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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와 목민관 대담] 김영록 전남도지사와 박기영 순천대 교수가 설계하는 ‘첨단과학 전남’ 

 

“김영록 - 4차 산업혁명과 자율주행, 지역민 삶에 접목한다”
“박기영 - 정약전 실용주의가 전남 블루 이코노미 원동력”


▎김영록 전남도지사(왼쪽)와 박기영 순천대 교수가 4월 13일 전남 신안군 압해도 분재공원에서 만났다.
"자본주의는 시골이나 지역을 국가 전체에 포함시켜서 균질하게 만든다. 이는 무엇보다 ‘경제’를 위해서다. 자본주의 경제는 지역의 자급경제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기술도 부정해버린다.”

일본의 농학박사이자 현역 농부, 농사상가이기도 한 우네 유타카는 저서 [농본주의를 말한다](녹색평론사)에서 전통마을의 농업이 자본주의 물결에 휩쓸려 퇴조해가는 과정을 이렇게 포착했다. 그가 본 자본주의는 지속적인 성장, 자기 확장을 해야 존속되는 속성으로 인해 현상유지는 곧 퇴보를 의미했다. 이에 반해 땅에서 쌀과 곡식을 일구는 농업은 물리적 성장 자체와 거리가 있는 분야인 까닭에 자본주의와 양립하기 어렵다고 그는 갈파했다.

대한민국 최대 곡창지대를 거느린 전라남도를 보면 우네 유타카의 통찰이 더 실감 난다. 2004년 인구 200만 명 선이 무너진 전남도의 지난해 말 인구는 185만 명 선으로 물러서 있다. 그리고 농가인구는 대략 30만 명 정도로 전체 도민의 16%에 그친다.

대신 그 빈자리를 ‘블루 이코노미’, ‘전남형 뉴딜’ 등 신재생에너지사업, 혁신적 신산업이 하나둘씩 채워나가고 있다. 전남도청 누리집의 ‘전남발전전략’ 메뉴를 보면 ▷블루 이코노미 ▷전남형 뉴딜 ▷전남발전 비전 전략 ▷추진 중 대규모 프로젝트 ▷전라남도종합계획 ▷남해안발전구상 ▷전남개발계획 등 거대 어젠다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전남도는 “우리가 가진 강점을 최대한 살려 지역의 미래 100년을 책임질 대규모 프로젝트들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아 전남도는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이례적이라 할 ‘전남도 과학기술발전위원회’를 출범하는 등 야심에 찬 변신을 준비 중이다. 그 중심에 국회의원,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역임한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있다. 그는 풍부한 청정자원을 보유한 지역사회의 미래가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며 자연과학자와의 대담을 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낸 식물분자생물학자인 박기영 순천대 교수와 김 지사와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4월 13일 애기동백축제로 유명한 전남 신안군 압해도 분재공원 내 저녁노을미술관에서 진행된 대담에서 두 사람은 저탄소 사회로 급속하게 진입하는 시대 추세를 진단하고, 전남도의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을 모색했다.

광역단체장과 자연과학자의 대담은 이례적인 접근법이다. 자연과학이 전남 도정(道政)의 키워드가 된 듯한 느낌이다.

김영록 전남지사_ 잘 알다시피 전남도는 2000개가 넘는 섬, 6000㎞의 해안선, 황금 들녘, 하늘, 바람 등 자연이 선사한 자원이 넘실대는 고장이다. 차고 넘치는 청정 자원에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융합해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게 전남도의 발전 전략이다. 이를 압축해서 ‘청정 전남 블루 이코노미’라 부른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표방한 ‘한국형 뉴딜정책’과도 일맥상통한다. 박기영 순천대 교수는 바이오생명산업 분야에서 전남도에 크게 기여한 분이다. 참여정부 시절 차관급인 대통령비서실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내고 지금은 순천대 대학원장 겸 생명산업과학대학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생명과 환경을 중시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하는 전남도의 정책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요즘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융합하는 통섭의 시대 아닌가.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3D 프린터, 자율주행을 전남도의 현실과 지역민의 삶에 접목하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본다. 정약전의 실증적 과학 탐구서인 [자산어보]의 고향인 신안군에서 자연과학자와의 대담을 통해 아직 가보지 않은 전남도의 첨단 산업의 길을 살펴보고자 한다.

