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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대 HK+ 한자문명연구사업단·월간중앙 공동기획 | ‘한자어 진검승부’(4)] 시장(市場)-선사시대부터 존재한 인류 활동지 

개개인의 이기심도 최소한의 도덕을 기반으로! 

사람 모이는 일상화된 장소로 유·무형 두 가지 나뉘어
어느 걸 가리키든 사람답고 따뜻하며 중도·도덕 지켜야


▎시장은 사람이 모이는 일상화된 장소다. 대구 화원시장은 10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오일장으로 1·6일에 장이 선다. / 사진:연합뉴스
시장을 떠올리면 어디선가 달착지근한 붕어빵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어릴 적 엄마 손에 이끌려 시장에 따라나서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요란하게 호객하는 아저씨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북적대고, 좋아하는 과일과 알록달록하고 신기한 잡화가 가득한 시장. 따끈따끈 붕어빵도, 시원한 식혜도, 멋진 운동화도, 시장에 가면 하나쯤은 손에 들고 올 수 있었다.

1. 시(市): 사람이 모이는 곳

시장은 선사시대부터 존재한 인류의 첫 경제 활동지다. ‘시장(市場)’의 ‘시(市)’는 중국 상(商)나라 문자인 갑골문에서도 볼 수 있다. ‘시(市)’의 가장 오래된 자형이 어떤 모양을 본 따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다. ‘깃발을 걸어 사람이 모이게 한 곳’이라는 설도 있고, ‘크게 소리쳐 발길을 모으는 곳’이라는 설도 있다. 여러 설이 있지만 ‘시(市)’가 ‘사람이 모이는 곳’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시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인 ‘도시(都市)’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때 그 사람들은 왜 그곳에 모였을까? 무엇이 그들을 그곳에 모이게 했을까? 아마 그 옛날의 더 옛날에는 필요한 것을 직접, 혹은 같은 공동체 내에서 같이 만들어 썼을 것이다. 그러다 점점 만드는 것이 전문화되면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만들게 됐고,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만들기도 어려웠다.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것보다 서로 필요하고 남는 것을 교환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이렇게 서로 필요한 것을 교환하고 사고팔 수 있는 곳, 바로 ‘시장’이 생겼다.

이렇게 서로가 필요한 것을 사고파는 ‘저자’, 즉 시장이 바로 이 ‘시(市)’이다. 동한(東漢) 시대 허신(許愼)은 가장 오래된 자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이 ‘시(市)’를 ‘물건을 사고파는 곳(買賣所之也)’이라고 했다. 이 글자는 [주역(周易)]에서도 ‘대낮에 시장이 열리니(日中爲市)’에서와 같이 ‘시장’이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베트남·일본에선 市를 市場이란 의미로 사용

베트남에서는 아직도 이 ‘시(市)’를 ‘시장’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베트남에서 ‘시장’의 의미로 사용되는 ‘chợ’는 ‘시’에서 유래한 말이다. 일본에서도 ‘시(市: いち)’가 여전히 ‘시장’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말은 지명에도 남아 있는데 예를 들어 일본 미에현(三重縣)의 ‘욧카이치시(四日市市)’는 4·14·24일처럼 ‘4일(四日)’로 끝나는 날 시장(市)을 열던 곳이다.

2. 場: 일상화된 장소

반면 우리는 ‘오일장(五日場)’, ‘장(場)이 서다’, ‘장터(場터)’처럼 시장(市場)을 ‘시(市)’가 아닌 ‘장(場)’으로 표현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 한자를 사용하는 다른 나라에서는 이렇게 장(場)을 써서 ‘시장’을 나타내는 예는 매우 드물다. 일본어에서는 장(場)이 다른 단어와 결합해 ‘시장’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단독으로 쓰일 땐 그저 ‘장소’라는 의미로만 사용된다. 사용하는 양상만 놓고 본다면 ‘장(場)’이 ‘시장’을 나타낸다기보다는 ‘시장’의 축약형에 가깝다.

‘장이 서다’라는 말도 ‘시(市)’를 써서 ‘市が立つ(시(市)가 서다)’로 표현한다. 우리말 그대로 ‘場が立つ(장(場)이 서다)’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와 다르게 ‘입회(立會)’의 의미로 쓰인다. 중국어에서도 ‘장(場)’을 ‘시장’의 의미로 쓰는 방언 지역이 있긴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다.

