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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취재] K만화, 웹툰 전성시대의 명암 

황금알 낳는 거위로 성장했지만 불법 복제·유통은 그늘 

웹툰에 빠져 밤 새우는 매니어 늘어, 관련 학과·아카데미도 북적
콘텐트는 2차 제작 원천 IP로 주목… 불법 사이트 많아 해결 필요


▎성동구에 위치한 서울웹툰아카데미(SWA)에서 웹툰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프로젝트 수업을 듣고 있다. SWA는 수준별 프로젝트 기반 학습과 현장 전문가들의 멘토링 교육을 운영 중이다. / 사진:월간미대입시
김해리(22)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웹툰 매니어다. 일주일에 평균 44개 작품을 본다. 웹툰에 빠져 날밤을 새우기도 하고, 출근길에 지하철을 놓친 적도 여러 번이다. 최애 작품은 네이버 웹툰 ‘1초’인데, 특별한 능력을 지닌 소방관 주인공이 동료와 함께 사건 사고를 해결하는 내용이다. 지나가는 119 구급차를 보면 왠지 모를 반가움마저 들 정도로 푹 빠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이 조사한 [2020 만화 산업백서]에 따르면 일주일에 1~2번 이상 디지털만화를 이용하는 빈도는 63.4%로 나타났다. 그중 거의 매일 본다는 응답은 21.2%로 김씨와 같은 ‘웹툰 폐인’이 갈수록 늘고 있다.

웹툰은 1990년대 인터넷 보급의 확산과 함께 시작됐다. 처음엔 인터넷을 뜻하는 ‘웹(Web)’과 만화를 의미하는 ‘카툰(Cartoon)’을 합친 신조어에 불과했지만, 2003년 포털사이트 다음(Daum)이 웹툰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웹툰 플랫폼이 증가했다. 이후 2차 저작물로 재생산, 유료화 서비스, 전문 에이전시 등장으로 시장이 커졌다. 지금은 콩글리시 표현이 아닌 한국 만화를 대표하는 고유명사로 진화했다. 웹툰의 인기 요인은 모바일에 최적화돼 있다는 점이다. 웹툰의 컷은 세로 형식으로 나열돼 간단하게 위아래로 스크롤하거나 한 화면당 한 컷을 배치해 가로로 넘기며 볼 수 있다. 휴대전화 화면으로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이용료도 부담스럽지 않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상위 3개 업체 가격 비교 결과, 100~300원꼴로 한 회를 대여할 수 있으며 무료로 볼 수도 있다. 디지털 만화 유료 결제 금액은 월 평균 5000원 미만이다. 넷플릭스(9500원)나 유튜브 프리미엄(9500~1만1500원)에 비해 부담 없이 소비할 수 있다.

웹툰 기반 드라마·영화 등 파생 문화상품 다양


웹툰은 산업적으로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사업이 가능한 콘텐트다. 다른 분야로의 확장성이 강점이다. 작품 하나로 드라마·영화·애니메이션·뮤지컬 등을 연출할 수 있고, 작품 속 캐릭터로 게임 캐릭터나 상품을 제작할 수 있다. 만화를 기반으로 한 히어로물로 할리우드를 점령한 마블(Marvel)의 예만 보더라도 웹툰 IP(Intellectual Property, 작품에 관한 저작권의 총칭)는 마르지 않는 샘물임을 증명한다.

현재 웹툰 IP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분야는 드라마와 영화다.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를 원작으로 한 영화 2편은 모두 1000만 관객을 동원했고 해외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주호민은 “[신과 함께]는 3~4편까지 계약돼 있고, 드라마로도 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드라마 [미생], [이태원 클라쓰], [스위트홈] 등도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해 신드롬을 일으켰다. 잇따른 흥행으로 ‘웹툰 드라마는 흥행 보증수표’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웹툰 원작 드라마나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카카오페이지 관계자는 세 가지 이유를 꼽았다. “우선 기존 팬덤이 있고, 이들로부터 재미를 검증받았으며, 마지막으로 신선한 소재·장르라는 점이 기존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웹툰 업계의 쌍두마차로 불리는 네이버와 카카오페이지도 웹툰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며 콘텐트를 적극 활용하기 위한 행보에 나섰다. 네이버는 CJ ENM과 지분 맞교환을 함으로써 네이버 웹툰이 가진 IP를 활용해 드라마 제작의 길을 열었다. 또 영상 전문 제작 스튜디오인 스튜디오N을 설립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M 양사의 합병 절차를 마치고 공식 출범했다. 합병 이전부터 카카오M은 여러 기획·제작사를 인수하며 웹툰을 드라마·영화화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국내 최대 IP를 보유하며 독보적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이진수 카카오페이지 대표는 “차별화된 글로벌 경쟁력을 통해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영향력을 확장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엔씨소프트도 3월 3일 MBC와 공동 개발 협약을 체결하며 웹툰·웹소설·게임 등 기존 IP로 다양한 콘텐트를 제작하겠다고 밝혔다.