오원철 전 경제수석이 말하는 여천 석유화학단지 비사


박기영 순천대 교수_ 여기서 가까운 흑산도에서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저술되고, 그게 최근에는 영화로도 개봉됐다. [자산어보]는 흑산도 근해 수산생물 155종의 명칭, 분포, 행태, 습성과 이용까지 생생하게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학 저술이다. 당시의 실학자인 정약전의 실용주의 면모가 투영된 역작이다. 맛과 쓰임새까지 기록했으므로 요즘 말로 하면 민생을 챙긴 것이다. 민생도 과학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학문하는 사람은 정치적, 이념적으로 왜곡되지 않은 정확한 사실에 기반을 두어야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사례에 해당한다. 정약전의 실용주의는 전남도의 블루 이코노미와 뿌리를 같이한다고 하겠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보완돼야 할 게 이 실용주의 아닐까.(웃음)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올 1월 행한 연설에서 “세계의 과학자들을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며 그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연구하고 국민에게 직접 말할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탈원전, 백신 접종 등 우리가 직면하거나 극복해야 할 과제들도 이념이 아닌 전문가들의 객관적 판단을 기준으로 처리돼야 할 것이다.

김 지사_ 말 그대로 정약전은 양반이 책상에 앉아 학문과 사상을 논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준 인물이다. 매우 신선하고 진보적인 사고에 입각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해양자원에 대한 보고서 <자산어보>를 지었다.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던 지식의 현실참여의 한 유형으로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박 교수_ 시대의 변화와 사회·산업의 흐름 속에서 지역의 강점을 발굴하고 키워야 한다. 전남도 산업화의 역사를 돌이켜보자. 몇 년 전에 작고한 오원철 전 청와대 경제2수석으로부터 여천 석유화학단지 조성 관련 일화를 생전에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1970년대에 거의 10년 가까이 청와대 경제 수석을 지낸 그분은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을 설계하고 일궈낸 주인공과도 같다. 오 전 수석이 석유화학단지 입지를 정하려고 각 지방을 둘러보던 중 우연히 여천에 다다를 즈음 타고 왔던 승용차가 고장으로 멈춰 섰다고 한다. 그렇게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외딴 오지에 온 것처럼 느껴졌다고 하더라. 그래서 여천에 석유화학단지 입지를 잡았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석유화학은 대표적 환경 오염 산업으로 인식되던 시절이라 수도 서울에서 가장 먼 국토의 맨 끄트머리 땅이 그의 눈에는 최적의 산업부지로 와 닿았던 셈이다. 지금은 판이 완전히 바뀌었다. 석유화학산업은 자동차산업과 함께 2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주목받는다. 게다가 현대의 산업 입지는 산업 그 차제만이 아니라 주변의 인적 자원과 지식 자원이 뒷받침될 때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갖는다. 산업에 대한 지역의 공감대, 대학의 지적 토양, 관련 기업의 경제활동이 산업의 승패를 결정짓는 시대다. 전남도는 이 3박자를 다 갖췄다. 이를 발판으로 전남도는 2023년 대한민국 개최가 유력시되는 제28차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이하 COP28) 유치에 두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김 지사_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이상기온, 기후변화의 여파로 재해가 잇따르면서 ‘2050년 탄소 중립’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흡수하는 장치를 마련해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자는 제안에 유럽, 미국, 일본 등이 호응하는 등 기후변화는 전 세계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우리나라도 2020년 12월 ‘2050년 탄소 중립’ 방침을 선언했다. 전남도는 전국에서 둘째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지역으로 ‘2050년 탄소 중립’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그 연장선에서 전남도는 COP28 유치를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2030년 신안 앞바다에 세계 최대 풍력 발전단지 들어선다”


