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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평양 리포트] 미국의 새로운 대북전략과 남북관계 

실없는 ‘도보다리의 약속’에 봄날은 간다 

미·중 대립 격화 속에 바이든의 신대북정책 트럼프와 차별화 예고
미·일 설득 못한 文 정부, 북한의 노골적인 패싱 전술에 고립 심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보다리를 걷고 있다. 이후 남북 관계는 별다른 진전 없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드디어 진검승부가 시작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중 관계는 알래스카 회동을 시작으로 서막이 올랐다. 양측은 1961년 빈 외교 협약이 규정한 ‘외교 의전(protocol of diplomacy)’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한 치도 양보 없는 샅바싸움에 들어갔다. 기자들의 생중계 마이크를 앞에 두고 자국민을 의식한 거친 설전(舌戰)을 주고받았다. 통상 5분 내외의 모두 발언이 상대방 주장에 대한 반박과 재반박을 거듭하며 71분이나 지속됐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신정부가 출범하고 중국의 외교 책임자들과 가졌던 상견례 성격의 회담 중에서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최악의 불협화음이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3월 18~19일 미·중 간 2+2 알래스카 회담은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대중 핑퐁외교가 시작된 이래 초유의 장면이 연출됐다. 패권 국가와 신흥 강국이 충돌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외교 용어는 사라지고 창과 창의 대결인 막말 수준의 공방이 이어졌다. G2의 외교 책임자들이 구사한 표현은 주먹만 날리지 않았지 시정잡배들이 동네 관할구역의 이권 장악을 위해 내뱉는 거친 상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독일 언론의 지적대로 미·중 관계가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이날 회담에는 미국 측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중국 측에서 양제츠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이 각각 참석했다. 미국 측은 신장, 홍콩, 대만 문제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대립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블링컨 장관은 “경쟁할 분야는 경쟁하고,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협력할 것이며, 대립해야 할 분야는 반드시 대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설리번 보좌관도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한 아태 지역 4개국 정상회의인 쿼드(Quad)에 대해 언급하면서 “동맹과의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열린 인도·태평양을 만들어가는 게 미국 외교정책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겨울 냉기보다 더 차가웠던 미·중 알래스카 회담


▎지난 3월 알래스카 미·중 고위급 회담 직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인터넷에 배포한 사진. 1901년 청나라의 굴욕 조약인 신축조약과 2021년 회담을 비교해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란 메시지를 담았다. / 사진:웨이신
미국의 날카로운 선공에 대해 중국은 방어와 공격에 나섰다. 양 주임은 신장과 티베트, 대만 문제에 대해 “중국 내정 문제로 미국의 간섭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반박했다.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도 흑인을 도살하는 등 인권 문제가 있으니 각자 할 일을 잘하면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사이버 공격에 관해서는 “이 분야는 미국이 챔피언 아니냐”고 비아냥 수준의 표현을 사용했다. 특히 “미국이나 서방은 자신들이 국제사회의 여론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데, 전체 국제사회는 미국이 주장하는 보편 가치가 국제 여론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초청을 받아 이곳에 왔는데, 우리가 출발하기 전날 미국은 홍콩과 관련해 제재를 가했다”면서 “이것이 미국이 손님을 환영하는 방식이냐”고 돌직구를 날렸다. 작심한 듯 블링컨은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 시절 시진핑 부주석과 만났을 때 했다는 이야기로 마지막 강펀치를 날렸다. “미국에 맞서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그 말은 지금도 진실이다.” 열이 오른 양제츠는 “우리가 서양 사람들 때문에 받은 고통이 덜했다고 보느냐”면서 “중국과 대화할 때는 미국의 실력에 맞게 하라”고 응수했다. 또 “미·중 간 국력 차이가 과거와 달리 크게 줄었으니 그에 맞게 대하라”고 쐐기를 박았다.