[설문해자]에서는 장(場)에 대해, ‘신에 제사를 드리던 평지(祭神道也)’를 의미한다고 했다. 옛날에 단(壇) 앞의 터를 ‘장(場)’이라고 했는데, 이 때문에 장(場)을 ‘신에 제사를 드리던 평지’라고 해석한 것 같다. 그러나 ‘장(場)은 단(壇)이 없는 것도 있지만, 단(壇)은 장(場)이 없는 것이 없다(場有不壇者, 壇則無不場也)고 한 청나라 학자 단옥재(段玉裁)의 말을 참고하면, 장(場)이 제사를 지내는 곳과 관련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場)의 가장 오래된 자형인 갑골문은 마치 ‘밭’을 의미하는 ‘전(田)’자를 넓혀놓은 것 같은 모양이라 ‘넓은 터’를 의미하는 글자로 무방할 것 같다.

장(場)이 원래 종교적 의미가 있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장(場)’은 일반적인 ‘장소’를 나타내는 말이 됐다. 우리가 시장을 ‘장(場)’이라고 한 것은 ‘시장’을 이처럼 일반화된 장소, 즉 삶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3. 추상화: ‘장소’가 없는 시장


▎주식시장은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곳이다. 3월 8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시장’의 ‘시(市)’와 ‘장(場)’은 모두 ‘장소’라는 공간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 서양에서 들어온 ‘market’은 이런 ‘구체적인 공간에서 상품을 사고파는 시장’이라는 뜻 외에 장소 개념이 없는 ‘시장’, 즉 ‘노동 시장’이나 ‘금융 시장’과 같은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돈·상품·인력이 오가는 곳

이 단어를 처음 번역한 일본에서는 ‘market’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시장’으로 번역했다. 번역해야 할 한 단어에 이미 사용하고 있는 개념과 새로운 개념이 동시에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단어로 번역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미 사용하고 있는 단어에 의미를 덧붙인, 그리고 추상화한 예다.

눈에 보이는 시장과 보이지 않는 시장, 그리고 장소가 있는 시장과 없는 시장, ‘시장(市場)’은 이 두 종류의 시장을 모두 가리킨다. ‘시장(市場)’은 일본에서 번역된 후 한자를 매개로, 한자를 사용하는 동아시아 나라들에 전파됐다. 한자를 사용하는 나라들은 이 두 종류의 시장을 모두 ‘시장(市場)’ 혹은 이것과 관련된 단어로 사용한다.

그러나 이 둘을 구분하려는 시도도 계속됐다. 예를 들어 일본은 이 두 시장을 발음을 통해 구분한다. 구체적인 장소가 있는 시장은 훈독(訓讀)인 ‘이치바(いちば)’로 읽고, 장소가 없는 추상적인 시장은 음독(音讀)인 ‘시죠(しじょう)’로 읽는다. 한자는 같지만 서로 다르게 읽어 구분한 것이다.

베트남어에서도 이 두 개의 시장(市場)을 구분해서 사용한다. 전통적인 시장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市)’의 옛 발음에서 유래한 ‘chợ’로 읽고, 추상적인 시장은 ‘시장(市場)’을 베트남 한자음으로 읽은 ‘thị trường’을 사용한다. 베트남은 기존의 시장을 나타내는 ‘chợ’는 그대로 둔 채, 추상적인 시장을 나타내는 말로 ‘thị trường(市場)’을 새롭게 수용함으로써 이를 구별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장(場)’을 더는 사용하지 않고, ‘시장(市場)’으로 이 두 개의 시장을 모두 나타내는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다.

‘시장(市場)’에 담긴 구체성과 추상성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시장(市場)’과 ‘market’이 가진 의미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시장(市場)’은 물건이 거래되는 ‘장소’에 주안점이 맞춰진 단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市)’와 ‘장(場)’ 모두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거래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반면 ‘market’은 라틴어 ‘mercatus’에서 유래했는데 ‘거래하다’, ‘사고팔다’라는 의미로, 물건을 거래하는 ‘상태’와 ‘동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market’은 시장이 가진 구체성과 추상성과 관계없이 거래되는 곳이면 어디든 지칭할 수 있다. 반면 ‘시장(市場)’은 장소 개념의 유무가 매우 중요해 이 둘을 계속 구분하려고 하는 것이다.

4. 가격(價格): 수요와 공급의 줄다리기


▎지난 2월 설 연휴 직전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는 시민들. / 사진:뉴시스
시장은 기본적으로 ‘상품을 거래하는 곳’이다. 그래서 ‘상품’이 되는 것은 모두 거래(去來)된다. 채소·과일·생선 등과 같은 먹거리부터 인력(人力)·주식(株式)·선물(先物)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런 상품들을 모두 ‘시장’에서 거래한다. 거래(去來)는 원래 ‘오고 가다’라는 뜻인데, 이것이 경제 주체들 사이에 상품이나 돈이 오고 가는 모든 행위, 즉 매매·대여·대차·담보 등의 상행위(商行爲)를 일컫는 말이 됐다.