박 교수_ 올해 11월로 예정된 26차 당사국총회는 1차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다. 글래스고는 제임스 와트가 지역의 교수들과 함께 증기기관을 발명한 지역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전남도도 비슷한 장점을 갖추고 있다. 먼저 2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여천 석유화학 산업단지가 있다. 게다가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자체이기도 하다. 기후변화와 탄소 배출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이 물이고 해양이다. 탄소를 가장 많이 저장한 곳이 바 다이기도 하고, 지구 온난화에 가장 민감한 곳도 열을 흡수하는 해양이다. 해양은 본래 안정적인 생태계인데도 열이 가해져서 몸살을 가장 많이 앓는 당사자다. 전남도는 해안선(전국의 45%), 섬(전국의 65%), 갯벌(전국의 42%)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2차 산업혁명의 중심지인 전남도가 다음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열 자격은 넘쳐난다. COP28을 유치해야 할 당위성과 명분에서 전남도를 따를 지자체가 없다고 확신한다. 2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전남도의 석유화학단지가 COP28 유치를 통해 탄소 중립 산업의 메카로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청정 전남 블루 이코노미’라고 하는데 블루 이코노미의 구체적인 사업과 비전이 궁금하다.

김 지사_ 블루 이코노미의 핵심 사업은 신재생에너지 사업이며 그중에서도 해상풍력사업이 으뜸이다. 산업혁명을 이끌어오던 화석에너지는 이제 한계점에 와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면 화석에너지를 제한하고 재생에너지를 양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전남도는 지리적 여건을 살려 해상풍력사업을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다. 예컨대 올 2월 신안군 임자2대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 48조 투자협약식’을 거행하는 등 지역균형 뉴딜투어 1호 행사를 가졌다. 이는 현존하는 영국의 세계 최대 풍력발전단지보다 7배나 큰 8.2GW 규모의 해상풍력발전단지를 2030년까지 신안 앞바다에 세우는 프로젝트다. 여기서 발생하는 전기는 서울과 인천의 모든 가정이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양으로 연간 1000만t의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전남도가 2019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을 모시고 ‘청정 전남 블루 이코노미 선포식’을 할 당시 블루 이코노미의 개념과 방향을 제시한 분이 박 교수였다. 당초 블루 이코노미는 주요 해양산업을 의미하는 용어에 그쳤다. 박 교수가 전남도의 특성을 살려 청정 자연과 친환경 기술, 4차 산업혁명을 접목하는 의미로 활용하자는 의견을 줬고 우리도 그에 기반해 블루 이코노미 프로젝트를 선포했던 것이다. 전남 블루 이코노미의 핵심이라 할 재생에너지, 바이오에너지 분야에 탁월한 식견을 갖고 있다.

박 교수_ 탄소 중립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피할 수 없다. 곧 유럽연합에서 탄소 국경세를 부과할 예정이어서 탄소 배출이 무역 장벽으로 작용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고 했다. 선제적인 전략을 통해 저탄소 산업, 저탄소 사회를 조성하는 데 전남도의 주도적 역할이 기대된다. 그런 면에서 청정 전남 블루 이코노미 정책은 미래지향적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탄소 중립에 투자하는 재원을 비용으로 볼 게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는 투자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나아가 민관이 힘을 모을 탄소 중립 관련 기구와 제도를 본격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

한전공대는 2009년 개교한 울산과기대와 닮은꼴


▎전남도는 천혜의 해양 풍광을 자랑한다. 신안 섬 해안을 달리는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 / 사진:신안군청
김 지사_ 전남도는 해양, 섬, 숲, 갯벌 등 청정 자원의 보고이자 풍부한 바람과 일사량 등 재생에너지원으로도 유명한 고장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량, 해상풍력 발전량, 일사량이 전국 1위를 자랑한다.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전남 발전의 동력은 무궁무진하다고 하겠다. 인류는 탄소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전남도는 풍력, 태양광 같은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기반으로 기후변화 해결에 앞장서는 지자체로 거듭날 것이다. 생명의 땅 전남에 바이오산업이 꽃필 날이 멀지 않았다. 이를테면 백신 산업 특구인 전남 화순에는 난치성 질환 백신을 개발하는 ‘국가면역치료 플랫폼’이 들어선다. 암, 치매 등 면역 치료제의 국가 컨트롤타워가 화순에 들어서면 선진국이 독점해온 165조원에 달하는 면역 치료제 시장 공략에 우리나라도 본격 나선다는 말이다.