웹툰 IP는 영상 이외 분야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웹툰 프렌즈’는 네이버 웹툰 인기작의 단행본, 스티커 등 캐릭터와 결합한 상품을 판매 중이다. 게임 분야에선 최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며 글로벌 누적 조회 수 40억 뷰(View)를 자랑하는 [여신강림]이 모바일 게임 제작에 들어갔다. 또 1월 13일 한국모바일게임협회와 한국웹툰 산업협회가 업무 협약을 맺고 두 산업 간의 활발한 교류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웹툰 OST도 아티스트가 컬래버레이션 한 음원이 차트 상위권에 꾸준히 오르며 음원 부문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웹툰 시장이 커지면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맹위를 떨친 지난해에도 웹툰의 2020년 상반기 매출액은 약 6841억원으로 2019년 같은 기간보다 8.4% 성장했다. 수출 부문에서도 전반기와 전년 동기 대비 모두 30%가 넘는 성장을 이뤄냈다.

웹툰 작가, 초등학생 희망 직업 9위 올라


▎문화체육관광부가 만화의 날(11월 3일)을 기념해 웹툰 마스크를 제작·증정했다.
웹툰 작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웹툰 분석 서비스인 워즈(WAS)의 자료에 따르면 3월 10일 기준, 웹툰 작품이 총 1만3576개 올라왔고, 웹툰 작가는 9504명이나 된다. 유명 방송 프로그램에서 여배우의 딸이 장래희망을 웹툰 작가라고 밝힌 것은 요즘 웹툰 작가의 인기를 말해준다. 기성세대에게 만화가는 적은 수입, 비대중적이란 특성 때문에 그리 달갑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김준구(44) 네이버 웹툰 대표가 2019년 9월 24일 밋업에서 “네이버 웹툰 작가 359명의 평균 연 수익은 3억1000만원”이라고 밝히면서 웹툰 작가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또 기안84, 야옹이 작가, 박태준 등 유명 작가들이 방송에 출연하면서 웹툰 작가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다.

지난해 조사한 2020년 초·중등 진로 교육 현황에 따르면 초등학생 희망 직업 9위에 만화가(웹툰 작가)가 올랐다. 웹툰 작가가 되려고 진로를 정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스위트홈]의 김칸비, [내 ID는 강남미인]의 기맹기 등 유명 졸업생을 배출한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웹툰만화콘텐츠 전공은 최근 5년간 지원자가 모집 인원의 10배를 넘었다. 4년제 예술학사 교육기관인 KAC한국예술원의 정택민(41) 입학홍보처장은 웹툰계열 개설 후 지원자가 꾸준히 증가해 2020년과 2015년 모집 인원을 비교하면 200%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작가 지망생 지유림(21)씨는 “네온비, 캐러멜 작가의 [다이어터]를 보면서 운동의 매력을 알게 됐고, 우울하고 힘들 때면 탄천을 달리면서 극복하고 있다”며 “저도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웹툰 작가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박인하(50) 서울웹툰아카데미(SWA) 이사장은 “웹툰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꼽았다. 박 이사장의 설명은 이렇다. “일본에서는 만화를 팝컬처(Pop Culture)로 보지 않고 서브컬처(Sub Culture)로 정의한다. 만화를 좋아하면 오타쿠라 불렀지만, 웹툰에서 그런 표현은 없다. 웹툰 매체가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들어와 힘을 갖게 됐고 스마트폰을 통해서 간편히 소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시각 콘텐트로 자리 잡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은 천만 명 이상 보니까 사람들은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하고 그것을 미디어에서 캐치해 작가를 끌어오고, 인기가 많아졌다.”

