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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일모도원(日暮途遠) 文 정부 한반도 프로세스의 行路 

마지막 승부수로 남북 총리급 회담 개최 추진?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낙관적 전망 기대하기 힘든 실정
김정은도 장기 경색 각오한 ‘고난의 행군’ 발언 쏟아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남북정상회담 판문점선언을 발표하기 위해 단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 초 청와대에서 외교·안보 부처의 2021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라며 남북 대화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고 했던가? 갈 길은 먼데 서산에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다.

얼마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신정부가 출범했다. 바이든 신정부는 예상과 달리 대중 억제의 끈을 더욱 강하게 죄면서 미·중 패권 경쟁이 한층 첨예화하는 모습이다. 이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이 ‘북한 비핵화’ 원칙 위에서 인권 문제와 함께 대북 압박 의지를 밝히는 가운데 한국의 역할 공간 확보가 쉽지 않은 국면을 맞이했다.

2017년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미국 정계의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가 세계를 호령하는 백악관 주인 자리를 꿰찼고, 한국에서는 탄핵 돌풍의 여세를 몰아 5월 9일 진보좌파 정부가 집권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곧장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구상을 내놓았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2017년 7월 문 대통령의 ‘베를린 평화구상’에서 비롯됐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구상으로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 이행 ▷북한체제 보장하는 비핵화 추구 ▷남북 평화체제 ▷‘한반도 신경제지도’ 본격화 ▷비정치적 분야 교류협력 확대 등 5대 정책과제를 내세웠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남북한이 새로운 경제 공동체로 번영을 이루며 공존하는 ‘신한반도 체제’를 향한 프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이는 역대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 남북 공동번영의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한국 주도로 한반도 문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야심 찬 구상이었다.

지난 4년 동안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몇 차례 화려한 무대가 꾸며진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올해 1월 제8차 당대회 이후 ‘당 총비서’)에게 세계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한국 정부가 연출을 맡아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김정은 위원장을 수퍼 스타로 만들었지만 흥행 소득은 빈손이었다. 북한 비핵화, 북·미 관계 개선, 남북 협력 등 어느 것 하나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세계적 이벤트로 동북아 국제 정세의 지각 변동을 초래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요란한 이벤트로 끝났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피크로 한반도 정세는 그 후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는 소강상태를 지속해왔지만,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로도 낙관적 전망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그럴지라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동력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북·미 소동(騷動)과 긴박했던 물밑 접촉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배웅을 받으며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돌아가다 뒤돌아보고 있다. /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2017년은 사실 평양과 워싱턴의 기싸움과 말 폭탄으로 세상의 이목을 끈 한 해였다. 평양은 미사일 도발로 워싱턴을 바짝 긴장시켰다. 물론 이는 북한의 예상된 패턴으로 미국 트럼프 신정부를 향한 관심 촉구 전략이었다. 7월 들어 2회에 걸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하자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할 것을 경고하고 나섰다.

그러자 9월 초 북한이 제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에 북한은 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 완전 성공을 주장했고, 곧이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발사했다. 그사이 북한의 도발로 인한 긴장 국면에 평양과 워싱턴 사이에서 오간 ‘말 폭탄’이 시선을 끌었다. 김정은은 트럼프를 “불망나니, 깡패, 노망난 늙다리(dotard)”라고 비난했고, 트럼프는 김정은을 ‘리틀 로켓맨’으로 조롱했다. 2017년 말 북한이 드디어 ICBM급 ‘화성-15형’ 발사(11월 29일)를 계기로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처럼 요란한 소동에도 불구하고 북·미 간 극적 반전의 계기가 준비되고 있었다.

평양은 트럼프 대통령 측에 대화를 바라고 은밀히 손을 내밀었다. 싱가포르 회담 직후 [뉴욕타임스]는 물밑에서 폼페이오(당시 CIA 국장)-김영철 라인이 가동돼 2017년 여름 첫 대화를 시작으로 장소를 바꿔가며 제3국에서 수차례 만나 정상회담 가능성을 탐색했던 비화를 소개했다.