여기서 빠뜨릴 수 없는 게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 초강력 레이저 센터 설립,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한전공대) 설립이다. 나주에는 에너지 신산업 허브 역할을 하는 한국전력이 자리한다. 이와 더불어 첨단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거점으로 기능할 대학이 바로 한국에너지공과대학이다. 야당에서 특혜 의혹을 제기하는 등 논란은 있었지만 관련 법안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다. 2009년 울산과기대 설립 당시 중복투자 등의 이유로 반대가 심했다. 그때 울산 분들이 국회에 와서 경위를 설명하고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하는 온갖 노력을 기울인 끝에 여야 합의로 관련 법안을 처리한 적이 있다.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울산과기대는 그 뒤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도 에너지 신산업을 이끌 연구 중심 대학을 만들고자 한다. 학부생 총 400명, 대학원생 총 600명을 정원으로 하는 세계적인 에너지 관련 공대를 만드는 게 전남도의 꿈이다.

박 교수_ 공감한다. 한전공대를 에너지 기술 역점 대학으로 육성, 전남이 세계 첨단에너지 기술의 거점으로 우뚝 서도록 해야 한다.

이념 과잉, 진영 논리는 한국 정치, 나아가 사회 전반의 왜곡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이다.

김 지사_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도 그렇게 본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회 초년병 시절 나는 참으로 의아한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왜 사람들은 옳고 그름보다는 나하고 가깝고 먼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걸까? 일을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라 친소 관계를 우선시하는 모습에서 큰 혼란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진영 논리와 비슷한 게 그때도 있었던 것 같다. 자기 이해관계를 떠나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박 교수_ 우리 역사를 보면 전남에는 진영 논리 때문에 유배 온 분들이 많다. 정약용, 정약전 등등. 그런 분들이 이곳에 오셔서 한 일들을 보면 굉장한 실용주의자라는 점을 알게 된다. 유배지에서 진영 논리를 극복한 분들이라고 할까. 전남도의 진영 논리 극복 정신과 직결된다고 하겠다.

“중앙정부 공모제가 지역의 창의성 누른다”


▎지난 2월 전남 신안군 임자2대교에서 열린 ‘해상풍력단지 48조 투자협약식’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영록 전남지사 등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 사진:연합뉴스
김 지사_ 우리는 전남도를 의로운 고장, 즉 의향(義鄕)이라 부른다. 임진왜란 당시도 의병항쟁이 가장 치열했던 곳이 전남이다. 한말 의병활동, 일제 강점기 광주학생운동,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전남·광주는 의롭고 자랑스러운 고장이다. 그전에는 장보고가 세계 시장의 상권을 지배하는 쾌거를 이룬 곳이기도 하다. 신라 왕권 중심 시각으로 사고하면 장보고는 역적이 된다. 그래서 한동안 장보고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것도 하나의 진영 논리 때문이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장보고는 굉장한 인물인데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가 요즘 와서 조명되는 것 아닌가.

동일한 역사를 진영 논리에 따라 부정하면 역사 인식을 달리하게 되고 대립과 반목을 낳는다. 역사를 통찰하고 성찰해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중앙정부는 종종 관성에 의해, 또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지역의 비효율을 가져오는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중앙집권, 중앙중심주의가 갈수록 심화하는 경향을 보이진 않나?