神과 같은 ‘보이지 않는 손’이 균형 맞춰줘

그러나 실제로 시장에서의 거래는 단순히 ‘오고 가고’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수요(需要)’와 ‘공급(供給)’의 힘겨루기에 가깝다. ‘수요(需要)’는 단순한 욕구보다는 구매력, 즉 일정한 가격을 주고 구매할 의향과 능력이 반영된 욕구다. 이것은 ‘필요(必要)’에 의해 형성되는 욕구와는 또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필요’에 의한 욕구를 ‘니즈(needs)’라는 새로운 용어로 표현한다. 필요와 관계없이 이 상품을 내가 원하는지, 그리고 그에 맞는 돈을 낼 의향이 있는지가 ‘수요’를 만들어낸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런 구매력 있는 욕구를 ‘수요(需要)’라고 하지만,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수구(需求)’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수요(需要)’는 우리의 ‘필요(必要)’에 더 가깝게 사용된다. 특히 중국에서는 ‘수요(需要)’를 ‘~이 필요하다, ~이 요구된다’의 의미로 사용한다.

이렇게 서로 다르게 쓰는 것은 ‘要’의 의미를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요(要)’는 ‘요구’, ‘욕구’에 가깝지만,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필요’에 가깝다. 반면 ‘구(求)’는 한국과 일본에서 ‘구하다’, 즉 ‘획득(獲得)’의 의미가 강하지만,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바라다’ 즉, ‘요구’에 더 가깝다. 이처럼 같은 한자를 사용하더라도 의미를 서로 다르게 인식하면 사용하는 한자어 역시 달라지는 경우가 흔히 나타난다.

수요와 공급의 줄다리기는 이 둘이 균형을 이룰 때까지 계속된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오지 못하면 가격이 오르고,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늘어나 균형을 이룬다. 결국 수요와 공급의 힘겨루기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돈, 즉 ‘가격(價格)’이다. 사려는 쪽은 싼 가격으로 사길 원할 것이고, 파는 쪽은 비싼 가격으로 팔길 원한다. 이 팽팽한 줄다리기는 서로의 이해가 맞는 어느 한 지점에서 합의를 보게 된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합의점인 ‘가격’이 형성되고, 이 과정에서 가격(價格)은 ‘물건이 가지고 있는 가치(價値)’가 된다.

가격은 시장의 주인공이다. 가격을 통해 시장은 수요와 공급을 제어하고 균형을 이룬다. 이러한 가격의 역할을 두고,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고 했다. 시장에서 가격을 통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이루는 과정이 마치 신과 같이 어떠한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 같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에게 유리한 가격으로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과정은 시장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든다.

5. 중용과 중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최근 직원들의 투기 의혹으로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다. / 사진:연합뉴스
수요와 공급만 두고 보면, 시장이 가격을 통해 균형을 이루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도 쉬운 일이다. 그러나 시장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수요와 공급 외에도 여러 요인과 변수가 시장의 시야를 흐리게 만든다. 특히 정보의 불평등성·외부효과·공공재 등은 시장의 실제 수요와 공급을 왜곡해 불완전한 균형을 이루게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적절히 제어할 필요가 있다. 정부(政府)는 ‘정책(政策)’ 등을 이용해 시장에 개입해서 시장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1929년 ‘시장의 실패’로 대변되는 대공황은 시장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드러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는 손’이 시장을 제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뉴딜정책’과 같은 개입을 통해 빠르게 경제를 회복했다.

정부에도 ‘중용’과 ‘중도’의 적절함 요구돼

그러나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언제나 옳다고 볼 순 없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많아져 이를 정부의 개입으로 일일이 제어하기 어렵게 됐다. 또 이러한 개입은 시장 내부의 요구를 완전히 해소해낼 수 없다. 이 때문에 신자유주의자들은 강력한 정부의 ‘보이는 손’이 시장의 자정작용을 방해해 더 큰 문제를 일으키므로 다시 경제를 시장에 맡기자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정부의 개입은 여전히 유효하다. 개인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법망(法網)과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시도도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시장의 순기능도 유지하면서 시장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최적의 지점을 찾아야 한다. 그 ‘적절함’을 찾는 것이 시장이 우리에게 던진 숙제다.