또한 그해 5월 CIA 내 북한 전담 조직인 코리아미션센터(KMC)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그쪽과 새로운 라인을 만들고 싶다”는 평양의 제의도 밝혔다(NYT, “North Korea’s Overture to Jared Kushner” 2017년 6월 17일). 그해 말 워싱턴은 북한의 대미 접촉을 김정은의 전략적 선회, 즉 친미 노선(?) 메시지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중국 뒷배 삼아 협상 우위 노렸으나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3월 25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밝히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18년 초 평창올림픽의 화합 분위기로 한반도에 훈풍이 불었다. 3월 5일 평양을 방문한 당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에게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뜻을 밝혔고, 이에 한국 특사 측은 3월 8일(미국 시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메시지를 전했다. 트럼프는 즉각 “좋다, 만나겠다”고 수락하면서, 한국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자 ‘북·미 정상회담 5월 개최’ 확정 뉴스로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판문점에서 ‘4·27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다.

북·미 정상회담 소식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는 충격적이었다. 3월 초순 ‘평양-서울-워싱턴’의 3자 협주(協奏)에 ‘차이나 패싱’을 우려한 베이징이 즉각 반응했다. 그에 따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북·중 정상회담이 무려 세 차례나 이뤄졌다. 제1차 북·중 정상회담은 김정은의 전격적인 베이징 방문으로 개최됐다(3월 25~28일). 곧이어 다롄(大連)에서 제2차 정상회담이 진행됐다(5월 7~8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시진핑은 다시 김정은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였다(6월 19~20일). 김정은의 세차례 방중은 결국 북·미 정상회담의 궤도를 이탈시킨 계기로 작용했다.

시진핑은 1차 방중 때 “북·중 친선은 피로써 맺어진(鮮血凝成) 친선으로 세상에 유일무이하다”고 했다. 시진핑 집권이래 처음으로 북·중 혈맹을 언급했다. 김정은은 “북·중 인민은 자기들의 운명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체험했다”며 “북·중 친선은 나의 숭고한 의무”라고 화답했다.

2차 방중 때 시진핑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북·중은 운명공동체, 순치의 관계로 정세가 어떻게 흐르든 관계를 공고히 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3차 회담 당시 시진핑은 ‘변하지 않는 세 가지(三個不會變)’를 약속했다. 이는 ▷북·중 관계 발전에 대한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지지 ▷북한 주민에 대한 중국 인민들의 깊은 우의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지지 등이었다. 이를테면 중국판 대북 체제 보장인 셈이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2018년 6월 12일)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은 화려한 정치 이벤트를 연출했다. 김정은은 김일성을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다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으로부터 체제 보장에다 경제 지원까지 얻어냈다는 데 스스로 승리의 도취감을 만끽했을 수 있다.

이에 김정은은 중국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배경으로 삼아 대미 협상의 우위를 확보하고자 했다. 더욱이 트럼프가 북·미 관계의 외교적 성과에 매달리는 입장이라고 여겨 그는 대미 협상의 갑을(甲乙) 관계에서 스스로 ‘갑’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 결과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 공동성명(4개 항으로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 ▷유해송환)은 북한 입장이 먼저 반영된 형태로 나타났다.

북한의 자신감이 여기서 그친 것은 아니었다. 후속 협상에 대한 북한의 고자세로 워싱턴의 의혹을 샀고 잠시 트럼프를 분노케 했다. 이러한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대북 우려를 불식시키는 한편 남북관계의 획기적 발전을 다지고자 급거 방북 길에 올랐고,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9·19 평양공동선언’이 도출됐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내려는 트럼프의 ‘김정은 껴안기’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전략적 선회 가능성이 중국의 동북아 전략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는 데 놀란 시진핑이 사태를 그대로 방관하지 않았다. 시진핑은 김정은의 뒷덜미를 잡아당겨 ‘북·중 혈맹’에 묶어뒀다.