김 지사_ 우리나라는 중앙집권적 사고가 강고하고 전통도 오래됐다. 모든 걸 중앙에서 일일이 통제, 간섭하는 상황이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자치단체장과 의회를 주민들이 선출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실질 내용을 들여다보면 제약이 수두룩하다. 결국은 법을 국회가 만들고, 법에 따른 시행령도 중앙정부가 만든다. 법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 입장, 지역의 요구가 반영되는 통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기획하고 돈을 마련해 지방에 ‘시달’하면 지자체는 그대로 따라가는 시스템으로 대한민국이 성장해왔다. 이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정말 난감할 때가 많다. 궁극적으로는 법령에도 지역의 이익이 반영되는 길이 구조적으로 마련돼야 풀릴 문제들이다. 재정만 해도 모든 권한이 중앙에 집중돼 있다. 부동산 공시지가만 해도 수도권만 치솟고 지역은 그대로다. 세수 증가 요인을 따져도 수도권 살림은 나날이 비대해지는데 지역은 제자리걸음이다. 지방의 소멸, 저출산, 청년실업, 지방대 위기 등 지역의 거의 모든 문제가 중앙중심주의의 심화와 맞물려 있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 교수_ 김 지사 얘기대로 지금 중앙과 지방의 관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 경기와 다를 바 없다. 중앙행정부터가 기득권을 놓을 생각이 없다. 국가균형발전 사업만 해도 그렇다. 대부분이 공모사업으로 진행되는데 중앙정부에서 문제를 내면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답안을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다. 경쟁이 치열한 공모사업을 가져오자면 출제자의 의도에 충실한 답안을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이래서는 지방정부가 지역 특성에 맞는 기획을 세울 수 없다. 참여정부 시절 의욕적으로 많은 역할을 했던 국가균형발전 정책도 추진 내용 중에서 비판을 받은 것이 있는데 바로 이런 중앙정부 위주의 공모제의 맹점 때문이었다. 지역이 지역의 실정에 맞는 정책과 기획을 하도록 중앙정부의 사업운용 방식이나 예산배분 구조를 바꿔야 할 것이다.

“헌법에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명시해야”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한전공대) 특별법안이 3월 23일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 사진은 한국에너지공대 조감도. / 사진:전남도청
그래서 지자체로의 권한 이양 등을 포함하는 분권형 개헌론이 늘 정치권을 맴돈다고 보면 될까?

김 지사_ 지방자치단체라는 용어는 원래 일본식 용어다. ‘단체’라는 표기는 지방자치 정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다 ‘로컬 거버먼트’, 즉 지방정부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지방정부라고 부르는 걸 중앙정부, 중앙 공무원들이 싫어한다. 지방정부라 하면 나름 자율성, 독자성의 의미가 강하지 않나. 우리가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 지방자치를 하자면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이 헌법에 보장이 돼야 한다고 본다. 지자체에 재정의 자율성도 부여돼야 한다. 항목을 일일이 지정해서 예산을 주면 재정 분권이라고 할 수 있겠나. 우리 헌법에 지방 분권, 재정 분권을 포괄하는 지방자치에 대한 확고한 규정이 명문화돼야 한다.

통일은 요원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 현실로 성큼 다가설 수 있다. 통일 이후의 전남도는 어떤 변화를 경험할까?

김 지사_ 통일 이후 대륙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고들 한다. 전남도는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34회에 걸친 남북 교류·협력 사업에 48억원을 지원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힘써왔다. 지난해에는 통일부 공모 사업인 ‘호남권 통일 플러스 센터’ 주체로 선정됐다. 사업비 80억원에 달하는 이 센터는 남북 교류·협력, 통일 교육, 탈북민 지원, 북한 자료 전시 등 다양한 통일 사업을 짜임새 있게 추진하게 된다. 전남도는 통일 이후에도 남북 지방정부 간 경협을 더욱 강화하도록 최선의 준비를 다할 계획이다. 그런데 통일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많은 이들이 캄차카반도를 극동아시아의 끝이라고 부르지만 통일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남해안, 즉 전남과 경남이 대륙의 마지막 영토를 차지하게 된다. 남해안 섬 벨트 지역이 세계적인 전략 요충지이자 해양 관광의 상징으로 떠오르게 된다. 다시 말해 통일 이후에는 한반도 남해안이 중요한 발전 축으로 기능하게 되리라 예상한다.