양측의 설전 끝에 알래스카의 3월 회담은 언론용 공동성명조차 없이 종료됐다. 아마도 1867년 러시아가 단돈 720만 달러에 알래스카를 미국에 넘긴 이래 앵커리지에서 나온 가장 뜨거운 국제정치 뉴스였을 것이다. 양제츠는 “식사하셨느냐”는 왕이의 질문에 “컵라면 먹었다”고 답하는 등 홀대받은 분위기를 내세워 중국 국내 선전에 주력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속 시원하게 말 잘했다”고 대대적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이후에도 양국은 반도체를 둘러싼 경제 전쟁은 물론 미국이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동맹과 보이콧을 시사하는 등 스포츠 전쟁까지 전방위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생산과 관련해 미국이 “반도체는 국가안보와 직결”이라고 선언하자, 중국은 곧바로 “한국은 반도체 파트너”라고 맞받아쳤다.

바이든 행정부의 신대북정책과 향후 남북관계를 전망하며 글머리에 알래스카 회담을 길게 언급한 이유는 양자의 상관관계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산수 시간에 처음 배운 Y=F(X) 함수에서 종속변수 Y 중 하나는 남북관계다. 독립 변수 X는 일차적으로 미·중 관계이며 두 번째는 바이든 행정부의 신대북정책이다. 요컨대 남북관계는 이제 서울과 평양의 의중보다 미·중 관계와 바이든 행정부의 신대북정책에 따라 결정된다.

알래스카 회담에는 북한 문제도 협의 대상에 올랐다. 따라서 서울과 평양의 속내를 살펴보는 동시에 워싱턴, 베이징, 도쿄는 물론 심지어 모스크바까지 점검해야 문재인 정부에게 남은 10개월간의 남북관계 그림을 조망할 수 있다. 서울-평양-워싱턴-베이징 간 사각 행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입체적이고 상호 변수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블링컨 장관은 알래스카 회담에서 북한과 이란, 아프가니스탄, 기후변화 등 광범위한 의제에 관해 오랜 시간 매우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중국이 소극적으로 이행한다면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의 의중대로 중국이 북한의 등을 떠밀어 대화 테이블로 나가라고 종용할 것 같진 않다. 중국이 북핵 문제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기는커녕 어깃장을 놓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오히려 북한의 군사 도발을 부추기고 서해에서 위장 거래로 유엔안보리 제재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문 대통령 원색적으로 비난한 김여정, ‘운전자’용도 폐기?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사진)은 지난 3월 여러 차례에 걸쳐 문재인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3년 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한편 북한은 미·중 갈등을 파고들며 중국에 밀착하고 있다. 알래스카에서 미·중이 공개 충돌한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은 북·중의 ‘단결과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구두 친서를 주고받으며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로동신문]은 3월 23일 김 위원장이 “두터운 동지적 관계에 기초하여 두 당 사이의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해야 할 시대적 요구”에 따라 시 주석에게 “구두 친서를 보냈으며 양측은 ‘국제 및 지역 정세의 심각한 변화’, ‘새로운 형세’, ‘시대적 요구’ 등을 언급하며 협력을 강조하였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뒷배에 힘을 받은 평양은 단거리 미사일 발사라는 군사 도발과 3월 한 달 동안 두 차례 대남 비난으로 한국을 흔들었다. 김여정 부부장은 3월 30일 담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뻔뻔스러움의 극치’, ‘그 철면피함’, ‘미국 앵무새’ 등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앞서 김여정은 3월 16일 담화에서는 바이든 정부를 상대로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말라”는 첫 경고를 날렸다. 또한 4·27 판문점 선언 3년을 앞두고 “3년 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제목의 담화를 통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비난하면서 “명백한 것은 이번의 엄중한 도전으로 임기 말기에 들어선 남조선 당국의 앞길이 무척 고통스럽고 편안치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라며 남한의 정치적 일정을 언급했다. 김여정은 “털어놓고 말한다”면서 “정치난, 경제난, 대유행 전염병난에 허덕이는 형편에 하나 마나 한 전쟁연습 놀음에 매여달리면서까지 동족에 대한 적대 행위에 부득부득 명운을 거는 남조선 당국의 처지가 가련하기 그지없다”고 힐난했다.