동아시아 문화에서 ‘적절함’은 유교의 ‘중용(中庸)’과 불교의 ‘중도(中道)’에 있다. 이 두 단어에서 공통으로 사용된 ‘중(中)’은 마을 한가운데 꽂은 깃발을 형상화해 만든 글자지만 물리적인 가운데 지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교의 ‘중용’은 ‘극단에 있지 않은 중간 상태’를 의미한다. 불교의 ‘중도사상(Majjihimā Paṭipadā)’ 역시 ‘양 끝에 치우치지 않은 바른길’을 의미한다. 즉, ‘중용’과 ‘중도’는 물리적인 가운데 지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 역시 이러한 ‘중용’과 ‘중도’의 ‘적절함’이 요구된다. 모자라면 시장의 불완전함을 보완할 수 없고, 넘치면 시장의 기능을 망가뜨린다. 정부의 정책은 잘 드는 칼과 같아서 잘 사용하면 경제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지만, 잘못 쓰면 경제에 상처를 낼 수 있다. 이 좋은 칼을 잘 쓸 수 있도록 좋은 정책을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는 묘안이 필요하다.

6. 시장과 도덕


▎2008년 8월 영국 에든버러에서 제막한 3m 높이의 애덤 스미스 동상. / 사진:연합뉴스
각자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균형점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이상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시도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이 과도해지면, 자칫 공정하지 못한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예는 기나긴 인류의 역사에서 매우 흔히 나타났다. 실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꽤 흔히 나타나고, 독과점이나 매점매석 같은 문제들도 역사적으로 꾸준히 발생한다. 각자의 이기적인 선택이 오히려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역시 ‘이기심’과 ‘효율성’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규칙’과 ‘통제’이다. 현대사회에서 규칙은 ‘법’으로 귀결된다. 법은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생활하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고, 이를 통해 사회가 공정하고 바르게 유지된다.

‘법(法)’은 원래 해태(廌·태)가 있는 ‘灋(법)’과 같은 모양이었는데, 해태 부분이 생략돼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됐다. 이 글자는 해태가 법을 어긴 사람에게 머리를 대어 판정을 도와준다는 설에서 유래됐다. 그래서 법은 지켜야 하는 ‘규칙’임과 동시에, 지키지 못했을 때 이를 판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겁주는 방식으로 모든 불공정 경쟁 제어 어려워

‘법’은 가장 직관적이지만 최소한의 통제수단이다. 모든 일에 대해 법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고, 법이 범법행위에 대한 선제조치를 취할 수도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바로 ‘처벌(處罰)’이다. ‘처벌’은 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리는 처분이다. 처벌은 범죄자에게 죄를 묻는 것이 목적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겁을 줘 법을 지키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처벌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겁을 줌으로써 법을 어기는 범법행위를 막는다.

그러나 만약 법을 지키지 않아 생기는 이익이 처벌에서 받는 손해나 아픔보다 크다면 법을 지키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것만 놓고 봤을 때,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겁주는 방식으로는 모든 불공정한 경쟁을 제어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법이 아닌 사람의 양심에 기대는 ‘도덕(道德)’이 시장에 필요하다. ‘도덕’은 순자(荀子)의 “배움이 예에 달하면 다한 것이다. 이를 도덕의 극치라고 한다(學至乎禮而止矣, 夫是之謂道德之極)”에서 처음 단어로써 사용됐다.

도덕(道德)이 지금처럼 ‘morality’의 번역어인 ‘사회의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등에 비춰 지켜야 하는 규칙’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근대 이후다. 도덕은 ‘법’보다 강제성은 약하지만 더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다. 또한 도덕은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덕목이자 ‘인간다움’을 지키는 선이다.

각 개인의 이익 극대화가 시장의 균형을 효율적으로 이뤄낸다고 했던 애덤 스미스도 ‘현명함’이라는 말로 ‘도덕’을 이야기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처럼 개인의 이기심만 강조하지 않았다. 그는 도덕을 가진 상태에서 개인이 이익을 최대화할 때 시장이 제대로 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애덤 스미스가 말한 개인의 이기심은 ‘도덕’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사실 그가 말한 ‘보이지 않은 손’은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따뜻한 손이었다.

7. 시장, 사람 사는 곳


▎일산 오일장의 뻥튀기 아저씨가 강정용 튀밥을 튀기며 “뻥이요”를 외치고 있다. / 사진:최정동 기자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시장은 참으로 따뜻했다. 얼기설기 가린 틈으로 쏟아지던 따스한 햇볕, 시끌벅적 활기차게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람 목소리, 그리고 포슬포슬하고 달착지근한 냄새가 가득했다. 좀 더 크고 나서 배운 새로운 시장은 냉정하고 차가웠다. 돈과 재화로서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삭막한 곳 같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면 시장은 어느 것을 가리키든 사람답고 따뜻해야 한다. 중도가 있고 도덕이 지켜지는 곳. 시장은 그래야 한다.

- 이지영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연구교수 jyunglee82@hanmai.net

202104호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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