박 교수_ 김 지사 설명대로 한반도 남해안의 아름다운 풍광과 섬이 주는 매력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남도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천혜의 자연 인프라를 시대적 추세에 맞게 개발한다면 통일 이후 새로운 관광의 지평이 열리게 된다.

젊은층과 은퇴 세대에게 제시할 전남도의 자아상이랄까, 매력 포인트를 꼽는다면.

김 지사_ 전남은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땅이다. 어머니의 품은 항상 그립고 가고 싶은 곳이다. 전남은 또 한국인의 고향 같은 땅이다. 옛 고향, 시골의 모습을 비교적 온전히 품는 등 가장 한국적인 지역이 바로 전남이다. 개발이 뒤처진 까닭에 과거의 흔적과 풍속이 살아 있다. 한국인의 문화 원형질을 간직한 마음의 고향이라고 하겠다. 일상에 지친 도시인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넉넉하게 안아준다. 수려한 환경 속에서 거칠 것 없는 문화적 DNA를 길러왔다.

그래서 전남은 생명의 땅, 새로운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산업의 무게중심이 제조업에서 IT와 결합한 문화·예술·환경 분야로 이동하고 있다. 이제는 수도권이 아닌 전국 어디에서든 문명이 주는 혜택을 모두, 충분히 누리게 됐다. 그래서인지 도시의 부모들이 시골의 초등학교로 아이들을 전학시키는 사례가 잇따른다. 아이들이 답답한 도심 생활에서 벗어나 전원의 삶을 체험하고 시골의 정서를 접하도록 하려는 부모가 늘어난다는 방증이다. 또 외딴섬에 사는 아이들도 IT기술 보급에 힘입어 전국의 문화를 집에서 다 누리게 됐다. 물리적 거리가 주는 문화적 격차가 사라지면서 전남도의 행복지수도 날로 상승하고 있다.

전남지역 의대 신설은 30년 여망 사업


▎김영록 전남도지사와 박기영 순천대 교수는 청정 자연환경과 첨단 과학기술의 양립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박 교수_ 요즘은 KTX가 안 가는 곳이 없을 정도로 교통이 편리한 시대다. 문화와 자연환경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전남도를 찾는 수도권 거주자가 늘고 있다. 자연환경이 주는 편안함은 정서적 위안, 치유, 감동을 선사한다. 자연 속에서 자기 면역 체계를 키우는 데도 전남도만 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진정한 가치는 평범한 일상에 존재한다고 했다. 190만 도민의 일상에 직결되는 숙원사업을 꼽으라면 무엇인가.

김 지사_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에 행정 도시로서 특성이 강한 세종시를 제외하고 의과대학이 없는 곳은 전남도가 유일하다. 전남도민은 30년 전부터 의대 신설을 건의했으나 김대중 대통령 재임 당시 검토되다가 그 후로는 유야무야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코로나19 이후 의료인력 부족 문제가 불거지면서 의대 증원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도민들 사이에서 의대 증원과 함께 지방의대 신설도 의제화하자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박 교수_ 민생이란 게 뭔가. 편하게 먹고살며 아플 때 병원 가서 치료받는 것이다. 전남이 여러 방면에서 소외를 받아 왔지만 의료 소외가 특히 심하다. 의료 인프라가 가뜩이나 부족한 데 도내 곳곳에 산재한 도시 지역조차도 중증질환을 위한 필수의료 서비스가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김 지사 말대로 교육이나 문화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나름대로 보완이 가능하지만 의료는 사람이 하는 서비스이기에 가장 소외되기 쉬운 인프라에 속한다. 그래서 의대 신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 글 박성현 지역발전연구소 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장정필 객원기자

202105호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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