김 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대놓고 ‘임기 말기 정치난’과 ‘미국 앵무새’를 언급한 것은 고도의 이간계 전술이다. 문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모독해 미국을 의식하지 말고 유엔 대북 제재를 무시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라는 무리수와 자충수를 두라는 의미다. 요컨대, 한국의 한·미 동맹 이탈을 통해 워싱턴이 대북 협상에 나오게 하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 또한 향후 북한은 대남·대미 정책의 주요 변수로 한국 국내정치 상황을 고려하면서 서울·부산 시장 선거는 물론 내년 3월 대선 결과를 지켜보며 남한 정세 파악에 주력할 것이다. 통상 북한은 남한이든 미국이든 정세의 불투명성 때문에 대통령 임기 말에는 여간해서는 적극적인 대화와 교류에 나서지 않는다. 평양은 차기 대통령을 겨냥한 대남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할 것이다.

여당의 참패로 막을 내린 보궐선거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마지막 시동을 준비하던 평양행 청와대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를 냈다. 동력은 사라졌고 운전자 역할을 자임하던 문 대통령은 이제는 운전석이고 조수석이고 탑승하기가 어려워졌다. 국제관계의 동력은 국내 정치에서 나온다는 건 외교의 불문율이고, 특히 남북관계는 청와대에 대한 국내 정치적 지지가 강할 때 운신의 폭이 넓어지는 법이다. 북한이 한국에 기대하는 역할은 제재 해제 문제 등에서 본인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비핵화 협상이 이뤄지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것인데,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로 교체되며 설리번 보좌관의 표현대로 과거처럼 무분별한 회담은 하지 않겠다고 밝힘에 따라 한국의 중재자 역할은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 북핵 문제를 다뤄본 경험이 풍부한 전문 관료들이 협상을 주도하는 만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와는 달리 어설픈 합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는 이제 수명을 다한 것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미사일에 실어 보낸 북한의 대미 메시지


▎북한은 3월 21일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한국 정부는 침묵을 지키다 미국이 발사 사실을 밝힌 뒤에야 이를 인정했다. 북한 [노동신문]에 실린 발사 장면. / 사진:노동신문
마지막 승부수로 띄운 7월 도쿄 하계올림픽은 4월 6일 북한이 전격 불참을 선언해 평창을 벤치마킹하려는 청와대의 도쿄 구상은 완전히 물 건너갔다. 북한은 코로나19 방역을 불참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한·일 양국에만 득이 되는 올림픽 참가는 애초부터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대북제재를 연장하는 일본에 맞장구 칠 이유가 없어서다. 평창올림픽처럼 도쿄올림픽에 참가한다면 당초 판문점 선언에서 약속한 대로 남북 단일팀 구성에 나서야 하나 이 또한 평양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다. 스스로 규정한 ‘임기 말 미국 앵무새’와 단일팀을 구성해서 얻는 ‘떡’은 보잘것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고슴도치 전략으로 웅크리고 앉아 워싱턴과 ‘빅게임’을 전개하는 것이 향후 판세에 유리하다.

일각에서는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에는 북한이 참가할 테니 베이징 구상을 도모할 마지막 기회가 남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내 정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다. 3월 9일 예정인 대통령 선거를 달포 앞두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시진핑, 김정은과 문재인 등 최고지도자가 손을 맞잡는 그림은 현실성이 없다. 그때는 이미 문 대통령은 여당 후보에게 퇴임 후 안전을 담보받는 데 정신이 없는 시기일 것이다. 대선 유세가 치열하게 전개되면 영혼 없는 고위공무원들은 유력주자에 줄서기에 여념이 없고, 순장조에 편성된 어공과 늘공들은 난파선을 탈출하기에 급급하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최고지도자의 접촉 구상은 평양의 호응도 기대하기 어렵다. 두 달이 지나면 남측의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는데 곧 퇴장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할 이유가 전혀 없다. 서울의 메신저 혹은 중개자 운운은 흘러간 옛 노래에 불과하다.