하지만 등단에 이르는 여정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우선 웹툰시장의 수요·공급 불균형 문제가 있다. 웹툰 사용자 점유율(와이즈앱 자료)을 보면 92.6%가 3사 대표 플랫폼을 이용한다. 이는 자연스레 작가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됐다. 공식 연재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네이버 웹툰의 ‘베스트 도전’에는 3월 기준으로 총 3075개 작품이 있지만, 그중 기회를 잡은 작품은 220개뿐이다. 몇몇 소수만 부각되는 시스템에 대해 [디지털의 배신](2020)을 펴낸 이광석은 “신흥문화산업 시장은 압정 모양과 같은 계층 구조”라며 “거꾸로 뒤집어진 압정 구조는 그 중간 허리가 사라진 채 꽤 성공한 아주 소수의 상층 고소득 유튜버만 승리감에 도취해 있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구조적 문제는 등단하고 나서도 안정된 수입과 거리가 먼 환경을 만들기도 한다. 국내 웹툰 작가의 절반은 1년 연간 총수입이 3000만원 미만(2020 웹툰 작가 실태조사, 콘진원)에 그친다. 이미지 구매, 어시스트·장비 비용 등을 고려하면 월평균 창작 활동 비용은 고작 80만원에 불과하다.

불법 유통, 불공정 계약 등 제도적 장치 미흡


▎인기 웹툰 작가 10인이 불법유통 근절 캠페인에 참여한 모습, 관련 영상은 유튜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사진:유튜브 캡처
웹툰 시장이 급성장한 만큼 그 뒷면엔 불법 복제·유통, 불공정 계약 문제 등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현재 웹툰 불법 공유 사이트는 대략 258개, 누적 피해 규모는 2019년까지 약 3183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불법 유통을 근절할 제도적 방법과 함께 이용자의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업계에선 입을 모은다. 실제 불법 사이트 이용 경험이 있는 박모(26)씨는 “웹툰 이용자로서 무료로 보던 웹툰이 유료로 전환되면 아깝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불법이라도 무료인데 쉽게 끊을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정부기관이 손을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웹툰=무료’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2018년부터 문화체육부와 콘진원은 웹툰 이용자 인식 개선 캠페인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또한 경찰청과 함께 국내 최대 만화·웹툰 불법 사이트인 마루마루와 밤토끼 등 저작권 침해 사이트 43개를 폐쇄하고 운영진 46명을 입건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대 불법공유 사이트로 폐쇄됐된 ‘밤토끼’는 서버를 바꿔 부활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신생 불법 사이트들이 개설되고 있다. 해외 서버를 이용하거나, 운영자가 국외에 거주해 단속이 쉽지 않다. 결제 수단으로 추적이 어려운 암호화폐를 이용하는 것도 수사의 걸림돌이다.

웹툰 작가와 제작사 사이 불공정 계약 문제도 개선돼야 할 문제로 꼽힌다. 콘진원에서 조사한 2020 웹툰 작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제작사와 불공정 계약을 경험한 웹툰 작가는 50.4%로 두 명 중 한 명꼴이었다. 불공정 사례로는 제작사에 유리한 일방적 계약(18.0%)이 가장 많았다. 웹툰 작가들에 따르면 정산 내역 미제공, 계약 전문 용어 설명 불충분 등과 같은 사례도 많았다. 웹툰 작가 김모(35)씨는 “계약할 때 교묘하게 수수료를 높이거나 법률관련 전문 용어에 약한 처지를 악용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박인하 SWA 이사장은 “정보가 부족한 작가들에게 명확한 교육과 안내가 필요하다”며 “정부 기관이나 관련 단체 등이 작가에게 계약 관련 법률과 표준계약서 등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분쟁이 생겼을 때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웹툰 시장의 문제는 디지털 음원이 출현하기 시작한 2000년대에 판치던 불법 음원 문제와 닮았다. 기획사의 횡포로 가수들이 피해를 봤고, P2P 시장은 불법 음원을 무차별 유통해 시장을 교란했다. 웹툰의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산업을 확장하기 위한 제도적·기술적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박남화 월간중앙 인턴기자 p.alice9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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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호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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