시진핑의 ‘김정은 잡아당기기’로 마침내 평양-서울-워싱턴의 삼중주는 불협화음 연주가 되고 말았다. 특히 여기서 북한이 대미·대중 전략으로 과거 김일성의 중·소 사이의 줄타기 외교의 재현을 꿈꿨을 수도 있다. 이는 명백한 오판이다. 그럼에도 김정은의 자기중심적 타산에다 평양 밖의 친북 그룹의 그릇된 정세 분석과 조언이 대미 전략을 오판으로 이끌었다. 평양의 기회주의적 태도가 트럼프의 불신을 자초하면서 김정은의 ‘친미 사인 보내기’와 트럼프의 ‘김정은 껴안기’의 초기 구도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2019년 2월 28일)은 깨졌다. 트럼프는 당시 협상 테이블에서 북한 비밀 핵시설을 폭로했다. ‘영변+α’에서 알파, 즉 새로운 ‘핵의혹 시설’이 불거졌다. 하노이 ‘노딜’은 북한에는 참사(慘事)였다.

하노이 협상 결렬에는 북한의 책임이 크다. 두 측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미국이 북한이 숨기고 있는 ‘비밀 핵시설’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는데, 북측은 전혀 이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평양은 미국 국내 정치의 상황 오판에다 톱다운 방식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충분히 녹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평양역에서 전용 열차로 베트남 동당역까지 66시간, 왕복 7600㎞를 휘파람 불면서 갔다. 여기에는 김 위원장의 ‘러브 레터’에 트럼프가 감동했을 것이라는, 김정은 스스로 도취도 한몫했다.

맹목적 낙관에 플랜 B조차 준비 못했던 평양


▎4월 4일(현지시간) 필리핀해, 미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머스틴함에서 함장(왼쪽)이 중국 해군의 항모 랴오닝함을 바라보고 있다. / 사진:미 해군
김정은은 아무런 양보 없이 ‘늙다리 트럼프’를 추켜세워 속일 수 있다고 여겼고, 트럼프의 교묘한 트윗질도 김정은의 오판을 부추겼다. 협상에 대한 맹목적인 낙관에서 대안적 카드로 ‘플랜 B’조차 준비하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하노이 결렬은 정작 서울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야말로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린 기분이었다. 사실 북·미 간 핵 협상의 진전을 전제로 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하노이 결렬에서 크게 틀어졌다.

이즈음 트럼프-김정은 DMZ ‘깜짝 회동’(6월 30일)이 시선을 끌었다. 그런데 이는 사실상 트럼프의 노회한 술책으로, 시진핑의 첫 방북(6월 20일)에 대한 맞불전략으로 이해된다. DMZ ‘깜작회동’은 베이징으로 기울 수 있는 김 위원장을 다시 중간쯤으로 잡아당겨놓았다. 여기서 트럼프는 또다시 특유의 ‘립서비스’로 김정은을 으쓱하게 했다.

그날 이후 김정은은 트럼프의 안중에서 사라졌다. 2019년 10월 초 스톡홀름에서 북·미 실무협상이 열렸으나 공허한 얘기만 오갔다. 이날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라는 터무니없는 주장만을 되뇌었을 뿐이었다. 그 후 2020년 글로벌 팬데믹 사태(코로나19)와 미국 대선 정국으로 북·미 관계는 장기 교착 국면에 들면서 지금까지 올스톱되고 말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평양과의 협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세기적 대결 구도인 패권 갈등 속에서 북핵문제가 우선순위로 떠오르기가 쉽지 않다. 미국은 지금 홍콩, 대만, 신장 위구르의 인권 문제 제기 속에서 무역·금융·군사·우주·5G를 비롯한 첨단과학 분야에서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대중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트럼프와는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과 함께 대중 전략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바이든 행정부, 평양과 협상 서두르지 않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 21일 평양 금수산영빈관에서 산책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국방장관의 2+2 회담이 3월 17일 도쿄, 18일 서울에서 열렸다. 그런데 동맹국 회담 후 귀국 길에 18일(현지시간)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미·중 고위급 회담이 개최돼 시선을 끌었다. 바이든 행정부와 중국의 첫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과 중국 당국자들이 시작부터 날 선 비난을 주고받았다. 미·중 간 첫 회담부터 경쟁과 적대관계를 드러냈다.

한편 미·중 패권경쟁에서 한국의 입장과 위상이 새롭게 부각됐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비슷한 시각 미국에서 한·미·일 3국 안보실장회의가, 중국에선 한·중 외교장관회담이 각각 열렸다(4월 3일). 미국에서 확고한 동맹 공약 재확인 속에서 인도·태평양 안보를 포함한 공동 관심사가 논의됐다.