북한은 3월 21일에 “나를 잊지 말라(forget-me-not)”는 물망초 전술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정부는 북한을 의식했는지, 혹은 순항미사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 미국 언론 보도 이후 뒤늦게 도발을 시인했다. 한·미가 이번 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 아니라며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일단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미사일 발사를 문제 삼지 않는다는 복안이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사실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것도 미스터리다. 4월 중 발표 예정인 바이든 행정부의 신대북정책 수립에 미사일을 참고하라는 총론적인 메시지 성격으로 판단된다. 앞서 미국은 신대북정책 수립에 참고하기 위해 2월 중순부터 뉴욕 채널 등을 통해 북한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북한은 묵묵부답이었고, 3월 들어 김여정의 독설이 나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트윗에 의한 톱다운 방식으로 세 차례 미·북 정상회담을 즐겼던 평양으로서는 국장급이나 차관보급에 의한 실무자 접촉은 명분만 제공하고 실익이 없기 때문에 성에 차지 않는다. 미국은 신대북정책에 북한 의견을 반영했다는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 물밑 접촉을 시도하였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한편 4월 2일 미국은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 고위급 회담 직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명의의 성명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3국 협력을 통한 공동대응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회담에는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설리번 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일본 국가안보국장이 참석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만난 한·미·일 3국 안보실장들이 북미 협상의 조기 재개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는 데에도 뜻을 모았다고 서훈 실장이 밝혔다. 미·일 측은 북핵 해결의 3자 협력을, 한국 측은 북미 협상 조기 재개에 방점을 찍었다.

쿼드 참여 진실게임에 한·미·일 동맹도 ‘삐그덕’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부터),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이 4월 2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인근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3자 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사진:외교부
미국 측은 대북정책 발표를 앞두고 마지막 단계로 한·일 의견을 청취했다. 한편 서훈 실장은 기타무라 실장과 별도 회담을 했다. 아마 7월 도쿄 올림픽을 통해 2018년 북한이 참여하는 ‘평창 어게인’ 구상을 타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굳건한 미·일 동맹의 틀 속에서 대북 제재 해제 등 북한에게 줄 선물이 여의치 않았고, 3일 만에 북한의 불참 선언이 나왔다. 북한은 이미 3월 25일 올림픽위원회를 개최해 불참을 결정했고 워싱턴 회동을 지켜본 뒤 전격 공개했다.

한편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회의에서 설리번 보좌관이 서훈 실장에게 한국의 쿼드 참여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발끈했지만, 정황상 [요미우리신문]의 보도를 부정확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태국, 필리핀까지 참여가 구체화하는 상황에서 바이든 정부가 혈맹이라는 한국에 쿼드 참여를 요청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참여 요청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부정직한 거래당사자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청와대는 미·중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외줄 타기의 한계는 생각보다 일찍 올 수 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논리는 이론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서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워싱턴에서는 4월 15일 미국 의회가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를 개최했다. 한·미 동맹이 이류 동맹으로 추락하는 삐그덕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의 신대북정책 발표가 늦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인사 때문이다. 미 국무부에서 한반도 등 동아시아 정책을 전담하는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에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베트남 주재 대사가 지명됐다. 백악관은 3월 26일 지명 내용을 발표했다.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한반도와 중국, 일본을 비롯해 몽골 등을 담당하는 자리로 상원의 인준을 거쳐야 한다. 크리튼브링크 지명자는 1994년 직업외교관으로 공직을 시작해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오래 근무한 ‘중국통’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동아태 차관보직은 성 김 전 주한대사가 대행을 맡아왔는데 곧 주인도네시아 대사로 복귀한다. 한국으로서는 대북통인 한국계 성 김 대사가 ‘대행’을 떼고 정식 차관보에 임명되길 기대했으나 미·중 대결 구도에서 중국통인 크리튼브링크 대사가 바이든 대통령의 지명을 받았다. 미국은 북핵보다 중국과의 정면승부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바이든의 신 대북정책, 文 평화 프로세스 접점 찾을까


▎북한이 2021년 도쿄 올림픽 불참을 선언함에 따라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한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한 약속이 흐지부지됐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월 출범 이후 대북정책 전면 재검토를 선언하고 성 김 대사를 중심으로 두 달 가까이 신중하게 대북 구상을 가다듬었다. ‘전면 재검토’는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물론 역대 미 행정부가 시도했던 대북 접근법을 다시 검토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되면서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갖추게 되는 등 북핵 문제가 전과 완전히 달라진 단계에 와 있기 때문에 기존 정책과 다른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즉흥적·일방적으로 결정되던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달리 철저한 사전 정지 작업과 실무진의 정책 검토를 거친 신중한 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특히 ‘동맹국들과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첫째 원칙이다.

