으로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일종의 처녀림에 해당한다. 이 지사는 “이 숲은 아직 진입로도 완비되지 않아 쉽게 드나들 수 없는 곳”이라며 “말 그대로 ‘적막강산’을 체험하고픈 분들에게 힐링 장소가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이 작가도 “오랜만에 눈 오는 하얀 순백의 산길을 걷는다”면서 “이런 그윽한 운치가 바로 경북의 힘 아닐까 싶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의 경북 사랑은 이렇게 깊어갔다.

- 글 박성현 지역발전연구소 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2104호 (2021.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