특히 북한 비핵화 문제는 삼각 공조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대북 제재의 전면적 이행을 재확인했다. 그와 함께 중국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에서는 한·중 외교장관회담이 개최됐다. 중국은 한·미 동맹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동맹 관계인 미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인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미국 국내에서 바이든 정부가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싱가포르 합의가 북한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에 대한 큰 틀의 원칙을 담고 있어 좋은 출발점이 되며, 무엇보다 북한 측도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으로 여기고 있다. 김정은은 1월 노동당 대회에서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는데, 바로 이 지점이 미국의 관여와 북·미 협상 재개의 접점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싱가포르 공동선언은 구체적인 합의나 로드맵이 아니고 오랫동안 얘기돼온 기본 방향에 대한 합의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미국 내에서 외교적 접근과 달리 보다 현실적인 대안 모색을 주장하는 입장도 주목된다. 북한의 비대칭 전력의 고도화에 대해 한·일 군사협력 확대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일 간 과거사 문제와 주한미군 철수를 목표로 하는 북한과 중국의 균열 전략으로 삼각 공조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하면서 삼각 공조 회복과 함께 대북 억제 옵션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과연 김정은이 싱가포르의 황홀한 추억을 넘어 최종적인 비핵화를 한번쯤 생각해 봤을까?

바이든 팀은 대북 협상의 베테랑들이다. 북한에 끌려가지 않을 것이며, ‘정치적 쇼’를 펼칠 이유도 없다. 김정은이 일본과 미국을 자극하는 수준의 도발을 결행하기도 쉽지 않다. 이 경우 대미 패권 경쟁에 힘겨운 중국의 협력과 지지를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 전략그룹이 대북 전략의 새로운 옵션을 시험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도록 만들 수 있다. 최근 미국 조야에서 적성국의 위협에 맞서 아시아 역내 동맹들과 미국의 확장 억제력을 조율하는 기구 설립이 논의되고 있다. 여기에다 전술핵 재배치, 드론 공격의 핀셋 타격 등 물리적 대응도 포함된다.

출구 관련 세 가지 시나리오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8일 평양에서 조선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에 참석해 폐회사를 했다고 이튿날 방송했다. / 사진:조선중앙TV 캡처
여기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된 세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자.

첫째, 최근 바이든 대통령은 ‘최종적인 비핵화를 조건으로’ 대북 외교를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비핵화’라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다. 미국은 한·미 동맹과 핵 억지력 강화를 전제로 북한 비핵화의 포괄적 합의 및 단계적 실시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바이든 팀이 새로운 북·미 관계 확립과 평화체제 구축에 동의하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실무 차원의 협상이 재개될 것이다. 먼저 김정은의 냉철한 판단과 결단이 요구된다.

둘째, 바이든 대통령 재임 4년 내내 핵 협상이나 북·미 관계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김정은 총비서는 최근 ‘노동당 6차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 결심”을 밝혔다([노동신문] 4월 9일 자). ‘고난의 행군’이 과거형이 아닌 미래형으로 다시 언급됐다. 김정은 스스로 초장기 경색 국면을 각오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대북 제재 강도는 한층 거세질 수 있다. 인권 문제 압박과 더불어 김정은의 해외 돈줄을 철저히 막아버리는 금융 제재도 병행될 것이다. 미·중 패권 경쟁에서 중국이 대미 유화책으로 대북 지원의 끈을 잠시 놓아버릴지 모른다. 이 경우 자력갱생조차 한계 상황에 처할 것이다.

셋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려는 문재인 정부가 마지막 승부수를 띄울지도 모른다. 이는 남북 총리급 회담이다. 남북 총리급 회담 개최를 피날레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시나리오다. 여러모로 무망한 정상회담에 비해 남북 총리급 회담은 매우 실리적인 측면이 크다. 남측의 대규모 인도적 지원으로 북측의 절실한 기대에 부응하는 한편, 대북제재 포위망에 커다란 구멍을 뚫는 효과가 있다. 워싱턴을 멍하게 만들어 진영 내 요란한 박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의 결실이라는 적잖은 성취감으로 스스로 위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간은 결코 북한 편이 아니다.

- 조민 전 통일연구원 부원장·공화21공동대표 chomin0716@gmail.com

202105호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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