청와대의 고민은 백악관의 신대북정책과 수명이 다해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사이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다. 신대북정책의 윤곽은 다양하게 감지되고 있으며 대체로 세 가지 방향에서 추진될 것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유엔 대북 제재 준수 ▷북한 인권 개선 및 미·북 대화 추진 등이다. 특히 북한의 군사 도발에는 응징한다는 원칙이 포함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3월 25일 취임 이후 첫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긴장 고조를 선택한다면 상응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또한 외교에 대한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도 북한에 대해 추가 제재와 ‘외교적 인센티브’를 동시에 거론했다. 당연히 신대북정책에는 북한에 대한 채찍과 당근이 모두 포함될 것이나 북한의 눈높이를 맞추기는 어렵다.

신대북정책 발표 이후 전개될 미·북 관계는 3가지 시나리오로 예상된다. 첫째, 초기 강대강 시나리오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할 경우 미국 역시 강경 대응하는 경우다. ‘레드라인’을 넘는 도발에는 미국의 군사적 대응이 불가피하다. 둘째, ‘그럭저럭(muddle through)’ 시나리오다. 양측이 저강도 도발과 유엔 제재 등으로 기싸움을 지속하지만, 상황이 악화하는 것은 피하는 경우다. 지난 3월 국제 외교전문지[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에릭 브루어(Eric Brewer)와 한국계 수 미 테리(Sue Mi Terry)의 논문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그들은 ‘북핵 위협을 줄이기 위해 실질적인 거래를 해야 할 때(It Is Time for a Realistic Bargain With North Korea)’라는 글에서 비핵화가 사실상 미국의 손을 떠난 만큼 북핵 보유는 잠정적으로 용인하면서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적극적으로 제어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거래’는 이론적으로 가능하며 그럴듯한 정책 대안이지만 과연 핵 보유 증가와 핵개발 능력을 분리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매우 논쟁적인 주제다.

임기 8개월 남은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관심 밖

마지막으로 전격 대화 시나리오다. 양측이 레드라인을 지켜 긴장은 상존하지만, 한발씩 물러나서 가을바람이 불어올 즈음에 회담장에 들어서는 경우다. 미국이 대북 특사를 평양에 파견해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경우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은 대북 제재와 병행하는 것이 일시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지속적인 인도적 지원은 대북 제재 자체를 무력화하고 북한 역시 소규모 인도적 지원보다는 완전한 해제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에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기에는 용이하지 않다.

빙하기에 들어선 미·중 관계 연장선에서 미·북 관계 역시 엄동설한은 아니지만, 여전히 싱가포르와 하노이의 봄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종속변수인 남북관계 역시 해빙 무드를 기대할 만한 햇볕이 보이지 않는다. 평양이 보기에 3년 전 판문점의 봄날을 다시 연출할 만한 인센티브가 임기 말 서울에는 없다. 하지만 정의용-서훈 외교·안보 진용은 여전히 트럼프 시대의 일장춘몽에 집착하고 있다. 주요 외교·안보 실무자들 역시 지나간 봄날의 아스라한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일선 취재기자들의 전언이다. 하긴 보스가 방향을 틀지 않고 있으니 스태프들 역시 먼 산을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54년에 발표된 한국인의 애창 대중가요 1위인 ‘봄날은 간다’를 부른 가수 백설희는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고 노래했다. 문 대통령은 평생 3년 전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했던 달콤한 ‘그 맹세’의 추억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하지만 판문점 도보다리의 ‘그 맹세’를 리얼리티쇼로 연결해줬던 어떤 대통령은 지금 플로리다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골프에 빠져 있다. 4년 후에 그가 백악관으로 복귀할지는 모른다. 그렇더라도 그때는 이미 문 대통령은 야인으로 양산 사저에서 기거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양산의 봄꽃이 피면 여전히 ‘그 맹세’를 되새기며 김정은은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며 그의 변심을 의심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노래는 2절에서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고 읊조리고 있다. 실없는 약속에 8개월여 남은 신축년 남북관계는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갈 것이다. 가끔 미사일에 놀라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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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호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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